국가정보원 사건 관련 시국선언을 지지합니다.

 

 


 


 


“영화진흥공화국”(이하 영진공)은 금번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 관련 학생 및 시민단체들의 시국선언을 적극 지지합니다.


 


○ “영화진흥공화국”의 입장은 오늘(6월 20일) 기자회견을 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시국선언문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경찰 축소수사에 대한 총학생회의 입장

–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공공기관이 주도한 선거개입,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합작

지난 6월 14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불구속 기소되었다. 지난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국가정보원 소속 직원들에게 인터넷상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도록 지시함으로써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종북 세력’에 대항하는 심리전을 수행하고 종북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한다는 미명 하에 직원들에게 선거 개입을 지시하였다. 국가정보원은, 막대한 재원과 조직력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 업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정보력으로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기만하고 속이고 있었다. 우리는 국민의 눈길이 닿지 않는 정부기관이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고 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모습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문제는 사건이 알려진 지 반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재판에 넘겨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에 의한 수사축소 및 은폐 사태가 있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재직 중이었던 지난 12월, 선거운동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인터넷 댓글 의혹이 도마 위에 오르자, ‘신속한 수사’를 이유로 키워드를 78개에서 4개로 축소수사하였고, 대통령선거를 사흘 앞두고 갑자기 무혐의 내용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하는 등 특정 후보에게 명백하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

결국 검찰에 의해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수천 건의 댓글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김용판 전 청장도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 경찰은 국가정보원과 한패가 되어 정권 재창출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주권 행사에 개입한 국가권력, 정부는 엄중한 조치를 단행하고 재발 방지를 보장하라.

이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핵심적인 권력기관들이 국민들의 주권이 행사되는 선거에 개입하여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점에 있다. 본 사건은 공권력이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불법적이면서도 은밀하게 행사할 때,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1조가 공문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오늘날 보통, 직접, 평등, 비밀원칙에 기반을 둔 선거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저항과 희생에 기반한 성과이다. 그러나 권력기관들이 정권의 개가 되어 오히려 국민들의 여론을 통제하는 데 앞장서는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 모습이 군사정권 하에서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가 수행하던 역할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짓밟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관계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의 행보를 보면 정부가 이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이미 원세훈 전 원장에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한다는 검찰의 입장을 꺾은 바 있다.

국가정보원의 범죄사실을 공개한 내부고발자들은 파면, 기소 처분된 데 비춰볼 때 범죄의 총책임자인 원세훈, 김용판에 대한 처분은 이상하리만큼 가볍다. 벌써부터 정권의 외압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본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고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국가정보원의 행보를 옹호하면서, 국가권력기관이 민주주의의 절차를 마음대로 훼손하고 있는 중차대한 문제를 회피하지 말라. 서울대 총학생회는, 공권력을 이용하여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국가정보원 인사들과 축소수사와 허위보도로 국민을 속인 경찰 관계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국가권력기관이 어떠한 형태로도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국민들을 속이지 않겠다는 약속과 구체적인 방안을 정부 스스로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정부가 책임지고 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 땅의 국민들과 함께 더 이상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모습을 방관하지 않고 직접 일어날 것이다. 민주주의를 우습게 여기는 권력은 용인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로부터 똑똑히 기억하기 바란다.

선거에 개입하고 수사를 축소 은폐한 관련자들을 처벌하라!

권력기관의 간섭 없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보장하라!

민중해방의 불꽃

제55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2013. 6. 20.


 


영진공 일동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성폭행은 있었으나 결과는 긍정적이라고?

 


 

 


 


 


“강제병합 후 일제에 의한 근대제도의 이식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역사교육과정에 명시할 것을 요구 … 일제가 한국 근대화가 끼친 긍정적 역할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교학사)가 검정심의 본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기사 원문 링크]


 


그러니까 이들의 주장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 성폭행을 당해 그 결과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에게 ‘네 꼴로는 원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할 수가 없었는데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얻었으니 다행’ 이라는 것이고, ‘그 사내가 너를 강간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얻어진 아이가 건강하고 귀여운 것도 사실’이라며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강간을 당했어도 결국 괜찮은 유전자가 섞인 아이를 얻었으니 형식은 부정적이지만 강간한 행위는 긍정적이거나 불가피했던 것이라는 요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무슨 이런 일이 있을까.


자신의 의사에 반해 주권, 인권, 자원을 강제로 수탈한 자가 끼친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그저 음지에서 간혹 보이는 것도 아니라 대놓고 버젓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로 채택이 된다니 말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리겠다더니 … 이제 나라는 반민특위가 강제로 해체되던 1949년으로 되돌아 가는 중이다.


 


 


 



1949년 당시 남대문로에 있던 반민특위 청사.


이후 이 건물은 국민은행 건물로 사용돼 왔다 [사진 출저: 블로그 보림재]


 


 


 


기독교에는 인간이라면 저지르지 말아야 할 죄악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이를 ‘일곱가지 대죄’ 또는 ‘죽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죄’라 일컬으며 항상 이를 경계하여야 하고, 그러지 못할 시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 일곱가지 대죄의 리스트는 역사 속에서 조금씩 수정되어 오다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정해져 내려오는데,


 


1. 교만(Pride), 2. 질투(Envy), 3. 탐욕(Greed), 4. 분노(Wrath), 5. 탐식(Gluttony), 6. 욕정(Lust), 7. 나태(Sloth) 이다.


 


사실 리스트를 보면 굳이 기독교가 전하는 교훈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고 생산이 발달할 수록 인간이 빠져들기 쉬운 모든 유혹을 나열해 놓은 것이라고 해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곱가지 대죄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은데, 그것은 바로 … 무지(Stupidity)이다. 여기서 무지라 함은 저학력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목적하는 바를 어떻게든 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고집만 남은 멍청함, 맹신, 의도적 외면, 계산된 왜곡, 곡학아세 등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을 비틀고 궤변을 덧붙이다 못해 종내는 다른 큰 죄악을 찾거나 만들어 내어 당장의 자신의 허물을 덮어버리거나 합리화하는 작위적 무지는 그 중 악질이라 하겠지만, 이러한 행위에 멋모르고 동조하거나 방치하는 것도 그 못지 않은 죄악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 속 음악은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

 


 


 


일곱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 “세븐” (1995, 데이비드 핀쳐 감독)을 보면, 죄악에 대한 심판을 명분으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이 나온다. 그리고 이 범인에 대해 형사 윌리엄은 시종일관 냉철하게 대처하지만, 열정적인 파트너 형사 데이비드는 범인의 교활함에 넘어가 분노의 죄악에 이르는 함정에 빠진다.


 


그리고 영화 “미션” (1986, 롤랑 조페 감독)을 보면, 자유롭게 살아가는 원주민에게 가해지는 침략자들의 공격에 맞서는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가 나온다. 가브리엘 신부는 권력자들에게 읍소한다거나 해보지만 결국 기도를 올리는 걸로 갈 길을 정하지만, 로드리고는 거대한 폭력 앞에 턱없이 부족하다해도 원주민들과 함께 무기를 들고 맞선다.


 


 


 



영화 속 음악은 널리 알려진 “가브리엘의 오보에”

 


 


 


윌리엄 형사가 옳으냐, 데이비드가 그르냐, 가브리엘 신부의 방식이 나은 거냐, 로드리고가 맞느냐 … 이런 논쟁은 각자의 견해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날 거고, 달리 보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한다는 걸로 봤을 때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뭐라도 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큰 죄악을 저지른 이들은 절대, 한때 실수에 의해 작은 죄를 저지른 이들처럼  죄책감에 힘들어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속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면 오히려 더 길길이 날뛰며 합리화와 정당화를 위해 말 그대로 분골쇄신한다.


 


친일이 드러나면 그땐 다 그랬다며 오히려 그 친일로 인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우기면서 우리에겐 현재 더 큰 위험과 적이 있는데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한다. 위법과 탈세, 착복이 드러나면 그땐 모두 다 그랬다며 오히려 그보다 다른 중요한 일을 해냈다고 자랑하면서 우리에겐 현재 더 큰 위험과 적이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자고 한다.


 


지난 역사를 돌아봐도 큰 죄를 저지른 이들이 스스로 뉘우쳐 잘못을 되돌리고자 노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 나서서 계속 훈계를 하든, 지속적으로 매를 들든 아니면 죄인들이 기를 못 펴게 사회 주도층이 형성되든지 해서야 비로소 잘못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패악질을 안하게 되곤 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저들이 스스로 정신을 차려 뭔가를 하거나 아니면 안하거나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나부터 스스로 뭔가를 해야겠다. 공부를 더 하든, 주변 사람들과 자주 진솔하게 대화를 하든, 뜻이 같은 이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널리 알리든 말이다.


 


 


 


영진공 이규훈


 


 



 


 


 


 


 


 


 


 


 


 


 


 


 


 


 


 


 


 


 


 


 


 


 


 


 


 


 


 


 


 


 


 

임금피크제와 일자리 나누기, 정답이 있을까?

“오자룡이 간다” 라는 드라마를 보다보니 특이하게도 재벌가의 사위가 부당해고 당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제법 시대상을 반영하는 구나 싶었지만 역시나 이야기의 전개는 현실 만큼이나 답답하다.

눈길을 끄는 건 그 재벌 사위가 부당해고 당한 사람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받으러 다니는 서명인데, 내용인즉슨 노동자들 자신의 임금을 좀 줄이고 그 임금만큼 해고자들을 복직시키자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와 더불어 요즘 오건호 님이 민주노총의 임금피크제 반대에 대해 비판한 글이 이슈가 되던데 한 번 읽어보면 참 비슷한 이야기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302154105&code=990308

“그런데 현실은 생일 덕담만을 주고받기엔 갑갑하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 자원을 가진 상당수 중심 노동자들은 종종 자신만을 챙기는 ‘이익집단’으로 간주된다. 민주노총은 6개월째 위원장조차 뽑지 못하는 내홍을 겪고 있다. 조직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선거만큼 중요한 계기가 없건만, 정파 인사들은 자리를 논하는 ‘짝짓기 테이블’을 급조할 뿐, 노동운동을 부흥시킬 프로그램은 제시하지 못한다. 선거라는 절호의 기회를 매번 뒷걸음질에 소모해 버렸다면, 이들이 지닌 시대적 역할은 분명 종료됐다.

중앙조직의 활동 역시 명분에 치우쳐 일을 놓친다. 요사이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이 논란이다. 민주노총은 임금피크제가 불안정 노동자의 저임금을 악화시킨다며 도입에 반대한다. 하지만 정년 연장의 수혜가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 공공부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임금피크제 논란이 수년을 거듭해 온 주제임에도 ‘임금삭감 불가’만 되풀이한다. 모양은 정년 연장을 보편적 노동권으로 주창하지만 실상은 중심 노동자를 위한 조치로 귀결시킨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에 가깝다.”

솔직히 임금피크제나 다른 노동자들을 위한 임금삭감이란 것이 형태상으로는 자본가들의 이익은 그대로 보존하되 노동자 자신들끼리 부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원칙의 입장에서 보면 임금 피크제야말로 노동자들 사이에서 부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계급간의 문제를 노동자간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년 연장 정책이 들어서게 되는만큼 민주노총의 임금 피크제 반대도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세대간의 격차가 벌어진 최근의 상황에서는 임금피크제 반대가 저소득층, 부당해고 당하는 노동자, 사회의 소수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닭과 달걀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형적으로 좁은 한국이다 보니 세력화를 못하면 성취를 할 수 없고, 성취가 없으면 세력화가 매우 힘들다. 그간 대중들의 의식 속에 박혀진 개념으로는 정규직의 희생이 없이는 비정규직이 살아 남지 못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없이 힘있는 노동운동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원론적으론 임금피크제나 잡 셰어링이 올바르지 않을지라도 일단 지금 바로 현실에서 힘들어하는 하위계층을 돕기 위해 이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자리 나누기(Work-Sharing) 법안 통과에 반대하며 시위 중인 미국 위스콘신주 노동조합 대표단 (2013)

마음을 얻지 못하면 커다란 하나가 될 수 없을 터인데 노동자들 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간극을 애써 무시하며 지나온 시간이 너무 오래다. 솔직히 이런 상태로 벌써 몇년째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그대로이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대중의 오해는 그대로이다.

그와 더불어 동력이 사라진 노동운동은 대중과 함께하기가 만만치 않다. 오건호 님의 주장대로 이제는 그냥 그대로 있을 수는 없고 뭔가 다른 상상력과 활력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사실 어떤게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를 터이지만 그렇다고 이제까지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혼잣말로 그냥 푸념을 하자면,

사회진보란 참 … 진보세력에게 간디와 같은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또한 수퍼맨 같은 완벽함을 요구하는듯하다.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내는 일은 나에게 무리지만 나름 의미가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방안을 헤아려보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영진공 엽기민원

빅 데이터는 빅 브라더가 될 것인가?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이가 미래를 결정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이가 과거를 결정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


 


 








 


 


 


1949년에 나온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굳이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이 책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이 나온다.


그건 바로 “Big Brother”.


 


사회의 모든 활동과 개인의 일상 모든 것이 다 통제되고 지배되는 그런 사회,


그걸 조정하는 한 사람, Big Brother 말이다.


 


한때 요란하게 떠들어지던 이 단어가 요즘은 거의 사용되지 않긴 하지만,


이 이미지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빅 데이터와 흡사하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지나친 상상일까.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소설 “1984”는 1956년과 1984년에 영화화 된 적이 있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강압과 폭력 그리고 인간성의 왜곡을 통한 통제체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깨어있는 인간들,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들이 협력하고 저항하면 이러한 체제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역사상 존재해왔던 그리고 계속 새로 생겨나는 전체주의들은 바로 그런 희망에 기반한 노력에 의해 대부분 소멸되었다.


 


1998년 개봉 영화,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Enemy Of The State)”.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코자 노력하지는 않는 오락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참으로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통제의 공포를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에서 통제는 첨단 기술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를 행하는 이는 최고 권력층 내의  심각하게 비뚤어진 인사이다.


 


인공위성과 통신기기 그리고 CCTV를 통해 가해지는 통제의 압박은 무척 공포스럽고 끔직하여서, 그 기술과 권력은 반드시 선한 권력층과 건전한 체제 하에서 관리되어야 한다고 절실히 느껴진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 “에이, 정말 저게 가능하기나 하겠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그런데 빅 데이터라?


 



이건 말하자면 현존하는 모든 데이터를 파악하고 관계지워서,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 또는 더 나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행위의 총칭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빅 데이터는 누군가의 강압이나 외적인 요소에 의해 강제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제공한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진 정보에 기반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2011년에 방영을 시작한 미국 드라마 “Person of Interest”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이 드라마는 9. 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유사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하였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정부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범죄는 무시하기에, 이를 못 견딘 제작자가 직접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통제와 관리를 위해 동원하는 주요 도구는 “Digital Footprint”, 즉 온라인 행적이다.


 


온라인 흔적과 통신 내역, 공적 기록에다가 인공위성과 CCTV를 통원하여 한 개인의 행동과 그 행동의 영향을 또 다른 개인들과 연결시켜 분석하면 그 개인에게 어떤 일이 언제 벌어질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가능할까 긴가민가 하면서 그냥 시청하곤 했는데,


빅 데이터라는 개념과 묶어 보니 … 어?! 이거 가능할 수 있겠다 싶어진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대부분을 SNS에 기록하고, 포탈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 취득과 의견 피력을 수시로 하며, 인터넷 쇼핑 등으로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구매하고 거의 모든 결제를 신용카드로 하는 나는 점점 더 깊고 상세히 데이터의 형태로 규정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특정 개인이 예전에 어떤 단체나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어떤 의견을 내고 누구와 어울렸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어느 계절에 주로 어떤 물건을 사고 전화통화는 어느 시간에 누구와 하는지, 여가는 어떻게 즐기는지, 정치적 성향은 어떤지, 뭘 잘 먹는지, 잠은 언제 자는지 등등 … 모든 걸 순식간에 분석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사람은 단순해서 이전에 형성했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Digital Footprint에 의해 어딘가에는 기록된 나의 과거를 보고 현재를 모니터링하여 나의 미래를 높은 신뢰도로 예측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온라인 흔적을 찾아 지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느 순간에 힘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빅 데이터가 빅 브라더로 변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그리 지나친 걱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기 매우 힘들게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들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테고,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안다면 이를 탐내지 않을 권력자가 그리 흔하겠는가.


 


 


 






 


 


 


이번 보스턴 폭발(또는 테러)의 경우를 보아도,


<보스턴 사고의 사상자와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나도 모르게 빅 브라더의 존재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빅 브라더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강렬히 저항하게 될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영진공 이규훈


 


 


 


 


 


 


 


 


 


 


 


 


 


 


 


 


 


 


 


 


 


 


 


 


 


 


 


 


 


 


 


 


 


 


 

“넘버 3”, 건달영화로 살펴보는 정치외교 공학

 

 


 


 


여기서 핵, 저기서 핵, 사방이 핵핵댄다.


이 오뉴월 땡칠이마냥 핵핵거리니, 미도 중도 한도 따라서 핵핵댄다.


누구는 그게 다 뻥이라 하고, 누구는 이러다 정말 일 벌어지는 거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 네들 그러지 마라 … 사람들 목숨이 니들 짤짤이 밑천 아니다.


그리고 … 홧김에 한 판 붙자는 사람들 … 그래서, 붙어서, 뭐 어쩌자는 거냐.


 


손자 병법에도 나와있듯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책인 거다.


그리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데 가장 좋은 무기가 대화다.


그런 대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야할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라고,


소위 권력자라는 높은 자리에 앉아들 있는 거라는 걸 잊지 마시라.


 


암튼 작금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영화 불후의 명작 중 하나인 “넘버 3″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떻게? 이렇게!


 


 


 


태주 : (소줏잔을 탁 내려놓으며-) 부탁이 있는데… 건달이라고 불러주쇼.
마동팔 : 건달? 너 그게 무슨 뜻인줄이나 아니?

            하늘 건, 이를 달 … 하늘에 통달한 사람이란 뜻이지.


            간다르바라구… 세상의 좋은 향기만 마시고, 공중을 떠다닌다는 신 이름


            이기도 하구…


            근데… 하는 짓마다 썩은 냄새 피우는 새끼들이 무슨 건달이야? 깡패지.


 


 


 



 


 


 



태주 : 맞짱실력이 대단하시다던데…
마동팔 : 비무장으로 하면, 너흰 게임이 안돼. 요즘 깡패새끼들,


            칼질이나 하지, 진짜 실력은 좆도 아니지.
태주 : 조만간, 한판 뜹시다.
마동팔 : 언제든지… 너, 내가 충고하는데, 네가 지금 뭘하든, 하지마라.


            돈 뜯어낸거 있으면, 이자쳐서 갚고, 사람 팼으면 치료해줘. 그게 좋을거야.
태주 : (여유-) 뭘하든… 열심히 해보슈.


 


 


 






 


 


 



마동팔 : 내가, 나만이라두 깡패 안되야지… 기도하는 심정으로 산다.
            네가 뭘하든, 열심히 해봐. 대신, 대가는 꼭 치루게 될거다.
태주 : 뭘하든 하지마쇼… 우리도 앉아서 당하진 않을거요.


 


 


 


동팔이와 태주,


둘이 그리도 피지컬하고 멘탈리하게 치고박고 하다가는,


결국엔 대화로 잘 풀어서 다 자기 좋은 거 챙기면서 영화는 끝난다.


뭐 중간 과정은 다소 과격했지만 …


 


우리도 좀 그렇게 하자.


행여 엉뚱하게 아래 노래가 풍자하듯 이상한 결론 내려서 막장으로 치닫는 따위 깡패 짓은 말고.


 


북에게 그리고 한, 미, 중, 일 모두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바이다.


 


 


 


 


Political Science


by Randy Newman (1972)


 


* 이 노래가 표현하는 정치적 견해는 영진공과 이 글 저자의 견해와는 별개임을 밝힙니다. *


 


 


 






 


 


 



No one likes us, I don’t know why
We may not be perfect, but heaven knows we try
But all around, even our old friends put us down
Let’s drop the big one and see what happens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우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옛 친구들까지도 우릴 실망시켜,


큰 놈 하나 떨어뜨리고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볼까나 …



We give them money-but are they grateful?
No, they’re spiteful and they’re hateful
They don’t respect us-so let’s surprise them
We’ll drop the big one and pulverize them


 


쪼달린다고 해서 돈을 줬는데, 감사해하기는 커녕,


우릴 경멸하고 증오할 뿐이야,


존중 따위는 모르는 걔네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자고,


큰 놈 하나 떨어뜨려서 아작을 내 버리자고,

Asia’s crowded and Europe’s too old
Africa is far too hot
And Canada’s too cold
And South America stole our name
Let’s drop the big one
There’ll be no one left to blame us


 


아시아는 인구가 너무 많고 유럽은 너무 오래됐어,


아프리카는 너무 덥고 말이야,


남미 애들은 우리 이름을 훔쳤잖아,


큰 놈 하나 떨구자고,


그러면 우리를 손가락질 할 사람은 하나도 남질 않겠지,

We’ll save Australia
Don’t wanna hurt no kangaroo
We’ll build an All American amusement park there
They got surfin’, too


 


호주는 살려두자고,


캥거루를 다치게 하면 안되잖아,


그리고 거기다 완전 미국식 놀이동산을 짓는 거야,


서핑도 즐기고 말이야,



Boom goes London and boom Paris
More room for you and more room for me
And every city the whole world round
Will just be another American town
Oh, how peaceful it will be
We’ll set everybody free
You’ll wear a Japanese kimono babe
And there’ll be Italian shoes for me


 


펑, 런던 아웃, 펑, 파리 아웃,


너와 나를 위한 넓은 땅이 생기겠지,


온 세상 구석구석에다가,


미국 도시를 하나하나 만드는 거야,


아, 그 얼마나 평화로울까,


그리고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거지,


넌 일본 기모노를 입고,


난 이태리 구두를 신고,



They all hate us anyhow
So let’s drop the big one now
Let’s drop the big one now


 


우리가 뭘 해도 쟤네는 그냥 우리를 미워해,


그러니까 큰 놈 하나씩 떨궈주자고,


아주 큰 놈으로다가 ……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