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성폭행은 있었으나 결과는 긍정적이라고?

 


 

 


 


 


“강제병합 후 일제에 의한 근대제도의 이식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역사교육과정에 명시할 것을 요구 … 일제가 한국 근대화가 끼친 긍정적 역할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교학사)가 검정심의 본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기사 원문 링크]


 


그러니까 이들의 주장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 성폭행을 당해 그 결과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에게 ‘네 꼴로는 원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할 수가 없었는데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얻었으니 다행’ 이라는 것이고, ‘그 사내가 너를 강간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얻어진 아이가 건강하고 귀여운 것도 사실’이라며 어거지를 부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강간을 당했어도 결국 괜찮은 유전자가 섞인 아이를 얻었으니 형식은 부정적이지만 강간한 행위는 긍정적이거나 불가피했던 것이라는 요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무슨 이런 일이 있을까.


자신의 의사에 반해 주권, 인권, 자원을 강제로 수탈한 자가 끼친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그저 음지에서 간혹 보이는 것도 아니라 대놓고 버젓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로 채택이 된다니 말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리겠다더니 … 이제 나라는 반민특위가 강제로 해체되던 1949년으로 되돌아 가는 중이다.


 


 


 



1949년 당시 남대문로에 있던 반민특위 청사.


이후 이 건물은 국민은행 건물로 사용돼 왔다 [사진 출저: 블로그 보림재]


 


 


 


기독교에는 인간이라면 저지르지 말아야 할 죄악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이를 ‘일곱가지 대죄’ 또는 ‘죽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죄’라 일컬으며 항상 이를 경계하여야 하고, 그러지 못할 시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 일곱가지 대죄의 리스트는 역사 속에서 조금씩 수정되어 오다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정해져 내려오는데,


 


1. 교만(Pride), 2. 질투(Envy), 3. 탐욕(Greed), 4. 분노(Wrath), 5. 탐식(Gluttony), 6. 욕정(Lust), 7. 나태(Sloth) 이다.


 


사실 리스트를 보면 굳이 기독교가 전하는 교훈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고 생산이 발달할 수록 인간이 빠져들기 쉬운 모든 유혹을 나열해 놓은 것이라고 해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곱가지 대죄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은데, 그것은 바로 … 무지(Stupidity)이다. 여기서 무지라 함은 저학력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목적하는 바를 어떻게든 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고집만 남은 멍청함, 맹신, 의도적 외면, 계산된 왜곡, 곡학아세 등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을 비틀고 궤변을 덧붙이다 못해 종내는 다른 큰 죄악을 찾거나 만들어 내어 당장의 자신의 허물을 덮어버리거나 합리화하는 작위적 무지는 그 중 악질이라 하겠지만, 이러한 행위에 멋모르고 동조하거나 방치하는 것도 그 못지 않은 죄악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 속 음악은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

 


 


 


일곱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 “세븐” (1995, 데이비드 핀쳐 감독)을 보면, 죄악에 대한 심판을 명분으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이 나온다. 그리고 이 범인에 대해 형사 윌리엄은 시종일관 냉철하게 대처하지만, 열정적인 파트너 형사 데이비드는 범인의 교활함에 넘어가 분노의 죄악에 이르는 함정에 빠진다.


 


그리고 영화 “미션” (1986, 롤랑 조페 감독)을 보면, 자유롭게 살아가는 원주민에게 가해지는 침략자들의 공격에 맞서는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가 나온다. 가브리엘 신부는 권력자들에게 읍소한다거나 해보지만 결국 기도를 올리는 걸로 갈 길을 정하지만, 로드리고는 거대한 폭력 앞에 턱없이 부족하다해도 원주민들과 함께 무기를 들고 맞선다.


 


 


 



영화 속 음악은 널리 알려진 “가브리엘의 오보에”

 


 


 


윌리엄 형사가 옳으냐, 데이비드가 그르냐, 가브리엘 신부의 방식이 나은 거냐, 로드리고가 맞느냐 … 이런 논쟁은 각자의 견해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날 거고, 달리 보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한다는 걸로 봤을 때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뭐라도 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큰 죄악을 저지른 이들은 절대, 한때 실수에 의해 작은 죄를 저지른 이들처럼  죄책감에 힘들어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속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면 오히려 더 길길이 날뛰며 합리화와 정당화를 위해 말 그대로 분골쇄신한다.


 


친일이 드러나면 그땐 다 그랬다며 오히려 그 친일로 인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우기면서 우리에겐 현재 더 큰 위험과 적이 있는데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한다. 위법과 탈세, 착복이 드러나면 그땐 모두 다 그랬다며 오히려 그보다 다른 중요한 일을 해냈다고 자랑하면서 우리에겐 현재 더 큰 위험과 적이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자고 한다.


 


지난 역사를 돌아봐도 큰 죄를 저지른 이들이 스스로 뉘우쳐 잘못을 되돌리고자 노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 나서서 계속 훈계를 하든, 지속적으로 매를 들든 아니면 죄인들이 기를 못 펴게 사회 주도층이 형성되든지 해서야 비로소 잘못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패악질을 안하게 되곤 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저들이 스스로 정신을 차려 뭔가를 하거나 아니면 안하거나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나부터 스스로 뭔가를 해야겠다. 공부를 더 하든, 주변 사람들과 자주 진솔하게 대화를 하든, 뜻이 같은 이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널리 알리든 말이다.


 


 


 


영진공 이규훈


 


 



 


 


 


 


 


 


 


 


 


 


 


 


 


 


 


 


 


 


 


 


 


 


 


 


 


 


 


 


 


 


 


 

[굿바이 칠드런], 나찌는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있다.



영화 “굿바이 칠드런(Goodbye Children)”의 원제는 “Au Revoir Les Enfants”이고 프랑스 출신 감독 루이 말(Louie Malle)의 1987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루이 말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87년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제목에 있는 Au revoir는 불어로 헤어질 때 서로 나누는 말인데, 영어로 Goodbye라고 쓰긴 하지만 실은 “다시 보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신부님과 아이들이 이 인사를 서로에게 건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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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감독이 유년시절에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나래이션을 루이 말 자신이 직접 하였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2차 세계대전 시 독일의 점령 하에 있던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 있는 사립기숙학교에 전학생이 한 명 온다.  그 소년은 프랑스 사람인 쟝 보네라고 하였지만 실은 유태인 쟝 키펠스타인이었다.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피해 이름을 감추고 프랑스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피신을 온 그 소년은 줄리앙 쿠엔틴의 옆 침대에 짐을 풀게 된다.  쿠엔틴(소년 시절의 루이 말)과 보네는 여느 소년들이 그러하듯 서로 투닥거리면서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그렇게 둘의 우정이 깊어가던 어느 날 …

이 정도만 들어도 어느 정도 감이 오시겠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성장영화이고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비판하는 영화이다.  그런 주제와 이야기를 차분한 시선과 익숙한 톤으로 화면에 담고 있기에 이 영화는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기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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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이 루이 말 감독

사실 나찌의 유태인 학살과 인종청소 만행의 실상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영화는 아주 많다.  퍼뜩 떠오른 것만 적어도 “안네의 일기” “홀로코스트” “소피의 선택” “뮤직박스”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 등등.  아시아 문화권에 살고있는 내가 느끼기에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많다.
 

소피의 선택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니다, 많은 게 아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범죄 중의 하나인 인종청소에 대한 고발과 경고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그 다양한 경고와 각성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범죄가 모양만 바꿔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서 질문을 하나 해보자.  히틀러는 죽었다.  그를 추종하던 나찌들도 대부분 죽거나 사라졌다.  그런데 왜 그들의 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을까?  코소보, 체첸, 티베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할 것 없이 나찌가 저질렀던 범죄가 왜 자꾸 다시 발생하는 것일까?

희대의 범죄자 히틀러
그건 나찌의 범죄가 히틀러의 광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며 당시 독일에 모여있던 미치광이들의 공모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범죄는 인류의 순결성과 자기 민족의 고결성을 지키겠다고 저지르는 미친 짓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범죄는 주동자와 동조자들이 남들보다 이익을 더 챙기고 나아가 남의 것을 모두 빼앗아 독점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확신 속에 저지르는 조직범죄인 것이다.  내세우는 명분이 무어든 이 범죄는 탐욕만이 유일한 동기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범죄는 어디에서고 어느 때고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나찌와 유태민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도 생길 개연성이 항상 존재하는 범죄인 것이다.  히틀러를, 챠우세스쿠를, 밀로셰비치를 처형해도 이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탐욕이 정당하다고 욕심이 미덕이라고 미화되는한 우리의 아이들은 계속 사라질 것이고 고통받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서나 그랬듯이 이 영화에서도 밀고자가 등장을 한다.  그런데 이 밀고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도 결국 남들이 다 그러듯 그의 이익을 추구한 것 뿐인데 말이다.

안다.  이런 논리가 바로 이 땅 친일파들의 더러운 변명과 맞닿아 있음을.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밀고자를 이해할 순 있어도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죄값을 치르게 해야 하고 이를 받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용서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불행이 닥쳐온다.  단죄되지 않은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어떠한 형태로 추구해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음을 경험하게 되어, 차후 어느 시대가 되어도 자신의 이익과 이를 획득하기 가장 좋은 위치인 권력을 잡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대부분 잠시라도 그걸 이루게 된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너무나 자주 있어왔다.   

      
이 영화는 앞에서도 이야기 하였듯이 온 가족이 휴일을 맞아 모처럼 함께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이다.  불행한 역사의 한 시기가 배경이다보니 결말이 해피엔딩일 순 없으나, 화면에 그려지는 것은 분노와 절망이 아니라 담담한 심경으로 전하는 이야기이다.

실없이 깔깔대는 영화나 무작정 까고 부수는 영화가 꺼려지는 분들에게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해 본다.  

영진공 이규훈


[대안 교과서] 이런 걸 교과서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 집권세력의 핵심 지지기반이라는 ‘뉴라이트’가 주도하여 출간했다는 대안교과서.
나온지 꽤 되었다는데 최근에야 그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일단 몇 대목을 살펴보자.

“일제의 한국 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 체제였다.
국내외의 한국인들은 불굴의 투쟁으로 독립의 권리를 끝내 쟁취하였다.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게 뭔 소리냐?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에 불굴의 투쟁으로 독립의 권리를 끝내 쟁취했다고?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가 아니었으면 우리 스스로는 근대국가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없었다는 거냐?
게다가 “근대국민국가”는 어디서 나온 용어냐?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글이 앞뒤가 안 맞고 한 쪽의 논리에 지나치게 편향되어있다.

우리가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기르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로 인해 빼앗기고 폭력으로 지체되어 근대국가의 형성이 왜곡되고 더뎌졌다는 걸 부인하자는 것인가. 







“한편 일본군은 한국, 만주,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에 이르는 전 주둔지에서 군 시설의 일부로 위안소를 설치하였다. 그곳에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출신의 여인들이 위안부로 노예처럼 수용되어 일본군에 성적 위안을 제공하였다. 일본군은 노예제를 금한 국제 협약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한국 여성이 위안부가 된 사정에 관해 당시 심문을 맡았던 미국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1942년 5월 상순 일본인 대리업자가 ‘위안봉사’를 시킬 한국인 여성을 모집할 목적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 대리업자가 여인들에게 제시한 것은 큰 돈벌이, 가족의 빚 갚기, 쉬운 일, 신천지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삶 등이었다. 이러한 꾐에 빠져 많은 여성이 해외 취업에 지원하고, 몇 백 엔의 전대금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무지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었다. 대개 800여 명이 이렇게 모집되어 1942년 8월 20일까지 랑군에 도착하였다.””


위 내용에 분개하기 이전에 지은이들에게 묻는다.  저렇게 기술하게된 근거가 뭐냐?

여전히 형언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당시 단순히 민간업자의 꾐에 빠져 자발적으로 나선 거라고 판단하게 된 근거가 있으면 제시해 달라.  그리고 이러한 범죄가 그저 민간 대리업자에 의해 저질러지고 일본군과 정부는 노예처럼 수용한 죄만 있다고 기술하게 된 근거도 있으면 함께 제시해 달라.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여진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서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 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이 인용문은 1993년 8월 4일 일본국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 중 일부이다.
소위 “대안교과서”에 따르자면 저 담화문의 내용은 사실을 왜곡한 거다.  그리고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나 미국 하원본회의 위안부 결의안 등도 잘못된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참고 링크)

이 교과서의 지은이들과 지지자들은 그걸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대답해보라. 





“김구(1876~1949), 황해 해주 출생, 호는 백범(白凡) … 1896년 민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살해하였다. 체포되어 복역 중에 탈출하였다 … 이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 (중략)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후진국의 정치적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처럼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그의 반공주의는 보통사람의 의식속에서 두려움으로 내면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후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올바로 잡는데 동시대 어느 느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는 건 인정하는 바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과서는 여느 단체의 조직원 교육자료가 아니다.  적어도 기술방식의 형평성은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에게는 미사여구와 변명거리를 덕지덕지 덧붙이고 그렇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시각만 단정지어 제시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식의 기술방식을 보통 윤색, 왜곡, 편향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런 내용과 기술방식의 서적을 정녕 교과서라고 해야 하는 건지 참으로 당혹스럽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와 인물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존재할 수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교과서”에는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근거가 희박한 주장, 일부의 극단적 시각, 정치적 의도, 편향과 왜곡 등은 특히나 피해야 할 것들이다.

역사 교과서는 우리의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고 익혀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걸 돕는 책이어야 한다.  어느 특정 세력이나 단체의 일방적 시각을 호도하고 이를 주입시키고자 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들과 지지자들이 혹여라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거라면 당장 중단하고 범사회적 협의와 합의에 의한 교과서 저술 및 발간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라고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영진공 이규훈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바라보며




타고난 이기주의자이다 보니 대학생이 됐다고 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나마 사회과학 모임에 나가게 된 것도 호감 가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접하게 된 한국의 현대사는 충격이었다. 그곳에는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는 전혀 새로웠다. 찬탁은 소련이 한 것이 아니었고, 여순 반란사건은 반란이 아니었고, 4.3은 빨갱이 폭동이 아니었으며, 이승만은 국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허풍이 심한 편이지만 들은대로라면 이랬다. 4.3 당시 현 제주시 관덕정 자리인 제주 도청 앞으로 어른들은 마음 놓고 지나다니지 못했다. 아이들만 용케 지나다녔고, 제주도청을 가로막은 철조망에는 사람 가죽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4.3은 그런 기억이었다. 하지만 4.3에 대해 집안 어른 누구도 내놓고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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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4.3은 이랬다. 돈 번다고 제주도 전지역을 싸돌아 다닐 때. 4월과 5월 제주 조천이나 세화 등지로 가면 같은 날, 조그만 마을이 모두 제사다. 그날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비극의 날이었던 것이다.

고삐리 때부터 친구였던 여자애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후에 아버지가 물었다.

“가이 아방은 뭐 햄시?”
“경찰 공무원마쉬.”

남녀 사이에 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뭔가 아쉽다는 듯 혼자 되뇌었다.

“게난 순사 딸이여?”

4.3을 겪은 제주 사람들에게 경찰이란 그런 존재였다. 이 사람들에게 지난 50년간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참여정부 때 노무현이 제주도를 찾아와 4.3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최초로 인정했다. 같은 날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 아버지와 사촌형의 제삿밥을 먹으러 돌아 다니는 사람들, 경찰은 순사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역사가 사실이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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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 4.3위원회가 폐지될 위기에 놓이는가 하면, 여당 의원은 ‘4.3은 좌익세력에 의한 폭동’ ‘제주도는 반란이 일어났던 곳’이라고 말한다.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에 결국 출판사가 굴복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역사를 떠올린다. 권력과 자본의 지난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로 ‘좌편향’ ‘왜곡’이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들. 

4.3을 겪은 아버지는 ‘경찰’을 보며 일제시대 조선인을 잡아다 고문하는 ‘순사’를 떠올린다. ‘경찰’과 ‘순사’라는 단어 사이, 서로 닿을 수 없는 그 거리는 역설적이게도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의 깊이와 닿아 있다. 그 역사들이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광경 앞에서 씁쓸한 이유는 ‘역사의 진실’이니 ‘권력의 오만’이니 ‘우경화’니 하는 거창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버텨 온 사람들, 그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견뎌 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 바로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