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재발견: 이거슨 판타지판 <파업전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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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을 봤습니다. 제가 VOD로 처음 본 영화입니다.
집에 설치된 케이블TV가 VOD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었죠. 그러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을 빌려 보기로 했습니다. 하필 동네 비디오방에 DVD가 다 나가서 결국 테이프를 빌려왔죠. 근데 이 뭥미, 테이프를 넣고 틀어보니 거의 몇 년간 DVD만 가끔 보고 테이프는 틀어본 적 없던 우리 콤보 데크께서 그쪽 데크의 정줄을 살짝 놓으셨더군요. 화면은 그럭저럭 나오는데 소리가… -_-;;; 테이프 클리너(이것도 몇 년 된 물건)도 돌려보고 이것저것 해봐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미 빌린 거 반품하기도 그렇고, 대신 볼 다른 것도 없고, 난감해하다가 VOD에 눈을 돌렸죠.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처음으로 VOD 버튼을 눌러서 월정액 1만원을 결재하고는 캐치온디맨드의 VOD로 마침내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아~길다.

어쨌든 이런 긴 사연을 거쳐 보게 된 <해리포더와 불사조기사단>, 정말 놀라웠습니다.
개봉당시에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이 영화가 이런 영화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그러냐고요? 이 영화의 설정들을 하나씩 살펴보죠.

설정1. 어떤 재난이 왔으나 오지 않았다고 우기는 정부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 재난은 14년 전에 이미 한번 일어난 바 있습니다.
볼드모트는 이미 지난 편에서 환생했습니다. 세상은 또 다시 위기에 처한 것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마법부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악착같이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이를 경고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처벌하려 듭니다.

설정2. 그 정부는 위협에 처해서 방어를 한 사람을 금지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처벌하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위협은 알고 보니 정부에서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해리포터가 머글동네에서 금지마법을 쓴 이유는 디멘터의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사촌을 방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금지마법을 썼다는 사실만 가지고 해리를 처벌하려고 할 뿐, 왜 그 마법을 써야 했는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디멘터는 마법부의 통제를 받는 존재들이니 해리가 디멘터 때문에 마법을 써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실수가 드러나게 되지요.

설정3. 실제 문제의 원인은 따로 있으나 정부에서는 엉뚱한 다른 인물을 배후로 지목합니다.
네, 볼드모트가 모든 일의 원인이지만 정부는 뜬금없이 시리우스 블랙을 모든 일의 배후라 주장합니다. 아즈카반 대량탈옥도 그 탈옥범 중에 시리우스의 친척이 있다는 이유로 시리우스 블랙이 배후조종자라고 찍어버리죠. 그 탈옥범이 볼드모트의 하수인이라는 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닙니까?
2007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무슨 이따위 말도 안되는 설정이 다 있냐?” 싶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위기가 왔는데도 그걸 부정하며 생사람을 잡겠나 싶었죠. 게다가 그 위기는 이미 한번 겪어본 거라 징후를 잘 알고 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아무리 정부가 사실을 부인하는데 매달린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애들까지 협박하고 처벌하겠다고 달려들겠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초기 설정에 공감할 수 없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데면데면 했었죠.

근데, 2008년 지금, 이 영화의 설정은 더 이상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남 얘기도 아닙니다.
너무 너무 실감나게 다가오는, 바로 이 시대의 이야기죠. 그 실감은 호그와트 학교에서 벌어지는 상황 묘사에서 극에 달합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설정1. 정부는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무능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교육시스템에 몰아넣습니다.
정부의 얼굴마담으로 학교에 파견된 엄브릿지 여사는 마법방어술을 실습이 아니라 이론수업으로 전환합니다. 이유는 학생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어서입니다. 하지만 마법사가 방어술을 배우지 못하면 밖에 나가서 흑마술사에게 정말 죽습니다. 결국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학생들을 죽이는 짓이 되는거죠. 어떤 교육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데, 그 교육의 성취도로 모든 것을 평가하면 학생들은 결국 쓸모없는 교육에 시간을 낭비하고는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바로 그 결과물이 아닐까요.

설정2. 정부의 새로운 지침은 금지, 금지, 금지입니다.
복도에서 남녀칠세 부동석을 실시하고, 마법을 실제로 쓰는 것도 금지하고, 모든 것을 금지합니다. 금지령은 98개에 달하죠. 왜냐고요? 이 모두가 “올바르고 건전한 학생”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저항하면 스스로 손등에 글자 파넣기 벌을 받습니다.

설정3. 정부의 새로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교사나, 정부의 지침에 저항하는 교사는 걍 퇴출입니다.
학생들에 대한 처벌도 지극히 잔혹합니다.

예지술사인 트릴로니 선생은 한심한 예언을 한다고 퇴출됩니다. 학생들을 잔혹하게 체벌한다고 항의하는 맥고나걸 선생은 충성심이 의심된다는 경고를 받죠. 그리고 마침내 덤블도어 교장까지 퇴출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퇴출시킨 이들은 사실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라는 점입니다. 트릴로니 선생의 예언은 볼드모트가 그렇게 애를 써서 찾으려고 하는 열쇠였습니다. 맥고나걸 선생과 덤블도어 교장이야 말로 세상을 어둠의 힘으로부터 지켜낼 인물들이고요.

설정4. 정부의 또 다른 교시는 배신입니다.
네, 이 정부의 교육방침은 배신을 가르칩니다. 배신하고 신고한 학생에게는 상을 줍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협력할 것이 아니라 배신하라.” “상대를 짓밟고 올라가라.” “바로 그것이 옳은 것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어른이 할 짓이 아니고, 정말로 이런 짓을 하는 인간이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중요한 몇몇 학생들이 이에 협력하지 않자, 아예 심문을 하죠.



수치를 모르는 무리들 …

설정5. 정부의 얼굴마담께서는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띈 표정입니다.
돌로레스 엄브릿지의 모든 행동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온화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위와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에, 그녀는 더욱더 무시무시하고 가증스럽죠. 조안롤링이 실제로 이런 인물을 경험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돌로레스 엄브리지 여사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온 사방에 혐오감을 유발합니다. 학생들을 모두 앉혀놓고 손등에 글자 파넣기 체벌을 가하면서 평온하고도 자애로운 표정으로 학생들을 둘러보는 엄브릿지의 표정은 정말 압권이죠.



이런 무시무시한 인간을 … 씨바 롤링은 천재여 …

솔직히 몸이 후덜덜 떨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우리는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하는지 가슴을 졸이며 보게 됩니다. 거기에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을테니까요. 그들이 찾은 해결책이 바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고요. 근데,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동시대성을 담은 영화가 아니라 선동물이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볼까요?

대응1. 해리포터는 먼저 혼자서 사실을 사실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얼굴마담 엄브리지는 해리포터에게 자기 손등을 파내며 반성문을 쓰는 형벌을 가합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반성문의 문구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겁니다. 진실을 말한 아이에게 바로 그 진실을 무시하라고 가르치기 위해서 이보다 더 지독한 학습법이 또 있을까요? 그 결과 해리는 좌절하고 홀로 고독에 빠집니다.

대응2. 해리포터는 친구들과 연대합니다.
하지만 그런 해리를 친구들은 놓아두지 않습니다. 이들은 마침내 ‘덤블도어의 군대’라는 이름의 연대를 결성하게 됩니다. 해리는 혼자서 짜증내는 아이에서 친구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책임감있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믿음은 마지막 순간 그를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합니다. 볼드모트 군대에겐 없고 해리 네에겐 있는 ‘그것’은 바로 우정 혹은 동료애였던 것이죠.

대응3. 이들은 원래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비밀장소에서 진짜 자기들이 배워야 할 것들, 진짜 마법방어술을 스스로 배워갑니다. 학교가 금지한 것을 배울 때 학습 동기는 지독하게 높아지고 효과도 배가됩니다. 이들은 친구들의 성취를 보며 자기도 할 수 있다 혹은 해야 한다는 동기를 얻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또한 그 경쟁은 나만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이 살기 위해서 벌이는 것이기에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고 진심으로 부러워해줍니다. 그 비밀의 장소 밖에서 어떤 괴상한 교육이 진행되는지와 비교되면서 진정한 교육의 모습이 무엇인지 눈물나게 보여집니다.



말 그대로 개인적인 저항 다음에 조직적인 저항이 만들어진다는 원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

대응4. 일부는 정부의 금지를 그냥 깨버립니다.
위즐리네 쌍둥이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학교가 병신이 되자 그냥 탈학교를 선택합니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크게 한방 엿을 먹이고요. 이들이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일까요? 아닐것 같네요. 이들은 이 소동을 통해서 자기네 상품의 충성스런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이들이 마지막에 사라지면서 남기는 메시지는 자기네 브랜드입니다. 이제 위즐리는 단순히 짓궂은 장난감을 파는 이들이 아니라 저항정신의 상징이 된거죠.

영화는 마침내 해리네 친구들이 볼드모트 군대와 싸우고, 그들이 비록 이기지는 못해도 그들의 노력 덕분에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무능한 정부당국자들은 이 모든 일이 벌어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만약 정부당국자들이 말만 믿고 넋놓고 있었더라면 정말 큰 일이 날 뻔 했다는 거죠. 여튼 뒤늦게야 사실이 밝혀지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만, 아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후속편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니까요.



  이들의 승리!

자, 이 영화의 결말은 무슨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이런 이야기가 될겁니다.
학교와 정부가 헛소리를 하면 순응하지 말고 저항하라.
혼자서는 어려우니 동료와 조직을 만들어서 저항하라.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허황한 금지는 무시하고 깨부셔라.
헛소리를 하는 인간은 그들이 어른이든 애이든 진실을 모르는 자들이고 진실을 모르면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허수아비일 뿐이다.
진실에 따라서 움직여라. 진실이 힘이다.

이거, 보통 영화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청소년 판타지판 <파업전야>에 가깝습니다. ㅎㅎㅎ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은 2007년 7월에 개봉했습니다만,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공중파 TV에서 방송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1년이 지나면 연말특집 편성에 들어갈 만한데 말이죠. 혹시 그 이유가 이 불온한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들도 한번 다시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 개봉당시에는 관객평가가 안 좋았습니다.
다들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그때는 못 보았던 두근두근한 감성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이렇게 위안을 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2008년은 이 영화를 재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절라 씨바 조또) “고마운” 한 해였다고요.


영진공 짱가


“언론노조의 총파업을 지지합니다.”

영진공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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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교과서] 이런 걸 교과서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 집권세력의 핵심 지지기반이라는 ‘뉴라이트’가 주도하여 출간했다는 대안교과서.
나온지 꽤 되었다는데 최근에야 그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일단 몇 대목을 살펴보자.

“일제의 한국 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 체제였다.
국내외의 한국인들은 불굴의 투쟁으로 독립의 권리를 끝내 쟁취하였다.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게 뭔 소리냐?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에 불굴의 투쟁으로 독립의 권리를 끝내 쟁취했다고?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가 아니었으면 우리 스스로는 근대국가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없었다는 거냐?
게다가 “근대국민국가”는 어디서 나온 용어냐?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글이 앞뒤가 안 맞고 한 쪽의 논리에 지나치게 편향되어있다.

우리가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기르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로 인해 빼앗기고 폭력으로 지체되어 근대국가의 형성이 왜곡되고 더뎌졌다는 걸 부인하자는 것인가. 







“한편 일본군은 한국, 만주,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에 이르는 전 주둔지에서 군 시설의 일부로 위안소를 설치하였다. 그곳에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출신의 여인들이 위안부로 노예처럼 수용되어 일본군에 성적 위안을 제공하였다. 일본군은 노예제를 금한 국제 협약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한국 여성이 위안부가 된 사정에 관해 당시 심문을 맡았던 미국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1942년 5월 상순 일본인 대리업자가 ‘위안봉사’를 시킬 한국인 여성을 모집할 목적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 대리업자가 여인들에게 제시한 것은 큰 돈벌이, 가족의 빚 갚기, 쉬운 일, 신천지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삶 등이었다. 이러한 꾐에 빠져 많은 여성이 해외 취업에 지원하고, 몇 백 엔의 전대금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무지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었다. 대개 800여 명이 이렇게 모집되어 1942년 8월 20일까지 랑군에 도착하였다.””


위 내용에 분개하기 이전에 지은이들에게 묻는다.  저렇게 기술하게된 근거가 뭐냐?

여전히 형언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당시 단순히 민간업자의 꾐에 빠져 자발적으로 나선 거라고 판단하게 된 근거가 있으면 제시해 달라.  그리고 이러한 범죄가 그저 민간 대리업자에 의해 저질러지고 일본군과 정부는 노예처럼 수용한 죄만 있다고 기술하게 된 근거도 있으면 함께 제시해 달라.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여진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서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 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이 인용문은 1993년 8월 4일 일본국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 중 일부이다.
소위 “대안교과서”에 따르자면 저 담화문의 내용은 사실을 왜곡한 거다.  그리고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나 미국 하원본회의 위안부 결의안 등도 잘못된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참고 링크)

이 교과서의 지은이들과 지지자들은 그걸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대답해보라. 





“김구(1876~1949), 황해 해주 출생, 호는 백범(白凡) … 1896년 민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살해하였다. 체포되어 복역 중에 탈출하였다 … 이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 (중략)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후진국의 정치적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처럼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그의 반공주의는 보통사람의 의식속에서 두려움으로 내면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후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올바로 잡는데 동시대 어느 느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는 건 인정하는 바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과서는 여느 단체의 조직원 교육자료가 아니다.  적어도 기술방식의 형평성은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에게는 미사여구와 변명거리를 덕지덕지 덧붙이고 그렇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시각만 단정지어 제시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식의 기술방식을 보통 윤색, 왜곡, 편향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런 내용과 기술방식의 서적을 정녕 교과서라고 해야 하는 건지 참으로 당혹스럽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와 인물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존재할 수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교과서”에는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근거가 희박한 주장, 일부의 극단적 시각, 정치적 의도, 편향과 왜곡 등은 특히나 피해야 할 것들이다.

역사 교과서는 우리의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고 익혀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걸 돕는 책이어야 한다.  어느 특정 세력이나 단체의 일방적 시각을 호도하고 이를 주입시키고자 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들과 지지자들이 혹여라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거라면 당장 중단하고 범사회적 협의와 합의에 의한 교과서 저술 및 발간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라고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영진공 이규훈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바라보며




타고난 이기주의자이다 보니 대학생이 됐다고 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나마 사회과학 모임에 나가게 된 것도 호감 가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접하게 된 한국의 현대사는 충격이었다. 그곳에는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는 전혀 새로웠다. 찬탁은 소련이 한 것이 아니었고, 여순 반란사건은 반란이 아니었고, 4.3은 빨갱이 폭동이 아니었으며, 이승만은 국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허풍이 심한 편이지만 들은대로라면 이랬다. 4.3 당시 현 제주시 관덕정 자리인 제주 도청 앞으로 어른들은 마음 놓고 지나다니지 못했다. 아이들만 용케 지나다녔고, 제주도청을 가로막은 철조망에는 사람 가죽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4.3은 그런 기억이었다. 하지만 4.3에 대해 집안 어른 누구도 내놓고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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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4.3은 이랬다. 돈 번다고 제주도 전지역을 싸돌아 다닐 때. 4월과 5월 제주 조천이나 세화 등지로 가면 같은 날, 조그만 마을이 모두 제사다. 그날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비극의 날이었던 것이다.

고삐리 때부터 친구였던 여자애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후에 아버지가 물었다.

“가이 아방은 뭐 햄시?”
“경찰 공무원마쉬.”

남녀 사이에 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뭔가 아쉽다는 듯 혼자 되뇌었다.

“게난 순사 딸이여?”

4.3을 겪은 제주 사람들에게 경찰이란 그런 존재였다. 이 사람들에게 지난 50년간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참여정부 때 노무현이 제주도를 찾아와 4.3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최초로 인정했다. 같은 날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 아버지와 사촌형의 제삿밥을 먹으러 돌아 다니는 사람들, 경찰은 순사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역사가 사실이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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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 4.3위원회가 폐지될 위기에 놓이는가 하면, 여당 의원은 ‘4.3은 좌익세력에 의한 폭동’ ‘제주도는 반란이 일어났던 곳’이라고 말한다.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에 결국 출판사가 굴복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역사를 떠올린다. 권력과 자본의 지난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로 ‘좌편향’ ‘왜곡’이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들. 

4.3을 겪은 아버지는 ‘경찰’을 보며 일제시대 조선인을 잡아다 고문하는 ‘순사’를 떠올린다. ‘경찰’과 ‘순사’라는 단어 사이, 서로 닿을 수 없는 그 거리는 역설적이게도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의 깊이와 닿아 있다. 그 역사들이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광경 앞에서 씁쓸한 이유는 ‘역사의 진실’이니 ‘권력의 오만’이니 ‘우경화’니 하는 거창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버텨 온 사람들, 그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견뎌 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 바로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진공 철구

할 말이 없어지는 소식



청와대에서 7개월간 지출한 “물품구입비”가 14 억 이랜다.  십, 사, 억 ….
엔간한 월급생활자가 평생 벌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돈을 신규 물품을 사주시는데 사용하셨단다.
얼마나 대단한 물품들을 구입하셨길래.  절대반지와 이실두르의 검이라도 구입하신건가.
아님, 언젠가 나오리라고 학수고대하던 중소기업지원책과 국내경기활성화 방안을 진즉 남몰래 실천하고 계셨단 말인가.
이리도 상서로울 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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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아니다. 신문에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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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의 참 맛은 손 끝에서 나온다능~>

158만원짜리 커피메이커 신규구매

1500만원짜리 디카 2대

1750만원짜리 프롬프터 2대 구매

330만원짜리 쌀 씻는 장치 1대 신규구매

146만원짜리 손소독기 1대 신규구매

990만원짜리 ‘소형’ 컴퓨터 2대

26만원짜리 우산꽃이 5대

7200만원짜리 비디오 카메라 1대

500만원짜리 야외용 파라솔 1개 신규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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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보다 비싼 애가 있었다니 ...>

140만원짜리 헬스 사이클 2대 신규구매

652만원짜리 외빈용 소파 1개

145만원짜리 행사용 의자 44개

176만원짜리 파라솔 1개 신규구매

기타 등등…

암튼,
대단하다. 대단해.

대체 990만원짜리 소형컴퓨터를 뭣에 쓰려는 건지.
개인용 “소형”컴퓨터에 무슨 스펙을 달아야 저 가격이 나오는 거지?

158만원짜리 커피메이커를 들여 놓았으니, 원두는 뭐로 쵸이스 하셨을까??? 
혹시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추출한다는 전설의 커피 … 커피 루악???

1,500만원짜리 디카에다가 7,200만원짜리 비디오 카메라면 작은 방송국 하나 차릴 수도 있을텐데 … 메이저 언론을 다 가지시고도 모자라서 그러신 건가 …

에혀~

그려, 안다, 알아 …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저 정도 돈, 쓸 수 있다.
근데 문제는 지금이 저럴 때냐는 거다.

하루가 멀다하고 유례없는 경제위기요 불황이니 모두가 나서서 불을 꺼야한다고,
허리를 졸라매라고 스스로 얘기하고있지 않은가 … 그렇다면 솔선수범 해야 할 것 아닌가 …

재산 헌납, 펀드 가입, 주식 매수 … 뭐 이런 공수표 남발하기 이전에 먼저 쫌 모범을 보이시라는 거다.

끗.


영진공 거의없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는 지금의 한국과 싱크로율이 99.9%



경제학자가 쓴데다가 제목이 “미래를 말하다”여서 경제 관련 내용일 줄 알았건만 오히려 미국 정치 분석에 가깝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의 연구는 이 책의 내용과는 거의 무관하다.)

크루그먼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아무 도움이 안되는 세금 감면과 복지 혜택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 그들은 왜 매번 선거에서 이기는가?”  여기서 공화당을 한나라당으로 대체하면 이 질문은 우리에게 싱크로율 99.9%다.

이 의문에 답을 제시하기 위해 크루그먼은 대공황 이전 시절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대공황 시절 이전 미국은 소득 불균형이 심각했다. 대공황이 발생하고 뉴딜을 실시한 이후 미국 경제의 황금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레이건 출현 이후부터 소득 불균형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현재는 아주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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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시절의 미국

뉴딜정책 이후 소득의 재분배가 골고루 이어지는 중산층의 황금기이자 미국 경제의 황금기가 찾아왔었다는 얘긴데, 그 이유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적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 연합이 그랬고 과도기적 대통령인 공화당 닉슨조차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을 정도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책에서 좌우 스펙트럼이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다시피 전국민 의료보험은 후에 클린턴이 관철시키고자 했으나 당시 공화당 하원의장인 깅리치에 의해 좌절된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이만큼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두 정당의 노선 차이가 벌어진 이유는 70년대 들어서면서 공화당이 다시 세금감면과 복지 축소와 자유 시장을 내세우며 극우화됐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은 그 이유를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공화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도 우리와 싱크로율 99.9%다. 우리도 있다. 뉴라이트.

이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은 사실 민주주의자들인지도 의심스럽다는 게 크루그먼의 얘기다. 그들은 프랑코 정권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댔다. 또한 그들은 정부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과 세금 감면을 원하는 기업의 든든한 후원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또한 공화당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 그러니까 공화당 당대회에서 “정교일치를 하면 왜 안되느냐”고 연설하는 자들의 지지까지 얻는다. 이 역시 우리와 싱크로율이 높다.

게다가 미국은 원초적인 인종 문제가 결부돼 있다. 복지 혜택을 늘렸을 때 그 이득이 유색인종에게 돌아가는 것을 질색하는 남부 여러 주의 인종적 혐오를 공화당은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는 거다. 이 또한 우리와 싱크한다. 우리도 있다. ‘흑인’ 대신 ‘빨갱이’. 민주당이 싫은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 퍼주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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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라이트라 할 수 있는 "Compassionate Conservatism(인정 많은 보수)"를 비꼰 카툰 - 뉴올리언즈의 재해복구에는 예산배정을 안 하고 이스라엘의 군비지원에는 3백억달러를 책정했다는 내용.

이들의 지지를 얻은 골드워터는 하지만 패배한다. 그러나 똑같이 이들의 지지를 받는 레이건은 정권 획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레이건이 이같은 ‘새로운 보수주의의 정서’를 포장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레이건은 유세 중 “복지의 여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복지 혜택만으로 여왕처럼 사는 어떤 여성, 그것도 유색 인종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어떤 여성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복지의 여왕”이라는 단어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세금을 악용하는 것에 반감을 갖게 만드고, 더불어 높은 세금과 큰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레이건이 약속하는 세금 감면과 작은 정부에 동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주의 어떤 여성이 ‘복지의 여왕’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복지의 여왕’은 실제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레이건은 증명할 수도 없는 사실을 가지고 정서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이런 언어는 이명박 대통령도 사용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톨게이트. 대체 어떤 톨게이트가 하루 200대가 통과하는데 직원이 20명인지 정부조차 찾지 못했다. 그도 그저 큰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는 데 존재하지 않는 톨게이트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이명박의 출현은 레이건의 출현과 비견된다. 그는 뉴라이트의 지지를 받았고 세금 감면과 민영화를 통한 작은 정부, 자유 시장을 내걸고 있으며 기독교 장로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아직도 ‘빨갱이’를 대신해 ‘좌파’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좌파’라는 단어는 ‘좌파 정책’, ‘좌파 코드’와 같이 대상이 굉장히 모호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성적인 단어가 아니라 감성적인 단어라는 증명이고, 논리가 아닌 감정에 불과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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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뉴라이트는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을 벤치마킹했음이 분명하다. 레이건처럼 이명박이 집권했으니 그들은 장기 집권을 꿈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노령화로 자신들의 지지층이 많아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어린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이다. 그들에게 투표권이 생기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쳐야 한다. 무엇을? 교과서를.

역사 교과서 개정 논란은 그래서 나오는 것일 게다.

젊은 대학생들도 문제다.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대학 공화당 연합회를 조직했듯이 뉴라이트 또한 대학 학생회를 조직해 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방송. 아마도 방송, 그것도 예능/오락 쪽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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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뉴라이트의 시각

레이건이 집권한 게 1980년. 거의 30년이 지나서야 미국은 오바마를 당선시키며 레이거노믹스를 걷어치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야 이명박을 갖게 됐다. 이것을 걷어치우려면 우리에게도 30년이 필요한 것일까?

끝으로 폴 크루그먼은 유권자들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한 가지 커다란 전제를 깔고 있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공화당에게 속았다’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공화당은 어떻게 해서 유권자들을 속일 수 있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면 좀 더 원초적인 의문을 가져보자. 유권자는 왜 속을까?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내놓을 뿐 아니라, 국정원을 과거 안기부로 되돌리려고 하고, 언론장악을 획책하고, 검찰과 감사원 심지어 ‘헌재까지 접촉’하고 다니는 정권에게 왜 속으며, 아직도 모든 당 중에 압도적 1등으로 왜 지지할까?

김근태 씨야 정치인이니까 이 말 해놓고 무지 욕먹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정답같다.
국민이 노망났다. 그것도 단단히 노망났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