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라, 다 놓아라. 꽃피는 봄은 어차피 오지 않더냐?”, 『꽃피는 봄이 오면』



그러니까 30년이 지난 오래된 이야기다.
나는 일곱살이었고 은퇴하신 할머니는 할 일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세 번째 사업 실패를 준비 중이었고 어머니는 아파트 상가에 아동복 점포를 알아보러 분주하였으며 밤이면 두분의 싸움이 잦았다.
낮은 길었다. 7살의 낮은 하루의 전부였으며 시간은 사각사각 지나갔다. 7살 세상은 홍옥 같이 사각사각했다. 어른들이야 어쩌건….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손수 손주의 양말의 벗겨주시며 손을 씻으라 하셨고 얼굴을 씻으라 하셨으며 그 물을 버리지 않고 내 발을 손수 씻겨주시는데 쓰셨다. 뽀득뽀득 꼭 발은 닦아 주셨다. 난 발정도는 씻을 수 있는 7살이었다.

발을 누가 씻겨주는 것. 참 기분좋은 일임을 그 때 알았다.
내가 교회를 가기로 마음 먹은 것도 그즈음이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나즈막히…
“예수님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셨단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교회를 그만두게 된 건 누구의 발을 닦아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보다 최하 3개국어 방언 실력에 두둑한 염봇돈을 내며 기도할 때마다 울부짓고 고함을 질러야 3개월 속성 회개 2급 자격증을 따는 이 땅 교회들의 웃기면서 기막한 포퍼먼스 를 본 뒤다.

사랑은 요란하지 않고, 아픔은 눈물에 있지 않고, 진실은 열띠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허진호”는 멋진 감독이다. 요란한 세상에 요란하지 않은 이야기를 제대로 쓴 사람은 “허진호”가 처음이었다.

‘철구'(“이한휘”분)가 ‘정원'(“한석규”분)의 “주정”을 말없이 받아주는 요란하지 않은 사랑, ‘다림'(“심은하”분)이 일없이 사진관에서 자고 가는 것을 봐야만 하는 정원의 아픈 웃음, 정원이 아버지에게 리모콘 사용법을 몇 번이나 가르쳐야 하는지 역정 낼 때 나오는 죽음에 대한 사실, 혹은 진실.

사랑이 뒤돌아가는 사람의 숨죽인 호흡에 있다는 것, 아픔이 억눌러 참아가는 사람의 어깨 들썩임에 있다는 것, 진실은 그리 거창한게 아니라 일상의 관계 속에 소소하다는 것. 난 참 크고, 빠르고, 우렁차고, 요란한 것에만 집착하고 즐겼지.

“류장하”의 『꽃피는 봄이 오면』을 기대한 건 그 “허진호”의 조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수연”을 떠나보내야 하는 “현우”는 도계초등학교 음악교사로 떠난다. ‘탄’밥을 먹어가며 살아온 관악부 아이들에게 음악은 꿈이자 오락이지만 “현우”에게 음악은 비루한 삶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자 끝내 잡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다. 아이들과 “현우”의 대립은 그 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좋은 설정에서 시작한 영화가 육수에 물탄듯, 콜라 김 빠지듯 하기 시작하는 건 “류장하” 감독의 욕심 때문일까? 아니면 런닝타임이 빠듯했기 때문일까?

“연희”와 “현우”의 말랑말랑한 관계는 니맛도 내맛도 없이 흐지부지
“수연’의 결혼과 “현우”의 괴로움은 끝에가선 아무일도 없다는 듯 대사 한마디로 흐리멍텅
“재일”과 재일 할머니의 사랑은 소소한 할머니의 사랑 하나 없이 민숭맨숭
관악부 아이들의 캐릭터는 하나같이 얼렁설렁

소소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보여주는 방식은 감독이 알았지만
왜 소소한 이야기 속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매듭이 어떠하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왜 몰랐을까? 결국 어떤 플롯의 영화든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이야기가 열린 이유에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에 반해 조연 연기자들의 절륜의 연기는 감동적이었다.

깐깐한 엄마 역으로 나온 “윤여정”의 툴툴 털어내는 대사는 장삼이사의 옆집 엄마들 푸념처럼 정겨웠고(그녀를 누가 『화녀』(1971년작)에서 분한 팜므파탈이라고 연상하겠는가?), 특히 “김영옥”의 말한마디 없이 수수한 할머니 눈빛은 절절한 이시대를 부대껴온 할머니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이 또한 누가 그녀를 보고 마징가 쇠돌이역의 성우라고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최민식”, 이제는 절정인 듯한 폐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이 얼기설기한 그물같은 시나리오에 마지막 끈으로 역할을 다 한다.


할머니는 18년 전에 돌아가셨고 나는 아직 그 발가락 사이에 뽀드득하던 할머니의 늙고 가는 손가락 느낌을 잊지 못한다. 그 분의 사랑하는 방식은 이리도 소소하셨다. 사람들은 아직도 큰 소리로 싸우고, 왁자지껄하게 사랑하고, 미친년 널 뛰듯이 요란하게 슬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꼭 적이 된 그녀를 총구 앞에 두고 마지못해 죽여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꽃피는 봄이 오면』은 아쉽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영화가 된다. 아직 세상이 이 영화가 필요할 만큼 충분히 지랄중이다.

 


영진공 그럴껄

노래로 전하는 새해 다짐, “살아남읍시다!”

소가 뒷걸음 쳐 쥐를 잡는다는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올 때마다 밝은 희망의 미래를 그려보곤 하지만, 올해는 그러기가 어렵다.
미래의 나은 삶이 아니라 현재의 절박함이 더 급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올해의 다짐을 “살아남자”로 정하고 그 뜻을 널리 전하고자 노래 세 곡을 준비 해 보았다.

모두들 즐감~ ^.^

달콤한 꿈 …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You only give me your funny paper
and in the middle of negotiations
you break down

돈을 주시지는 않는군요,

그저 요상한 종이쪼가리만 주실 뿐,


대화 도중에,


당신은 폭발하셨죠,



I never give you my number
I only give you my situation
and in the middle of investigation
I break down

액수를 말씀드리지는 않았죠,

제 상황만 설명드렸을 뿐,


대화 도중에,


난 무너져 버렸죠,


The Beatles,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Out of college, money spent
See no future, pay no rent
All the money’s gone, nowhere to go
Any jobber got the sack
Monday morning, turning back
Yellow lorry slow, nowhere to go
But oh, that magic feeling, nowhere to go
Oh, that magic feeling
Nowhere to go
Nowhere to go

대학을 나와, 돈은 다 써버리고,

미래가 안 보여요, 집세도 못 내죠,


돈이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실직자가 넘쳐나는 세상,


다시 월요일 아침이 돌아오고,


노란 버스는 느릿느릿, 목적지도 없죠,


하지만, 그 멋진 느낌, 자유로운 느낌,


아, 그 느낌,


갈데가 없으니,


매인 데도 없죠,

One sweet dream
Pick up the bags and get in the limousine
Soon we’ll be away from here
Step on the gas and wipe that tear away
One sweet dream came true… today
Came true… today
Came true… today…yes it did
One two three four five six seven,
All good children go to Heaven

달콤한 꿈,

가방을 집어들고 리무진에 올라타는 꿈,


곧 우리는 여기를 뜰 거예요,


악셀을 밟으며 눈물을 닦아내죠,


달콤한 꿈이 이루어져요 … 오늘,


되는 거야 … 오늘,


이루어지는 거야 … 오늘 … 정말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착한 아이들은 천당에 가죠,


살아남읍시다! … Keep Yourself Alive! …

I was told a million times
Of all the troubles in my way
Tried to grow a little wiser
Little better ev’ry day

나 살아오면서 말썽이 있었을 때,

백만 번도 넘게 들은 말이 있지,


좀 현명하게 살라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수 없냐고,



But if I crossed a million rivers
And I rode a million miles
Then I’d still be where I started
Bread and butter for a smile

그런데 내가 백만 개의 강을 건너고,

백만 마일을 달려왔대도,


난 여전히 처음 시작한 그곳에 있어,


밥 먹을 돈을 벌기 위해 미소를 팔고있지,

Well I sold a million mirrors
In a shop in Alley Way
But I never saw my face
In any window any day

난 거리의 가게에서,

백만 개의 거울을 팔았지만,


어떤 가게의 윈도우에도,


정작 내 얼굴을 비춰 본 적이 없다네,

Well they say your folks are telling you
To be a superstar
But I tell you just be satisfied
To stay right where you are

사람들은 말하지,

크게 성공하라고,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라는 거야,

Keep yourself alive keep yourself alive
It’ll take you all your time and a money
Honey you’ll survive

살아남으라고, 살아남으란말야,

그러기에도 시간과 돈이 모자랄 거야,


그대여, 살아남아야 해,


Queen, “Keep Yourself Alive”

Well I’ve loved a million women
In a belladonic haze
And I ate a million dinners
Brought to me on silver trays

백만 명의 여성과 사랑을 했지,

약에 취해서 말이야,


백만 번의 성찬을 먹었지,


은수저를 갖기 위해서 말이야,

Give me ev’rything I need
To feed my body and my soul
And I’ll grow a little bigger
Maybe that can be my goal

원하는 모든걸 내게 줘,

내 몸과 마음을 달래야 해,


그러면 난 좀 더 비대해지겠지,


그게 내 삶의 목적일지도 몰라,



I was told a million times
Of all the people in my way
How I had to keep on trying
And get better ev’ry day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백만 번도 넘게 들은 말이 있지,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려면,


쉬지 않고 노력해야한다는 말,



But if I crossed a million rivers
And I rode a million miles
Then I’d still be where I started
Same as when I started

그러나 내가 백만 개의 강을 건너고,

백만 마일을 달려간대도,


결국 난 처음으로 돌아와있어,


나아진 게 없다고,

Keep yourself alive, keep yourself alive
It’ll take you all your time and a money
Honey you’ll survive

살아남아야 해, 끝까지 살아남자고,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과 돈을 들여도,


겨우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야,

Keep yourself alive, Keep yourself alive
It’ll take you all your time and a money
To keep me satisfied

살아남자고, 끝까지 살아남아야 해,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시간을 들여도,


나를 유지하기에 부족할지도 몰라,

Do you think you’re better ev’ry day?
No I just think I’m two steps nearer to my grave

넌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니, 난 무덤을 향해 두 걸음 씩 가까이 가고 있어!

Keep yourself alive, Keep yourself alive
You take your time and take more money
Keep yourself alive

살아남자고, 버텨 보자고,

가진 시간과 돈을 다 들여서,


끝까지 견뎌보자고,

Keep yourself alive, Keep yourself alive
All you people keep yourself alive

살아남읍시다, 기를 써서 버팁시다,

여러분 모두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누가 세상을 일케 만든 거야? … Sympathy For The Devil …
Please allow me to introduce myself
I’m a man of wealth and taste
I’ve been around for long, long years
Stole many man’s soul and faith

저로 말씀드리자면 말입니다,

부(富)와 교양을 갖추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왔죠,


아주 많은 인간들의 영혼과 신념을 앗으면서 말입니다,

And I was ’round when Jesus Christ
Had his moment of doubt and pain
Made damn sure that Pilate
Washed his hands and sealed his fate

예수 그리스도가 고뇌와 고통을 겪을 때도,

전  존재했었고요,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숙명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도 했고요,

Pleased to meet you
Hope you guess my name
But what’s puzzling you
Is the nature of my game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정체를 알아채셨나요?


하지만 당신을 헷갈리게 만드는 게,


이 게임의 재미거든요,


Rolling Stones, “Sympathy For The Devil”

I stuck around St. Petersburg
When I saw it was a time for a change
Killed the Czar and his ministers
Anastasia screamed in vain

변혁의 시기가 왔을 때,

전  페테스부르그를 배회하고 있었죠,


짜르와 그 신하들을 죽이고,


아나스타샤는 공허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죠,



I rode a tank
Held a general’s rank
When the blitzkrieg raged
And the bodies stank

2차 세계대전의 격전장에서,

시체가 썩고 있을 때,


전 장군의 계급으로,


탱크를 몰았죠,



Pleased to meet you
Hope you guess my name, oh yeah
Ah, what’s puzzling you
Is the nature of my game, oh yeah

만나서 즐겁고요,

제 정체를 이제는 알아채셨을까나,


허나, 헷갈리게 만드는게,


이 게임의 목적이거든요,



I watched with glee
While your kings and queens
Fought for ten decades
For the gods they made

그대들의 왕과 여왕들이,

그들이 만들어낸 신을 위해,


백년 간의 전쟁을 치르는 걸,


전 환희에 겨워 바라보고 있었죠,


I shouted out,
“Who killed the Kennedys?”
When after all
It was you and me

전 또 울부짖기도 했죠,

“누가 케네디 형제를 죽였는가?”라고,


그런데,


범인은 결국 나와 당신 아니었나요,



Let me please introduce myself
I’m a man of wealth and taste
And I laid traps for troubadours
Who get killed before they reached Bombay

저로 말씀드리자면,

부와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서,


히피들이 여행을 떠났을 때,


봄베이에 닿기 전에 죽임을 당하도록 일을 꾸몄죠,



Pleased to meet you
Hope you guessed my name, oh yeah
But what’s puzzling you
Is the nature of my game, oh yeah, get down, baby

만나서 반갑고요,

제 정체를 이제는 아셨을텐데,


아직도 헷갈리시나요?


하긴 이 게임이 워낙 그렇죠,



Pleased to meet you
Hope you guessed my name, oh yeah
But what’s confusing you
Is just the nature of my game
(woo woo, who who)

만나서 즐겁고요,

제 정체를 알아채셔야 할텐데,


허나 헷갈리게 만드는 게,


이 게임의 목적이거든요,



Just as every cop is a criminal
And all the sinners saints
As heads is tails
Just call me Lucifer
‘Cause I’m in need of some restraint
 
모든 경찰이 다 범죄자고,

모든 죄인이 성자(聖者)이듯,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요,


날 루시퍼라 불러줄래요?


난 좀 제지당할 필요가 있거든요,



So if you meet me
Have some courtesy
Have some sympathy, and some taste
Use all your well-learned politesse
Or I’ll lay your soul to waste, um yeah

그러니 혹시 저를 만나시게 되거든,

호의를 베풀어주세요,


연민을 가지고 교양있게 대해주세요,


당신이 이제껏 배워 온 온갖 친절을 동원해서 말이죠,


그러지 않으면 제가 당신의 영혼을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릴 거거든요,



Pleased to meet you
Hope you guessed my name, um yeah
But what’s puzzling you
Is the nature of my game, um mean it, get down

만나서 반가왔고요,

정말 제 정체를 모르시겠나요?


헷갈리는게 아니라,


알아채고 싶지 않은 거겠죠,



Tell me baby, what’s my name
Tell me honey, can ya guess my name
Tell me baby, what’s my name
I tell you one time, you’re to blame

말해 봐요, 내 이름이 뭐죠?

말해 봐요, 내 정체가 뭐죠?


말해 봐요, 내 이름을,


제가 말해 드리죠, 그건 바로 당신이예요,

영진공 이규훈

 

『반지의 제왕』을 통해 살펴보는 박정희 신화의 의미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한때 [안좋은 추억]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개그맨 정준하는 왜 떡국을 기억 못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떡국에 관한 안좋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왜 개구리를 싫어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개구리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우리들도 모두 좋건 안 좋건 자기만의 추억을 한 두개씩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 데이빗 엘킨드(D. Elkind)는 이런 자기만의 추억을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라고 불렀다. 내가 어떻게 연애에 성공하거나 실패했는지, 내가 어떻게 대학에 입학하거나 낙방했는지, 내가 어떻게 직업을 찾고 어떻게 그 직업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같은 것들이 모두 이 개인적 우화다. 술자리나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나 가끔 흘릴 뿐, 남들에겐 잘 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이 개인적 우화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로또 당첨자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주에 범상치 않은 꿈을 꿨거나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누구는 불나는 꿈을 꿨다고 하고, 누구는 똑같은 번호의 버스가 연달아 오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꿈이나 경험이 로또 당첨을 설명해 주는 개인적 우화가 된다. 그런데 사실은 이상한 꿈 때문에 로또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로또에 당첨되니까 지난밤 꿈이 이상해 보이는 게 더 맞다. 생각해 보라. 꿈치고 이상하지 않은 꿈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진짜 이상한 꿈을 꿨다 싶어서 복권 샀는데 꽝인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최소한 일주일에 수백 만 명이 그렇게 이상한 꿈을 꿨다는 이유로 복권을 살 것이다. 모든 꿈은 다들 어딘가 이상하지만 우리는 그런 꿈을 꾸면서도 별일 없으면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나중에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면 지난번 꿈도 덩달아 특별해진다.

우리는 어떤 큰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건을 이야기 구조로 바꾸어서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실제 사건의 세부사항 중에 어떤 것은 생략되고 어떤 것은 덧붙여지면서 결국 실제 사건의 본질은 왜곡되어 버린다. 사건이 개인적 우화로 바뀌는 과정이다. 그런데 어떤 개인적 우화는 한 개인만이 간직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러다보면 개인적 우화가 아니라 전설과 신화가 된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우리나라에서 보다 영국미국 문화권에서 훨씬 더 큰 가치를 부여받는 영화다.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저 영화 『트로이』급의 웅장한 대작 정도로 받아들여지지만, 영미 문화권 사람들에게 이건 원초적인 세계관을 집대성한 기념비다. 호빗과 휴먼과 엘프와 드워프와 마법사, 그리고 드래곤과 오크와 기타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세계는 서양 판타지 문학에서는 언제나 등장하는 공간이다. 이 서양 판타지 문학이 SF쪽으로 전환되어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기본 틀이 되었고, 게임으로 전환되면서는 테이블 보드 게임에서 시작해서 [디아블로]나 [울티마 온라인], [워크래프트], 우리나라의 [리니지]의 바탕이 된 것이다. [무협소설]이 중국문화권 사람들이 꿈꾸는 신화의 표현이라면, 이 반지의 제왕 속 판타지 세계는 영국 미국 문화권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화다.

J.R.R. Tolkien

이 모든 것은 이 이야기의 창조자 J.R.R. 톨킨에서 시작되었다. 아시다시피, 톨킨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19세기 말(1892년)에서 20세기 중반(1973년)까지 영국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1925년부터 1959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헌학과 언어학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북유럽의 옛 설화들을 수집하고 조립해서 새로 만들어낸 유럽설화의 집대성판으로『반지의 제왕』을 써냈다. 하지만 그가 신화들을 조합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세계는 단순히 판타지만은 아니었다. 그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살아생전에 겪어야 했던 1, 2차 세계대전이었다.

대량학살 전쟁의 시작이 된 1차 세계대전

톨킨은 이 역사적 대사건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 시작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는 개인적 우화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그에겐 북유럽의 옛 설화들과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장력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그의 개인적 우화는 책이 되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그 전설은 공유에 공유를 거쳐가며 영미 문화권이 역사를 설명하는 신화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 신화가 만약 1,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그건 사실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만약 2차 세계대전이 반지의 제왕이야기라면 영국은 인간들과 엘프, 드워프로 구성된 반지원정대를, 사우론은 히틀러를, 사루만은 그 꼬붕인 무솔리니쯤을 상징할 거다. 거기다가 인간 같지 않은 오크들은 식민지 주민들이나 일본사람들 쯤을 상징하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가 그렇던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악의 무리들과 그 부하인 흉칙한 괴물들

선함을 상징하는 백색의 마법사

빛과 어둠의 싸움...2차 대전이 이런 전쟁이었나?

1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겐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선포된 계기라서 꽤 그럴듯한 전쟁 같지만, 사실 따져보면 양 쪽 편 다 식민지들 더 많이 차지하려는 싸움질이었다. 이건 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다. 이미 식민지를 많이 갖고 있거나 더 이상 가질 필요 없는 나라(미국과 영국, 뒤늦게 소련) vs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해서 식민지를 마구마구 필요로 했던 나라들(독일, 일본, 이태리)간의 싸움이었으니까. 물론 2차 세계대전에서는 그놈의 히틀러와 나치가 인종청소라는 엽기적인 짓을 저지른 덕분에 뭔가 그럴듯한 다른 이유가 붙었다. 그것은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미국이나 영국이 히틀러가 나쁜 놈이라서 전쟁을 한 건 아니었고, 히틀러를 죽였다고 해서 악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우리는 2차 대전 덕분에 일본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 나면 1차 대전은 약 1천만 명이 죽었고, 2차 대전은 약 5천 만명이 죽어나간 끔찍한 사건일 뿐이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왕을 세우기 위해 우리 같은 민초들은 셀 수 없이 죽어나간다.

따라서 반지의 제왕은 신화이지만, 동시에 역사에 대한 거대한 왜곡물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상 모든 신화들은 다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박정희 신화도 마찬가지다. 박정희는 가면 갈수록 더 대단한 대통령이 되어간다. 사람들은 그가 없었으면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불가능했었고, 그가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오래 전에 공산당 국가가 되었을 거고, 심지어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핵보유국이 되었을 거라고들 믿는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던가. 박정희 때 중화학 공업에 투자하고 고속도로를 깔기 시작한 거는 맞지만, 그 계획은 박정희가 쫓아낸 장면 정부 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거였다. 게다가 박정희 때는 늘 무역적자에 시달렸으며,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열심히 차관을 빌려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관치금융과 관치경영의 기초를 닦았고, 지역감정을 뿌려놓았으며, 군사문화를 뿌리박아 놓아서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시발점을 제공했다.

박정희 ...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결코 박정희 신화를 무너트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신화가 된 이유는 경제의 기적을 일으켜서도, 조국 근대화를 이루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의 일생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 경험하는 현재를 가장 극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별 하나짜리 장교가 나라를 집어삼키고, 수십년간 권력을 유지했으며, 그 집권기간 동안 우리나라 현대사의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에는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음으로써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점이 바로 그를 전설로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이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그 어떤 사소한 경험도 그걸 박정희와 연결짓는 순간 더 이상 사소한 개인사가 아니라 거대한 전설의 한 줄기로 의미가 격상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 그 자체는 일어나자마자 흩어져서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나면 남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기억, 즉 우리 마음대로 그 사건을 해석하고 덧붙인 개인적 우화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단위에서 정리된 과거들만으로는 사회가 구성되고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문화공동체는 구성원들의 과거 기억을 통합함으로써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건 결국 개개인의 우화가 그 개인들이 모인 집단에 전승되는 전설의 형태로 통합되고, 그 전설은 다시 그 집단들이 뭉친 국가의 신화가 되는 과정이다. 이게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는 말의 뜻이다. 이 이야기, 이 신화가 무엇이냐가 우리의 현재 경험을 결정짓는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가적 단위의 신화보다는 부족단위의 전설들만 있는 거 같다. 최소한 두 개 부족의 전설이 이 나라를 지배한다. 한 쪽 전설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우리나라가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개조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또 다른 전설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이대로 가다간 이 나라가 치유불능의 망국으로 치닫으리라 여긴다. 나 역시 이 두 부족민중 한명인데, 한 쪽 부족민의 입장에서, 나는 도무지 상대부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세대갈등이니 좌빨이니 하는 얘기가 오간다.  결국 문제는 전설의 통합이다.

박정희 전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는 일. 그게 이 골 때리는 현시국의 미친 짓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일 거다.

서비스컷: 아르웬 ...

 

영진공 짱가

 

송구영신 … 그날이 오면


송구영신(送舊迎新)
옛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2008년에 우리는,
새로이 발전해야 할 것들이 우격다짐으로 뭉개지고,
도리어 사라져야할 옛 것들이 득세하는 걸 목도했습니다.

부디 2009년 새해에는,
없어져야 할 옛 것들은 사라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새 것들이,
새록새록 힘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해 많이 받으세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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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중대 고비-언론노조 파업



MBC가 방송법을 놓고 선전포고에 가까운 뉴스를 쏟아낸 지 일주일.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나섰다. 요는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상파 방송진출을 허용하는 방송법 저지다.


한나라당이 연내 처리하겠다는 법안들에는 집시법, 사이버모욕죄법, 금산분리 완화와 출총제 폐지에 관한 법 등 여러 개의 쟁점 법안들이 있지만 유독 방송법만 문제시하는 MBC와 언론노조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 난감한 면이 있다. ‘방송법만 막아내자’처럼 보인다. 물론 감감 무소식인 KBS 노조에 비할 바는 아니다. KBS 노조의 이중적인 태도야말로 꼴불견이다.

한나라당의 무더기 법안 처리 방침에 대해서는 당내 소장파 뿐 아니라 조선일보까지 우려를 표했다.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연내 무더기 강행처리 방침을 고수하고 있을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다.

첫째. 집권여당은 하루라도 빨리 4대강 정비사업을 시작하고 싶어한다. 4대강 정비든 대운하든 이름은 상관없다. 지금 경제가 야단이다. 내수가 싹 죽을 판이고, 마이너스 성장도 일어날 수 있다. 4대강 정비사업으로 삽을 뜨면 잠시 반짝이더라도 내수를 살릴 수 있다. 겨우 토건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쌍팔년스러운 정치적 상상력이 슬프지만 이게 집권여당의 한계다. 그래서 이들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4대강 정비사업을 해야 한다. 4대강 정비나 대운하의 목적은 애초부터 국토개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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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여론에서 4대강 정비 사업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집시법 고쳐서 광장에 못 나오게 하고, 사이버모욕죄 만들어서 인터넷에다 못 떠들게 하고, 방송법 고쳐서 정권에 우호적인 방송 만들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의 연내 무더기 법안처리는 내년 정부 정책 시행에 대한 터 다지기 작업인 것이다.

둘째.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한 논란은 절대 내년 5월까지 가서는 안된다. 시민들에게 5월과 6월은 광장의 계절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특별한 시기다.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도 많을 테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도 이때 절정이었다.

때문에 이때까지 주요 쟁점과 논란들을 다 처리하지 못한다면 내년 상반기에는 아예 못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하반기 접어들면서 상반기 경제 성적이 나오기 시작하면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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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내놓은 몇 가지 고용정책을 보자.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현재 2년에서 4년으로 확대시켰다. 고용기간 2년이 다 된 비정규직을 사용자들은 계속 사용할 수 없는 게 현재 법이다. 그럼 사용자들이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줄까? 천만에. 그냥 해고해 버린다. 그럼 이들이 실업률 통계에 잡힌다. 결국 실업률이 증가한다. 때문에 2년을 4년으로 늘린 건 실업률 수치를 최대한 줄여 보려는 발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안 그래도 비정규직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나라,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좋으니까 실업률 통계만큼은 낮추겠다는 눈 가리고 아웅 발악이다.

비슷한 게 또 몇 가지 있다. 고령자 최저임금 10% 삭감, 수습 사원 3개월에서 6개월로 기간 연장. 이것들이 모두 실업률 수치를 낮춰 보겠다는 정부의 발악이다. 서민들 일자리의 질이 개차반이 되더라도 정권의 포장 만큼은 이쁘게 가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마이너스 성장’을 언급할 만큼 내년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 정책(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이 시행되지 못한다면 내년 후반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현 정부의 판단일 게다. 따라서 여당의 연내 처리 방침은 이런 속내와 닿아 있다. 여당의 강행 처리가 청와대의 입김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의 시나리오대로 올해 안에 법안 다 처리해서 내년 되면 4대강 정비 시작하고 각종 규제 완화 법안들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변수가 나타났다. 바로 MBC의 총력 저지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여러 정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이미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크게 한 번 마찰을 빚었었고, 역사 교과서 수정 문제, 일제 고사 거부 안내장 발송한 교사들 해직 문제, 건기연 김이태 연구원 징계 문제, YTN 낙하산 사장 문제, 종부세 문제, 환율 정책 문제,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등등이 현재 마찰 중이다. 그러니까 동네마다 촛불 시민 한 명씩 등장한 셈이랄까? 그런데 만약 이 촛불 시민들이 다시 한 곳에서 뭉쳐 버린다면?

그 매개체가 MBC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많은 시민들은 연내 무더기 처리하겠다는 법안들이 어떤 내용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른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상관없기에 또 모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기톱 국회의원에게 짜증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MBC가 방송법 문제를 보도하듯 다른 쟁점 법안들을 보도하기 시작한다면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흩어져 있던 여러 촛불들이 한 데 모여 횃불이 될 수도 있다. 임기 1년만에 커다란 촛불을 두 번 만나는 이명박 정부는 내년부터 급속하게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현재 MBC를 포함한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따라서 내년 집권 여당의 향방을 가르는 시험대다. 여당은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할 것이다. 방송법은 빼고 처리해서 언론노조 파업을 일단 진정시킬까?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럴 경우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한 방송의 비판을 어떻게 누그러뜨릴까를 다시 고민해야겠지만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