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그 전설을 추억하며 …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그 이름은 단순히 팝음악의 스타라는 이미지를 넘어서서 한 시대와 그 문화에 대한 icon이자 이제는 전설의 자리에 놓여지게 되었다.  지난 6월 25일 우리 곁을 떠나간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전설의 발자취를 추억해보고자 한다.

마이클 잭슨이 전설로 자리잡게 된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음의 세 가지가 가장 주요하게 작용하였다고 본다.

1. 마이클
두 말 할 것도 없이 마이클 그 자체가 참으로 뛰어난 엔터테이너였다.  팝계의 역사를 통해 가창력이나 춤 솜씨가 뛰어난 이들은 무척이나 많았지만, 마이클 처럼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하여 펼쳐보여준 이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의 가창력은 사실 영혼을 울리는 떨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가 추구하는 그루브(Groove)에 최적화되었고, “Off The Wall” 앨범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발휘한 작곡능력 또한 그가 발표했던 수 많은 명곡들을 통해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그의 춤사위는 논쟁의 여지가 별로 없이 최고라고 불리운다.


아, 그리고 마이클은 공인된 발명가이기도 했다.
뭔 얘기냐하면 … 그 뭐냐 “Smooth Criminal”에 나오는 몸을 기울이는 동작에서 신는 신발을 특허로 등록하였다는 거다.

못 믿겠으면 여기를 누질러 보시길.

2. 퀸시 존스 (Quincy Jones)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 하였듯, 잭슨파이브 (Jackson 5) 시절 그저 재능있는 어린 소년이었던 마이클이라는 구슬을 정성껏 갈고 닦고 꿰어서 전설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가장 큰 조력자는 누가 뭐래도 퀸시 존스이다.

퀸시 존스가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려면 무척이나 길어지는데 무쟈게 줄여보자.
1933년생인 그는 열여덟살 때에 트럼펫 연주자로 재즈 음악계에 입문한다.  이때의 모습은 영화 “레이(Ray)”에서 묘사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찾아보시길.
그리고 1962년에 그의 가장 큰 히트곡이랄 수 있는 “Soul Bossa Nova”를 발표하는데, 이 노래는 영화 “오스틴 파워즈”의 테마음악 등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어서 그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곡이다.
이후 그는 음반기획과 제작에 전념하였는데, 1981년에는 “The Dude”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여 “Ai No Corrida” “Just Once”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퀸시와 마이클의 만남은 1979년 발매작 “Off The Wall”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Thriller”와 “Bad” 앨범까지 그들의 조화로 이루어진 결과물들은 음악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둘은 이런저런 이유로 더는 함께 작업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시 존스가 마이클 잭슨이라는 전설을 이루는데 참으로 큰 역할을 하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3. 기타 (Guitar)
수록곡 전체가 빠짐없이 대히트를 기록한 앨범 “Thriller”에는 당시 댄스음악을 경멸(?)하던 이들까지 열광케한 곡이 있었으니, 그 곡은 바로 “Beat It”이다.  많은 이들이 그 곡의 뮤비에서 보여지는 안무에 감탄하고 따라하기 바쁠때 음악 좀 듣는다거나 실제 연주를 하는 이들은 춤사위에 어우러지는 기타 솔로와 곡 전체를 리드하는 리프에 말 그대로 놀라자빠졌더랬다.

Eddie Van Halen의 화려한 솔로와 Steve Lukather의 강렬한 기타플레이가 곡 전체를 휘감고있는 “Beat It”은 팝음악계에 댄스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Funk 리듬과 헤비메탈기타에 맞춰 멋드러지게 댄스 루틴을 전개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Off The Wall” 때 부터 이러한 사운드의 실험은 시작되었고, “Thriller”의 대히트를 통해 기타는 마이클 잭슨표 음악의 중추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마이클의 사운드는 일관되게 기타를 앞장세웠고, 기타를 사용하지 않은 곡에 있어서도 다른 악기를 통해 매혹적인 리프의 반복과 강한 타격음을 내세웠고 라이브에서도 마이클은 기타를 주축으로 사운드를 구성하였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기타리스트를 들자면 Eddie Van Halen, Slash, Larry Carlton, Steve Lukather 등 쟁쟁한 이름이 즐비하고 라이브에서는 Jennifer Batten 등이 활약하였다.

이쯤에서 마이클의 라이브를 하나 보도록 하자.

<전설의 발자취>

마이클 잭슨의 디스코그래피를 정리해 보도록 하자.
여기에서는 잭슨5의 앨범은 제외하도록 한다.

1. Got To Be There(1972)
마이클의 솔로 데뷰 앨범으로, 14세의 그를 잭슨5의 재간동이에서 탈피해 어엿한 가수로 인식하게 만든 앨범이다.


대표적인 수록곡은, “In our small way” “Got to be there” “Ain’t no sunshine” “Maria” 등인데 이 중 특히 “Maria”는 국내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서 예전에 인순이도 자주 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아래를 누질러 들어보도록 하자.


2. Ben(1972)
사람을 물어 죽이는 쥐새끼에 관한 영화 “Ben”의 주제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앨범.  대표곡은 “Ben”과 “In our small way”이다.

예나 지금이나 쥐새끼가 말썽이다. 하루 빨리 박멸하세~

“In our small way”는 “나무자전거”의 “강인봉”이 어린 시절 “작은별 가족”으로 활동할 때 “나의 작은 꿈”이라는 노래로 번안해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참고로 “Ben”과 함께 마이클의 어린 시절 대표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I’ll be there”는 잭슨5의 1970년 작 “Third album”에 수록되어 있다.

역시 아래를 누질러 들어보자.


3. Music & Me(1973)
마이클이 변성기를 맞는 시기에 나온 앨범으로 대표곡은 “Happy”와 “Too young” 등이다.


아래를 누질러 들어보자.


4. Forever, Michael(1975)
마이클과 잭슨5의 모타운 레코드 시절을 마감하는 앨범.  대표곡은 “We’re almost there”와 “Just a little bit of you”이다.


이 앨범 이후 그의 활동은 잠시 소강기에 들어간다.

아래를 누질러 수록곡 중 하나를 들어보자.


5. Off The Wall(1979)
마이클 잭슨이라는 전설을 잉태하게 된 앨범.  이전까지의 마이클은 그저 노래 잘부르고 춤 잘추는 곱상한 청년으로 인식되어왔는데 이 앨범은 마이클을 진정한 스타로 그리고 향후 전설을 이룰만한 뮤지션으로 탈바꿈 시켜주었다.


퀸시 존스와의 첫 작품으로 마이클 잭슨표 음악이 탄생하게 된 계기를 만든 이 앨범의 대표곡은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와 “She’s out of my life”,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Rock with you” 등이다.

그럼 아래를 누질러 그루브라는 게 뭔지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그 노래를 들어보자.



6. Thriller(1982)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 노래나 듣자 … 아니 보자!

7. Bad(1987)
팝음악계 사상 근접하는 기록조차 찾아 보기가 힘든 대성공을 거둔 전작 “Thriller” 이후 5년 만에 나온 앨범.  이 앨범서부터 마이클은 앨범 제작에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가고자 시도했고 결국 이 앨범이 퀸시 존스와의 마지막 작업이 된다.


전작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둔 이 앨범 역시 대표곡을 고르기가 힘들 정도이지만, 영화 “Moonwalker”에서 나온 장면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곡을 들어보도록 하자.


8. Dangerous(1991)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200 앨범챠트 1위를 차지한 앨범.  퀸시의 영향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만들어진 앨범이라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이전의 작품들보다는 산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마이클 잭슨의 특유의 음악으로 가득찬 수작.


대표곡은 “Black or White” “Remeber the time” “Heal the world” “In the closet” “Will you be there” 등등등등등 …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로 인해 더욱 인상깊은 그 노래를 들어보자.


9. HIStory(1995)
히트곡 모음과 정규앨범을 합친 더블앨범.  이 앨범의 발매와 동시에 수록곡과 뮤직비디오를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빚어졌고 노골적인 반(反) 마이클 정서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특히나, 미국 내에서는 이 앨범 수록곡인 “They don’t care about us”와 관련하여 “Jew me”라는 가사를 둘러싸고 유수의 언론에서 비판기사를 게재하는 등 무척 시끄러웠다.  마이클 사망 전 마지막 동영상으로 공개된 리허설 장면에서 부르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기도 하다.

논란 끝에 변경된 버전 이전의 오리지널 버전을 가사와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10. Invincible(2001)
이 앨범이 결과적으로 마이클의 마지막 정규앨범이 되었다.  Babyface와 R. Kelly 등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  무난하다는 평을 듣는다.


대표곡은 “You rock my world”와 “Butterflies” 등 …


여기까지다.
마이클 잭슨, 그 전설에 대한 추억을 재즈 그룹 “윈터플레이”의 “Billie Jean”을 들으며 마무리하도록 하자.


[MBC ‘음악여행 라라라’, 2009년 5월 11일 방송]

영진공 이규훈

『반지의 제왕』을 통해 살펴보는 박정희 신화의 의미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한때 [안좋은 추억]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개그맨 정준하는 왜 떡국을 기억 못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떡국에 관한 안좋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왜 개구리를 싫어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개구리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우리들도 모두 좋건 안 좋건 자기만의 추억을 한 두개씩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 데이빗 엘킨드(D. Elkind)는 이런 자기만의 추억을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라고 불렀다. 내가 어떻게 연애에 성공하거나 실패했는지, 내가 어떻게 대학에 입학하거나 낙방했는지, 내가 어떻게 직업을 찾고 어떻게 그 직업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같은 것들이 모두 이 개인적 우화다. 술자리나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나 가끔 흘릴 뿐, 남들에겐 잘 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이 개인적 우화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로또 당첨자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주에 범상치 않은 꿈을 꿨거나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누구는 불나는 꿈을 꿨다고 하고, 누구는 똑같은 번호의 버스가 연달아 오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꿈이나 경험이 로또 당첨을 설명해 주는 개인적 우화가 된다. 그런데 사실은 이상한 꿈 때문에 로또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로또에 당첨되니까 지난밤 꿈이 이상해 보이는 게 더 맞다. 생각해 보라. 꿈치고 이상하지 않은 꿈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진짜 이상한 꿈을 꿨다 싶어서 복권 샀는데 꽝인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최소한 일주일에 수백 만 명이 그렇게 이상한 꿈을 꿨다는 이유로 복권을 살 것이다. 모든 꿈은 다들 어딘가 이상하지만 우리는 그런 꿈을 꾸면서도 별일 없으면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나중에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면 지난번 꿈도 덩달아 특별해진다.

우리는 어떤 큰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건을 이야기 구조로 바꾸어서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실제 사건의 세부사항 중에 어떤 것은 생략되고 어떤 것은 덧붙여지면서 결국 실제 사건의 본질은 왜곡되어 버린다. 사건이 개인적 우화로 바뀌는 과정이다. 그런데 어떤 개인적 우화는 한 개인만이 간직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러다보면 개인적 우화가 아니라 전설과 신화가 된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우리나라에서 보다 영국미국 문화권에서 훨씬 더 큰 가치를 부여받는 영화다.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저 영화 『트로이』급의 웅장한 대작 정도로 받아들여지지만, 영미 문화권 사람들에게 이건 원초적인 세계관을 집대성한 기념비다. 호빗과 휴먼과 엘프와 드워프와 마법사, 그리고 드래곤과 오크와 기타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세계는 서양 판타지 문학에서는 언제나 등장하는 공간이다. 이 서양 판타지 문학이 SF쪽으로 전환되어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기본 틀이 되었고, 게임으로 전환되면서는 테이블 보드 게임에서 시작해서 [디아블로]나 [울티마 온라인], [워크래프트], 우리나라의 [리니지]의 바탕이 된 것이다. [무협소설]이 중국문화권 사람들이 꿈꾸는 신화의 표현이라면, 이 반지의 제왕 속 판타지 세계는 영국 미국 문화권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화다.

J.R.R. Tolkien

이 모든 것은 이 이야기의 창조자 J.R.R. 톨킨에서 시작되었다. 아시다시피, 톨킨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19세기 말(1892년)에서 20세기 중반(1973년)까지 영국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1925년부터 1959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헌학과 언어학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북유럽의 옛 설화들을 수집하고 조립해서 새로 만들어낸 유럽설화의 집대성판으로『반지의 제왕』을 써냈다. 하지만 그가 신화들을 조합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세계는 단순히 판타지만은 아니었다. 그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살아생전에 겪어야 했던 1, 2차 세계대전이었다.

대량학살 전쟁의 시작이 된 1차 세계대전

톨킨은 이 역사적 대사건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 시작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는 개인적 우화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그에겐 북유럽의 옛 설화들과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장력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그의 개인적 우화는 책이 되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그 전설은 공유에 공유를 거쳐가며 영미 문화권이 역사를 설명하는 신화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 신화가 만약 1,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그건 사실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만약 2차 세계대전이 반지의 제왕이야기라면 영국은 인간들과 엘프, 드워프로 구성된 반지원정대를, 사우론은 히틀러를, 사루만은 그 꼬붕인 무솔리니쯤을 상징할 거다. 거기다가 인간 같지 않은 오크들은 식민지 주민들이나 일본사람들 쯤을 상징하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가 그렇던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악의 무리들과 그 부하인 흉칙한 괴물들

선함을 상징하는 백색의 마법사

빛과 어둠의 싸움...2차 대전이 이런 전쟁이었나?

1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겐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선포된 계기라서 꽤 그럴듯한 전쟁 같지만, 사실 따져보면 양 쪽 편 다 식민지들 더 많이 차지하려는 싸움질이었다. 이건 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다. 이미 식민지를 많이 갖고 있거나 더 이상 가질 필요 없는 나라(미국과 영국, 뒤늦게 소련) vs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해서 식민지를 마구마구 필요로 했던 나라들(독일, 일본, 이태리)간의 싸움이었으니까. 물론 2차 세계대전에서는 그놈의 히틀러와 나치가 인종청소라는 엽기적인 짓을 저지른 덕분에 뭔가 그럴듯한 다른 이유가 붙었다. 그것은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미국이나 영국이 히틀러가 나쁜 놈이라서 전쟁을 한 건 아니었고, 히틀러를 죽였다고 해서 악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우리는 2차 대전 덕분에 일본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 나면 1차 대전은 약 1천만 명이 죽었고, 2차 대전은 약 5천 만명이 죽어나간 끔찍한 사건일 뿐이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왕을 세우기 위해 우리 같은 민초들은 셀 수 없이 죽어나간다.

따라서 반지의 제왕은 신화이지만, 동시에 역사에 대한 거대한 왜곡물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상 모든 신화들은 다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박정희 신화도 마찬가지다. 박정희는 가면 갈수록 더 대단한 대통령이 되어간다. 사람들은 그가 없었으면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불가능했었고, 그가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오래 전에 공산당 국가가 되었을 거고, 심지어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핵보유국이 되었을 거라고들 믿는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던가. 박정희 때 중화학 공업에 투자하고 고속도로를 깔기 시작한 거는 맞지만, 그 계획은 박정희가 쫓아낸 장면 정부 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거였다. 게다가 박정희 때는 늘 무역적자에 시달렸으며,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열심히 차관을 빌려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관치금융과 관치경영의 기초를 닦았고, 지역감정을 뿌려놓았으며, 군사문화를 뿌리박아 놓아서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시발점을 제공했다.

박정희 ...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결코 박정희 신화를 무너트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신화가 된 이유는 경제의 기적을 일으켜서도, 조국 근대화를 이루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의 일생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 경험하는 현재를 가장 극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별 하나짜리 장교가 나라를 집어삼키고, 수십년간 권력을 유지했으며, 그 집권기간 동안 우리나라 현대사의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에는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음으로써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점이 바로 그를 전설로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이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그 어떤 사소한 경험도 그걸 박정희와 연결짓는 순간 더 이상 사소한 개인사가 아니라 거대한 전설의 한 줄기로 의미가 격상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 그 자체는 일어나자마자 흩어져서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나면 남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기억, 즉 우리 마음대로 그 사건을 해석하고 덧붙인 개인적 우화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단위에서 정리된 과거들만으로는 사회가 구성되고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문화공동체는 구성원들의 과거 기억을 통합함으로써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건 결국 개개인의 우화가 그 개인들이 모인 집단에 전승되는 전설의 형태로 통합되고, 그 전설은 다시 그 집단들이 뭉친 국가의 신화가 되는 과정이다. 이게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는 말의 뜻이다. 이 이야기, 이 신화가 무엇이냐가 우리의 현재 경험을 결정짓는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가적 단위의 신화보다는 부족단위의 전설들만 있는 거 같다. 최소한 두 개 부족의 전설이 이 나라를 지배한다. 한 쪽 전설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우리나라가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개조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또 다른 전설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이대로 가다간 이 나라가 치유불능의 망국으로 치닫으리라 여긴다. 나 역시 이 두 부족민중 한명인데, 한 쪽 부족민의 입장에서, 나는 도무지 상대부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세대갈등이니 좌빨이니 하는 얘기가 오간다.  결국 문제는 전설의 통합이다.

박정희 전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는 일. 그게 이 골 때리는 현시국의 미친 짓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일 거다.

서비스컷: 아르웬 ...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