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업

사용자 삽입 이미지<브레이크업>은 권태기의 남녀를 다룬 영화다,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일 가지고 자존심을 세우고, 그러다 커다란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사랑을 확인하는 그저 그런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미녀 한분이 보고 싶어했고, 제니퍼 애니스톤의 미모만 봐도 돈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영화 내용은 내 예상과 달랐다. 남자와 여자가 헤어질 위기에 몰린 건 단순히 권태기라서가 아니라 남자가 매사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초대하는 날, 저녁 준비를 도와 달라는 애인의 말에도 남자는 태연히 프로야구 경기를 본다. 시간이 없다고 악을 써도 소용이 없다. 가족들이 다 가고 나서 여자는 남자에게 설거지를 해달라고 하지만, 남자는 그새를 못참아 전자오락을 하고 있다. 집안일은 남자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어야 함에도, 그 남자에겐 그런 개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는 말한다.
“집이 쉼터가 되게 해줘.”
밖에서 일을 하고 온 남자로서는 그런 요구를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일을 하고 피곤에 지친 몸으로 들어온 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에게 집은 쉼터지만, 여자에게 집은 일터의 연장이며, 영화 속 주인공은 정도가 훨씬 심했다. 제니퍼가 다그친다.
“…외식을 할 때도 내가 계획을 짰어. 그런데도 당신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았어.”
남자의 항변은 고작 이 수준이다. “그 말을 왜 이제야 해?”

시카고에는 야구팀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커브스고 또 하나는 화이트삭스다. 커브스 팬인 남자는 화이트삭스 팬인 다른 친구와 가끔 야구장에 가는데, 제니퍼한테 “자기가 원하는 일만 한다”는 핀잔을 들은 남자는 위로를 받으러 달려갔다가 비수가 될 말을 그 친구로부터 듣는다.
“너 나랑 화이트삭스 경기 보러 간 적 있어?”
이제부터 스포일러. 남자는 크게 깨닫고 변하기로 한다. 하지만 난 둘이 재결합하는 상투적인 결말이 안되기를 빌었는데, 그건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나이가 들어 알아챈 때문이다. 제니퍼가 그를 다시 받아준다면 한 몇 달 정도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가겠는가? 그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결국은 제니퍼가 남자의 모든 뒷수발을 감당해야 하는데 말이다. 남자가 정 변했다면 새로 만날 여자에게나 최선을 다할 일이지, 남자에게 이미 질려버린 제니퍼에게 매달릴 일은 아니었다.

이 남자가 좀 심할 뿐, 대부분의 남자가 이런 식이다. 경제적 능력만 있다면 여자들 중 많은 수가 굳이 결혼을 하려 들지 않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도, 그리고 실제 결혼률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것도 여기에 있으리라. 참고로 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데 나보다 먼저 이 영화를 본 미녀 한분은 “지루했다”는 문자를 보내 왔다. 그 미녀와 난 술, 유머, 댓글에는 코드가 일치하나 영화 코드는 안맞는 듯하다.

상벌위원회 상임간사
서민 (http://my.dreamwiz.com/bbbenj)

타인의 삶

<타인의 삶>을 본 건 내가 보는 영화잡지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며 줄거리까지 나열되어 있었는데, 읽는 순간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팍 왔다. 하지만 난 이미 줄거리를 읽어버린 걸? 어느 분이 그러셨다. 진짜 좋은 영화는 줄거리를 알아도 재미있다고. 스포일러를 봤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 영화는 원래 재미가 없는 영화였다고. 과연 그랬다. <타인의 삶>은, 정말 숨이 막히도록 재미있는 영화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문제는 내 뒤에 있는 남자였다. 요즘 극장 매너가 정착되어 휴대폰 울리는 사람이 없고, 가끔 문자 확인하는 불빛만이 내 심기를 건드리는데, 그 인간은 대담하게도 내 의자를 발로 찬다. 그것도 수시로.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아니 아직도 이런 놈이 있나? 놈이 또 내 의자를 찼을 때, 더 이상 못참겠다 싶었던 난 무서운 얼굴을 한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쯤 했으면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놈은 또다시 내 등짝에 발의 압력을 가한다. 난 영화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숨막히게 재미있는 영화를 발길질로 망친 나쁜 놈 같으니. 안되겠다 싶어 난 고개를 돌려 좀 더 오래 그를 째려봤다. 녀석은 구제불능이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내 의자를 발로 찼으니.

그 후부터 내내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한마디 하자. 누군 다리가 짧아서 오므리고 있는 줄 아냐고. 일말의 불안감. 혹시 놈이 조폭처럼 생겼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내가 아까 째려본 걸 가지고 먼저 시비를 걸면 어쩌지? 걱정도 팔자였다. 불이 켜지고 나서 확인한 녀석의 얼굴은 어린 나이와 더불어 그가 주먹을 전혀 못쓰는 샌님임을 말해 주었으니까. 합기도가 초단이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덤블링을 할 줄 아는 내가 상대하기에 녀석은 너무 약한 존재였다. 동정심이 생긴다. 옆에 여자까지 데리고 왔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무안하기도 할 거다. 하지만 다음 번에 또 다른 사람을 괴롭힐 텐데? 에이, 그냥 말하자. 최대한 정중하게. 이런 생각을 하다 뒤를 보니 내 뒤를 따라오는 줄 알았던 녀석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오늘의 결론. 재미있는 영화는 스포일러를 읽어도, 뒷사람이 훼방을 놓아도 재미있다.

상벌위원회 상임간사
서민(http://my.dreamwiz.com/bbbenji)

“새벽에 본 <드리머>” <영진공 71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4월 6일

영화를 찍는 데 걸리는 시간을 3개월이라고 했을 때, 1년에 최대한 찍을 수
있는 편수는 기껏해야 4편이다. 지금 극장에 걸린 영화 중 설경구가 주연한 영화는 <그놈 목소리> 한편인가 그렇다.
그게 정상일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의 모든 아역은 다코타 페닝이 다 하는 것 같다. 아이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몇 편
없어서 그런 걸까? <샬롯의 거미줄>에도 다코타 페닝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세상의 아역 연기자는 오직 다코타
페닝밖에 없는 걸로 느껴졌다.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다. 다코타 페닝은 나오는 영화마다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 줬으니까. 그 어린 나이에 영어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부러울 정도다. 다만 그녀가 좀 더 성장하면, 그래서 귀여움으로 어필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볼 때, 부정적인 생각이 좀 더 많이 든다. 연기는 더 잘하겠지만, 삶이란 게 꼭 실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물론 난 그녀가 쭉 잘해 나갔으면 좋겠다).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8시 반이라는 말도 안되는 시각에 잠이 든 탓에, 뭔가 실수라도 하지 않았나는 생각에 놀라 잠에서
깬 건 새벽 1시 반이었다. 책을 읽었고, 라면을 먹고 햇반까지 덥혀서 말아 먹었는데도 새벽 3시밖에 안됐다. 내친 김에
<바리에떼>를 다 읽어버릴까 하다가 갑자기 영화 생각이 났다. 한학기 수업을 영화로 대체한 덕분에 캐비넷에는 괜찮은
DVD가 여럿 꽂혀 있는데, 뭘 볼까 망설이다가 <드리머>를 집어들었다. 웬만하면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학생들의
반응을 보려고 했지만, 다른 수업이 겹쳐 있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 나오고 그랬는데, <드리머> 역시 한 30분 쯤
보다가 아쉽게 나온 뒤 그 뒷부분을 못본 영화였다.

다들 알다시피 <드리머>는 말에 관한 영화다. <각설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 나오는 영화의 결말은
둘 중 하나다. 말이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데 재기해서 경주에 나가고, 꼴등은 맡아놓았다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일등을 하는 순간 쓰러져 죽느냐 아니면 그냥 일등을 하느냐는 감독의 선택이다. 하지만 <드리머>는 실화를
영화로 옮겼기에 감독이 선택할 기회는 애당초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일지 모르겠지만, 난 <각설탕>보다
<드리머>의 결말이 좋다. 리포트를 채점하느라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최고였다”고 썼던 기억이 난다. <드리머>가 못 만든 영화라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다 본 지금사 말하거니와 그 학생은 태어나서 영화를 몇 편 보지 않았나보다. 아니면 나처럼 털 달린 동물을 좋아하던가.

* 문체가 완성되지 않은 사람은 읽고 있는 책의 문체를 따라하기 마련이다. 다시 읽어보니 지금 내가 썼던 문장들은 고종석의 그것을 흉내냈다. 당대의 문장가 고종석인지라 부끄럽진 않다.

상벌위원회 부국장의 상념
서민(bbbenji@freechal.com)

“300, 장준혁, 박정희를 존경하며” <영진공 71호>

구국의 소리
2007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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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의 장준혁
영화 <삼백300>의 레오니다스와 299명
그리고 박정희….

모두 극적으로 죽었기에 기억되는 인간들이다.
생전에 그들의 행적이 죽음으로써 용서되고 되려 신격화 되는…

이들이 계속 살아있었으면 지금처럼 칭송받을까. 결코 아니지.

하지만 이들을 떠받드는 영화를 만들거나 감상하는 것은 나름 괜찮은 일이다.
적어도 이전에 보아왔던 ‘희생양 영화’들에 비해서는 말이다.

영화 <파이란>을 보자. 구제불능깡패 강재는 파이란의 죽음 앞에서 개심한다.
<파송송 계란 탁> 에서도 철없고 한심하던 주인공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어른이 된다.
곧 개봉할 것 같은 <눈부신 날에>에서 박신양도 순수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
모두 탕자의 구원을 위해서 누군가 희생되어야 하는 희생양 영화들이다.

이 반복되는 신파도 짜증나지만, 그 뒤에 숨은 논리는 무섭기까지 하다.

어떤 악한이 순수한 어린양의 희생 앞에서 개심한다는 이야기를 뒤집으면, 힘쎄고 악독한 자들이 계속 악독한 이유는 그들을 의해서 희생할 순수한 어린양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일단 니가 죽어바. 그럼 내가 좀 생각 바꿔볼께… 그렇다고 꼭 바꾼다는 보장은 없어.”
뭐 이딴 식이 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난 절대 굽힐 생각 없어. 이대로 장렬하게 죽을래!”
라며 죽음을 맞이한 위의 세 주인공들은 나름 정직하고 줏대도 있고 책임의식 마저 있다.

따라서 나 역시 이들을 깊이 존경하고 한 수 높이 쳐주려고 한다.

앞으로 이런 신념에 찬 인간들은 존경할 것이다.
그가 악질 파쇼든, 변태든, 정신병자든, 뭐든지 상관없다.

그리고 그들을 칭송하는 영화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련다.

단, 그들이 확실히 죽은 다음에.

이제 곧 구국의 소리에 책상 하나 놓으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

<일루셔니스트>, “우리나라에도 지존급의 마술사가 한분 계셨다.” <영진공 71호>

짱가의 ‘너 사이코지?’
2007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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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셔니스트

원래는 볼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 DC에서 아주 훌륭한 <프레스티지> 영화평을
읽고 흥미가 생겼다. 그 글을 쓴 이가 두 영화를 쌍둥이에 비유했거든….

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무빅 기사 채울꺼리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일단 만족했고
영화의 이야기 자체도 특히 그 열린 결말도 만족스러웠다.

마술을 다루는 영화지만 정말로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프레스티지가 Trick을 부각시키는 반면
일루셔니스트는 Story를 전면에 내세운다.

프레스티지를 보면서는 저 마술은 어떻게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계속 되지만
일루셔니스트는 그렇지 않다. 첨부터 아예 불가능한 마술만 잔뜩 나오니까.
영화는 대놓고 “이건 마술이 아니라 CG야.” 라고 말한다 .

문제의 팬던트 조차,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아이템이다.
그건 아예 CG를 쓰는게 아니라 두 장면을 이어붙였더군.
(그러고 보면 이 영화, 정말 돈 적게 들인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만든 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점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영화의 주인공이 라이벌로 삼는 마술사는 동료마술사가 아니라 그 나라의 왕자다.
중간에 등장하는 엑스칼리버의 신화가 상징하듯, 왕권이라는 것도 결국 마술이라는 얘기다.
(전설에서도 그 엑스칼리버 신화에 마술사 멀린이 한 몫 하지 않았던가?)

결국 똑같은 인간인데 누구는 왕족이고
누구는 평민이어야 하는 이유를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것

결국은 국민들의 노력과 기술로 이룩한 업적을
(기여라고는 그 일이 되는 과정을 덜 방해하거나 아주 멍청하지 않았다는 점 밖에 없는)
지도층에게로 귀인시키게 하고, 자신들의 성취가 아니라 지도층의 위업으로
떠받들게 만드는 것

이 얼마나 대단한 마술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지존급의 마술사가 한분 계셨다.

박정희 총통 각하…
(아, 북한에도 같은 급의 마술사가 대를 이어 통치하고 계시지.
김일성, 김정일 총통 각하)

저승 가신지 수십년인데 아직도 백성들은 그분을 신격화 하고 있으니
아이젠하임 따위는 그분 발끝에도 못미친다.

추가1: 저 포스터를 보면서 나는 자꾸 일루셔니스트illusionist를
일루미네이셔니스트illuminationist와 헷갈린다.
무관하진 않은 것 같더만…

추가2: 요즘 한반도 정세 돌아가는 것을 보면
김정일이야 말로 참 대단한 마술사라는 생각이..

사실 지난번 핵실험이 진짜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냥 TNT 잔뜩 모아놓고 터트린 다음, 방사능 물질 좀 근처에 뿌려주고 말았어도 똑같았을테니.
하지만 그 ‘실험’으로 전쟁주의자 부시에게서 타협을 끌어낸 것 아닌가.
이제 와서 “실험 가짜였어” 해도 아무도 안믿을거고
마치 “제가 한 건 전부 눈속임이었어요.” 라고 말해도 안믿던 일루셔니스트 사람들처럼 말이지…
결국 안하고서도 한 것과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이게 마술이 아니고 뭔가.

국립과학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