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존”,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은폐하려는 자

제이슨 본 시리즈의 전쟁 버전처럼 보이는 겉모양과 달리 상당히 지루하고 난해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봤는데 의외로 상당히 잘 짜여진 첩보/액션 스릴러의 구성 방식 – 선악의 구분이 분명하고 개인 영웅담으로 현실을 치환하는 – 을 따르는 작품이었다.

숨겨진 진실은 과연 무엇이며 –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다는 건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영화는 그렇다면 미국 정부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대체했다 – 그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은혜하려는 자의 대결에서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영웅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 것이며 전쟁의 진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밝혀질 것인가 등의 관객 몰입용 떡밥을 꾸준히 뿌려댄다.

영화 초반에 이젠 아예 생지랄을 떠는구나 생각했을 정도로 심하게 흔들어대던 핸드헬드 카메라를 어느 순간부터인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면서 영화를 감상했다.

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된 대량살상 무기에 관한 진실이 일개 육군 소대장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밝혀졌더라는 부분은 분명 드라마를 위해 가공된 허구일테지만 미국이 조작된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를 무력 침공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린 존>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를 선언하던 바로 그 시점의 바그다드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이미 수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미국의 남은 숙제를 촉구하기도 한다.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은 이제 됐으니 이라크 내부의 문제는 이라크인들에게 남겨두고 빨리 떠나라는 것.

하지만 애초에 수 천 년의 고도 밑에 깔려있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일으켰던 전쟁이니 만큼 미국의 행정부가 바뀌었다 한들 그리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라크에 사우디 아라비아나 요르단과 같은 안정된 친미 정부를 세워놓기 전까지는 미군은 이라크 땅에서 쉽사리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실제 그린존

차라리 제대로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놓았어야 할 내용과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르는 뜨거운 감자 같은 이슈를 놓고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만들어놓았으니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영화 자체가 너무 대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작품에 호감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이 짧은 극영화 한 편에 담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유를 제외하고는 <그린 존>이 특별히 어렵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낄만한 이유는 없다고 보여진다.

핵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구조를 통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이라크 전쟁에 관한 문제 의식을 불러 일으켜준다는 미덕을 칭찬받을만 하지 않은가 싶다.

미국은 아직도 21세기의 벽두에 저질러놓은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 공식적인 사죄와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까.

Director Paul Greengrass & Matt Damon


워킹 타이틀은 더이상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라고만 불러서는 안될 듯 싶다.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에 이어 <그린 존>까지, 워킹 타이틀의 오지랖에는 이제 경계가 없다. 그리고 내놓았다 하면 실속 있고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이클 만 감독의 선구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제 제작비 규모를 불문하고 왠만한 영화들은 모두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구나 싶은데, <그린 존>은 유난히 디지털 촬영의 티를 많이 내는 편이다. 광량이 부족한 장면에서 생기는 화면 상의 노이즈를 거리낌 없이 노출하는 것이 상황의 리얼리티를 살려준다고 보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좀 거슬린다.



누군가에게 이라크 전쟁은 분명 해방 전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은 너무 무겁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린 존>에서 가장 값진 장면은 차기 정권 수립을 위한 협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그린 존 안에서의 또 다른 전쟁’ 장면이다. 우리도 불과 몇 십 년 전에 겪었던 일이고 여전히 그 그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지라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


영진공 신어지

가족영화열전, ‘킥오프’ ‘비랄의 멋진 세상’


 

‘비랄의 멋진 세상’ 의 비랄 

지난 주말부터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가족영화열전 – 수상한 패밀리가 떴다!’ 에 가족에 관한 좋은 장편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놓친 영화를 다시 볼, 곧 개봉할 영화를 미리 볼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전 세계 영화제를 순회하다시피 한 작년 최고의 화제작인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비롯, 봉준호 감독의 <마더> 그리고  <도쿄 소나타>와 <중력피에로>, 최근 작 <어웨이 위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등까지 상영 작품이 화려하다.

무엇보다 하반기 개봉을 앞둔 인디스토리 배급작 <킥 오프>와 <비랄의 멋진 세상> 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반갑다. 두 작품 모두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해,  <킥 오프>는 뉴커런츠 상을 수상했다.  

‘킥 오프’ 의 한 장면

<킥 오프>는 한국에서는 거의 드믄 이라크 배경의 영화로 빈민가로 변해버린 이라크의 한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소년들의 축구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월드컵 시즌에 맞춰 7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비랄의 멋진 세상> 은 맹인 부모와 함께 사는 세살 비랄의 일상을 담은 인도의 다큐멘터리로 야마카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역시 인디스토리 배급망을 통해 10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놓치지 말기로 해, 먼저 본 우리끼리 입소문 웹소문 내어보자.

PS. 이번 주 목요일(27일) 인디포럼 2010이 개막한다. 지난 수요일 (26일)까지 명동 롯데시네마 에비뉴엘관에서는 환경영화제가 열렸고,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영화제는 화요일(25일)에 막을 내렸다. 좋은 영화제, 상영회가 속속 열리고 내린다. 찾아다니다 보면 알찬 일 년이 이뤄질 것이다.

영진공 애플

구글 TV, 과연???

남이 만든 걸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처럼 추해 보이고, 쓸데 없는 짓거리도 없다. 맞으면 본전이고, 틀리면 바보 되는 거니까. 평론가란 직업의 대부분은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도 평론가란 직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 추해 보이고, 쓸데 없는 짓거리도 때로는 필요한 거니까.

어쨌든, 오늘 나는 구글 TV에 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이다.
구글이 ‘구글 TV’를 발표할 거란 예상은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 사실 별로 신기한 아이디어도 아니다. 적당히 VOD를 보고, 적당히 웹질 하고, 적당히 게임 하고, 적당히 이거저거 다 할 수 있는 셋탑 박스와 TV를 결합시키자는 아이디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진화시켜 그런 자리를 차지하려 했었고, MS는 엑스박스를 들이밀었다. 애플은 iTV로 살짝 간을 봤고.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다. 거실의 거대한 테레비 화면으로 웹 서핑을 하고 싶은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거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구글이 원하는대로 웹 앱 스토어에서 SNS나 게임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여기엔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TV가 수동적인 디바이스라는 사실이다.
통근전철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대는 사람들을 보면 게임을 하는 사람이 반, DMB를 보는 사람이 반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앱 스토어에서 게임을 찾아 다운받고 하는 건 나름대로 귀찮은 일이다. 아무리 스마트폰이 득세를 부려도, 그 기능의 반의 반도 쓰지 않은 채, 멍하니 DMB 화면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게 앱 스토어에서 삽질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니까.
거실 TV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소파에 길게 누워 하품을 하며 미친 듯이 채널을 돌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행동 패턴일 것이다. 케이블 셋탑 박스에 VOD 기능이 있어도, 그걸 써서 영화를 찾아보거나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해야 하지? 채널만 돌려도 충분한데 말이야.
최근에 나는 거실 TV에 베어본 PC를 조립해 연결했다. 그리고 HTPC로 활용하기 위해서 XBMC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놨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난 현재, 그 컴퓨터는 홈 서버 겸 야동 FTP 서버로 전락해 버렸다. 컴퓨터라는 건, 아무리 편해졌다고 해도, 사용자의 끊임없는 주의와 간섭을 필요로 하는 능동적인 디바이스다. 요컨대 TV 리모콘을 누르는 것보다 훠어어어얼씬 불편하다는 얘기다.

TV 와 연결하는 능동적인 디바이스 중에서 성공을 거둔 건 게임기 정도다. 소니나 MS가 게임기를 중심으로 거실 점령 전략을 세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게임기에서 원하는 건 게임일 뿐, 다른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소니의 블루레이 올인 전략도, MS의 엔터테인먼트 확장 전략도,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게임기 컨셉을 내세운 닌텐도 wii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구글 TV를 다시 돌아보자. 아마 구글 TV의 형태는 안드로이드 OS 셋탑 박스나 또는 이걸 내장한 TV 본체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웹 서핑을 할 수 있고, 웹 앱 스토어에서 이거저거 다운받아 볼 수 있고, 유튜브도 볼 수 있고, 당연히 폰튜브(porntube)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와, 이거 정말 스마트한데? 근데 … 이걸 왜 TV에서 해야 하지?
그렇다. 이미 컴퓨터가 몇 대씩이나 굴러다니는 세상이다. 통근 중엔 휴대폰으로 웹질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에서 멀쩡한 컴퓨터를 놔 두고 TV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다. 거실 TV로는 두산이 엘쥐를 박살내는 야구 중계를 본다거나, 아니면 한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을 발라버리는 축구 중계를 본다거나 해야지! 아니, 그게 아니지….. 마눌님께서 드라마를 보셔야 하니 그쪽에 양보해 드려야지. 가끔은 친오빠와 연애질을 하는 계집애가 나오는 막장 드라마도 괜찮겠지, 뭐. 마침 그 계집애도 내 취향이었고 하니 …
아무튼 그렇다. 소니가 구글에 줄을 서는 이유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기대했던 PS3 매출도 시원찮고, 가전 시장에서도 연신 삼성과 LG에 두들겨맞는 작금의 상황에선, 뭐든 하나 건져야 하니까.
하지만 어쨌건 의문은 남는다. 과연 이게 성공할 것인가?
글쎄, 마눌님께서 TV 리모콘을 포기하신다면 성공할지도 모르지!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