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충격기의 역습


막연히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하도 흉흉하길래 요즘은 나도 전기충격기를 들고 다니는데
이게 스위치가 좀 많이 부드럽다. 띡, 띡, 올려지는 게 아니라 스르륵, 하는 느낌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래서 어디 밀리거나 해서 저 혼자 켜지기라도 하면 난감하겠다, 생각했는데
어제 그랬던 거다.

까페에 앉은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어디선가 요란한 경보음이 막 울리길래,
난 어디서 화재경보음이 울리는 건가 하고 있었다.
근데 소리가 너무 가까운 거야……
그리고 어쩐지 익숙한 소리였던 거지……
그렇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면서 그랬는지, 가방을 옮기면서 그랬는지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어쩌다가 전기충격기의 그 부드러운 스위치가 스르륵 올려진 거였다.

가방에선 경보음이 마구 울리고 있었고
나는 주위를 의식해 재빨리 충격기를 찾아 스위치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책과 수첩과 노트와 장갑과 필통과 지갑과 티슈와 파우치와 씨디피에 가려져 어디 있는지 통 안 보이는 충격기를 찾기 위해 가방 안을 더듬으며
이거 이러다 얼떨결에 덥썩 잡기라도 해서 감전, 여기서 꽥 쓰러지는 캐삽질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해서 마구 뒤지지도 못하고……
다행히 감전되기 전에 충격기를 찾아서 얼른 스위치를 내렸지만
아마 일분도 되지 않았을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정말 진땀이 났던 것이다.

오늘 외출하면서 충격기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쩔까. 안경 케이스 같은 곳에 넣어 들고 다닐까. 하지만 그건 비상시에 잽싸게 쓴다는 충격기의 취지에 맞지 않는걸. (가방 안이 어수선해서 어차피 늦게 찾을 주제에) 고민하다가 일단 평소처럼 갖고 나갔다.

언젠가 지하철에서든 까페에서든 나 혼자 꽥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지도 모른다.
내 가방에선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고 있겠지.
이 기이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러 나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부축하자마자 연달아 쓰러지는데…… 두둥.


영진공 도대체

“레볼루셔너리 로드”, 현실과 이상이 서로 만날 수 없는 길

샘 멘더스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족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아메리칸 뷰티2>를 만들 건줄 알았다. 샘, 아카데미상이 그렇게 그리웠던 거야, 라고 비웃음을 약간 섞어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하여 다섯 개 부문을 수상했던 <아메리칸 뷰티>(1999)와 달리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주요 부문에 후보조차 올리지 못했다!)

근데 영화를 보니 중산층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사실 중산층 가족이라기보다는 ‘부부’라고 해야 될 정도로 남편과 아내 둘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애초 <아메리칸 뷰티>와는 선을 긋고 출발한다. 

휠러 부부는 뉴욕 인근에 위치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선망의 대상이다. 부부 모두 선남선녀인데다가 동네에서 최고로 치는 새하얀 이층집까지! 그야말로 당시 미국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에 다름 아니었더랬다. 문제는 이들의 삶이 미국인 모두가 바라마지않는 꿈이라는 것. 모든 사람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똑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가. 깔끔한 중절모와 수트를 입고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회사로 출근하는 남편, 남편과 자식을 출근시킨 후 집안일에 몰두하는 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비추는 카메라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꽉 막혀 있는 인상을 준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 같은 장면을 극 초반 전면적으로 노출하며 영화의 주제가 일상(日常)과 이상(理想) 사이의 갭이 만들어내는 가족의 붕괴를 주제로 삼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배경이 2차 대전이 끝난 1950년대 중반이란 사실이 중요해진다. 소비와 풍요의 시대, 즉 미국에서는 ‘현대’가 시작된 것이다. 하여 여성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른바 ‘신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니. 반복된 일상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의문에 휩싸이는 여자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에이프릴 휠러(케이트 윈슬럿)가 배우를 꿈꾸는 인물로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더군다나 재능이 받쳐주지 못해 배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얼마나 컸을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파리’에 가본 적 있다는 이유만으로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신이 만나본 가장 흥미 있는 남자라며 결혼까지 하지 않았던가. 결혼과 함께 미국을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기고(그것도 둘이나!) 남편은 일에 치여 꿈이 뭔지 잊은 것 같고 배우의 꿈은 종치고. 휠러 부부의, 아니 에이프릴의 유일한 해결책은 단조로운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벗어나 총천역색의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것.

허나 에이프릴처럼 특별한 사람들에게 삶은 외로운 법. 1950년대 중반이라는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일탈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새하얀 이층집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그것은 정신이상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휠러 부부에게 멋진 집을 소개해준 기빙스 부부에게는 정신이상자 아들 존(마이클 셰넌)이 있는데 그만이 휠러 부부의 계획을 찬성할 정도로 파리 행은 당시 정서로 보건데 미친 짓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잘 살겠다는 삶의 종착역이 같았음에도, 이를 향하는 무수한 다양한 길이 있었음에도 하나의 길 이외의 길은 인정하지 않는 집단적인 무의식이 휠러 부부의 파국을 잉태했던 것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샘 멘더스 감독이 이를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의 문제, 즉 러브스토리의 화법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앞서 살짝 언급했듯, 그 당시 가족의 해체는 가족 전체의 문제가 아닌 남녀의 위상 변화에 따른 결과였다. 한마디로 신여성의 도래에 따른 남성의 심리적 불안감 표출이라고 할까. 샘 멘더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남녀가 만나 완벽한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의 상실과 비루한 현실의 긴장관계를 다루고 싶었다.”고 했는데 안 그래도 직장 상사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20년간 한 회사에서 근무해온 아버지를 일종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랭크의 삶의 태도는 정확히 에이프릴과 대척점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현실에 안주하려는 프랭크와 이상을 꿈꾸는 에이프릴 사이에 좁혀지지 있는 간극이 결국엔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만들고 만 것이다.

이는 시대가 만들어낸 러브스토리이지만 샘 멘더스 감독은 시간 묘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투의 태도를 취한다. 그로 인해 시대와 이야기의 상호작용이 주는 사회학적 밀도가 헐거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도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바로 현대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현대 역시 모든 이들이 출세와 돈, 성공이라는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시대다. 미국의 1950년대 중반과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제목이 주는 뉘앙스는 의미심장하다.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혁명적인 길.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다. 하지만 다른 꿈을 꾸는 것은 이상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의 혁명일 수 있다. 삶보다 더 큰 무엇, 즉 에이프릴이 꿈꾸던 파리.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상을 실현하는 길은 멀지 않다고 말한다. 문만 열면 바로 밟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길. 하지만 승진, 임신, 아이 등등 안주하는 생활이 어깨에 축적된 일상의 무게는 혁명의 길을 희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파멸의 함정이 있다. 그것은 1950년대 중반이나 현재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가까이 두고도 밟지 못한 길, 그것이 바로 <레볼루셔너리 로드>다. 

영진공 나뭉

 

대리운전을 시작하시려는 분들께(1)


경기가 많이 안 좋아지고, 자영업을 하시든 월급쟁이시든 수입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 – 상대적 수입이든 절대적 수입이든 – 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앞으로 더 심하게 지속될 것 같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국가 자체가 가지고 있던 비전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상황이니까요.

이는 특정한 누구라기 보다는 순전히 아직도 ‘한나라당’을 이 땅 위에 내버려 두고 있는, 그들 속에 빌붙어 먹고 사는 ‘뉴라이트’ 같은 단체가 생겨나게 만든, ‘국민'(이라고 쓰고 ‘황국신민’이라고 읽습니다) 탓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시민사회’였다면 이런 막장까지 오진 않았겠지요.


각설하고.



제 나이 서른에 취업을 준비하면서 숨을 고르려 시작한 대리운전이 벌써 만 4개월이 되어갑니다. 작년 9월 대학시절의 마지막 학기를 시작으로 구직을 한지 5개월째입니다만 아마 5월이 넘어가면 그냥 판촉 영업 사원에 발을 디밀지도 모르지요. 졸업 후 한 학기가 지나가는 시점이 될 테니까요.



어쨌거나 나이 서른에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대학교 졸업예정자가 대리운전을 하는 것도 드물 겁니다. 참고로 작년 8월까지는 학업과 함께 소프트웨어 기획과 웹 기획일을 하였지요. 여하튼 서울에 맨손으로 올라온지 만 7년동안 쭉 혼자 벌어먹고, 고향에 돈 부쳐주고 잘 살아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미리 깔고 시작하는 이유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들은 욕, “젊은 놈이 할 게 없어서 대리운전이냐?”라는 욕이 또 다시 이 글에 달릴까 씁쓸해서 입니다. 물론 전 지금 제가 하는 대리운전이라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어쨌든 다음과 같은 차례로 2회에 걸쳐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1. 대리운전 서비스의 정의
2. 일반적인 대리운전 시스템 – 광역기사
3. 조금 특별한 대리운전 – 지역기사
4. 대리운전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것들
5. 수입과 지출
6. 그래서 얼마 쯤 버는가?
7. 어떻게 해야 이만큼 버는가?
8. 그럼 과연 적정단가는?
9. 양아치

자, 시작합니다.







1.
대리운전 서비스의 정의


대리운전은 그냥 술취한 차주 대신 차를 운전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 하면 이 글 중간에 대리운전 단가에 대해 얘기를 잠깐 할 것인데 손님에 따라 ‘어떻게 택시비 보다 비싸냐?’고 묻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정의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주운전을 통해 즉심으로 넘어가서 물게 되는 벌금은 100~200만원이 됩니다. 그리고 음주운전이라는 것은 미국의 어떤 주(state)에서 ‘이급살인’으로 분류될 정도로 본인을 비롯한 도로상의 다른 운전자에게 위험한 행위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에 가시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같이 술 마신 일행의 택시비까지 걱정하는 오지랖을 발휘해서 서울 곳곳으로 일행을 데려다주는 분도 있습니다만 … 이건 돈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의 시간을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비용으로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다음 날 아침 일찍 차가 필요해서 집으로 가져가야 하실 때만 대리운전을 이용하시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집이 멀어서 집에 가는 택시비보다 대리운전 비용이 싸게 먹혀, 늘 차를 가지고 나와 술을 드시고 대리운전을 이용하시는 분도 있습니다만 글쎄요 … 뭐 일단 이런 분 때문에 대리운전 기사들이 먹고 사는 것일 테니 개인 시각차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대리운전 서비스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인적, 물적, 심리적피해의 사전 방지나 그 외의 운전 불가능 상황에 대해 제3자의 도움을 얻어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2.
일반적인 대리운전 시스템 – 광역기사


대리운전은 하나의 회사 – 쉽게 얘기해서 1588-xxxx 같은 전화번호 하나 당 하나의 회사라 보면 됩니다 – 에 속한 기사들이 그 회사의 전체 수요(앞으로 편하게 콜이라 쓰겠습니다.)에 대해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건 하나의 거대 독점 회사가 나타나기 전에는 수익 창출이 아예 불가능합니다. – 물론 제가 들여다 보니 이거 충분히 소프트웨어랑 개발 기획 설계만 잘 해도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는 독점 벤처가 나올만 합니다만 ㅋㅋ ㅋ

몇 개의 회사 들이 연합을 하여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그룹 내부의 회사끼리 대리운전 콜을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개그맨 강 모씨가 광고하는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를 해서 대리기사를 부르더라도 실제로 나타나는 기사는 해당 전화번호의 기사일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해당 전화번호를 가진 회사에서 가입한 그룹에 속한 기사가 오는 것이죠. 그룹 당 회사 수를 보더라도 다른 회사의 기사일 확율이 훨씬 높죠.



대리운전기사들을 보시면 죄다 손에 PDA나 휴대폰 1~2개 정도를 늘 들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 물론 무전기로 하는 법인도 있습니다. –  이 모바일 기기에 설치된 소프트웨어로 서버와 통신하면서 소비자인 차주와 서비스 공급자인 대리기사 사이에서 Contact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이라서 서비스 질에 대한 관리가 거의 안 됩니다. 무척 열악한 수준인 거죠. 손님들이 “1588-xxxx는 언제나 친절한 기사를 보내주는 것 같아” 혹은 “1588-xxxx 얘네 안 되겠네, 뭐 이런 기사를 보내?” 하시는 데 그거랑 크게 연관이 없습니다. 고객이 기사에 대한 항의를 해도 이미 그 때는 서비스를 받은 후인데다가 해당 기사가 자기 회사 소속이 아닌 그룹 내 다른 회사 소속이라면 자기 회사의 콜만 서비스 공급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메이저 회사들마다 하부엔 지사들도 꽤 여럿이어서 지사별로 뽑은 기사들에 대해 일일이 인적자원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죠. 인적자원관리란 말 조차도 붙일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시스템 – 흔히 보는 손에 PDA와 휴대폰을 들고 다니시는 대리운전 기사분들 – 으로 대리운전 하시는 분들을 ‘광역기사’라고 합니다. 수도권 전체 어디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분들입니다.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죠. 더불어 광역기사가 동일한 손님을 또 만날 확율은 로또 4등에 걸릴 확율보다 약간 높은 수준일 겁니다.

3.
조금 특별한 대리운전 시스템 – 지역기사



대형 주차장을 끼고 있는 고기집이나 공영주차장 골목, 나이트클럽이나 룸싸롱, 모텔 촌 앞에서 자주 보실 수 있는, ‘대리운전 1588-xxxx’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booth가 있습니다. 이 booth는 해당 번호를 가진 회사에서 운영하는 booth이며 그 booth가 있는 업소와 주변 업소들에 대한 대리운전 콜은 다 이곳으로 집중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콜을 그 booth에 출근하는 지역기사들이 처리합니다.

광역기사와 달리 굳이 고생해서 휴대폰이나 PDA에 의존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면 일정 수준의 콜이 나옴으로 인해 어느 정도 고정 수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만 불경기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게다가 각 회사마다 지역기사는 인원을 무한하게 뽑을 수 없습니다. 광역기사는 어느 정도 많아도 상관이 없지만 지역기사는 자신들이 창출할 수 있는 콜보다 더 많을 경우 기사들이 불만을 갖고 이탈할 수도 있으며 이는 곧 자신들이 영업한 업소에 제 때 대리기사 인력을 공급하지 못 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거래처를 놓칠 수 있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기사는 ‘인상 좋은’ 사람들 위주로 어느 정도 착실하고 트러블 안 만들 사람들로 채워 넣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역기사는 거래처가 늘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같은 손님을 여러번 만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4.
대리운전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것들


물론 1종 보통 면허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스틱(매뉴얼)이 잘 없다 하더라도 – 참고로 전 2.5톤 트럭도 몹니다. – 1주일에 최소 3회 이상 스틱 차량을 만나게 됩니다.


더불어 당연히 ‘운전자 보험’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없으시다면 대리운전 회사를 통해서 대리운전자용 보험을 가입해야만 운행이 가능합니다. 보험료의 경우 1달에 60,000원 선이며 이는 당연히 사고 경력과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금액입니다. 참고로 최근 2년 안에 사고 경력이 있다면 불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광역기사용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 설치비(회사마다 조금씩 다를 겁니다. 15,000원 정도?)와 해당 소프트웨어 이용료 매일 500원(그래서 한달에 또 15,000원 정도 지출).


당연히 휴대폰이나 PDA와 같은 무선 인터넷 기능이 가능한 휴대전화가 있어야 하며 데이터요금제도 하나 가입하셔야겠지요.


위의 것만 준비되면 당장 시작은 하실 수 있습니다.

5.
수입과 지출



수입에 대한 룰은 각 회사별로 조금씩 다릅니다만 광역기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모든 ‘공고화된 수입’ – 서버에 기재된 정보 – 의 20%를 회사에 떼입니다. 일종의 손님 전화를 받아서 서버에 올려준 수수료라 볼 수 있죠. 이는 ‘선납’입니다. 고로 회사에 20,000원을 선납해두면 저는 휴대폰이나 PDA를 통해 총 100,000원 어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금액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지역기사의 경우 각 회사별로 심하게 룰이 다릅니다. 어떤 곳은 30%를 수수료로 떼는 곳도 있거니와 아예 출근해서 순번을 기다리는 비용으로 1,000원을 따로 받는 곳도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이동을 늘 발로만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운행한 목적지가 외딴 곳이라던가 주택가라면 콜이 나타나는 번화가로 반드시 움직여야 하므로 하루에 일정액 이상의 교통비가 반드시 지출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지출은 혹여나 사고가 생겼을 상황입니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고객 중 상당 수가 일정 수입 이상의 부유한 계층이기 때문에 차량도 고급 기종이 많습니다. 이 크기와 컨트롤에 익숙하지 않으면 범퍼 하나 깨먹는 건 쉽습니다. 보험 적용을 하더라도 자기 부담금 2~30만원은 기본에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지 라이더 (Easy Rider, 1969), 어린 왕자의 영화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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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서 하도 자주 언급되는 고전이다 보니 어느새 이 영화 언젠가 한번쯤은 본 것도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지 라이더”는 주말의 극장이나 케이블 TV를 통해 몇 장면 스쳐 지나가듯이 본 일 조차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뉴 시네마 어쩌고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단골 손님인데다가 피터 폰다와 데니스 호퍼의 오토바이 타고 달리는 사진 또한 어렸을 적 미국으로 이민 간 그리운 친척 형들 사진 꺼내 보듯이 너무 자주 봐왔던 터라 ‘아직 한번도 안본 영화인데 이미 다 본 것 같은 착각’의 상당히 높은 수위를 차지하는 영화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보게 된 “이지 라이더”라는 영화는 과연 영화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바 대로 피터 폰다와 대니스 호퍼가 오토바이를 타고 줄창 달리는 로드무비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요즘 기준으로는 별로 용납해주고 싶지 않은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가 촌빨 날리는 화면과 편집 기술 위에 제대로 어우러진 진짜 60년대 영화였다 … 까지가 내 미리 알고 있었거나 예상했던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직접 보고서야 알게된 부분들은,

잭 니콜슨은 처음부터 같이 달리는 또 하나의 바이커가 아니라 중간에 만나 얻어탔다가 영화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사라지는 배역이었다. 그러나 잭 니콜슨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갑자기 엄청난 탄력이 붙는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아무런 손색이 없는 그의 연기력과 타고난 존재감은 감탄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지 라이더”에서 잭 니콜슨의 등장은 외롭고 건조한 두 주인공의 로드무비에 혜성 같이 나타났다가 아쉽게도 사라진다는 점에서 “델마와 루이스”에서의 브래드 피트가 했던 강력한 양념장 역할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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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지 라이더”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이게 정말 60년대에 만들어진 씨퀀스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면서도 비주얼이 매우 놀라웠던 두 창녀와의 공동묘지 장면이다. 물론 상당히 쎈 약을 먹은 네 인물의 환각 상태를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수도 있겠고 엄청난 신성모독이라고까지 욕할 수도 있을 내용이지만 이제 이 영화의 이 장면을 본 이상 세상의 모든 비디오아트가 있기 이전에, 그리고 데이빗 린치나 다른 작가들이 하기 이전에 “이지 라이더”가 이미 있었노라고 해야 하게 생겼다.

전통적인 서부극의 플롯을 거꾸로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본 “이지 라이더”의 전반적인 느낌은 오토바이를 타고 미 서부에서 동부로 여행하는 “어린 왕자”의 영화 버전 같다는 거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그랬듯이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외모와 표정을 지닌 와이어트(피터 폰다)도 길 위에서 다른 이들을 만나며 세상과 살아가는 일들에 대해 무언의 메시지들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는 결국 길 위에서 사라지고 마는 결말까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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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무죄추정의 원칙 – 1992년 김모 순경 사건 이야기

세상을 들끓게 한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에서 피의자 강호순의 얼굴 공개를 놓고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아주 일부 – 정말로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짐승같은 놈에게 무슨 빌어먹을 인권!”이라면서 당장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겨낼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피의자의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 말이다.  이건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해서는 안 된다”라는 형사소송법의 이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얼굴까지 공개하지 말자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너무 과하게 적용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잘못된 수사로 멀쩡한 사람을 흉악범으로 만드는 짓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차마 그런 말을 하진 못할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김모 순경 사건이다.

1992년, 김모 순경은 애인 모양과 함께 여관에 투숙한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7시경에 애인을 남겨놓고 먼저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애인이 일하던 직장에서 그녀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여관방에 돌아가 본 김순경은 살해당한 애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법의학자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즉, 사망 시각을 오전 3시에서 5시경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리고 경찰들 또한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그것은,
1) 현장의 휴지에서 김모 순경 외에 다른 사람의 정액이 발견됐는데도 불구하고 이걸 무시해 버리고,
2) 애인의 지갑에서 상당액의 수표가 사라졌는데 이를 김모 순경의 소행이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김모 순경을 다그치고 협박하여 자백을 받아낸다.

물론 재판정에서 김모 순경은 자신의 자백을 번복한다. 하지만 뒤이은 검사와 판사들의 삽질도 장난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1)번의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증거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김모 순경이 구치소에 구류된 사이에 신림동 일대에서 애인이 가지고 있던 수표가 사용됐다는 증거가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그 결과, 김모 순경은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다음해 열린 3심에서도 김모 순경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올 공산이 높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3심이 한참 진행되던 도중에 진범이 잡힌 것이다!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힌 서모군(당시 18세)이 취조를 받던 도중, 자신이 작년에 있었던 경찰관 애인 살인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한 것이었다. 실제 사건은 사망 추정시각인 오전 3시에서 5시 사이가 아니라 오전 7시에 김모 순경이 여관을 나간 직후에 저질러졌다. 그 때, 서모군이 여관방에 침입해 혼자 자고 있던 애인을 강간하고 살해한 뒤 금품을 빼앗아 도주한 것이다.
 

10년전 경찰관에게 애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씌웠던 살인범이 최근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고도 친구에게 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 씌운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달초 노원구 공릉동에서 발생한 70대 노파 손모(76.여)씨 살해사건의 진범이 용의자로 지목돼 구속된 손씨의 아들 강모(36)씨가 아니라 강씨의 친구 서모(28)씨인 사실을 밝혀내고 서씨를 살인혐의로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한겨레신문, 2002년 7월 29일, 경찰관에게 살인누명, 이번에는 친구 차례”>

요컨대 사망 시각을 잘못 추정한 게 이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나간 결정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현장에 남아 있던 휴지에 남아 있던 정액의 DNA를 분석하고(당시 이미 DNA 분석기법이 도입되어 있었다), 신림동 일대에서 사용된 수표의 흔적을 추적했더라면 어렵잖게 진범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재판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서 판결을 내렸더라면 이런 식으로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사람의 자백’에만 의존하여 무죄추정의 원칙 따윈 어딘가 멀리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탓에, 이 사건은 두고두고 경찰과 검찰의 무능함과 법정의 게으름에 대한 비웃음 꺼리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내가 잘 알고있는 분에게는 무척 기억에 남는 건이다.  왜냐하면 그 분이 바로 1심과 2심에서 김모 순경의 변호사를 맡으셨기 때문이다.  그 분은 상당한 추리소설 팬이기도 한데, 이 사건에선 도난당한 수표의 자취를 뒤쫓아 실제 수표가 사용된 건 김순경이 체포된 뒤란 사실을 알아내고, 그 수표를 사용한 게 누군지도 알아내서 그 증거를 법정에 제출하는 등 다방면으로 많은 노력을 하셨다. (수표를 사용한 사람은 진범인 서모 군의 친구였다. 만일 이 친구를 추적했라면 진범은 쉽게 잡혔을 것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에 대한 그 분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그 분: “그런데 말이지 … 이 검사놈들하고 판사놈들이 그 증거를 보지도 않더라고! 근데 더 웃긴 게 뭔줄 아냐? 난 진범이 잡힌 뒤에 이 놈들이 짤릴 줄 알았거든? 근데 나중에 부장검사, 부장판사로 줄줄이 출세를 하더라고, 거 참!”

나 : “세상이 다 그런 거죠, 뭐.”

김순경은 진범이 잡힌 이후에도 보강 수사니 뭐니 하는 이유로 한참 뒤에나 출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면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에야 겨우 복직할 수 있었다.

DNA 검사로 강간혐의를 벗고 18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 James C. Tillman (2007. 5. 16)

아무튼간에 경찰과 검찰의 무능함과 법정의 게으름은 1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바보들의 행진’으로 끝난 제과점 납치사건).  그런즉슨 무죄추정의 원칙을 조금 과하게 적용한다고 해서 큰일날 건 없지 않을까.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