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의 원칙 – 1992년 김모 순경 사건 이야기

세상을 들끓게 한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에서 피의자 강호순의 얼굴 공개를 놓고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아주 일부 – 정말로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짐승같은 놈에게 무슨 빌어먹을 인권!”이라면서 당장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겨낼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피의자의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 말이다.  이건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해서는 안 된다”라는 형사소송법의 이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얼굴까지 공개하지 말자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너무 과하게 적용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잘못된 수사로 멀쩡한 사람을 흉악범으로 만드는 짓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차마 그런 말을 하진 못할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김모 순경 사건이다.

1992년, 김모 순경은 애인 모양과 함께 여관에 투숙한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7시경에 애인을 남겨놓고 먼저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애인이 일하던 직장에서 그녀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여관방에 돌아가 본 김순경은 살해당한 애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법의학자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즉, 사망 시각을 오전 3시에서 5시경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리고 경찰들 또한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그것은,
1) 현장의 휴지에서 김모 순경 외에 다른 사람의 정액이 발견됐는데도 불구하고 이걸 무시해 버리고,
2) 애인의 지갑에서 상당액의 수표가 사라졌는데 이를 김모 순경의 소행이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김모 순경을 다그치고 협박하여 자백을 받아낸다.

물론 재판정에서 김모 순경은 자신의 자백을 번복한다. 하지만 뒤이은 검사와 판사들의 삽질도 장난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1)번의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증거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김모 순경이 구치소에 구류된 사이에 신림동 일대에서 애인이 가지고 있던 수표가 사용됐다는 증거가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그 결과, 김모 순경은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다음해 열린 3심에서도 김모 순경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올 공산이 높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3심이 한참 진행되던 도중에 진범이 잡힌 것이다!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힌 서모군(당시 18세)이 취조를 받던 도중, 자신이 작년에 있었던 경찰관 애인 살인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한 것이었다. 실제 사건은 사망 추정시각인 오전 3시에서 5시 사이가 아니라 오전 7시에 김모 순경이 여관을 나간 직후에 저질러졌다. 그 때, 서모군이 여관방에 침입해 혼자 자고 있던 애인을 강간하고 살해한 뒤 금품을 빼앗아 도주한 것이다.
 

10년전 경찰관에게 애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씌웠던 살인범이 최근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고도 친구에게 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 씌운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달초 노원구 공릉동에서 발생한 70대 노파 손모(76.여)씨 살해사건의 진범이 용의자로 지목돼 구속된 손씨의 아들 강모(36)씨가 아니라 강씨의 친구 서모(28)씨인 사실을 밝혀내고 서씨를 살인혐의로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한겨레신문, 2002년 7월 29일, 경찰관에게 살인누명, 이번에는 친구 차례”>

요컨대 사망 시각을 잘못 추정한 게 이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나간 결정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현장에 남아 있던 휴지에 남아 있던 정액의 DNA를 분석하고(당시 이미 DNA 분석기법이 도입되어 있었다), 신림동 일대에서 사용된 수표의 흔적을 추적했더라면 어렵잖게 진범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재판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서 판결을 내렸더라면 이런 식으로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사람의 자백’에만 의존하여 무죄추정의 원칙 따윈 어딘가 멀리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탓에, 이 사건은 두고두고 경찰과 검찰의 무능함과 법정의 게으름에 대한 비웃음 꺼리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은 내가 잘 알고있는 분에게는 무척 기억에 남는 건이다.  왜냐하면 그 분이 바로 1심과 2심에서 김모 순경의 변호사를 맡으셨기 때문이다.  그 분은 상당한 추리소설 팬이기도 한데, 이 사건에선 도난당한 수표의 자취를 뒤쫓아 실제 수표가 사용된 건 김순경이 체포된 뒤란 사실을 알아내고, 그 수표를 사용한 게 누군지도 알아내서 그 증거를 법정에 제출하는 등 다방면으로 많은 노력을 하셨다. (수표를 사용한 사람은 진범인 서모 군의 친구였다. 만일 이 친구를 추적했라면 진범은 쉽게 잡혔을 것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에 대한 그 분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그 분: “그런데 말이지 … 이 검사놈들하고 판사놈들이 그 증거를 보지도 않더라고! 근데 더 웃긴 게 뭔줄 아냐? 난 진범이 잡힌 뒤에 이 놈들이 짤릴 줄 알았거든? 근데 나중에 부장검사, 부장판사로 줄줄이 출세를 하더라고, 거 참!”

나 : “세상이 다 그런 거죠, 뭐.”

김순경은 진범이 잡힌 이후에도 보강 수사니 뭐니 하는 이유로 한참 뒤에나 출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면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에야 겨우 복직할 수 있었다.

DNA 검사로 강간혐의를 벗고 18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 James C. Tillman (2007. 5. 16)

아무튼간에 경찰과 검찰의 무능함과 법정의 게으름은 1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바보들의 행진’으로 끝난 제과점 납치사건).  그런즉슨 무죄추정의 원칙을 조금 과하게 적용한다고 해서 큰일날 건 없지 않을까.

영진공 DJ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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