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후아유], 내겐 너무 잘 짜여진 가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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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기초 정보와 다른 분의 리뷰를 통해 감 잡았던 딱 그런 정도더군요. 극찬을 해주신 분들도 있으셨는데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 기대치를 매길 때 영화 잡지의 프리뷰 기사는 참조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생각 못했던 것이, MGM이 제작한 영화라고 해서 배경도 미국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영국 쪽 이야기더군요. 영국 출신의 프랭크 오즈 감독 뿐만 아니라 낯익은 영국 배우들이 몇 나오긴 하지만 미국식 발음으로 연기를 했겠거니 생각했어요. 아마 프랭크 오즈 감독이 연출해온 필모그래피가 더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 듯 합니다. 정리하자면 <MR. 후아유>는 MGM에서 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영국 출신 시나리오 작가가 쓴 영국 배경에 영국 배우들이 나오는 영국 영화입니다. 실제 로케이션은 혹시 미국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장례식이 열리는 집 안에서 보내니까 어느 나라에서 찍었든지 영국풍을 내는 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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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따뜻하고 요절복통하는 재미도 있습니다만 그 이상의 특별함까지 찾아내기는 어려웠다는 정도입니다. 장례식에 나타난 난쟁이 아저씨가 죽은 아버지의 연인이었다니. 사람은 역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잘 죽으려면 역시 제대로 살아야 하는 거구요. 죽은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커밍아웃(타인에 의해 게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건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풀링아웃?)을 좌충우돌하며 덮어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공개적으로 밝혀진다는 얘기죠. 그러나 작은 아들(매튜 맥파든)의 준비되지 않은, 그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추도사가 모든 혼란스러움과 망신살을 한 방에 덮어줍니다. 모든 소동의 추동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제 병 안에 담긴 강력한 흥분제 하나 때문이었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완전한 ‘영국 영화’라는 걸 알고는 내심 기대했었느데 좀 단순했고 그래서 뻔히 읽혔다는 데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장례식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건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1996)였습니다. 같은 해에 만들어져 조금 늦게 개봉했던 임권택 감독의 <축제>는 그보다 좀 심심했던 편이었고요.  이들 작품들을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본다면 과거와는 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장례 예식을 통해 문화인류학적인 통찰과 한국인의 초상화 그리기를 시도하려던 우리나라 영화들과 달리 <MR. 후아유>는 코믹하면서도 가슴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지향합니다. 존 터투로의 연출작 <일루미나타>(1998) 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서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너무 짜여진 타이밍에 딱 맞춰 나와주는 제안인지라 귀에 잘 들리기는 하나 가슴에까지 다가와 박히지는 못합니다. 등장 인물 가운데 마사(데이지 도노반)는 뱃 속의 애기 아빠가 약에 취해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대망신살을 뻗치는 와중에도 변함없는 애정과 믿음을 확인해주며 영화의 중심 메시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미 가족이라 생각하니까 가능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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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ps1. 흥분제 한 알에 장례식 내내 고생을 해야했던 사이먼 역의 앨런 터딕(Alan Tudyk)이 <MR. 후아유>에 출연한 유일한 미국 출신 배우인 것 같습니다. 낯익은 인상이긴 한데 딱 이렇다 할 만한 출연작이 없네요.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패치 아담스>(1998), 산드라 블록 주연의 <28일 동안>(2000),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원더 보이스>(2000)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었고 <아이스 에이지>(2002)와 <아이, 로봇>(2004)에서 목소리 출연을 했습니다. 아항, <아이, 로봇>에서 써니의 목소리가 바로 이 사람이었군요.

ps2. 일본 영화 <유레루>(2006) 도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시작하죠. 여기선 장남이 본가에 남아 가업을 잇고 동생은 도쿄에서 잘 나가는 사진 작가였는데 <MR. 후아유>는 딱 그 반대 상황이더군요. 물론 형제 사이에 여자 문제는 없었지만요. 유명한 작가이면서도 집안을 위해서는 눈꼽 만큼도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얄미운 형이지만 어머니는 그런 형이 얼마나 좋으신지 마주치기만 하면 얼굴에 미소가 번지시더군요.

ps3. 생각보다 영국식 악센트가 재미있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런던이라서 그런 건가 했어요. 출연 배우들 가운데 두번째 사진의 하워드(앤디 니만)이 발음도 그렇고 가장 영국 코미디의 이미지에 가깝더군요. 미운 오리새끼 같은 신세에 주책 맞은 소리만 하고 돌아다니는 캐릭터있잖아요. 자막에 의역이 심해서 정확한 파악을 못했는데, 신부님을 막아서면서 횡성수설하다가 커밍아웃한거 맞죠?

<클로버필드>, 희대의 사기극 아님 대 걸작

위험이 다가오면 무슨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도망가야 겠지요.
UCC찍다가 인생을 허비하면
그대로 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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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클로버 필드를 보았습니다

지난주 미국 흥행 1등이 이번주에는 4등으로 미끄러 졌습니다.
대 걸작이면 2주정도 1등을 할 듯 싶지만 무려 70% 감소 하여 겨우 금주는 1000만불 정도로 가라 앉아 버렸더군요. 그 옛날 블레어위치 프로젝트로 희대의 사기극이냐 새로운 영화의 트렌드를 만들었냐 말이 많았지만 결국 두 부류로 갈려 죽인다와 사기극이다로 박터지게 싸운 기억이 나기도 하네요,

먼저 사진 한장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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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국에서도 토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제 지인도 지난주 혼자 보셨다는데 한시간쯤 되서 화장실로 직행 2번이나 토하셨다고 하십니다. 참고로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빙글빙글 도는 회전기구 제트 코스타에 약하신 분은 절대 보시면 안될 듯 합니다, 마눌님 이야기로는 자기가 근래 본 최악의 영화라고 합니다. 저랑 관점이 좀 다르지만 마눌님 2007년 최악이 디워였는데 본 클로버필드 디워 보다 훨씬 형편 없고 기분 나쁜 영화라고 하십니다.

일단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국가적 재난을 개인적인 시각으로 그것도 캠버젼으로 찍은 듯한 참신성에는 별 3개를 줍니다. 원래 이 영화 찍은 감독 데뷰작도 그러 하였지만 참신성 하나는 죽여 주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스토리나 극의 구성으로 보면 이거 낚인거 아니야 하는 듯한 느낌으로 별 반개만 줍니다. 영화가 재난에 대한 개인적인 구성을 보여 준다고 장렬히 설명 하시는 분도 있지만 도대체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작년 논쟁의 논란에 섰던 디워 보다도 훨씬 못해 보입니다.

게다가 캠코더 버젼으로 찍었기에 특수 효과비도 훨씬 덜 들었겠지만 이러한 괴수 재난 영화에서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 효과도 훨씬 조악해 보입니다. 차라리 정공법을 써서 고질라나 디워처럼 정식 영화를 많들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지 않나라는 느낌도 들 정도 입니다.

UCC의 대중화로 그러한 트렌드를 시대에 맞게 반영하였다는게 이 영화의 변명이겠지만 적어도 만원이나 들여서 극장에서 이러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좀 생각해 볼만 합니다. 결국 영화는 티저 마케팅의 승리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대가리가 날라간 장면 하나로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어 보게 만드는, 감독이 오래전 대 성공 시킨 블레어위치 프로젝트처럼 호기심에 보러 갔다가 이거 뭐야라는 느낌처럼.

잘만든 괴수영화에는 괴수들의 고민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 하는데 고질라가 그러했고 피터 잭슨의 킹콩이 그랬듯이 캠 버젼이라도 영화 버젼과 섞어서 좀더 정식으로 승부 했으면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UCC에 아직도 어색한 나이든 아저씨의 넉두리에 불과 한 걸 까요.


영진공 클린트

히스 레저 (Heath Ledger)를 추모하며 …


In memory of Heath Ledger (1979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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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 보다 히스 레저(본명: Heathcliff Andrew Ledger)의 출연작을 보지 않았었네요. 호주에서 시드니, 멜버른에 이어 세번째 도시 정도 되는 퍼스(Perth)에서 태어나 16살에 시드니로 옮겨와 TV에 출연하기 시작했다는군요.

<Clowning Around>(1992) – 첫 영화 출연작인데 크리딧에 거의 보이지도 않습니다.
<Blackrock>(1997) – 한동안 TV에만 출연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영화 출연을 했고요
<Paws>(1997) – 역시 단역인데 97년이 영화 쪽으로 커리어를 옮긴 해였나 봅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에서 방영된 <Roar>라는 13부작 미니시리즈가 있었는데 히스 레저를 업계에 알려준 작품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침략에 저항하는 아일랜드인들의 이야기였는데 로케이션이 호주 퀸스랜드였네요.

1999년작 <투 핸즈>(Two Hands)에서는 드디어 첫 주연을 맡았습니다. 이건 호주 영화예요.

그리고 같은 해에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각색한 청춘물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0 Things I Hate About You, 1999)로 헐리웃 데뷔를 합니다. 배우가 헐리웃 영화에 출연했다는 건 출연한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배급되고 그만큼 알려지게 된다는 뜻이 되죠.

줄리아 스타일스, 조셉 고든 레빗도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었죠. 남자에게 관심이라곤 없는 캣(줄리아 스타일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Can’t Take My Eyes Off Of You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름 명장면입니다. 역시 유투브에서도 쉽게 찾아지는군요.


<패트리어트 : 늪속의 여우>(The Patriot, 2000)는 같은 호주 출신 배우로서 헐리웃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멜 깁슨 주연의 블럭버스터였는데(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히스 레저는 이 영화에서 ‘멜 깁슨의 아들’로 출연했다고 해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영화 자체는 <브레이브 하트>(1995)의 컨셉을 남북 전쟁으로 옮긴 기획물이다 보니 그리 좋은 평가는 얻지 못했지만 멜 깁슨이 배우로서 한창 잘 나가던 때의 영화라 북미에서는 흥행이 꽤 됐었습니다. 덕분에 히스 레저도 일약 뜨게 된거죠. 저는 이 영화를 먼저 보고 나중에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봤던 것 같습니다. 줄리아 스타일스 나오는 영화 아니었으면 그나마도 안봤을지도 몰라요.
   2001년에 <기사 윌리엄>(A Knight’s Tale)과 <몬스터 볼>(Monster’s Ball)에 출연합니다. 두 영화 모두 국내 개봉을 했었죠. <기사 윌리엄>은 나름 신세대 중세 사극을 표방했던 영화였는데 로저 에버트가 젊은 진행자와 진행하는 신작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Most bizzare scene ever”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기억이 납니다. 이 장면 역시 유투브에 있었습니다. 음성 출력이 약하긴 하지만 1분 여 기다리시면 음악이 바뀌면서 “중세 맞아?” 하게 됩니다. 나름 히스 레저의 춤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오프닝부터 퀸의 We Will Rock You로 시작한 영화였으니
뭐가 안될리 있었겠습니까만.

<몬스터 볼>은 할리 베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첫번째 흑인 여배우라는 기록을 남겨준 작품이 되었죠. 9.11 테러 이후의 정치적 맥락에서 주어진 상이라 별로 달갑지는 않았습니다만 할리 베리라면 충분히 상 받을 만한 자격은 있는 배우죠. <트레이닝 데이>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덴젤 워싱턴도 마찬가지고요. 아무튼, 저는 <몬스터 볼>에 할리 베리와 빌리 밥 손튼만 나온줄 알았는데 히스 레저도 출연했더군요.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꽤 인상적이었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 저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봐야겠구나 하고 있습니다.
         <포 페더스>(The Four Feathers, 2002), <네드 켈리>(Ned Kelly, 2003), <씬>(The Order, 2003), <독타운의 제왕들>(Lords of Dogtown, 2005)까지 전부 못본 영화들이네요. 2004년에는 아예 출연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계속 죽을 쑤니까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2005년 한 해 동안 무려 4편의 영화를 찍습니다. 조연으로 출연한 <독타운의 제왕들>이 그중 하나이고요. <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The Brothers Grimm, 2005)은 오랜만에 나온 테리 길러엄 감독의 신작이라서 극장 개봉하자마자 봤습니다. 각광 받는 젊은 호주 출신 배우이긴 한데 특별히 이쁜 구석을 찾을 수 없었던 히스 레저를 배우로서 발견하게 해준 작품입니다. 맷 데이먼에 비해 비중이 약간 밀리는, 코믹한 캐릭터 연기를 선보였는데 아주 보기 좋더군요. 고정된 이미지를 부수고 배우로서 내실을 다지려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고 할까요. 그리고 쾅! 하고 터진게 이 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s, 2005)이었습니다. 히스 레저가 아닌 다른 에니스 델마는 아예 생각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진짜 연기를 드디어 해낸 겁니다. 뭐, 안 그런 구석이 하나도 없었던 영화이긴 하지만요.
Rufus Wainwright, The Maker Makes
[ Brokeback Mountains OST, 2005 ]
         <카사노바>(Casanova)가 2005년에 찍은 네번째 영화였습니다. 이듬해에는 호주 영화 <캔디>(Candy, 2006)가 유일한데요, 미셸 윌리엄스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마틸다(제이크 길렌할이 대부라는군요)가 2005년 10월에 태어났는데 아이 키우느라 영화 출연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 2007년에는 밥 딜런의 연대기 영화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 Suppositions on a Film concerning Bob Dylan)에 출연했지요. 이 작품은 현재 3월 20일 국내 개봉일이 잡혀 있으니 곧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올해 여름방학 시즌 정도에 개봉할 예정으로 한창 후반 작업 중이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도 조만간 보게될 히스 레저의 유작입니다. 2009년 개봉 목표로 촬영 중이었던 테리 길리엄 감독의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는 어찌될런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히스 레저를 대신해서 다른 배우가 주연을 맡아 처음부터 다시 찍거나 아니면 아예 프로젝트가 엎어질 수도 있지 않나 싶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416" caption="Heath Ledger @ I'm Not There (2007) directed by Todd Haynes"]사용자 삽입 이미지[/caption]
영진공 신어지

임성한 드라마, 오히려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도 …


임성한 드라마. <아현동 마님>을 본의 아니게 챙겨보게 되었다.  저녁먹는 시간하고 겹쳐서, 밥 먹을 동안 만이라도 좀 편하자고 TV를 틀어놓으면 감사하게도 밥 먹을 동안 애기가 TV를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임성한 드라마가 욕먹는 이유, 임성한 드라마가 이상한 이유를 다른 방향에서 정의해 보면 ‘비모성, 비자매애’인 것 같다. 비상식적인 설정, 파격적 설정을 얘기하는데 그 속을 파헤쳐 보면 거기엔 비모성과 비자매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저럴 수가…’하면서 혀를 차며 보는 것 같다.



‘겹사돈’이 주요 설정이었던 <보고 또 보고>의 금주, 은주는 친자매간이다. 결혼 전부터 동생인 은주가 희생하는 타입이었고, 언니 금주가 제멋대로인 스타일이었는데, 동생 은주가 맏동서가 되고, 금주가 아랫동서가 되어 버리면서 둘 사이는 친자매사이가 아닌 완전 사이 열라 안 좋은 동서지간이 되어버린다. 거 참. 어이없지 않은가? 물론 겹사돈이란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친언니랑 나랑 둘이 한 집안의 며느리라면 그 둘은 힘을 합쳐 시댁을 말아먹을지도 -_-;;) 아무튼 친언니랑 둘이 일하는 명절은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동생이 좀 꾀를 피거나 언니가 좀 게으르더라도 ‘요년이’하면서 봐주지 아니하겠는가. 어찌 다른 드라마에는 일반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자매애가 이 드라마엔 있지 않은 건지.


<인어 아가씨>는 ‘모성의 부재’가 핵심이다. 은아리영의 복수심은 ‘부성의 부재’에서 야기된 것 같지만, 그녀의 행각이 엄마를 버리고 재혼한 친부에게 향하기 보다는 새엄마와 이복여동생을 향하는 것을 보면 어째 이상하다. 나에게 헌신적이고 좋은 엄마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맹인이라 나를 돌봐준다기 보다는 내가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다. 친부가 아닌 새엄마와 이복여동생에 대한 미움이 먼저인 그녀의 복수심은, 자신의 ‘모성 부재 상태’에 대한 분노에 다름 아니다.


<왕꽃 선녀님>에 와 보면 다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친엄마는 있지만, 좀 사회적으로 이상한 지위에 있는 여자다. 무당이고, 무당끼를 물려준 엄마다. 하늘이시어에 오면 남편죽자 첫사랑과의 결혼을 삐까번쩍하게 치르고, 그 첫사랑과 낳은 딸을 며느리나 삼으려고 하는 이상하게 뒤틀린 모정뿐이다. 친모의 모정은 있어도 뒤틀렸고, 새엄마는 가혹하게 주인공의 삶을 비튼다.


욕 안먹는 <아현동 마님>에서도 강도는 엷어졌으되, 여전히 모성과 자매애는 부재하다. 백시향 검사의 엄마는 친엄마이되 계모같았으며, 친자매지만 외모가 전혀 다른 그녀의 동생들도 이복동생들 같다. 예쁘고, 착하고, 일하는 백검사와 못생기고, 게으르고, 욕심 많은 그녀의 동생들은 딱 신데렐라와 이복동생들이다. 아버지인 백제라의 뇌졸중 이후 어머니와 동생들이 모두 개과천선해서 천사가 되었는데 솔직히 그게 어색하기 짝이 없어서 웃긴다. 그러고 보니 유일하게 아현동마님에서만 엄마다운 엄마가 나오긴 한다. 요샌 광주에 내려가신 것으로 되어 있어서 안 나오는데, 왕년의 은실네 박혜숙 여사님은 좀 엄마 같은 엄마였다. 부길라의 엄마인 사비나도 약간은 비틀린 친모임에 틀림없다. 공주대접 받으며 낳은 아들도 시어머니가 다 길렀다는 부러운 팔자 사비나 여사. 새엄마가 안나와서 덜 뒤틀려보여도 <아현동 마님>도 그 연장선 상이다.

그래도 내가 역설적으로 임성한 드라마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녀의 드라마에는 남자 캐릭터들이 거의 없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등의 옛날 이야기와 달리 그 모성의 대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뭐 물론 ‘불쌍했던 은아리영이 주왕오빠, 백시향여사가 부길라 검사라는 백마탄 왕자를 만나서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라는 스토리로 본다면 똑같은 패턴으로 볼 수 있겠지만. 모성만큼이나 비현실 적인 캐릭터인 임성한 드라마의 남성들이 바로 이 모성의 대역들이라고 본다면 양자에는 약간의 차이가 생긴다. 아현동 마님만 한번 살펴 보다. 부길라에게 받은 모성이 있다면 그건 뭐 할머니한테도 있겠지만, 아버지인 부영상으로 부터 받은 사랑이 부성보다는 모성에 가깝다. 사비나가 받은 모성도 남편 부영상의 것이다. 백시향도 엄마같은 사랑을 주는 아빠를 떠나는게 가슴이 아팠지만, 어쨌든 새엄마같은 엄마를 벗어나 부길라라는 ‘친 엄마같은 남편’에게 안겼다. 전작들을 생각해 봐도 거의 마찬가지다. 아리영은 주왕오빠, 윤초원인 김무빈, 자경이는 왕모라는 ‘친 엄마 같은 남편’들을 얻은 것이다. 백시향의 남편은 12살이나 어린 띠 동갑이지만 그래도 백시향의 엄마 노릇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엄마노릇은 속옷 손빨래하기, 아내 손 녹여주기, 깜짝쇼 하기, 아프다면 옆에서 밤 새기, 아프다면 제 정신 돌리려고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생쇼하기로 구체화 되어 보여진다.


나는 노희경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임성한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한다면, 노희경 드라마는 갑갑해하면서도 보는 드라마이다. 노희경 드라마가 제일 갑갑한 이유는 그 지긋지긋한 여자들의 삶과 지긋지긋한 자매애와 지긋지긋한 모성이 너무나 리얼하기 때문이다. <꽃보다 아름다워>의 한고은 캐릭터와 <아현동 마님>의 백시향 검사를 비교해 보라. 둘다 서민가정에서 유난히 공부잘했고 잘난 딸들인데, 그들과 엄마, 자매들의 관계는 얼마나 다른가. 한고은은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이면서도 자신의 상처에 가슴을 쥐어 뜯었지만, 이혼녀인 언니와 아직 덜 자란 남동생을 지독하게 걱정했고, 백시향은 입으로는 자기는 엄마와 동생들을 사랑하는데 엄마와 동생들이 자기를 미워한다면서 자기 예쁘게 꾸미고 돌아다니고 아버지 백제라의 모성같은 부성을 만끽하기에 바빴다.


우리 엄마와 딸들은, 우리의 자매들은 그저 세상으로 부터 받은 상처를 저들끼리 보듬어 안고 비벼 견디지 않았는가. 비록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가 환타지일지라도, 그리고 남녀의 고정된 역할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작가의 의식이 간간히 드러날지라도, 황당한 편견이 여과 없이 드러날 지라도. 그래도 권위세우는 부정이 아닌, 보듬고 아끼는 모성같은 부정을 자신 아버지들이 등장하고, ‘아빠 같은’도 아니고 ‘엄마 같은’ 남편들이 등장하는 임성한 드라마는. 어쩌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주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만이 모성을 강요당하지 않는, 남성도 모성을 나눠 베푸는 그런 세상 말이다.


헤헤. 그런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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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