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 시놉시스는 표절을 따질 수 없다고?

공연윤리위원회
2006년 7월 11일

난 『태왕사신기』가 절대적으로 바람의 나라를 표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에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절차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드디어 『태왕사신기』의 그 뻔뻔하고 더러운 기사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구나.” 가 아니였다.
불안감.
『두근두근 체인지』. 그 허무한 결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만화와 드라마가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안된다던, 드라마가 끝나버렸기때문에 안된다던 그 판결을 알고 있었으니까.
제길. 그래. 결국 판결은 원고패소, 『태왕사신기』의 눈부신 승리였다.

판결문은 일부 유사점은 인정 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표절여부를 따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놉시스만으로는 표절여부를 따질 수 없지만 완성된 드라마는 또 다르다고 교묘히 우릴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미 선례인 『두근두근 체인지』에서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만화를 이용하여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판결문에서 조차 당당히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결국 표절에 대해서는 만화와 드라마는 다른 별개의 작품이기때문에 원고의 주장을 기각해버렸다.
과거에 그러했는데 과연 바람의 나라에 대해서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내가 알기로 이전에 나왔던 판례들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며 왠만해서는 잘 뒤집어지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판례가 중요한 것이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때 유사한 사건의 판례가 어떠했는지부터 알아보는 거라고 알고 있다.
거기다 상대는 대형프로덕션, 대형방송사임에야 무슨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거기다 더 찝찝한건 두근두근 체인지의 방송사가 똑같은 MBC였다.)
과연 드라마만 제작 되면! 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걸까?

기사에 인용되었던
“설령 피고의 시놉시스가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은 어느 한 작가의 저작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사용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앞뒤를 좀 더 따져보아야 한다.
저번 포스팅에서는 국사도 안배운 새끼들(..) 이라고 흥분해서 말해버렸지만
판결문에서의 그부분은 사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이 부분은 뒤에 판타지적 요소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따로 나온다.)

“원고의 저작물은 고구려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일부 실존했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등장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에 원가가 창의적으로 개발한 환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서 이는 기본적으로 역사 저작물로서의 성격과, 환타지 저작물로서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은 어느 한 작가의 저작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피고가 원고와 동일한 역사적 배경 및 사실을 자신의 저작물에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저작권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원고 저작물 중 환타지적 요소 중에서도 그것이 원가가 새롭게 독창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신화나 설화를 통해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라면 그에 대해서도 원고의 저작권을 일정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과 환타지적 요소인 사신의 의미를 따로 생각한 거다. 판결문에서는.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것은 따로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하고 많은 나라중에 하필이면 왜 고구려 일까?
환수라 불리는 해태나 기린, 봉황 이러한 것이 아니라 하필 사방신이 주인공을 돕는 걸까?
그들은 또 왜 그토록 성격적 유사점이 있으며 동일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것을 복합적으로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따로따로 놓고 이야기를 해버리니
고구려라는 배경은 어차피 공공영역이니까 이건 저작권으로 못 밀어부쳐.
사신? 그거써서 만화그린게 한두개야? 이렇게 되어버린 거다.

또한 판결문을 읽으며 가장 답답했던 것은
과연 판사는 시놉시스를 무어라고 생각하느냐 였다.
“이 사건 시놉시스는 앞으로 제작될 ‘태왕사신기’ 드라마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만이 서술되어 있을 뿐이어서 그것 자체만으로는 원고가 주장하는 창작적 내용을 침해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시놉시스란 시나리오의 대략적 줄거리다.
시놉시스는 글을 대표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의 내용이 다 들어가있는 중요한 글!! 인 거다.
그만큼 중요하고 글의 주제와 내용을 포괄적으로 잘 드러내야 하는 글이며,
시놉시스 자체가 변경된다는 것은 전체 내용이 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팔아먹으려 했던 『태왕사신기』가 아닌게 되는거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러이러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을 내세워 이러이러한 내용의 드라마를 만들어 당신들한테 팔겠습니다. 라는 기자회견까지 한 상태. 그 시점에서 이미 『태왕사신기』는 바람의 나라를 표절한거다.
또 과연 그 내용이 바람의 나라와 완전히 틀려질 정도로 바뀔 수 있을까?
내 대답은 no.
인물설정이야 어찌어찌 바꾼다 쳐도 바람의 나라의 주제와 가장 큰 이야기라인을 통체로 들어다 썼는데
과연 그걸 어떻게 바꾸겠나?

시놉시스의 저작권은 인정해 주면서 어째서 표절은 인정되지 않는가?
단순히 시놉시스의 내용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로서 창작이 된다면 바꿀 수 있어서 라는 이유를 댄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저작권도 사실 인정 될 수 없는거 아닌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이야기를 거기다 그렇게 써놓았다 치더라도 니가 그걸 바꿀지 어떻게 알아?
너 사실대로 말해봐. 그거 바꿀거지? 이렇게 우기는거랑 뭐가 다르다는 거냐.

어째서 만화와 시놉시스가 다른 종류의 창작물이라는 이유로 표절이 될 수 없는 걸까?
라는 의문은 끝끝내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 노래 가사들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소설한편 완성해도 그건 다른 종류니까 괜찮지 않나?
이런 생각하게 되도 어쩔 수 없다.

만화는 결국 그것밖에 가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거다.
만화라는게 결국 그렇게 우습게 생각되어지고 있는거다.

이렇게 판결이 났으니 표절건으로 돈한푼 안들이고 매스컴 오르락 내리락하며 유명세를 탄
『태왕사신기』는 결국 제작될 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걸 재미있게 보겠지.(어떻게 연출이 될지 모르겠지만.. 설마 그 좋은 내용을 들어다 썼는데 완전 즐인 드라마가 될리가 있나.)

내꺼라고.
내 상상력이라고 내가 만든 나라라고.
그렇게 소리치는 만화가의 외침은 가려지겠지.
만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게 미치고 팔짝 뛸정도로 싫어서
이렇게 아무도 찾지 않을지도 모르는 얼음집 한구석에서 키보드들 두드리고 있는 거다.

자신의 나라를 빼앗겨버린 만화가 김진님, 그리고 바람의 나라안에서 살아가던 주인공들을 잊지 않으려고.

바람의 나라 패소 특별대책위
라곰(http://chunglu.egloos.com)

바람과 함께 사라진 [바람의 나라]

2006년 7월 4일
공화국 교시


바람과 함께 사라진 ‘바람의 나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명연기를 한 스칼렛 오하라는 이렇게 마지막 대사를 읊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어쨌든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

척박한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 놈마저 떠났지만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거나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대신에 스스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2006년 7월의 [바람의 나라]에는 어느 대사가 맞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정확한 것은 [바람의 나라]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만든 판결이다.

보고서도 아니지만 내용이 짧지 않아서 접어 둔다.

들어가기 전 퀴즈!
“한국 판례에서 표절을 몇 번이나 인정했을까요? 흔한게 표절 시비였고 그것이 다 아는 이 바닥 현실인데, 흠.”

쉬운 사지선다형으로 골라 보시죠.

가) 2번 나) 8번 다) 26번 라) 46번

1. 사건의 경과

그 동안 [바람의 나라]가 처한 전쟁 상황(?)을 잘 정리한 곳은 영진공에 게재된 글이다. 먼저 이 사건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정리된 글을 일독하시기 바란다. 특히 표절이라고 주장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람의 나라]는 김진 작가가 1992년 2/18, <댕기>에 연재를 시작하여 1998~2004년까지 긴 호흡으로 22권이 출간된 작품이다. 이후, 웹진 연재 및 뮤지컬과 소설로 판매되고 드라마 등의 분야로 파급되려던 무게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2004년 9/14, 드라마 [모래시계]의 환상 결합인 김종학 프로덕션과 송지나 작가의 [태왕사신기] 제작발표 기자회견이 열리면서 [바람의 나라] 저작권 침해 분쟁이 시작됐다. 5일 뒤인 9/19, 김진 작가는 표절이라는 저작권 침해에 끝까지 싸우겠다는 심경을 자신의 홈 페이지에 올렸고 이 조정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로 넘어갔다.
6개월의 공방에서 3차례의 분쟁 조정이 있었지만 대립의 폭이 커 ‘조정불성립’ 선언이 2005년 3월에 내려졌다. 다음 달인 4/19, 김종학 프로덕션은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을 상대로 엄중 경고한다는 공식입장을 공표한다. 네티즌의 반발은 당연히 거셌고 그 보다 분노한 것은 김진 작가의 사주를 받은 빠순이 빠돌이라는 저들의 말이었다. 다음 달인 6월, 그러니까 1년 전에 김진 작가는 송지나 작가에게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5천만 원의 손배 청구 소송을 냄. 1년 뒤에 서울 중앙지법 허 판사는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위 참고 글에는 저작권 침해 내용, 팬들의 감정이 격앙될 수밖에 없었던 피고 송지나 작가 측의 대응과 말바꿈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도대체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 우리가 보는 표절과 법이 보는 표절

만화와 관련된 표절 판결은 늘 뒷말의 여운이 많았다.

얼굴이 다른데 뭐가 표절이냐는 판결, 유사한 소송 사유에 전혀 반대의 결론으로 한 쪽은 돈 받고 한 쪽은 명예훼손으로 오히려 돈 내야한다는 판결, 특히 이 판결은 만화가라는 그룹이 유난이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불러왔다. 그래서 “한국 만화가들은 집에 힘 센 형도 없나?”라는 자조 섞인 글도 썼다. 이런 반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법과 대중의 시각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국 판례(대법원 1990.2.27. 선고 89다카4342 판결)는 표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단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표절은 원저작물을 그대로 전제 내지 전용(일반적으로 복제)하거나 원저작물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서 별개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판시한다. 확실하지 않으면 아니라는 입장이다.

표절의 법적 판단을 또 다른 설명 방식으로 하자면 이렇다. 표절은 법률상의 개념이 아니라 관습적 표현이다. 즉 정신적 창작물에 대한 절도행위로서 사용되어 왔다. 표절은 타인의 저작물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또는 변경된 형태로 마치 자신이 창작한 것처럼 가장(假裝)함으로써 관객들이나 독자들이 그것을 새로운 창작품으로 알게 되는 것으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합법적인 인용이었다고 해도 저작권법 제34조, ‘출처의 명시’ 규정으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면 표절이다. 표절행위는 불법행위로 민사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발생한다. 무단 전제 경우는 저작권법 제16조(저작재산권을 부당하게 침해), 무단 전용은 동법 제13조(동일성 유지권), 동법 제21조(2차적 저작물 등의 작성권 침해여부)가 해당 된다. 이러한 법과 대중의 시각 차이를 구분하면 몇 가지 방향으로 볼 수 있다.

가) 저작권법에 합법적 표절(?)의 범위가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제외한다면 불법적 표절이라는 말이다. 즉, 저작권법 25조에 보도, 교육, 비평, 연구용 등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으니 이 범위를 넘으면 표절이다. 물론 ‘정당한’이라는 단어가 숫자처럼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논란은 늘 따른다. 그래서 저작권 침해 관련 판결은 개별적이고 하나의 사례로 판단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베낀 부분이 있는지, 원작을 봤는지, 중간에 증언을 번복하는지, 베낀 부분이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체적 표현에 녹아 있는지 등을 따져서 ‘이 놈, 안되겠네?’라고 판단이 되면 표절한 사람으로 판결을 하게 된다.

나) 한편에서 일반 대중이 보는 표절의 기준은 들쑥날쑥하지만 법보다 더 포괄적인 것은 당연하다. 이 말은 법이 덜 엄격하다는 것이 아니라 표절 판정은 ‘확실 할 때’만 한다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실질적 유사성’이다.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문장 또는 대사가 같거나 아니면 전체 스토리의 구성이 같거나 둘 중 어느 부분이라도 실제로 동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까닭에 영화나 드라마, 가요 등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 숱하게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소송이 제기됐지만 국내 판결문에서 표절로 저작권 침해를 확인해 준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 많지 않다고 완곡하게 말했지만 기실 2건에 불과하다. 김수현 작가의 파워가 아니었더라도 승소 판결을 받을 만 했던 [여우와 솜사탕]의 [사랑이 뭐길래] 표절 건, 드라마 [연인]의 자전적 소설 표절 건이다. 이 같은 결과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엄청 베낀(이 단어도 모호하다) 작품에 대하여 표절로 판결하는 성향과 함께 법적 소송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여론에 승복하여 침해자가 자진하여 항복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드라마 [청춘]이 일본 드라마 표절이란 비난이 일자 바로 종영하는 것이나 드라마 [라이벌]이 사후 판권 계약 운운한 것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또한 표절은 소재보다 표현을 따진다. ‘곰 세 마리가 삼총사가 되어서 백설공주를 구하려다가 톰 크루즈에게 선수를 빼앗겨 엑스맨으로 변신하여 싸운다(?)’라는 멋진 스토리가 있다고 하자. 이건 ‘소재’라 뭐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곰 세 마리가 빨간 팬티를 겉으로 입는지, 톰 크루즈가 5명의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지, 엑스맨의 능력들이 같은지, 변신할 때 어깨동무를 하고 두 바퀴 반을 도는지 등의 구체적 ‘표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러므로 비슷하다는 의혹이 모두 표절 판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 또한 베낀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기도 한다. 100쪽 짜리 소설에서 등장인물 하나가 “야 임마! 똥물에도 파도가 있어!”라는 대사를 날렸는데 이것이 다른 소설에 있었다고 치자. 그러면 표절인가? 아니다. 같은 대사이기도 하지만 워낙 겹침의 분량이 미미하고 혹은 우연의 확률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등장인물이 37층 높이의 빌딩 옥상에서 적에게 총을 세발 쏘면서 이 대사를 한 것이 원작 소설이고 베낀 소설이 그것마저 동일하게 묘사했다면 의심 백배, 표절 확률 백배가 되므로 문제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얼마나 베꼈느냐는 ‘분량’의 문제는 우연의 겹침을 제외하고 2차 저작물의 창작 활성이라는 측면에서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음악의 몇 소절 이상 겹침은 표절이라는 비교적 명료한 기준과 달리 문학 작품에는 몇 줄이라는 기준이 없어 늘 문제를 발생시킨다. <전략 삼국지> 표절 사건에서 60권이 넘는 두 만화를 컷 단위로 계산하여 비슷한 컷이 몇 개냐는 자료까지 나온 것은 이 같은 분량의 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만화를 비롯한 글, 그림, 영상 작품에 있어서 분량에 상관없이 표절 의혹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보통 수십만 개의 작품에서 하나씩 뽑아 낸 표절이 아니라 한 작품 또는 몇 작품에서 뽑아 낸 표절이므로 베낀 것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많고 적음이 법적 기준이라지만 개개인 또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것을 베낀 것이 명확함에도 조금이라고 해서 패소판결을 받을 때는 그 억울함이 심장 굽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을 팰 때 한 대를 때리던 486번을 때리던 폭행은 폭행이다. 남의 것을 베낄 때 한 장을 베꼈건 48쪽을 베꼈건 베낀 것이 드러나면 그건 표절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그 처벌 수위는 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한 대냐, 486대냐의 구분으로 폭행 자체가 되고 안 되고의 판결은 여전히 감정상 수용이 어렵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고문 “훔친 쌀을 내 쌀에 섞으면 내 것이랴?”를 참고 바람.

라) 게다가 법은 저작권법의 취지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 취지는 저작권의 보호보다 저작물 또는 저작문화와 산업의 활성화이다. 달리 말하면 저작물의 이용을 활성화하자는 것인데 표절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넓게 적용하여 판단한다면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표절 의혹 제기에서는 질러 놓고 보자는 의도의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왕의 남자>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대사 하나가 문제가 됐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대사 하나를 문제 삼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은 결국 기각됐다. 질러 놓고 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영화에서 대사 하나를 걸어 상영을 금지한다는 요구는 법이 수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법의 한계이기 이전에 법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3. 법이 보는 표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의문

남의 것을 가져다 쓸 수 있는 표절에도 합법적 범위가 있음을 앞에 열거했다. 쉽게 풀어보자면 겹따옴표를 찍으면 ‘인용’, 원작자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려서 쓴 것은 ‘오마주’, 원작을 비틀어서 웃기게 만들면 ‘패러디’, 계약을 맺어 소재로 쓰면 합법적 ‘2차 저작물’, 이 중에 아무것도 안하고 써먹으면 ‘도용(盜用)/표절(剽竊)/모작(模作)’이라 한다. 이 경우는 다른 사람의 저작물 일부를 무단히 사용하여 자신의 저작물인양 발표하는 것이므로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최근 사례 중에 [바람의 나라]에 참고할 만한 분쟁은 어느 시골 의사의 이야기를 부분 이용한 문학상 수상작 사건이었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작가의 대응에 주목해 보면 [바람의 나라]와 유사한 진행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뭔 소리야? -보지도 못했어 – 봤지만 그냥 버렸어 – 조금 쓸려고 하긴 했지 – 그 정도 쓴 게 뭐 어때서?’라는 버전 업을 말한다.

이번 원고 패소 판결문 전체를 아직 받아보진 못했지만 기사란 것이 판결문이 길고 어렵게 작성되어 있어도 그 주된 내용을 뽑아 쓴 것이므로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요약 기사를 근거로 본다면, “두 저작물은 개략적 줄거리와 캐릭터의 성격에 있어 일부 유사점이 있지만 원고의 작품은 이미 22권 단행본으로 출간된 완전한 형태의 만화인 반면 피고의 저작물인 시놉시스는 최종 저작물이 아니라 투자 유치를 위해 앞으로 저술할 드라마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개요를 정리한 것으로 최종적이고 만족적인 어문저작물로 보기 어려워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또한 “설령 피고의 시놉시스가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은 어느 한 작가의 저작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사용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이 판결을 심하게 비틀자면 나는 이렇게 들린다. 생뚱맞겠지만 이해 바란다.
“한국과 스위스 전의 개략적 줄거리와 스위스 선수들의 성격에 있어 핸들링과 오프사이드 등 일부 나쁜 짓이 있지만 어쩌다 맞은 것이고 어쩌다 넘어가 있던 문제로 반칙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설령 심판의 어처구니없는 판정이 16강 탈락을 가져왔다고 해도 신체적 움직임은 한 나라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하게 있는 팔 다리를 스위스 선수가 사용했다고 해도 반칙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틀어진 것일까?

가) 공공의 역사적 사실 VS 창작

[바람의 나라] 소송 핵심은 [태왕사신기]에 등장하는 현무, 청룡, 주작, 백호 등 4신수가 인간의 형태로 광개토대왕을 돕고, 신시를 향해 가는데 이것이 김진 작가의 고유의 설정이며 창작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공의 역사적 사실인 ‘광개토대왕’이 아니라 창작을 문제 삼은 것이다. 작품 전체에서 역사적 사실 부분과 창작 부분의 공존을 %로 분할하기 어렵겠지만 역사학자들은 어느 것이 정사와 야사이며 어느 것이 창작된 부분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 창작이라는 부분에 있어 원래 현무, 청룡, 주작, 백호는 4방위를 수호하는 신수이지 왕을 수호하고 왕권을 높이지만 왕의 징표는 아니다. 그런데 [바람의 나라]는 4신수가 대무신왕을 돕는 인간형상의 신으로 처음 만들었으며, 이를 [태왕사신기]가 그대로 사용하고 [태왕사신기] 시놉시스에서 무휼의 대사와 무휼의 전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이다.
이에 대하여 송지나 작가는 [태왕사신기]의 신시와 사신의 개념이 [바람의 나라]에서 주장하는 부도나 신수의 개념과 다르다고 반박했고,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바람의 나라]는 당시 고구려의 영토 안에 있던, 현재 강원도 영월에 있는 ‘태백산’으로 해석하였고, [태왕사신기]에서는 환웅이 신시를 연 태백산을 중국 대륙에 있는 ‘태백산’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두 작품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태왕사신기]에는 사신이, [바람의 나라]에는 신수가 등장하는데, [태왕사신기]의 사신은 인간의 몸으로 환생을 거듭, 자신의 주인인 왕을 찾고, 왕을 보필할 동료들을 찾아 사신으로서의 자각을 느끼게 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고는 ‘땅의 군주’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시스템이나 [바람의 나라] 신수는 각기 다른 주인을 모시는 다양한 형태의 존재이므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쟁점에서 저작물의 정의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저작물의 정의는 무엇인가? 문학, 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을 말하며 또한 그 내용에 ‘창작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저작물의 요건이다. [바람의 나라]는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만화 작품이며 흔히 말하는 학습만화도 아니다. ‘적확’한 창작물로서 창작 부분이 유사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지 역사적 배경을 같이 썼다고 소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공의 역사적 사실 운운은 이해 불가.

나) 접근성
‘접근성’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베낀 사람이 “원작을 봤을까? 안 봤을까?”의 정황을 따져보는 분야로 저작권 침해 판단의 주요 기준이기도 하다. 따라서 접근성은 흔히 두 가지 측면에서 판결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봤다’는 사실 입증이 되어 표절 인정으로 기울어지거나 ‘안 봤다고 했다가 봤다고 말을 번복’하는 경우 범죄자의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으로 인정되어 표절자로 인정되기 쉽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이 사건을 보자. 본문 서두의 ‘사건의 경과’에 인용한 정리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김진 작가와 KBS는 [바람의 나라] 드라마 제작을 구두 협약하고 실무 단계로 이전하려던 차에 김종학 프로덕션이 김진 작가에게 소재를 구하게 된다. 이 소재를 두고 김진 작가는 ‘내용이 같은 작품이 아니다’라는 확인을 받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음. 그러나 [태왕사신기] 결말은 [바람의 나라]와 같았고, 무휼이 도달하지 못했던 신시를 광개토대왕이 이루는 내용은 프로덕션 측에서 김진 작가와 접촉하기 전까지는 없었던 내용이 접촉 후에 추가된 상황이다.
반면 송지나 작가는 김종학 PD로부터 “광개토대왕 같은 이야기 한번 해보자”라는 말만 들었을 뿐 프로덕션 측으로부터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 일부를 차용하여 전달 받은 적도 없고, 또 자신도 차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2005년 4월 22일, 송지나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접근성 자체를 부인함. 즉 “[바람의 나라] 김진 작가를 만났다는 소문에 대해,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직원이 [바람의 나라]를 직접 드라마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만났고 몇 가지 문제로 결렬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태왕사신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태왕사신기] 작가 쪽에서는 만났다는 사실조차 인터넷에 유포된 글들을 보고 알았다고 주장함. “김진 작가는 많은 내용을 알려주고 결말까지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바람의 나라] 결말은 대무신왕 무휼이 이루지 못한 일을 광개토대왕이 이룬다는 것뿐이고, 그 외 많은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안타깝게도 알 수가 없었다.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라고도 주장. 또한 “[바람의 나라] 만화와 게임을 통해 ‘표절했다’라는 소문이 있는데 게임 했다, 만화도 봤다, 안 봤다고 한 적도 없다. 전(全)편을 보지 못했다. 한두 편 보다 덮었다라고 답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안 봤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라고 인터넷에서는 소문이 났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상당히 난감한 부분이다.”라고 주장함. 추가적 설명으로 송지나 작가는 “[바람의 나라] 만화책을 한두 권 보다가 어려워 책을 덮은 바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거 SBS TV [카이스트]를 할 때에 카이스트 출신 벤처 사업가인 게임 회사 ‘넥슨’의 사장을 소개 받은 게 인연이 되어 ‘넥슨’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한동안 즐기다가 원작이 만화임을 알고 몇 권 구해서 읽으려 했으나 등장인물과 구성, 배경 등에 대해 어려움을 느껴 한두 권 읽다가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

그러나 송지나 작가가 장황하게 변명한 접근성 부인은 결국 표절 침해자가 일차적으로 하는 유아적 행위에 불과했다. 즉, 송지나 작가 측이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불성립 선언 이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서 조차도 [바람의 나라] 작가와 [태왕사신기]의 제작사인 김종학 프로덕션의 사전 판권구매 접촉에 따른 자료 접근 개연성과 의거성만 인정했을 뿐, 표절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2004년 [태왕사신기]의 집필에 들어간 이후 김진 작가 측이 저작권 분쟁조정 신청하자 그때서야 전(全)권을 다 읽은 것으로 드러났다. 흔히 법정에서 살인범들을 대질 심문할 때 ‘저 넘은 처음 보는 놈이예요.’라고 했다가 외통수에 몰려서야 결국 ‘우린 동거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과정이다. 정말 ‘조사하면 다 나와!’는 개콘용 대사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번복은 그 번복자가 한 다른 증언의 신뢰도를 상실시키므로 불리한 정황으로 재판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 작은 듯 싶지만 이 번복으로도 의혹은 진실해 보일 수밖에 없다.

나) 실질적 유사성
법적으로 표절의 기준을 실질적 유사성이란 용어를 쓴다. 단지 유사하거나 비슷한 게 아니라 상당 부분 실제 유사해야 한다.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첫째 내용이 달라도 완전 문장이나 대사가 동일한 경우. 둘째 대사나 문장이 달라도 전체적인 스토리 구조 등 모든 것이 동일한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이 만화라면 좀 더 다양한 참고 사항이 있다. 말풍선의 대사부터 컷 나누기를 통한 장면 연출, 캐릭터의 동작 연출과 모습 자체 등 텍스트 위주의 창작물보다 참고할 것들이 널려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앞서 언급한 차이점처럼 법의 ‘실질적’이라는 한계로 인하여 대중적 시각과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완전히 베껴야 표절이라고 보는 것 아니냐는 볼 멘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 차이는 크다.

게다가 본 사건은 완결된 드라마 대본을 증거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몇 쪽 짜리로 기획서에 포함된 시놉시스를 대상으로 했다. 이에 대하여 법이 판결한 것이 “피고의 저작물인 시놉시스는 최종 저작물이 아니라 투자 유치를 위해 앞으로 저술할 드라마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개요를 정리한 것으로 최종적이고 만족적인 어문저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소송 측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오히려 정 반대의 이유 때문이다. 그 간단한 시놉시스에서 유사성이 널려 있어 문제를 삼았는데 개요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니 오죽하겠는가? [바람의 나라]를 두 장의 개요로 설명할 수 있다. 그 개요를 이 시놉시스와 비교해 보면 되는 것이다. 된장을 찍어 봐야 아는 사람도 있지만 창작물의 개요만 보고도 표절이 의심스러울 정도라면 이것은 전체 대본이 완성된 상태의 의심보다 더 심대하다고 봐야 한다. 또한 대본도 안 나왔는데 무슨 표절이냐는 항변은 역설적으로 대략적인 줄거리만 가지고도 비슷한 게 나올 정도면 오죽 베꼈느냐는 삿대질을 감수해야 옳다.

한편에서 시놉시스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법의 틀에서 보자면 날카로운 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느슨한 부채로 공격한 것과 같아서 아쉬움이 있다. 시놉시스의 문제를 공방하는 과정에서 대본은 자연스럽게 문제를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진행 과정에서 김종학 PD는 ‘시놉시스와 전혀 다른 대본이 완성되었으니 딴 소리 하지 마세요.’라는 요지의 인터뷰를 기사에 발표했다.

어떤 놈이 어떤 아이를 유괴해 갔다고 치자. 목격자의 말이 개략적으로 눈이 세 개이고 피부가 빨간 색 아이라고 증언했다 치자. 그랬더니 눈 세 개와 빨간 피부를 유전적으로 갖고 있는 유일한 가족이 아침에 행방불명된 내 아이가 맞다고 주장했다고 보자. 그랬는데 경찰이 하는 말, “전체적인 몽타주가 안 나온 개략적인 건데 그것으로만 당신 아이라고 판단할 수 없으니 좀 더 기다려 보슈, 어디서 놀고 있겠지.”라고 했다면 당신 기분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나서 인질범이 수사를 호도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정보를 제공한다고 치자.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한다. “머리가 하나이고, 다리가 두 개이고, 코는 하나고, 머리카락은 검고, 옷은 흰색 반팔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흰색 운동화를 신었구요, 에 또 키는 170cm에 호리호리했어요.” 개략적인 것이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목격자 진술이다. 물론 중요한 사실을 호도하고 가리기 위한 증언이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보니 개략적 목격담이 흐려진다. 인질범의 비유가 생뚱맞을 수 있지만 실질적 유사성 판단에 있어, ‘개략적 시놉시스로 뭔 소리냐?’는 판단 근거는 역시 이해 불가에 감정 폭주감이다.

4. 잔상(殘像)

기획서에 표절 제기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니 실제 대본에서는 그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여 창작될 여건이 마련된 셈이라 아쉬움이 크다. 실제 배국남 기자는 기사에서 “방송도 되기 전 무분별하게 제기된 [태왕사신기]의 표절 의혹은 무분별하게 제기되고 있는 표절 의혹의 문제점을 드러내주는 단적인 사례다.”라고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 분노하기 이전에 냉정하게 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민과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같은 아쉬움은 판결문에 나타난 문장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가 이 시놉시스를 놓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조금 성급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내용이 눈에 밟힌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창작물은 순수성과 독창성이 생명이다. 반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작가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표절의 위험과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하느님이 자신들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한 것이 표절의 시초라는 우스개 소리처럼 앞으로도 표절은 더 다양한 관계에서 반복될 우려가 크다. 저작권법의 취지대로 저작물 활성화의 수단으로 조금 베끼느라 완전히 베낀 티가 나지 않는 작품에 대한 표절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지만 동시에 표절로 찢겨지는 피해 작품들의 보호 수단이 균형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작물 활성화의 또 다른 동인인 창작 욕구를 키울 수 있다.

[바람의 나라]는 다시 바람이 불까? 불게 하려면 어떤 짓을 해야 할까를 울분이 아니라 대응으로, 법적 수단으로 찾아야 할 때다.

2006. 7. 3.
주 모씨.

노파심에 사족)
판결문 나왔을 때 잠깐 포스팅 소재가 되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가 법에 있다면 그 대응도 대법원 판결까지를 고려한 장기전이 되어야 하고 법의 판단 잣대를 고려한 소장 작성이라야 한다. 심판이 편파적일 때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예 깨끗하게 이겨 버리면 되잖아?”
물론 쉽지 않은 말이지만 이 수단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울분은 울분으로 머물 공산이 크다.

바람의 나라 패소 특별대책위
쥬피터(http://jumosee.egloos.com)

한국만화는 죽었다.

공화국교시
2006년 7월 4일


아침에 출근해서 뉴스 뒤져보니 경악할 만한 뉴스가 눈에 보였다.
뭐? 태왕사신기가 표절이 아니야?!

안 그래도 죽어가고 있는 한국 만화계를 다시 한번 밟아 주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비단 김진님의 바람의 나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판결은 만화에서 사용된 아이템을 다른 매체에서 무단으로 사용하더라도 표절로 간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시놉시스이기때문에?
시놉시스는 영화나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전체 라인을 포함하고 있는 글이다.
시놉시스의 내용이 바뀔지라도 그것은 세세한 내용이라던가 간간한 에피소드들이 추가되고 삭제되는 것일뿐
이야기를 끌어가는 전체라인을 삭제하는건 아닌거다.
그런데 변환의 요지가 있는 글이기 때문에 표절로 볼 수 없다니. 한마디로 미친 정신나간 소리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새끼들이 두근두근 체인지 던가? 그거 표절로 재판걸었을때 드라마가 끝난 상태라서 표절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개소리를 씨부린거냐? 그럼 표절시비를 가릴 수 있는건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시점 밖에 없다는 건데
이것도 드라마가 변활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라 표절로 볼 수 없다.라고 말하면 아무말도 못하는 것 아닌가?

또 더 웃긴건 판사는 과연 재판 자료를 보기는 했는지 의문스러운 구절이 있다는 것인데
(내 생각인데 아마 국사를 제대로 안배웠을 가능성도 있다.)
“설령 피고의 시놉시스가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은 어느 한 작가의 저작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사용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바보냐?
우리나라 역사에 사신이 살아서 돌아다니며 왕을 도왔냐?

전체적인 이야기 라인을 보더라도 명백한 바람의 나라를 도용한 표절이며
인물 설정 또한 바람의 나라를 그대로 가져다 썼음을 부인 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하필 주작이 여자인 것도 하필 청룡이 눈이 먼 것도 또 하필 백호가 용감하고 현명한 과부와 결혼 하는 것도..
그외 열거 하자면 많으니 밑에 주소로 가서 재미나게 한번 읽어보자.

뭐랄까.
처음에 바람의 나라가 드라마화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난 상당히 기대했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이런 느낌이었지.
설마 그 주인공이 배용준이며(니미 니들 눈에 배용준이 저 역에 맞는 거라고 생각을 하냐? 응?응?)
저작권따위 개무시 해가며 작가의 허락도 받지않고 내용을 표절해다 쓰는 드라마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우울하다 우울해..
거대 프로덕션의 돈지랄에 가까운 횡포도 우울하고
분명 자신의 저작물임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김진작가님의 입장도 안타까워서 우울하고.

mp3파일 복제해서 뿌린다고 네티즌들 신나게 벌금만 물리지 말고
공부좀 해서 저런거 표절로 좀 처벌해라. 병신들아.

바람의 나라 패소 특별대책위
라곰(http://chunglu.egloos.com)

“바람의 나라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2006년 7월 4일
공연윤리위원회

본지 10호(2005.6.15)에 기사로 올린 바 있는, 단행본 만화 “바람의 나라”를 현재 제작 중인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표절하였다는 논란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판결문을 요약하자면, “태왕사신기”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이어서 표절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 패소 판결한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137839.html )

이에 <영진공>은 1년여가 넘게 진행 된 이 사건의 발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당시의 기사를 다시 올리는 바입니다. 참고로, “태왕사신기” 제작 관계자 측의 반론은 접수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10호 (2005. 6. 15)

“바람의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http://0jin0.cafe24.com/179

바람의 나라 패소 특별대책위
위원장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