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진 [바람의 나라]

2006년 7월 4일
공화국 교시


바람과 함께 사라진 ‘바람의 나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명연기를 한 스칼렛 오하라는 이렇게 마지막 대사를 읊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어쨌든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

척박한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 놈마저 떠났지만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거나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대신에 스스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2006년 7월의 [바람의 나라]에는 어느 대사가 맞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정확한 것은 [바람의 나라]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만든 판결이다.

보고서도 아니지만 내용이 짧지 않아서 접어 둔다.

들어가기 전 퀴즈!
“한국 판례에서 표절을 몇 번이나 인정했을까요? 흔한게 표절 시비였고 그것이 다 아는 이 바닥 현실인데, 흠.”

쉬운 사지선다형으로 골라 보시죠.

가) 2번 나) 8번 다) 26번 라) 46번

1. 사건의 경과

그 동안 [바람의 나라]가 처한 전쟁 상황(?)을 잘 정리한 곳은 영진공에 게재된 글이다. 먼저 이 사건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정리된 글을 일독하시기 바란다. 특히 표절이라고 주장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람의 나라]는 김진 작가가 1992년 2/18, <댕기>에 연재를 시작하여 1998~2004년까지 긴 호흡으로 22권이 출간된 작품이다. 이후, 웹진 연재 및 뮤지컬과 소설로 판매되고 드라마 등의 분야로 파급되려던 무게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2004년 9/14, 드라마 [모래시계]의 환상 결합인 김종학 프로덕션과 송지나 작가의 [태왕사신기] 제작발표 기자회견이 열리면서 [바람의 나라] 저작권 침해 분쟁이 시작됐다. 5일 뒤인 9/19, 김진 작가는 표절이라는 저작권 침해에 끝까지 싸우겠다는 심경을 자신의 홈 페이지에 올렸고 이 조정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로 넘어갔다.
6개월의 공방에서 3차례의 분쟁 조정이 있었지만 대립의 폭이 커 ‘조정불성립’ 선언이 2005년 3월에 내려졌다. 다음 달인 4/19, 김종학 프로덕션은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을 상대로 엄중 경고한다는 공식입장을 공표한다. 네티즌의 반발은 당연히 거셌고 그 보다 분노한 것은 김진 작가의 사주를 받은 빠순이 빠돌이라는 저들의 말이었다. 다음 달인 6월, 그러니까 1년 전에 김진 작가는 송지나 작가에게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5천만 원의 손배 청구 소송을 냄. 1년 뒤에 서울 중앙지법 허 판사는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위 참고 글에는 저작권 침해 내용, 팬들의 감정이 격앙될 수밖에 없었던 피고 송지나 작가 측의 대응과 말바꿈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도대체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 우리가 보는 표절과 법이 보는 표절

만화와 관련된 표절 판결은 늘 뒷말의 여운이 많았다.

얼굴이 다른데 뭐가 표절이냐는 판결, 유사한 소송 사유에 전혀 반대의 결론으로 한 쪽은 돈 받고 한 쪽은 명예훼손으로 오히려 돈 내야한다는 판결, 특히 이 판결은 만화가라는 그룹이 유난이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불러왔다. 그래서 “한국 만화가들은 집에 힘 센 형도 없나?”라는 자조 섞인 글도 썼다. 이런 반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법과 대중의 시각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국 판례(대법원 1990.2.27. 선고 89다카4342 판결)는 표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단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표절은 원저작물을 그대로 전제 내지 전용(일반적으로 복제)하거나 원저작물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서 별개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판시한다. 확실하지 않으면 아니라는 입장이다.

표절의 법적 판단을 또 다른 설명 방식으로 하자면 이렇다. 표절은 법률상의 개념이 아니라 관습적 표현이다. 즉 정신적 창작물에 대한 절도행위로서 사용되어 왔다. 표절은 타인의 저작물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또는 변경된 형태로 마치 자신이 창작한 것처럼 가장(假裝)함으로써 관객들이나 독자들이 그것을 새로운 창작품으로 알게 되는 것으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합법적인 인용이었다고 해도 저작권법 제34조, ‘출처의 명시’ 규정으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면 표절이다. 표절행위는 불법행위로 민사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발생한다. 무단 전제 경우는 저작권법 제16조(저작재산권을 부당하게 침해), 무단 전용은 동법 제13조(동일성 유지권), 동법 제21조(2차적 저작물 등의 작성권 침해여부)가 해당 된다. 이러한 법과 대중의 시각 차이를 구분하면 몇 가지 방향으로 볼 수 있다.

가) 저작권법에 합법적 표절(?)의 범위가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제외한다면 불법적 표절이라는 말이다. 즉, 저작권법 25조에 보도, 교육, 비평, 연구용 등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으니 이 범위를 넘으면 표절이다. 물론 ‘정당한’이라는 단어가 숫자처럼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논란은 늘 따른다. 그래서 저작권 침해 관련 판결은 개별적이고 하나의 사례로 판단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베낀 부분이 있는지, 원작을 봤는지, 중간에 증언을 번복하는지, 베낀 부분이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체적 표현에 녹아 있는지 등을 따져서 ‘이 놈, 안되겠네?’라고 판단이 되면 표절한 사람으로 판결을 하게 된다.

나) 한편에서 일반 대중이 보는 표절의 기준은 들쑥날쑥하지만 법보다 더 포괄적인 것은 당연하다. 이 말은 법이 덜 엄격하다는 것이 아니라 표절 판정은 ‘확실 할 때’만 한다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실질적 유사성’이다.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문장 또는 대사가 같거나 아니면 전체 스토리의 구성이 같거나 둘 중 어느 부분이라도 실제로 동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까닭에 영화나 드라마, 가요 등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 숱하게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소송이 제기됐지만 국내 판결문에서 표절로 저작권 침해를 확인해 준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 많지 않다고 완곡하게 말했지만 기실 2건에 불과하다. 김수현 작가의 파워가 아니었더라도 승소 판결을 받을 만 했던 [여우와 솜사탕]의 [사랑이 뭐길래] 표절 건, 드라마 [연인]의 자전적 소설 표절 건이다. 이 같은 결과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엄청 베낀(이 단어도 모호하다) 작품에 대하여 표절로 판결하는 성향과 함께 법적 소송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여론에 승복하여 침해자가 자진하여 항복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드라마 [청춘]이 일본 드라마 표절이란 비난이 일자 바로 종영하는 것이나 드라마 [라이벌]이 사후 판권 계약 운운한 것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또한 표절은 소재보다 표현을 따진다. ‘곰 세 마리가 삼총사가 되어서 백설공주를 구하려다가 톰 크루즈에게 선수를 빼앗겨 엑스맨으로 변신하여 싸운다(?)’라는 멋진 스토리가 있다고 하자. 이건 ‘소재’라 뭐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곰 세 마리가 빨간 팬티를 겉으로 입는지, 톰 크루즈가 5명의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지, 엑스맨의 능력들이 같은지, 변신할 때 어깨동무를 하고 두 바퀴 반을 도는지 등의 구체적 ‘표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러므로 비슷하다는 의혹이 모두 표절 판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 또한 베낀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기도 한다. 100쪽 짜리 소설에서 등장인물 하나가 “야 임마! 똥물에도 파도가 있어!”라는 대사를 날렸는데 이것이 다른 소설에 있었다고 치자. 그러면 표절인가? 아니다. 같은 대사이기도 하지만 워낙 겹침의 분량이 미미하고 혹은 우연의 확률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등장인물이 37층 높이의 빌딩 옥상에서 적에게 총을 세발 쏘면서 이 대사를 한 것이 원작 소설이고 베낀 소설이 그것마저 동일하게 묘사했다면 의심 백배, 표절 확률 백배가 되므로 문제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얼마나 베꼈느냐는 ‘분량’의 문제는 우연의 겹침을 제외하고 2차 저작물의 창작 활성이라는 측면에서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음악의 몇 소절 이상 겹침은 표절이라는 비교적 명료한 기준과 달리 문학 작품에는 몇 줄이라는 기준이 없어 늘 문제를 발생시킨다. <전략 삼국지> 표절 사건에서 60권이 넘는 두 만화를 컷 단위로 계산하여 비슷한 컷이 몇 개냐는 자료까지 나온 것은 이 같은 분량의 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만화를 비롯한 글, 그림, 영상 작품에 있어서 분량에 상관없이 표절 의혹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보통 수십만 개의 작품에서 하나씩 뽑아 낸 표절이 아니라 한 작품 또는 몇 작품에서 뽑아 낸 표절이므로 베낀 것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많고 적음이 법적 기준이라지만 개개인 또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것을 베낀 것이 명확함에도 조금이라고 해서 패소판결을 받을 때는 그 억울함이 심장 굽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을 팰 때 한 대를 때리던 486번을 때리던 폭행은 폭행이다. 남의 것을 베낄 때 한 장을 베꼈건 48쪽을 베꼈건 베낀 것이 드러나면 그건 표절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그 처벌 수위는 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한 대냐, 486대냐의 구분으로 폭행 자체가 되고 안 되고의 판결은 여전히 감정상 수용이 어렵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고문 “훔친 쌀을 내 쌀에 섞으면 내 것이랴?”를 참고 바람.

라) 게다가 법은 저작권법의 취지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 취지는 저작권의 보호보다 저작물 또는 저작문화와 산업의 활성화이다. 달리 말하면 저작물의 이용을 활성화하자는 것인데 표절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넓게 적용하여 판단한다면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표절 의혹 제기에서는 질러 놓고 보자는 의도의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왕의 남자>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대사 하나가 문제가 됐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대사 하나를 문제 삼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은 결국 기각됐다. 질러 놓고 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영화에서 대사 하나를 걸어 상영을 금지한다는 요구는 법이 수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법의 한계이기 이전에 법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3. 법이 보는 표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의문

남의 것을 가져다 쓸 수 있는 표절에도 합법적 범위가 있음을 앞에 열거했다. 쉽게 풀어보자면 겹따옴표를 찍으면 ‘인용’, 원작자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려서 쓴 것은 ‘오마주’, 원작을 비틀어서 웃기게 만들면 ‘패러디’, 계약을 맺어 소재로 쓰면 합법적 ‘2차 저작물’, 이 중에 아무것도 안하고 써먹으면 ‘도용(盜用)/표절(剽竊)/모작(模作)’이라 한다. 이 경우는 다른 사람의 저작물 일부를 무단히 사용하여 자신의 저작물인양 발표하는 것이므로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최근 사례 중에 [바람의 나라]에 참고할 만한 분쟁은 어느 시골 의사의 이야기를 부분 이용한 문학상 수상작 사건이었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작가의 대응에 주목해 보면 [바람의 나라]와 유사한 진행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뭔 소리야? -보지도 못했어 – 봤지만 그냥 버렸어 – 조금 쓸려고 하긴 했지 – 그 정도 쓴 게 뭐 어때서?’라는 버전 업을 말한다.

이번 원고 패소 판결문 전체를 아직 받아보진 못했지만 기사란 것이 판결문이 길고 어렵게 작성되어 있어도 그 주된 내용을 뽑아 쓴 것이므로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요약 기사를 근거로 본다면, “두 저작물은 개략적 줄거리와 캐릭터의 성격에 있어 일부 유사점이 있지만 원고의 작품은 이미 22권 단행본으로 출간된 완전한 형태의 만화인 반면 피고의 저작물인 시놉시스는 최종 저작물이 아니라 투자 유치를 위해 앞으로 저술할 드라마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개요를 정리한 것으로 최종적이고 만족적인 어문저작물로 보기 어려워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또한 “설령 피고의 시놉시스가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은 어느 한 작가의 저작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을 사용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이 판결을 심하게 비틀자면 나는 이렇게 들린다. 생뚱맞겠지만 이해 바란다.
“한국과 스위스 전의 개략적 줄거리와 스위스 선수들의 성격에 있어 핸들링과 오프사이드 등 일부 나쁜 짓이 있지만 어쩌다 맞은 것이고 어쩌다 넘어가 있던 문제로 반칙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설령 심판의 어처구니없는 판정이 16강 탈락을 가져왔다고 해도 신체적 움직임은 한 나라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공통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동일하게 있는 팔 다리를 스위스 선수가 사용했다고 해도 반칙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틀어진 것일까?

가) 공공의 역사적 사실 VS 창작

[바람의 나라] 소송 핵심은 [태왕사신기]에 등장하는 현무, 청룡, 주작, 백호 등 4신수가 인간의 형태로 광개토대왕을 돕고, 신시를 향해 가는데 이것이 김진 작가의 고유의 설정이며 창작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공의 역사적 사실인 ‘광개토대왕’이 아니라 창작을 문제 삼은 것이다. 작품 전체에서 역사적 사실 부분과 창작 부분의 공존을 %로 분할하기 어렵겠지만 역사학자들은 어느 것이 정사와 야사이며 어느 것이 창작된 부분인지 구분할 수 있다. 그 창작이라는 부분에 있어 원래 현무, 청룡, 주작, 백호는 4방위를 수호하는 신수이지 왕을 수호하고 왕권을 높이지만 왕의 징표는 아니다. 그런데 [바람의 나라]는 4신수가 대무신왕을 돕는 인간형상의 신으로 처음 만들었으며, 이를 [태왕사신기]가 그대로 사용하고 [태왕사신기] 시놉시스에서 무휼의 대사와 무휼의 전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이다.
이에 대하여 송지나 작가는 [태왕사신기]의 신시와 사신의 개념이 [바람의 나라]에서 주장하는 부도나 신수의 개념과 다르다고 반박했고,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바람의 나라]는 당시 고구려의 영토 안에 있던, 현재 강원도 영월에 있는 ‘태백산’으로 해석하였고, [태왕사신기]에서는 환웅이 신시를 연 태백산을 중국 대륙에 있는 ‘태백산’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두 작품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태왕사신기]에는 사신이, [바람의 나라]에는 신수가 등장하는데, [태왕사신기]의 사신은 인간의 몸으로 환생을 거듭, 자신의 주인인 왕을 찾고, 왕을 보필할 동료들을 찾아 사신으로서의 자각을 느끼게 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고는 ‘땅의 군주’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시스템이나 [바람의 나라] 신수는 각기 다른 주인을 모시는 다양한 형태의 존재이므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쟁점에서 저작물의 정의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저작물의 정의는 무엇인가? 문학, 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을 말하며 또한 그 내용에 ‘창작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저작물의 요건이다. [바람의 나라]는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만화 작품이며 흔히 말하는 학습만화도 아니다. ‘적확’한 창작물로서 창작 부분이 유사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지 역사적 배경을 같이 썼다고 소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공의 역사적 사실 운운은 이해 불가.

나) 접근성
‘접근성’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베낀 사람이 “원작을 봤을까? 안 봤을까?”의 정황을 따져보는 분야로 저작권 침해 판단의 주요 기준이기도 하다. 따라서 접근성은 흔히 두 가지 측면에서 판결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봤다’는 사실 입증이 되어 표절 인정으로 기울어지거나 ‘안 봤다고 했다가 봤다고 말을 번복’하는 경우 범죄자의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으로 인정되어 표절자로 인정되기 쉽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이 사건을 보자. 본문 서두의 ‘사건의 경과’에 인용한 정리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김진 작가와 KBS는 [바람의 나라] 드라마 제작을 구두 협약하고 실무 단계로 이전하려던 차에 김종학 프로덕션이 김진 작가에게 소재를 구하게 된다. 이 소재를 두고 김진 작가는 ‘내용이 같은 작품이 아니다’라는 확인을 받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음. 그러나 [태왕사신기] 결말은 [바람의 나라]와 같았고, 무휼이 도달하지 못했던 신시를 광개토대왕이 이루는 내용은 프로덕션 측에서 김진 작가와 접촉하기 전까지는 없었던 내용이 접촉 후에 추가된 상황이다.
반면 송지나 작가는 김종학 PD로부터 “광개토대왕 같은 이야기 한번 해보자”라는 말만 들었을 뿐 프로덕션 측으로부터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 일부를 차용하여 전달 받은 적도 없고, 또 자신도 차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2005년 4월 22일, 송지나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접근성 자체를 부인함. 즉 “[바람의 나라] 김진 작가를 만났다는 소문에 대해,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직원이 [바람의 나라]를 직접 드라마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만났고 몇 가지 문제로 결렬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태왕사신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태왕사신기] 작가 쪽에서는 만났다는 사실조차 인터넷에 유포된 글들을 보고 알았다고 주장함. “김진 작가는 많은 내용을 알려주고 결말까지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바람의 나라] 결말은 대무신왕 무휼이 이루지 못한 일을 광개토대왕이 이룬다는 것뿐이고, 그 외 많은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안타깝게도 알 수가 없었다.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라고도 주장. 또한 “[바람의 나라] 만화와 게임을 통해 ‘표절했다’라는 소문이 있는데 게임 했다, 만화도 봤다, 안 봤다고 한 적도 없다. 전(全)편을 보지 못했다. 한두 편 보다 덮었다라고 답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안 봤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라고 인터넷에서는 소문이 났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상당히 난감한 부분이다.”라고 주장함. 추가적 설명으로 송지나 작가는 “[바람의 나라] 만화책을 한두 권 보다가 어려워 책을 덮은 바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거 SBS TV [카이스트]를 할 때에 카이스트 출신 벤처 사업가인 게임 회사 ‘넥슨’의 사장을 소개 받은 게 인연이 되어 ‘넥슨’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한동안 즐기다가 원작이 만화임을 알고 몇 권 구해서 읽으려 했으나 등장인물과 구성, 배경 등에 대해 어려움을 느껴 한두 권 읽다가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

그러나 송지나 작가가 장황하게 변명한 접근성 부인은 결국 표절 침해자가 일차적으로 하는 유아적 행위에 불과했다. 즉, 송지나 작가 측이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불성립 선언 이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서 조차도 [바람의 나라] 작가와 [태왕사신기]의 제작사인 김종학 프로덕션의 사전 판권구매 접촉에 따른 자료 접근 개연성과 의거성만 인정했을 뿐, 표절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2004년 [태왕사신기]의 집필에 들어간 이후 김진 작가 측이 저작권 분쟁조정 신청하자 그때서야 전(全)권을 다 읽은 것으로 드러났다. 흔히 법정에서 살인범들을 대질 심문할 때 ‘저 넘은 처음 보는 놈이예요.’라고 했다가 외통수에 몰려서야 결국 ‘우린 동거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과정이다. 정말 ‘조사하면 다 나와!’는 개콘용 대사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번복은 그 번복자가 한 다른 증언의 신뢰도를 상실시키므로 불리한 정황으로 재판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 작은 듯 싶지만 이 번복으로도 의혹은 진실해 보일 수밖에 없다.

나) 실질적 유사성
법적으로 표절의 기준을 실질적 유사성이란 용어를 쓴다. 단지 유사하거나 비슷한 게 아니라 상당 부분 실제 유사해야 한다.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첫째 내용이 달라도 완전 문장이나 대사가 동일한 경우. 둘째 대사나 문장이 달라도 전체적인 스토리 구조 등 모든 것이 동일한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이 만화라면 좀 더 다양한 참고 사항이 있다. 말풍선의 대사부터 컷 나누기를 통한 장면 연출, 캐릭터의 동작 연출과 모습 자체 등 텍스트 위주의 창작물보다 참고할 것들이 널려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앞서 언급한 차이점처럼 법의 ‘실질적’이라는 한계로 인하여 대중적 시각과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완전히 베껴야 표절이라고 보는 것 아니냐는 볼 멘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 차이는 크다.

게다가 본 사건은 완결된 드라마 대본을 증거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몇 쪽 짜리로 기획서에 포함된 시놉시스를 대상으로 했다. 이에 대하여 법이 판결한 것이 “피고의 저작물인 시놉시스는 최종 저작물이 아니라 투자 유치를 위해 앞으로 저술할 드라마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개요를 정리한 것으로 최종적이고 만족적인 어문저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소송 측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오히려 정 반대의 이유 때문이다. 그 간단한 시놉시스에서 유사성이 널려 있어 문제를 삼았는데 개요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니 오죽하겠는가? [바람의 나라]를 두 장의 개요로 설명할 수 있다. 그 개요를 이 시놉시스와 비교해 보면 되는 것이다. 된장을 찍어 봐야 아는 사람도 있지만 창작물의 개요만 보고도 표절이 의심스러울 정도라면 이것은 전체 대본이 완성된 상태의 의심보다 더 심대하다고 봐야 한다. 또한 대본도 안 나왔는데 무슨 표절이냐는 항변은 역설적으로 대략적인 줄거리만 가지고도 비슷한 게 나올 정도면 오죽 베꼈느냐는 삿대질을 감수해야 옳다.

한편에서 시놉시스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법의 틀에서 보자면 날카로운 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느슨한 부채로 공격한 것과 같아서 아쉬움이 있다. 시놉시스의 문제를 공방하는 과정에서 대본은 자연스럽게 문제를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진행 과정에서 김종학 PD는 ‘시놉시스와 전혀 다른 대본이 완성되었으니 딴 소리 하지 마세요.’라는 요지의 인터뷰를 기사에 발표했다.

어떤 놈이 어떤 아이를 유괴해 갔다고 치자. 목격자의 말이 개략적으로 눈이 세 개이고 피부가 빨간 색 아이라고 증언했다 치자. 그랬더니 눈 세 개와 빨간 피부를 유전적으로 갖고 있는 유일한 가족이 아침에 행방불명된 내 아이가 맞다고 주장했다고 보자. 그랬는데 경찰이 하는 말, “전체적인 몽타주가 안 나온 개략적인 건데 그것으로만 당신 아이라고 판단할 수 없으니 좀 더 기다려 보슈, 어디서 놀고 있겠지.”라고 했다면 당신 기분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나서 인질범이 수사를 호도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정보를 제공한다고 치자.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한다. “머리가 하나이고, 다리가 두 개이고, 코는 하나고, 머리카락은 검고, 옷은 흰색 반팔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흰색 운동화를 신었구요, 에 또 키는 170cm에 호리호리했어요.” 개략적인 것이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목격자 진술이다. 물론 중요한 사실을 호도하고 가리기 위한 증언이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보니 개략적 목격담이 흐려진다. 인질범의 비유가 생뚱맞을 수 있지만 실질적 유사성 판단에 있어, ‘개략적 시놉시스로 뭔 소리냐?’는 판단 근거는 역시 이해 불가에 감정 폭주감이다.

4. 잔상(殘像)

기획서에 표절 제기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니 실제 대본에서는 그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여 창작될 여건이 마련된 셈이라 아쉬움이 크다. 실제 배국남 기자는 기사에서 “방송도 되기 전 무분별하게 제기된 [태왕사신기]의 표절 의혹은 무분별하게 제기되고 있는 표절 의혹의 문제점을 드러내주는 단적인 사례다.”라고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 분노하기 이전에 냉정하게 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민과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같은 아쉬움은 판결문에 나타난 문장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가 이 시놉시스를 놓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조금 성급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내용이 눈에 밟힌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창작물은 순수성과 독창성이 생명이다. 반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작가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표절의 위험과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하느님이 자신들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한 것이 표절의 시초라는 우스개 소리처럼 앞으로도 표절은 더 다양한 관계에서 반복될 우려가 크다. 저작권법의 취지대로 저작물 활성화의 수단으로 조금 베끼느라 완전히 베낀 티가 나지 않는 작품에 대한 표절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지만 동시에 표절로 찢겨지는 피해 작품들의 보호 수단이 균형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작물 활성화의 또 다른 동인인 창작 욕구를 키울 수 있다.

[바람의 나라]는 다시 바람이 불까? 불게 하려면 어떤 짓을 해야 할까를 울분이 아니라 대응으로, 법적 수단으로 찾아야 할 때다.

2006. 7. 3.
주 모씨.

노파심에 사족)
판결문 나왔을 때 잠깐 포스팅 소재가 되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가 법에 있다면 그 대응도 대법원 판결까지를 고려한 장기전이 되어야 하고 법의 판단 잣대를 고려한 소장 작성이라야 한다. 심판이 편파적일 때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예 깨끗하게 이겨 버리면 되잖아?”
물론 쉽지 않은 말이지만 이 수단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울분은 울분으로 머물 공산이 크다.

바람의 나라 패소 특별대책위
쥬피터(http://jumosee.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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