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시 존스와 홍콩무협영화의 관계를 알아보자!

많은 이들에게 좋아하는 홍콩 영화를 꼽으라 물으면 첫 번째로 드는게 “정무문”이다. 그런데 같은 1972년에 개봉했고 제작은 약간 더 빨랐던 영화가 있는데 그게  “철인”(또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 두 영화는 영화 속에 퀸시 존스 음악을 그냥 가져다 썼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던 그 시절이라 그랬다고 생각된다. 사실 저작권이라는게 이슈가 된 건 요 몇 년 전이라는 걸 유념하자.

여튼, 이야기의 시작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NBC에서는 “아이언사이드”라는 제목을 단, 꽤 흥미로운 설정의 TV 드라마 시리즈가 시작된다.(2013년에 리메이크 되었다가 바로 망했다.) 샌프란시스코의 20년 베테랑 형사, Robert T. Ironside가 악당이 고용한 스나이퍼의 총에 맞아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악을 처단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과 불굴의 의지로 악을 처단하는 … 뭐 수많은 미국식 히어로물 영화와 코믹스에서 뻔하게 나오는 얘기이다. 어쨌든 이 드라마는 1975년까지 시리즈가 지속되었으니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테마 음악을 거장 퀸시 존스가 맡았다. Quincy Jones는 뭐 설명할 필요도 없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고도 넘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음악인의 진정한 큰 형님이라 할 수 있겠다. 1933년 생이신 형님은, 재즈 음악가로 특히 뛰어난 트럼펫터 이기도 하고, 팝 음반 프로듀서 / 작곡가 / 편곡자, 영화음악 작곡가 등등 팔방미인 그 자체다.

“아이언 사이드” 테마뮤직, 영화 “킬빌”에서도 들을 수 있다.

그는 전설적인 비브라폰 연주자인 Lionel Hampton의 밴드에서 19살에 데뷔했고, 23살 무렵부터 Dizzy Gillespie 밴드에서 연주자겸 편곡자로 활약을 시작한다. 1964년부터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코어 작곡을 시작했고, Sarah Vaughan, Frank Sinatra, Ella Fitzgerald, Dinah Washington 등의 앨범에서 편곡자로 맹활약 했다. 소울과 훵크를 재빨리 흡수하면서 트랜드 리더로 부상했고, Michael Jackson의 “Off the Wall”, “Thriller”, “Bad”와 ‘We Are the World’의 프로듀서로 더 할 나위 없는 명성을 누린다.

그렇다고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활약이 없었냐면 그것도 아니다. 퓨전 재즈의 한 장을 장식한 The Dude, 재즈 힙합이라는 장르를 연 Back On the Block, Q’s Jook Joint 로 재즈의 한계를 확장하였다. 작곡파트너 Bob Russell과 함께 아카데미 영화 주제가와 스코어 부분에 후보가 되면서 아카데미 영화 음악 관련 최초의 흑인 후보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퀸시는 재즈로 경력을 시작, 훵크와 소울, 팝, 힙합을 아우르는 음악 장르에 라이브 무대와 음반, 스크린을 오가며 매체를 가리지 않고 흑인 음악을 설파해 온 분이다.

중요한 건, 도대체 퀸시 존스 형이 맡은 미국 드라마의 음악이 왜 동시다발적으로 홍콩영화에 차용되었는가하는데 있다. 그 열쇠는 이소룡이라는 존재에게 있다. “그린 호넷”에 1년간 출연하면서 드라마의 인기와 상관없이 Bruce Lee라는 배우는 무술의 대가로 미국인에게 각인되었다. 그런 그가 가라데 선생으로 “Ironside” 1시즌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다. 출연 시간도 3분여뿐이었다. 그런데 부르스 리의 인기는 바다 건너 그의 출신지 홍콩에서 메가톤 급으로 불어갔던 것이다.

이소룡은 미국서 단역 혹은 조연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홍콩으로 돌아가 영화를 찍는데, 바로 “당산대형”이다. 대박인 것은 물론이고, 덤으로 그가 미국서 출연한 작품들도 홍콩을 휩쓴다. 그 중에 “아이언사이드”도 있었다. 일본 무술 선생이긴 하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 쿵푸, 가라데 등등의 무술은 다 그냥 동양 거였다. 그래서 브루스 리는 진지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한 무술 사범으로 드라마에 등장한다.

중국인의 도시지만, 영국의 소유였던 홍콩에서 미국 TV에 신비로운 무도인으로 등장한 브루스 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래서 덕분에 “아이언사이드”도 함께 떴다. 그냥 뜬 정도가 아니라 주제가까지 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사이렌 소리를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와 관악기와 타악으로 만들어진 박진감 넘치는 곡 전개까지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1981년 일본 부도칸 공연 실황

재즈 뮤지션 시절 퀸시 존스는 브라질 음악에 빠졌었고, 덕분에 다양한 라틴 타악기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했다. 동시에 선구적으로 신디사이저를 받아들였던 덕분에 그의 음악에는 기존 클래식 중심의 스코어 작가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정무문”에서 긴박감 넘치는 이소룡의 모습이 나올때면 퍼커션을 사용한 ‘Ironside’ 테마 음악의 일부가 수시로 등장한다. 나아가 정창화 감독이 홍콩 쇼브라더스 전속 감독으로 활동하며 만들었던 “죽음의 다섯 손가락 (Five Fingers of Death)”에도 그 음악은 수시로 등장한다. “Five Fingers of Death”는 “King Boxer”라는 제목으로도 상영되었고, 홍콩에서는 “천하제일권”이란 제목으로, 한국에서는 “철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쿵푸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철사장을 다룬다.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아시아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지금 봐도 그냥 재밌다. 다수 잔인한 장면이 있으나, 이 장면은 당시 분장력의 한계로 오히려 재밌기까지 하다. 거칠지만 그래서 힘이 느껴지는 풀샷-클로즈업 샷을 오가는 몽타주 기법은 꽤 박진감 넘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조지호가 철사장을 시전 할 때, 손가락이 벌개지면 등장하는 음악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Kill Bill”에서 우마 서먼이 위험에 맞닥뜨리거나, 중요한 기억이 스칠 때 등장하는 “삐이뾰옹 삐이뾰옹” 하는 음악이 바로 조지호 – 나열이 철사장을 시전하기 시작할 때 등장하는 음악이다. 물론 원곡은 퀸시 존스가 만든 “Ironside’다. 그런데 재밌는 건 영화 “킬빌”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이 음악을 삽입하며 머리 속에 떠올린 것은 미국 드라마 “아이언사이드”가 아니라 홍콩 영화이자 한국 감독 정창화가 연출한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이었다.

그 이유는 영화 “킬 빌”이 시작할 때, 배급사 로고에 미라맥스 다음으로 신기한 회사 로고가 뜨는 걸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쇼브라더스의 그 유명한 “SHAW SCOPE” 로고가 영화 맨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쇼브라더스는 “킬 빌”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준 쇼브라더스의 1960,70년대 영화에 대한 오마주의 표시로 영화 앞에 쇼브라더스의 로고를 넣은 것이죠. “정무문”은 골든 하베스트,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쇼브라더스 제작 작품입니다. 같은 음악이 “아이언사이드”, “정무문”,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모두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의 오마주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게로 향합니다. 또 한 가지,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이 꼽은 10편의 영화 중 하나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듭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2005년 무려 칸 영화제에서 칸 클래식으로 선정되어, 칸 영화제 기간 동안 재상영되었고 정창화 감독의 무대 인사 및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퀸시 존스는 자신의 곡을 무단으로 퍼간 1972년 작품 두 편 어디로부터도 저작권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죠.

퀸시횽아는 쿨 가이!

실은 두 작품 모두 퀸시 존스가 드라마 “아이언 사이드”에 넣었던 스코어 트랙을 그대로 쓴 것은 아닙니다. 당시로선 그 음원을 구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겠죠. 그래서 홍콩에서 재녹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리지널보다 훨씬 더 화끈한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퀸시 존스는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에 절대로 한 곡에서도 내지르기만 하지 않거든요. “Ironside”도 초장에 사이렌 소리를 필두로 냅다 내지른 후, 바로 전자 피아노와 플루겔 혼, 스네어로 숨을 고른 후에 다시 관악이 터지며 완급을 조절합니다. 그런데, 이 곡을 연주하는 홍콩 연주자들은 다릅니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 오프닝 시퀀스 1분이 모두 퀸시 존스의 곡을 그대로 가져온 건데요, 처음부터 관악과 심벌 소리로 끝까지 내지릅니다. 사실 1970년대 류복성 아저씨의 “류복성과 신호등”을 포함해서 몇 장 없는 한국 재즈 음반을 들어봐도 비슷한 현상이 보입니다. 미국 재즈의 스탠더드를 연주하고 있는데, 원곡에서 들을 수 있던 풍부한 소리는 다 사라지고,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음악이 되는거죠. 이건 연주자와 편곡자가 달라서이기도 하고, 녹음 기술의 한계로 보이기도 합니다.

향숙이의 추억!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경우에도 원곡이 가진 풍부한 전자악기와 베이스 사운드를 살리기에는 홍콩의 녹음 기술이 그닥 뛰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덕분에 좀 더 화끈한 음악이 된 장점이 있었다고 봐야죠.  퀸시 존스는 훗날,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오마주를 바친 타란티노 덕분에 “Kill Bill”의 OST에 “Ironside”를 실으며 저작권료를 챙길 수 있었답니다. ^^

그러니까 세줄로 요약하자면,

  1. 퀸시 존스는 전혀 의도치 않게 홍콩무협영화에 자신의 음악을  증정(?)
  2. 그 결과 이소룡이라는 시대의 맹주가 보여주는 멋진 액션을 음악으로 뒷받침하고,
  3.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라는, 아시아 영화 최초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쿵푸 액션 영화의 뒷배를 확실히 봐준 셈이 되었다.

끝.

마이클 잭슨, 그 전설을 추억하며 …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그 이름은 단순히 팝음악의 스타라는 이미지를 넘어서서 한 시대와 그 문화에 대한 icon이자 이제는 전설의 자리에 놓여지게 되었다.  지난 6월 25일 우리 곁을 떠나간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전설의 발자취를 추억해보고자 한다.

마이클 잭슨이 전설로 자리잡게 된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음의 세 가지가 가장 주요하게 작용하였다고 본다.

1. 마이클
두 말 할 것도 없이 마이클 그 자체가 참으로 뛰어난 엔터테이너였다.  팝계의 역사를 통해 가창력이나 춤 솜씨가 뛰어난 이들은 무척이나 많았지만, 마이클 처럼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하여 펼쳐보여준 이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의 가창력은 사실 영혼을 울리는 떨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가 추구하는 그루브(Groove)에 최적화되었고, “Off The Wall” 앨범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발휘한 작곡능력 또한 그가 발표했던 수 많은 명곡들을 통해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그의 춤사위는 논쟁의 여지가 별로 없이 최고라고 불리운다.


아, 그리고 마이클은 공인된 발명가이기도 했다.
뭔 얘기냐하면 … 그 뭐냐 “Smooth Criminal”에 나오는 몸을 기울이는 동작에서 신는 신발을 특허로 등록하였다는 거다.

못 믿겠으면 여기를 누질러 보시길.

2. 퀸시 존스 (Quincy Jones)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 하였듯, 잭슨파이브 (Jackson 5) 시절 그저 재능있는 어린 소년이었던 마이클이라는 구슬을 정성껏 갈고 닦고 꿰어서 전설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가장 큰 조력자는 누가 뭐래도 퀸시 존스이다.

퀸시 존스가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려면 무척이나 길어지는데 무쟈게 줄여보자.
1933년생인 그는 열여덟살 때에 트럼펫 연주자로 재즈 음악계에 입문한다.  이때의 모습은 영화 “레이(Ray)”에서 묘사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찾아보시길.
그리고 1962년에 그의 가장 큰 히트곡이랄 수 있는 “Soul Bossa Nova”를 발표하는데, 이 노래는 영화 “오스틴 파워즈”의 테마음악 등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어서 그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곡이다.
이후 그는 음반기획과 제작에 전념하였는데, 1981년에는 “The Dude”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여 “Ai No Corrida” “Just Once”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퀸시와 마이클의 만남은 1979년 발매작 “Off The Wall”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Thriller”와 “Bad” 앨범까지 그들의 조화로 이루어진 결과물들은 음악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둘은 이런저런 이유로 더는 함께 작업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시 존스가 마이클 잭슨이라는 전설을 이루는데 참으로 큰 역할을 하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3. 기타 (Guitar)
수록곡 전체가 빠짐없이 대히트를 기록한 앨범 “Thriller”에는 당시 댄스음악을 경멸(?)하던 이들까지 열광케한 곡이 있었으니, 그 곡은 바로 “Beat It”이다.  많은 이들이 그 곡의 뮤비에서 보여지는 안무에 감탄하고 따라하기 바쁠때 음악 좀 듣는다거나 실제 연주를 하는 이들은 춤사위에 어우러지는 기타 솔로와 곡 전체를 리드하는 리프에 말 그대로 놀라자빠졌더랬다.

Eddie Van Halen의 화려한 솔로와 Steve Lukather의 강렬한 기타플레이가 곡 전체를 휘감고있는 “Beat It”은 팝음악계에 댄스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Funk 리듬과 헤비메탈기타에 맞춰 멋드러지게 댄스 루틴을 전개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Off The Wall” 때 부터 이러한 사운드의 실험은 시작되었고, “Thriller”의 대히트를 통해 기타는 마이클 잭슨표 음악의 중추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마이클의 사운드는 일관되게 기타를 앞장세웠고, 기타를 사용하지 않은 곡에 있어서도 다른 악기를 통해 매혹적인 리프의 반복과 강한 타격음을 내세웠고 라이브에서도 마이클은 기타를 주축으로 사운드를 구성하였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기타리스트를 들자면 Eddie Van Halen, Slash, Larry Carlton, Steve Lukather 등 쟁쟁한 이름이 즐비하고 라이브에서는 Jennifer Batten 등이 활약하였다.

이쯤에서 마이클의 라이브를 하나 보도록 하자.

<전설의 발자취>

마이클 잭슨의 디스코그래피를 정리해 보도록 하자.
여기에서는 잭슨5의 앨범은 제외하도록 한다.

1. Got To Be There(1972)
마이클의 솔로 데뷰 앨범으로, 14세의 그를 잭슨5의 재간동이에서 탈피해 어엿한 가수로 인식하게 만든 앨범이다.


대표적인 수록곡은, “In our small way” “Got to be there” “Ain’t no sunshine” “Maria” 등인데 이 중 특히 “Maria”는 국내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서 예전에 인순이도 자주 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아래를 누질러 들어보도록 하자.


2. Ben(1972)
사람을 물어 죽이는 쥐새끼에 관한 영화 “Ben”의 주제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앨범.  대표곡은 “Ben”과 “In our small way”이다.

예나 지금이나 쥐새끼가 말썽이다. 하루 빨리 박멸하세~

“In our small way”는 “나무자전거”의 “강인봉”이 어린 시절 “작은별 가족”으로 활동할 때 “나의 작은 꿈”이라는 노래로 번안해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참고로 “Ben”과 함께 마이클의 어린 시절 대표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I’ll be there”는 잭슨5의 1970년 작 “Third album”에 수록되어 있다.

역시 아래를 누질러 들어보자.


3. Music & Me(1973)
마이클이 변성기를 맞는 시기에 나온 앨범으로 대표곡은 “Happy”와 “Too young” 등이다.


아래를 누질러 들어보자.


4. Forever, Michael(1975)
마이클과 잭슨5의 모타운 레코드 시절을 마감하는 앨범.  대표곡은 “We’re almost there”와 “Just a little bit of you”이다.


이 앨범 이후 그의 활동은 잠시 소강기에 들어간다.

아래를 누질러 수록곡 중 하나를 들어보자.


5. Off The Wall(1979)
마이클 잭슨이라는 전설을 잉태하게 된 앨범.  이전까지의 마이클은 그저 노래 잘부르고 춤 잘추는 곱상한 청년으로 인식되어왔는데 이 앨범은 마이클을 진정한 스타로 그리고 향후 전설을 이룰만한 뮤지션으로 탈바꿈 시켜주었다.


퀸시 존스와의 첫 작품으로 마이클 잭슨표 음악이 탄생하게 된 계기를 만든 이 앨범의 대표곡은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와 “She’s out of my life”,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Rock with you” 등이다.

그럼 아래를 누질러 그루브라는 게 뭔지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그 노래를 들어보자.



6. Thriller(1982)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 노래나 듣자 … 아니 보자!

7. Bad(1987)
팝음악계 사상 근접하는 기록조차 찾아 보기가 힘든 대성공을 거둔 전작 “Thriller” 이후 5년 만에 나온 앨범.  이 앨범서부터 마이클은 앨범 제작에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가고자 시도했고 결국 이 앨범이 퀸시 존스와의 마지막 작업이 된다.


전작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둔 이 앨범 역시 대표곡을 고르기가 힘들 정도이지만, 영화 “Moonwalker”에서 나온 장면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곡을 들어보도록 하자.


8. Dangerous(1991)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200 앨범챠트 1위를 차지한 앨범.  퀸시의 영향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만들어진 앨범이라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이전의 작품들보다는 산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마이클 잭슨의 특유의 음악으로 가득찬 수작.


대표곡은 “Black or White” “Remeber the time” “Heal the world” “In the closet” “Will you be there” 등등등등등 …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로 인해 더욱 인상깊은 그 노래를 들어보자.


9. HIStory(1995)
히트곡 모음과 정규앨범을 합친 더블앨범.  이 앨범의 발매와 동시에 수록곡과 뮤직비디오를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빚어졌고 노골적인 반(反) 마이클 정서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특히나, 미국 내에서는 이 앨범 수록곡인 “They don’t care about us”와 관련하여 “Jew me”라는 가사를 둘러싸고 유수의 언론에서 비판기사를 게재하는 등 무척 시끄러웠다.  마이클 사망 전 마지막 동영상으로 공개된 리허설 장면에서 부르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기도 하다.

논란 끝에 변경된 버전 이전의 오리지널 버전을 가사와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10. Invincible(2001)
이 앨범이 결과적으로 마이클의 마지막 정규앨범이 되었다.  Babyface와 R. Kelly 등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  무난하다는 평을 듣는다.


대표곡은 “You rock my world”와 “Butterflies” 등 …


여기까지다.
마이클 잭슨, 그 전설에 대한 추억을 재즈 그룹 “윈터플레이”의 “Billie Jean”을 들으며 마무리하도록 하자.


[MBC ‘음악여행 라라라’, 2009년 5월 11일 방송]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