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자의적 불감증의 시대를 향해 쓰다






이창동 감독의 다섯번째 영화. 논란이 될 만한 내용과 관점을 다루기는 하되 비교적 대중적인 화법을 견지해오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2007년작 <밀양>과 특히 이번 <시>를 통해서 비교하자면 거의 순수 문학에 가까운 연출 스타일로 변모하고 있음을 – 서정시나 풍경화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 – 확인시켜주고 있다.

영화의 소재와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으면서도 작가로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되도록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자칫 이런 훌륭한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적어지게 될까 싶은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몇 명의 가장 뛰어난 우리나라 영화감독들 가운데 작품을 통해 다루는 내용과 주제의식에 있어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이가 바로 이창동 감독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시>는 어린 여중생의 죽음에 관해 시 한 편을 남기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늘그막에 시 문학에 심취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해서 언듯 인생과 예술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예술가 영화 쯤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비극적인 사건에 연루된 범죄 행위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해 묻는 매우 민감한 주제의 작품이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개봉한 이 작품을 놓고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작품이라 생각해보는 것 역시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같은 주에 개봉한 <하녀>(2010)에서 은이(전도연)가 복수의 방법으로써 선택했던 그것 역시 두 영화가 동일한 시대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녀>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했다면 <시>는 그 안에서 마취된 상태로 살고 있는 우리의 양심과 윤리 의식을 일깨운다. <시>에서 양미자(윤정희)가 정물이 아닌 자살한 소녀에 관한 시를 남겼듯이 이창동 감독은 이 시대가 죽음으로 몰고간 누군가에 관한 영화를 만든 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사람이나 그를 죽게 만든 다른 이들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런 사건들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태도에 관한 영화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죽은 여중생에 관해 알고 싶어했던 미자가 사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매우 복잡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는 영화의 설정과 전개는 내가 직접 관련되지 않은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 쓰기에 몰두하느라 죽은 여중생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도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돌아나선 미자가 결국 자신의 시작 노트를 통해 강 노인(김희라)과 지극히 현실적인 필담을 나누게 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시>에는 누군가를 죽게 만든 이들과 그런 잘못을 덮어버리려고 애쓰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당장의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사람들의 속물적인 행동들 속에서조차 삶의 진실을 발견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밀양>에서 확인되었던 바다. <시>는 ‘그들의’ 무감함을 비판하기 보다 ‘우리가’ 다시 살려내야 할 도덕적 감각을 일깨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다.











에필로그처럼 들려지는 양미자의 시, “아녜스의 노래”가 진정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것이 순간적인 감상을 제대로 포착해낸 솜씨있는 언어의 조합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감각을 일깨우던 미자가 마침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낸 결단을 관객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중생 박희진(한수영)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다시 그녀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러고 보면 영화 <시>는 병원에서 처음 박희진의 죽음에 관해 알게된 미자가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여중생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감정을 이입하다가 마침내 그 입장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미자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던 손자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이었다. 세상에 아파트 단지에서 한가롭게 배트민턴을 치는 장면 하나가 이토록 보는 이의 가슴을 뒤흔들 수 있다니. 그 자체로 놀라운 반전이기도 했지만 등장 인물의 극도로 자제된 감정이 스크린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광경이기도 했다.

너무 완벽한 귀결이라 정나미가 떨어질 법도 하건만 그 순간의 터질 듯한 감정을 꾹 눌러버리는 연출 앞에서는 그저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내젓는 수 밖에 없다.



노년의 나이로 인해 치매 현상이 찾아온 미자에게 의사는 “처음에는 명사를 잊게 되고 그 다음은 동사”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느새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핑계로 자의적 치매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이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 마저 잊고 만다.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정치적 사건이나 작금의 상황과 굳이 연관지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하고 심지어 나름의 대가를 통해 가족으로부터 조차 잊혀지게 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매개로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완성해내는 삶의 불가역성과 예술의 상관 관계에 관한 영화로만 보여지더라도 – 그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달리 읽혀질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시>는 수준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을만 하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내고 시를 쓰는 예민한 감각으로 그 죽음에 관련된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기적은 오직 영화 <시>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영진공 신어지

 

시계추는 멈추지 않는다.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 방송을 보던 한 여대생이 자살을 한 것과 관련하여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유명인의 자살이 무슨 결과를 가져오느냐’라는 물음이다.


유명인은 기본적으로 감정이입이 잘 되는 대상들이다. 우리가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사람이 바로 유명인들이다.  그럼 그가 자살하면?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감정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일단 동정심.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했으면 자살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인간은 감정이입을 하는 동물이다. 공감과 감정이입은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이게 있다고 욕하지 말라. 그것이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끈이다.


두 번째로 죄책감. 내 탓은 아닐까? 나는 무관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죄책감 역시 사회화된 인간의 기본 특성이다. 양심의 증상이 죄책감이니까. 자살이라는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 혹은 사고에 대해서는 그것이 누구 잘못인지를 따지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놓는 것은 양심을 가진 이의 기본적인 행동이다.


최진실, 정다빈의 자살과 함께 네티즌들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 양심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노무현 욕 한번 안한 사람 있을까? 별로 없을거다. 그러니 다들 뜨끔하지. 노제에 나와 울던 사람들의 감정 중 절반 정도는 그 미안함이었을거라고 장담한다. 나도 그러니까…


물론 그 결론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지나친 죄책감도, 지나친 당당함도 어떤 면에서는 반대편 감정의 표현이다.


세 번째 분노. 어떤 이는 누군가를 그 책임자로 돌리고 분노한다. 역시 당연하다. 인간은 자기편을 들게 되어 있고,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공격성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안 그랬으면 역시 진작에 다 죽었다.


특히 이번 사안에서는 열받게 하는 일들을 참 많이도 벌려주더구만 …


분향소 부수고 영정 패대기친 거는 말할 나위도 없고,
경찰이 운구차 따르는 사람들 막는 거는 솔직히 … 그때 참으로 아슬아슬 했다.

”]

마지막은 자살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형성. 김남주가 들고나온 핸드백이 매진된다거나 하는 것도 비슷한 과정이다. 하지만 자살은 핸드백이 아니다. 자살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멀쩡한 사람이 자살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앞으로 “자살” 하면 “그 누구의 자살”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연상의 문제다.


어떤 이들은 최근 며칠 이 나라의 모습이 매우 당혹스럽거나, 황당한 모양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특히나 그가 죽기 전의 분위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이건 뭐 …


최근 읽은 가장 엽기적인 기사
,자그마치 중앙일보다. 그래 니들이 수고가 많다.


그가 그렇게 추앙될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특별히 대단한 개혁을 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기득권세력의 대행인 역할도 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의 재임시절 양극화는 더 무서워졌고,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거품도 커졌으며 주요 대기업의 경상이익도 최고치를 계속 갱신했다.반면에 노동자와 농민은 탄압당했다. 그는 기득권 세력에게 좋은 것을 많이 가져다주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이 항상 “사람사는 세상” 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변명하자면, 그가 따른 것은 사실 계급이 아니라 공화주의라는 원칙이었다.
그는 합의를 따랐고 당시의 규정을 준수했다. 그가 한 선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야당과의 합의, 혹은 여러 집단과의 타협의 결과였다. 그는 독단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불장군이라 불렸지만…)


대연정 제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공화주의 원칙의 최정점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엇박자로 놀고 한나라당은 맨날 깽판치니 차라리 한나라당에게 자리를 떼어주면 뭐든 잘 되지 않겠느냐는 지독하게도 원칙적인 생각의 결과였다. 물론 한나라당은 이를 거부하고 더 극심한 대여투쟁의 길을 갔다.


맨날 이런 식이었다.
그의 실체와 그에게 붙여지는 명칭은 대부분 어긋났다. 문제는 말이다. 바로 그가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기득권에게 충실하였지만 그들에 의해 처절하게 버려졌다.
그는 기득권자들에게 진심으로 대했지만 언제나 돌아온 건 경멸과 비난과 조롱이었다.


퇴임 후의 그에게 가해진 것이 기득권 세력의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해보자. 그가 무슨 보복당할 짓을 했던가?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오히려 진보세력이나 노동자 농민들이 그에게 공과를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기득권세력은 그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고향 마을에서 농사나 짓겠다는, 아무런 권력도 남지 않은 그를…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저 그가 밉다는 것 말고는 뚜렷하지가 않다.


명시적인 죄명은 6백만불. 우리나라 돈으로 (그의 재임기간 환율로 따지면) 50억 정도 되는 돈,
그것도 오랜 후원자에게 특별한 댓가성도 없이 그중 500만불은 투자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받아서 증거도 없는 돈 … 그게 유일하게 밝혀진 죄명인데

그것도 1년 반에 걸친 초고강도 수사를 통해 얻어낸 거다.


하지만 기득권세력이 뒷다마로 그에게 지운 죄상은 더 간사하고 추잡하다.


북한과의 야합(군비증강에 매달린 그가? 맙소사…), 좌파정책(양극화를 공고히 했던 그가? 아이고…),
비싼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죄(사실이 아니다), 심지어는 불륜(인터넷 뒤져봐라 찌질한 찌라시 몇개가 떠든다) …


생각해보면 여대생 불러놓고 시바스리갈 마시다가 부하 총맞아 죽은 누군가를 숭상하는 이들이 하는 짓이라는게 특히 웃기다.
여튼 그들은 미우니까 죄를 만든거지 죄가 있어서 미워한게 아니다.


솔직히 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뭐가 그렇게 미웠던가?


그가 고졸이라서? 그가 이너서클 구성원이 아니어서?
그가 거침없이 촌스러워서? 언행이 천박해서? … 탄핵사유도 그거였긴 하더라만 …


이 끝없는 미움은 더 갈데가 없는 극단이었다.
그리고 그 극단은 자기들의 근거가 얼마나 박약하고 비현실적이며 심지어 이념적인지를 드러내었을 뿐이다.


그를 내치고 짓밟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그들이 마침내 정권을 잡았으나,
안그래도 우파정책만 추진하던 그를 좌파라 비난하던 이들이었으니 이제 나라는 그냥 우가 아니라 점점 극우로 치달았다. 그를 천박하다 비난하던 그들의 언행은 … 차라리 말을 말자…-_-;;;


결국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준 이들은
바로 그동안 그를 씹고 씹고 또 씹어 넋이라도 있고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준 그들이다. 그의 지금 모습이 실제 그의 행적에 비하면 부당해보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당한 부당함이 그것을 모두 상쇄시키고 남는다.


이제 누가 그를 욕하겠나.


이제 누가 그를 더 죽일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그냥 그에게 부여된 자리를 인정하고 동의한다.
그럴만 한 자리다. 앞으로 당분간, 아마도 수십년간은 아무도 그 자리에 설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뭘 그리 새삼스럽게시리 …


우리들은 예전부터 미쳐있었다. 현 정부를 선택한게 우리들 아닌가.


예전에는 미친 사람들을, 돌아버린 인간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왕 돈 김에 더 돌게 하는 것도 신의 섭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80도 돈 인간은 180도만 더 돌리면 정상 아닌가.


덧. 굽시니스트의 분석에 동의한다.
역사를 좀 배워야 할까보다.
http://gall.dcinside.com/hit/7394

영진공 짱가

민주주의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1.
진중권이 말했던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전쟁나지 않는다고.
이명박이 집권한 지 1년. 지금 북한은 정전협정을 깨겠다며 엄포 중이다.

유시민이 말했던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고.
이명박이 집권한 지 1년. 국세청, 검찰, 감사원, 국정원이 권력 아래 옹기종기 모였고, 광장은 봉쇄됐으며, 언론은 통제 당하고, 인터넷은 검열되며, 각종 관직에는 권력의 하수인들이 내리꽂히고 있다.

불과 1년.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는 이렇게나 약했다.
그것은 모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가 있을 때 우리는 이 사실을 못 느끼고 있었으나, 그가 떠난 후 우리는 우리의나약한 민주주의를 본다. 우리 민주주의는 이렇게 쉽게 퇴보할 수 있는 것이었고, 한 사람이 자리를 뜨자 나약한 민주주의는 훨씬 뒤로 퇴보했다.

이 결과는 국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2.
그와 나는 생각이 달랐다. 한미 FTA 문제나 비정규직의 아픔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는 마음에도 동감한다.그러나 비록 생각이 달랐어도, 그는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비판하고, 논쟁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는우리의 언어로 된 비판과 우리의 언어를 빌은 논쟁을 이해하고 답변할 수 있는 대통령이었다.

민주주의란 것이 생각의 다양성 안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그는 그 다양한 생각들 중 거대한 한 축이었다. 맡아 하던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그를 모질게도 비판했지만 나는 당시 어떤 압력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프로그램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항의로 인해 사라졌다.

그의 뒤를 이은 권력자는 다른 생각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 권력자는 비판이 아닌 비난, 논쟁이 아닌 투쟁의 대상이 되어 간다.그는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촛불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권력자는 ‘촛불은 누구 돈으로 산 것이냐’고 말한다.

우리 민주주의는 이처럼 나약하다.

3.
그가 최고 권력자로 있는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착각하고 있었다. 여의도에 있는 그들도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일것이라고. 최고 권력자가 우리의 언어를 사용했으니 당연히 관료, 국회의원들도 모두 우리의 언어를 이해할 것이라고.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다. 다른 생각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민주주의 사회의 대통령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민주’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민주주의 사회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을 선택한 우리 역시 ‘민주’라는 말을소홀히 대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반에서 꼴찌하는 것도 노무현 때문’이라는 노통 씹기 국민 스포츠에 빠져 그를 놀려먹고 있을 때, 역설적이게도우리는 바로 그 순간에 민주주의를 듬뿍 즐기고 있었다. 그가 사라지자 이 즐거움 또한 사라졌으니 그 즐거움의 공로는 오로지 그의것일 테다. 그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는 가능했던 것이다.

슬픈 것은 그가 있을 때 그 즐거운 민주주의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역시 공과가 있고 명암이 있지만, 그 즐거운민주주의만은 오롯이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즐거운 민주주의를 내다버린 것은 오롯이 국민들이었다. 우리 민주주의는 이처럼나약하다. 그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수가 침묵하거나 방관할 때 나약할 수밖에 없다. 그민주주의를 한 사람에게만 맡겨놨으니 그는 그 무게에 질려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의 죽음에서 나는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나약하다. 그것을 강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일은 그 민주주의를 누리는 다수의 의무다.’

”]

그리고 그 ‘즐거운 민주주의’를 한 사람에게만 맡겨놓고는 침묵하고 방관한 공범인 나는 그의 부재가 이제와서야 무척이나 서럽다.

영진공 철구

▶◀ 저주와 분노를 두려워 하는 자들이여

인터넷을 보니 조갑제씨가 이번에는 저주의 굿판 운운하였다는데 …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20&fid=524&articleid=20090524113644893h4 ]

그런데 말이다…
원래 제일 구린 자들이 저주와 분노를 두려워 하기 마련이다.
저주는 그에 합당한 짓을 한 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니까.

조문을 가서 배척당했다고 찌질거리는 이들아.
자기들이 죽음으로 몰고간 분에게 조문을 가는데 편히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가?
우선은 사과부터 하고, 그리고 조문을 했어야 하는 거다.

그것도 아니고 뻔뻔하게 그냥?
배척당해도 조문을 해야 하는 거다.
생수병에 맞아도 계속 가야지. 계란에 맞아도 안죽는다.

어떤 굴욕이라도 감수하고 조문을 한 자와
그저 그것을 핑계로 피한 자.
결국은 거기서 판결이 나는 거다.

조화를 짓밟는게 경우와 상식에 어긋난다고 하기 전에,
전직 대통령의 확정되지도 않은 수사상황을 매일같이 언론에 까발리는 거는 경우와 상식에 맞았는지 생각해보라.

명백한 증거 하나 없이 전직 대통령과 가족을 오라가라 하고,
심지어 전직대통령을 구속수사 할까 말까 대놓고 얼러대는 짓이 당신들의 경우와 상식이더냐?
로그인도 못하면서, 시스템 복사해간 것 가지고 해킹이니 유출이니 난리를 치더니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로 끝나고,
그리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던 것은 경우와 상식에 맞았나?

노빠들이 극단적이라고 욕하기 전에,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가해진 고통들이 얼마나 극단적이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이제 노무현 탓을 못하겠으니까 노빠 탓을 하나?

경우가 아니라고? 상식이 없다고?
보도기관이 보도한 내용을 소위 장관이라는 자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것이 경우와 상식에 맞는가?
물적 증거 없이 한 쪽의 진술만으로 구속 수사를 하는 것은 경우와 상식에 맞는가?
폭력집회의 우려가 있다며 도심집회를 “불허”하겠다는 발표는 경우와 상식 이전에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에도 어긋난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저주하는가?

자살은 그냥 모든 것을 놓아보내는 죽음이 아니다.
당신들의 소망이야 그냥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잊혀졌으면 하겠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자살은 자기 파괴이고, 자기파괴는 기본적으로 분노의 표현이다.
단지 그 분노를 타인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돌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불공평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저주의 굿판을 치우라고? 생각해보자. 그게 어디서 시작되었던가?

자살은 한을 남기는 죽음이다.
한은 저주를 동반한다.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해소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은 저주를 푸는 굿판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굿판은 이미 벌어졌다.

“한국 사회에 증오와 갈등을 확산시킨 노 전 대통령” 이라고?
아무리 마음이 비뚤어지고 손가락이 뒤틀렸더라도 말은 제대로 하자.
누가 누구를 증오하고 누가 갈등을 유발했던가?
노무현이 그대들을 증오했나? 아니면 그대들이 노무현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나?
내가 너를 증오하게 만들었으니 니가 죄인이다. 이건가?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그래… 내 감정이 니 탓이지. 내 탓이겠니.
이 종속변수들아.

영진공 짱가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바라보며




타고난 이기주의자이다 보니 대학생이 됐다고 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나마 사회과학 모임에 나가게 된 것도 호감 가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접하게 된 한국의 현대사는 충격이었다. 그곳에는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는 전혀 새로웠다. 찬탁은 소련이 한 것이 아니었고, 여순 반란사건은 반란이 아니었고, 4.3은 빨갱이 폭동이 아니었으며, 이승만은 국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허풍이 심한 편이지만 들은대로라면 이랬다. 4.3 당시 현 제주시 관덕정 자리인 제주 도청 앞으로 어른들은 마음 놓고 지나다니지 못했다. 아이들만 용케 지나다녔고, 제주도청을 가로막은 철조망에는 사람 가죽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4.3은 그런 기억이었다. 하지만 4.3에 대해 집안 어른 누구도 내놓고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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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4.3은 이랬다. 돈 번다고 제주도 전지역을 싸돌아 다닐 때. 4월과 5월 제주 조천이나 세화 등지로 가면 같은 날, 조그만 마을이 모두 제사다. 그날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비극의 날이었던 것이다.

고삐리 때부터 친구였던 여자애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후에 아버지가 물었다.

“가이 아방은 뭐 햄시?”
“경찰 공무원마쉬.”

남녀 사이에 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뭔가 아쉽다는 듯 혼자 되뇌었다.

“게난 순사 딸이여?”

4.3을 겪은 제주 사람들에게 경찰이란 그런 존재였다. 이 사람들에게 지난 50년간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참여정부 때 노무현이 제주도를 찾아와 4.3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최초로 인정했다. 같은 날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 아버지와 사촌형의 제삿밥을 먹으러 돌아 다니는 사람들, 경찰은 순사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역사가 사실이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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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 4.3위원회가 폐지될 위기에 놓이는가 하면, 여당 의원은 ‘4.3은 좌익세력에 의한 폭동’ ‘제주도는 반란이 일어났던 곳’이라고 말한다.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에 결국 출판사가 굴복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역사를 떠올린다. 권력과 자본의 지난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로 ‘좌편향’ ‘왜곡’이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들. 

4.3을 겪은 아버지는 ‘경찰’을 보며 일제시대 조선인을 잡아다 고문하는 ‘순사’를 떠올린다. ‘경찰’과 ‘순사’라는 단어 사이, 서로 닿을 수 없는 그 거리는 역설적이게도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의 깊이와 닿아 있다. 그 역사들이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광경 앞에서 씁쓸한 이유는 ‘역사의 진실’이니 ‘권력의 오만’이니 ‘우경화’니 하는 거창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버텨 온 사람들, 그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견뎌 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 바로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