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LR 영상촬영시대가 열리다 (1)




 






 

니콘 S90 D90, 캐논 5DmkII와 7D, 1DmkIV를 거쳐 캐논의 보급형 저가 DSLR인 550D (미국출시이름 T2i) 역시 HD 영상촬영기능을 가지고 출시되었습니다.

위의 영상은 2월말 구입한 550D로 그동안 틈틈히 촬영한 영상들중 맘에 드는것들을 iMovie에서 별뜻없이 이어붙인 일종의 테스트모음입니다. 







동영상 촬영이 어느때보다 흔해진 요즘입니다.  고가의 고급전자기기였던 캠코더도 이제는 집안에 고장난 구형이 하나쯤은 굴러다니는 흔한 가정용품이 되었고 그나마도 스틸카메라나 휴대폰에 흡수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8mm 무비카메라로 홈무비를 오래전부터 만들어오던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비교적 최근 (90년대?)에야 본격적인 홈비디오의 보급이 시작된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빠른 변화이죠.  


쉽게 영상을 찍을수 있게 되었지만, 반드시 미적으로도 뛰어나고 아름다운 영상을 많이 찍게 되는건 아닙니다. 음악감상이 CD음질을 희생하고라도 간편함과 휴대성을 따라 mp3로 옮겨갔듯이, 부피가 크고 사용이 복잡한 캠코더 보다 그냥 자동기능의 간편한 포켓캠코더나 영상기능의 휴대폰은 항상 가지고 다니며 의외의 순간을 더 잘 잡아주기때문에 실제로 더 유용하기도 하고 뭔가 작품을 만드는게 아니라 일상의 스냅샷처럼 기록하는 목적성이 더 강하니까요. 캠코더로 재밌는 순간을 찍으며 영상미학을 생각하는건 언뜻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비디오카메라가 다른 기기의 부가기능으로 흡수되어가는 상황에서 스틸카메라 미학의 정점인 DSLR에도 이 보너스 기능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폰카나 똑딱이 디카때와 다르게 전문적인 영상제작업 전반에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키는 중입니다. 무엇이 달라서인지에 대해 두서없이 조금 이야기를 풀어나가보려 합니다.






* 초당 24 프레임 *




 







DV와 HDV 캠코더의 기록매체인 miniDV 테입과 수퍼8mm 필름롤. 홈무비의 구세대들. 





저는 영화계에서 일하지만 실제촬영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영상을 디자인하는 일이 주 업무입니다. (Previsualziatio, 사전시각화 라고 불리는 일을 합니다. 언젠가 소개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특별히 단편영화같은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해본다든지 할 생각(혹은 여유)이 없고, 캠코더라는것은 제게도 일상을 기록하는 가정용 기기이지 영화제작과 맏닿은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장난감에 가깝죠.
 

결혼하면서 장만했던 첫 홈캠코더는 소니PC120 미니DV캠코더였습니다. 작은 카메라로 저의 결혼식과 첫아이 둘째아이 출생등을 기록하며 잘 쓰다가 5년후쯤 서서히 작동이 멈추는등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즈음에 등장했던 카메라가 캐논의 HV20입니다.




HV20는 여러모로 특이한 카메라였는데, 바로 가정용 캠코더로는 최초로 – 아니, 쌩뚱맞게도 – 영화와 같이초당 24프레임으로 촬영하는것이 가능했다는겁니다.
 


24fps는  영상이 ‘영화적’인 느낌을 갖게하는데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적 특징입니다. 비디오카메라로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영화적 영상을 만들기 불가능한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 24fps 이고, 제가 캠코더를 영화제작과 무관한 장난감같이 여겼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비디오는 NTSC의 경우 간략하게 설명하면 일초 당 60번의 샘플링으로 움직임을 기록하는것이 기본이기때문에 영화보다 물흐르듯 부드러운 동세를 보여주고, 영화는 일초당 24번에 불과하기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거친 동세- 동작이 분절적으로 끊어져서 보이는 – 을 보여줍니다. 얼핏 들으면 자연스런 60Hz가 훨씬 좋을것 같으나 여러가지 복합적인 심리적,관습적인 요인들로 인해 ’60fps 비디오->뭔가 저렴해 보이는 영상’과 ’24fps 영화->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영상’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적어도 현재 우리의 눈과 뇌는 그쪽으로 익숙해져있구요. 그래서 일단 저장장치의 기록방식이 초당24프레임를 지원하지 않을때는 영화적 느낌을 주기가 상당히 어려워져버립니다. 그리고 비디오카메라 제작사들은 왜 초당 60번의 풍부한 모션샘플링 대신 고작 24번의 부족한 모션샘플링을 사람들이 원할지 전혀 생각조차 않았을것이 당연합니다. HV20 이전까지는요.

…… 분명 저 카메라 개발팀내에 괴짜 필름덕후가 있었으리라 상상해봅니다. HV20이후 사실상 모든 캐논 캠코더(프로 & 가정용)들이 24fps를 지원합니다 …… 




그래서 HV20가 등장했을때 많은 저예산 / 무예산 독립영화인들부터 그저 막연하게 영화적 영상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던 취미가들(저를 포함)까지 상당히 흥분을 했습니다. 그전까지 24fps영상을 기록할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도 $5,000가 넘어가는 준 프로페셔널 캠코더 이상뿐인 상황에서 $1,000도 안되는 이 깡통사이즈의 작은 카메라의 존재는 특별했습니다.




HV20로 만든 단편영화 White Red Panic.
아이디어가 있어도 장비가 열악해서 퀄리티가 떨어지던 시대는 거의 지나가버린듯 합니다.
 









단편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영화적느낌의 영상에 관심있는 필름덕후들이 꽤 많아서인지, HV20는 상당한 히트상품이었고 특히 적은 예산으로 그럴싸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독립영화인들의 노력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활발하게 타올랐습니다. 각종 팁들과 DIY(자작) 정보들과 상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저는 그저 관심을두고 보는정도였고 그냥 HV20만 구입해서 썼습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아이들이 노는 모습들도 조금은 영화적인 느낌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에 항상 24p와 씨네모드로 놓고 사용하는 정도였지요. 




제 HV20는 생각보다 일찍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좀 많이 쓰다보니 그랬는지 LCD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고치는 가격을 알아보니 가격이 많이 떨어진 새 기종을 사는 것 절반정도의 돈이 들겠고, 어찌해야하나 하던차에 또 마침 나와 준 카메라가 Canon EOS 550D입니다.






* 피사계심도 *






550D를 이야기하기전에 잠시 피사계심도에 대해 업급하려 합니다. 영화적 영상를 위한 카메라의 중요특징이 24fps라고 했는데 그 만큼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습니다. 




영화는 35mm 필름으로 촬영되기때문에 1/3, 1/4인치의 손톱만한 캠코더의 센서가 아닌 1.5크롭정도의 DSLR센서의 크기에 가깝고 그에 맞는 광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그에 따른 가장 큰 시각적인 차이는 역시 얕은 피사계심도입니다. 


작은 센서의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를 쓰다가 DSLR 카메라를 사용했을때 배경이 확 날아가서 피사체가 돋보이는 사진의 아름다움에 깊은 인상을 받은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 차이점을 이해하실겁니다. 영화 화면이 항상 배경이 뿌옇게 포커스아웃되는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집중하고자하는 사물에 촛점이 맞춰지고 배경과 전경은 약간은 흐릿한 상태가 기본적이며 영화적 문법과 느낌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감독이 ‘지금 이 사람(혹은 사물)이 이 장면의 주요요소이니 집중해주세요’라고 말하는것과 같지요. 그리고 그 문법은 35mm 필름사이즈의 광학적 특성이라는 기술적 기반위에서 자라난 것이므로 센서사이즈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각종 센서 사이즈의 비교.
Super35mm가 영화필름기준의 풀프레임입니다. 일반적인 비디오카메라의 경우 가장 큰 센서가 고가의 프로용 카메라에 쓰이는 2/3인치이고 가정용캠코더는 대개 1/3이나 1/4인치 이하의 사이즈이므로 상당히 작은 사이즈임을 알수 있죠.
 


그래서 위에서 말한 HV20(1/2.7 인치센서)를 필두로한 24fps 캠코더들에게는 없는 얕은 피사계심도를 부여하기위한 꼼수가 35mm 어댑터, 혹은 DOF어댑터라 불리는 물건들입니다. 






35mm 어댑터의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35mm 스틸카메라의 렌즈를 원통에 붙이고 원통내에 반투명한 막을  설치해서 렌즈의 상이 그 막에 맺히게 한 다음 캠코더가 그 상을 접사로 촬영하는것이죠. 위의 이미지에 보이는 대로입니다.

Ground glass라 불리는 막을 상이 잘 맺히되 투광량이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잘 만드는것이 관건이고 작은 ground glass의 거친입자가 눈에 띄기 쉬우므로 진동시키거나 회전시키는 등 최대한 깔끔한 영상을 얻어내기 위한 여러가지 기술적인 요소들이 더해지지만 기본 원리는 아주 원시적이고 간단합니다.

위쪽의 사진은,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컴팩트한 형태의 35mm어댑터입니다만 벌써 카메라자체 크기만큼의 부피가 더해지고, 캠코더의 자동포커싱이나 줌 같은 편의기능을 완전히 포기해야합니다. 더구나 상맺힘은 상하가 반전이 되기때문에 LCD 모니터로 보이는 영상도 반전이되어 촬영이 아주 힘들어집니다. (그것을 극복하기위해 어댑터 내에 다시 반전 프리즘을 넣은 고급형 어댑터 제품도 있고, 또는 카메라에 외부 모니터를 거꾸로 달아 쓰기도 합니다) 안그래도 어두운곳에서의 촬영에 태생적으로 불리한 캠코더인데 35mm어댑터는 투광량의 절반정도(1스탑)를 손해보기때문에 저조도 촬영은 훨씬 더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그런 장애를 감수하고서라도 얕은 심도를 얻는것이 영화적 영상을 만드는데는 중요한 것이기에 이렇게 온갖 오바를 통해 영화느낌의 영상을 얻으려는 필름덕후들의 풀뿌리적 노력이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HV20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한 노력의한 예.
얕은 심도를 위한 35mm 어댑터, 렌즈의 수동포커싱을 위한 follow focus와 필터장착및 빛오염을 줄이기 위한 매트박스, 어댑터사용때문에 화면이 상하로 반전되는 문제를 보정하기위해 거꾸로 매달린 HD모니터와 이 모든것을 지탱하기위한 레일시스템 등,
갈때까지 간 HV20릭. 사실 저것보다 더한것도 많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 (구글이미지로 
HV20 rig 검색)










* DSLR의 혁명 *





큰 센서사이즈의 효과를 얻기위한 수고를 생각하면 큰센서가 기본인 DSLR카메라에 영상기능이 추가되는것 만큼 허탈할정도로 간단하면서 필름덕후들의 염원이 되는 일이 없었고, 제가 구입한 550D훨씬 이전에 HD 영상 기록을 지원하는 최초의 HD – DSLR인 니콘의 D90가 처음 발표되었을때 다시 HV20때 만큼의 흥분이 있었을것이라는것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분은 곧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







 






영진공 플라팬





 

“하하하”, 홍상수식 남녀탐구생활 경남 통영편






홍상수 감독의 10번째 작품 제목은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다. 한자로 여름을 뜻하는 하(夏)자를 세번 사용해서 웃음 소리의 의성어를 제목으로 사용했고 – <극장전>(2005)에 극장 앞이란 뜻과 극장 이야기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듯이 <하하하>도 웃음 소리인 동시에 여름 이야기라는 뜻도 된다 – 영화가 끝날 때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에피소드를 마치며 모두들 하하하 하고 웃는다. 물론 제목처럼 관객들에게도 하하하 크게 웃을 일을 제공하는 영화가 <하하하>이기도 하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민화나 풍속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한 해학적인 분위기를 띄면서 갈수록 관객 친화적으로 변모해왔고 그 변화는 <하하하>에서 더욱 깊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상경의 캐릭터는 거의 정신적으로 덜 자란 애어른에 가까울 지경이 되었는데 – 그런 캐릭터에 맞춰 둥글둥글하게 살집을 찌우고 출연했다 – 그런 엉뚱함 덕분에 영화 전체가 더욱 재미있어지기는 했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작위적인 느낌을 받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관객 친화적인 성향은 나레이션의 활용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관객들에게 극중의 상황을 명시적으로 해설해주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에는 효과가 꽤 있는 것 같다.

<하하하>는 선후배 사이인 문경(김상경)과 중식(유준상)의 술자리 대화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띄면서 매번 두 인물의 나레이션이 섞이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매번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다루곤 한다. 남자(들)와 여자(들)가 등장하고 이들이 만나서 관계를 – 다양한 의미에서의 – 맺는다. 이제는 관객들조차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 듯 하다. 그 대신 이전 작품들에서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남녀들의 이야기를 새 영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풀어가는지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지난 15년 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홍상수 감독이 관객들을 – 비록 일부 관객층에 제한되는 것에 불과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 학습시켜온 일종의 성과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보아온 관객들은 처음으로 의식적인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영화의 형식미라는 것을 내용 보다 우선시해서 즐길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마치 10 여 년 이상 동일한 소재로 그림을 그려온 화가처럼, 홍상수 감독도 매번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변주하며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영화를 예술 감상법으로써 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홍상수 감독 영화의 형식미라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근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댓구의 변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예술만의 고유한 형식 미학을 찾기 위해 온갖 고민과 실험을 해온 다른 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일견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형식미는 그것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관객들과 제법 조응을 잘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댓구의 변주를 매번 새롭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하하하>는 다시 한번 큰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경과 중식이 청계산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각자가 경남 통영에서 겪었던 일을 한 대목씩 들려주는데 두 사람은 통영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거의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왔으면서도 서로 간에는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 기묘한 플롯을 보여준다.

이들이 각자 다닌 식당, 모텔, 커피숍 등은 모두 동일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같은 시점에 일어나는 일들임에도 두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자 마시자”라며 씨퀀스 사이사이에 흑백의 스틸컷으로 등장해 추임새를 넣곤 한다. 어찌보면 두 사람의 대화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 어딘가에서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시 같고 막상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이 세상 사람 같게 느껴지지가 않으니 이 역시 <하하하>의 독특한 형식적 재미가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하하하>에서는 그 놈이 다 그 놈 같고 그 년들도 다 같아 보인다.











포스터를 통해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가 출연하는 것은 미리 알았지만 김규리(a.k.a 김민선)의 등장은 와, 정말 즐거웠다. <아이언맨 2>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우물에 빠진 영화 한 편 건진 정도까지는 못되었지만 덕분에 출연진들의 평균 연령대가 조금은 낮아진 효과가 –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살짝 회춘한 듯한 – 분명히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에서 엉까지 말라면서 버럭대던 유준상이 이번 작품에서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어찼듯이 김규리도 다음 작품에선 주연으로 나와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그러고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그 연령대가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다. <하하하>에서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 예지원이 주력 부대라면 김규리와 김강우는 비교적 젊은 축이라 할 수 있고 여기에 아무나 마음에 들면 다 자기 양녀, 양아들로 삼는 – 이것이 바로 조문경과 왕성옥의 비극. 하하하 – 문경의 어머니로 윤여정이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한다. 윤여정과 비슷한 연령대로 기주봉이 출연하긴 했는데 아쉽게도 이쪽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나와주질 않았다. 문경의 꿈 속에 이순신 장군으로 등장하는 김영호도 <밤과 낮>(2007)에서 처음 홍상수 감독 작품과 인연을 맺은 이후 역시나 그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 배우들에게 홍상수 감독 영화는 연기파 배우의 산실이자 재활 공장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고 관객도 그리 많이 드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출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대부분 다른 좋은 출연 기회를 잡곤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갖춘 나름대로의 선순환하는 에코 시스템 – 친환경 말고 생태계 – 이기도 하다.











그러잖아도 다음 여름은 남해안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통영은 이제 완전히 필수 코스다. 나폴리 모텔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들려보고 호동 식당에서 다찌와 복국을 먹어봐야겠다. 경남에서는 무조건 씨원 소주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하하>를 보니 화이트가 협찬했나 보더라 – 그런데 왜 담배는 말보로야? KT&G는 대체 뭐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전국 각지를 순회한다. 딱 한번 <밤과 낮>에서 파리로 해외 순방을 다녀오시기도 했었지. 대강의 시납시스만 들고 배우들과 지방에 내려가서 그날 그날 대사를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를 나눠주면서 영화를 찍는다더라. <하하하>는 홍상수 감독의 남녀탐구생활 시리즈, 경남 통영편이다.


영진공 신어지

 

“슈퍼배드” (Despicable Me), 이건 아동용 영화가 아니지 말입니다 …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보면 사실 악마가 하나도 안 나오거든?
왠 줄 알아? 악마는 돈이 많아야 하거
 …
                                                                   – 인생은 돈 놓고 돈 먹기


* Despicable: 치사한, 비열한, 조롱 받아 마땅한, 멸시 당할만한 …

이건 뭐 아무 생각 없이 영화보러 갔다가 어디서 이런 주옥같은 영화가 뚝 떨어졌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낄낄대다가 왔다.

뭔가 초특급 울트라 나쁜 박사가 온 세상을 공포로 집어 넣었다가 정의의 아이들에 의해서 지켜진다 …… 라는 뻔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갔다가 세상에나 픽사르도 아닌데 슈렉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충격 먹는 건 또 간만이다.

우리나라 영화 제목으로 ‘슈퍼배드’를 넣었던데, 그냥 영어 쓰지 원제랑도 엄청 다른 제목을 갖다 붙이는 게 요즘 유행임???



  1. The Bank of Evil Scene
    영화에서 세계를 대표하는 악당 역할을 하는 애들은 꼭 돈이 무한정으로 많았는데 맙소사,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악당짓을 하기 위해 은행을 터는 것도 아니고 대출을 받는다! 세상에나! 그것도 악마의 은행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옛날 ‘리먼 브라더스’란다 … 아 여기서 그냥 아주 처음부터 난 뒤집어져 버렸다. 세상에나… 이거 그냥 볼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2. Minion 집합 Scene
    무슨 007 영화의 악당 규모를 이루는 – 머릿 수로만 – 미니언들의 인구수로 봤을 때 족히 100명 이상 사업장을 연상시키는데 – 이들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다 – 월급 인상은 없으나 사내 복지가 얼마나 잘 이루어져 있는지 에어로빅 시설하며 다들 잘 먹고 살고 있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이 한 장면을 통해서 ‘자본을 투자 받아 회사를 경영하는’ 주인공 그루의 모습을 단박에 묘사하는 데 감탄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성과를 리뷰하면서 노동자들의 아쉬운 탄식을 자아내는 경영자라니!
    이래서 ‘슈퍼 배드’라는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다! 정말 멋들어진 회사다! – 어쩌면 2013년에 나오는 2편에서는 미니언들의 노동 착취나 미니언권 탄압에 대해 이들이 대동단결하여 혁명을 이루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3. 놀이기구 탑승 Scene
    이 영화를 3D로 보면 좋은 점 중에 하나인데, 놀이기구 – 흔히 얘기하는 청룡열차 – 에 탑승해서 즐기는 실제 시각효과를 영화관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아찔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그 느낌이 속이 ‘허해지는’ 느낌만 없을 뿐 시각적으로 충분히 만끽하게 된다. 주변에 아직까지 무서워서 청룡열차 못 타본 있다면 이 영화 3D로 보시라고 꼭 전해 드리고 싶다.


국내에서는 애들 용이라고 온갖 더빙판만 가득한데, 도대체 이 영화 어딜 봐서 어린이용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하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디테일 – 꼬마 주인공 셋이 방에 들어선 다음에 문 뒤편 복도로 뛰어서 지나가는 강아지 모습은 디테일의 극치다. 한 순간도 관객을 가만두지 않는다 – 직장에서는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가장이 가정에 눈뜨면서 겪게되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이야기가 어딜 봐서 어린이 전용이란 말인가! 심지어 ‘악’과 손을 떼면 자연스럽게 삶이 행복해진다는 진리 또한 그저 따분하고 형이상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아아! 자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 영화에서는 완전 우리 사주 제도로 흘러가버리는 … – 현실의 딜레마여. 진심으로 2편이 기대된다.


영진공 함장


 

“노다메 칸타빌레” 전편, 극장판은 극장에서 즐기자!



사람은 누구도 짓눌려 살지 않아, 어디서든 표출하거든.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결국 ‘누군가를 짓누르지 않는 것’이야.
                                           – 압박 붕대로 가슴을 짓누르던 대화



영화관에 갔더니 “노다메 칸타빌레”가 한 편짜리가 아니라 ‘최종악장 전편’ 이었다. 후에 크레딧 올라간 뒤 나오는 후편 예고를 보고 알았지만 이미 후편도 올 봄에 일본에서 개봉을 했었나보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유럽편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로 최종악장을 그려내고 있고, 기존 캐릭터를 알고 본다면 더욱 즐거울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꼭 극장에서 보시길 권장하는데 – 기왕이면 사운드 좋은 곳에서 – 클래식은 둘째 치고라도 이 영화에서 전달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꼭! 시원한 사운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 노다메 팬티 노출 Scene
    난 도대체, 일본 애들 영화 볼 때마다 가끔 느끼는 건데 쓸데없는 노출 – 전혀 야하지 않다. 아무리 우에노 주리라 할지라도. – 을 넣는 이유를 모르겠다. AV의 나라 일본이라서 그런가? 뭐 어쨌든 그 빨간 팬티는 귀엽다.

  2. 악단 오디션 Scene
    꽤 귀가 즐거운 장면들인데 – 참고로 이 영화 외국 배우들의 대사는 전부 일본어로 더빙되어 있다. – 몇몇 악기들의 기교 섞인 솔로 플레이를 들어볼 수 있음에 재미나고, 흔한 ‘루저’들의 성공기라 즐거우며, 그나마 ‘치아키’의 표정이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더불어 아마 여성 관람객들 중에 치아키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녀석 셔츠 입은 것만 봐도 환장할 텐데, 그 멋드러지게(응?) 걷어 붙인 손목하며, 눈매하며,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지휘하는 모습보다 더 멋있게 나온 장면이라 생각된다.

  3.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 Scene
    주인공이 꾸려나가는 악단은 생활고에 부딪힌 인간군상이 모여서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삶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큰’ 감정이입이 되지 않게 적당히 거리 – 라고 나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연출력이 떨어져서 어색한 장면들인데 나 스스로 호감도를 부여해서 ‘적당히 거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도 – 를 두고 있다가 이 장면을 통해 한 방에 그들의 삶에 찌든 설움을 날려버린다.
    곁다리로 썰을 풀자면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은 최근 – 이라고 해봤자 벌써 5년 되었나? – ‘V for Vendetta’에서 의사당 폭파 장면에서도 나오는 음악으로, 나폴레옹에게 위협받던 러시아가 결국 나폴레옹 군을 몰아냈던 1812년의 기록을 그대로 묘사한 곡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행진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곡이 이 곡의 절정부분으로 무척 즐겨 듣는데,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그 곡의 웅장함을 그대로 전해들을 수 있다. 꼭. 사운드가 좋은 곳에서 감상하길 바란다.


만화같은 설정과 구성도 재미있지만 드라마 때와 달리 영화답게 치아키의 지휘 부분에서도 유럽편에 비해 훨씬 나아진 연기와 구도를 즐길 수 있으며, 후편도 충분히 기대될 정도로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도 긴장을 끌어올린 채로 전편이 마무리 된다.

영화 보고나서 아무래도 “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를 다시금 구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즐겼다.


영진공 함장


 

“시”, 자의적 불감증의 시대를 향해 쓰다






이창동 감독의 다섯번째 영화. 논란이 될 만한 내용과 관점을 다루기는 하되 비교적 대중적인 화법을 견지해오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2007년작 <밀양>과 특히 이번 <시>를 통해서 비교하자면 거의 순수 문학에 가까운 연출 스타일로 변모하고 있음을 – 서정시나 풍경화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 – 확인시켜주고 있다.

영화의 소재와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으면서도 작가로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되도록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자칫 이런 훌륭한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적어지게 될까 싶은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몇 명의 가장 뛰어난 우리나라 영화감독들 가운데 작품을 통해 다루는 내용과 주제의식에 있어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이가 바로 이창동 감독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시>는 어린 여중생의 죽음에 관해 시 한 편을 남기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늘그막에 시 문학에 심취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해서 언듯 인생과 예술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예술가 영화 쯤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비극적인 사건에 연루된 범죄 행위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해 묻는 매우 민감한 주제의 작품이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개봉한 이 작품을 놓고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작품이라 생각해보는 것 역시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같은 주에 개봉한 <하녀>(2010)에서 은이(전도연)가 복수의 방법으로써 선택했던 그것 역시 두 영화가 동일한 시대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녀>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했다면 <시>는 그 안에서 마취된 상태로 살고 있는 우리의 양심과 윤리 의식을 일깨운다. <시>에서 양미자(윤정희)가 정물이 아닌 자살한 소녀에 관한 시를 남겼듯이 이창동 감독은 이 시대가 죽음으로 몰고간 누군가에 관한 영화를 만든 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사람이나 그를 죽게 만든 다른 이들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런 사건들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태도에 관한 영화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죽은 여중생에 관해 알고 싶어했던 미자가 사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매우 복잡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는 영화의 설정과 전개는 내가 직접 관련되지 않은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 쓰기에 몰두하느라 죽은 여중생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도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돌아나선 미자가 결국 자신의 시작 노트를 통해 강 노인(김희라)과 지극히 현실적인 필담을 나누게 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시>에는 누군가를 죽게 만든 이들과 그런 잘못을 덮어버리려고 애쓰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당장의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사람들의 속물적인 행동들 속에서조차 삶의 진실을 발견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밀양>에서 확인되었던 바다. <시>는 ‘그들의’ 무감함을 비판하기 보다 ‘우리가’ 다시 살려내야 할 도덕적 감각을 일깨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다.











에필로그처럼 들려지는 양미자의 시, “아녜스의 노래”가 진정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것이 순간적인 감상을 제대로 포착해낸 솜씨있는 언어의 조합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감각을 일깨우던 미자가 마침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낸 결단을 관객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중생 박희진(한수영)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다시 그녀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러고 보면 영화 <시>는 병원에서 처음 박희진의 죽음에 관해 알게된 미자가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여중생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감정을 이입하다가 마침내 그 입장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미자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던 손자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이었다. 세상에 아파트 단지에서 한가롭게 배트민턴을 치는 장면 하나가 이토록 보는 이의 가슴을 뒤흔들 수 있다니. 그 자체로 놀라운 반전이기도 했지만 등장 인물의 극도로 자제된 감정이 스크린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광경이기도 했다.

너무 완벽한 귀결이라 정나미가 떨어질 법도 하건만 그 순간의 터질 듯한 감정을 꾹 눌러버리는 연출 앞에서는 그저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내젓는 수 밖에 없다.



노년의 나이로 인해 치매 현상이 찾아온 미자에게 의사는 “처음에는 명사를 잊게 되고 그 다음은 동사”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느새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핑계로 자의적 치매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이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 마저 잊고 만다.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정한 정치적 사건이나 작금의 상황과 굳이 연관지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하고 심지어 나름의 대가를 통해 가족으로부터 조차 잊혀지게 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매개로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완성해내는 삶의 불가역성과 예술의 상관 관계에 관한 영화로만 보여지더라도 – 그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달리 읽혀질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시>는 수준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을만 하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내고 시를 쓰는 예민한 감각으로 그 죽음에 관련된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기적은 오직 영화 <시>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