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그대”, 홍상수 영화와 닮은 우디 앨런 영화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환상의 그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제껏 오랫동안 두 감독의 영화를 봐왔지만 이번처럼 비슷하게 느껴졌던 경우는 처음인지라 내심 놀랍다는 생각도 들고, 이게 이번 작품에서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예전부터 두 감독의 영화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던 것인데 지금까지 눈에 띄게 드러나지를 않았던 것인지를 판가름해보게 된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처음부터 닮아있었다고 보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는 결론이다. 특히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들이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며 – 단순히 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 그런 와중에 이번 <환상의 그대>를 통해서 우연찮게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무척 닮아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환상의 그대>가 유난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생각나게 만드는 이유는 등장 인물 가운데 어느 누구도 기분 좋은 결말을 – 영화가 끝난 이후의 더 나은 미래를 – 맞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가 언제부터 이토록 삶에 대해 시니컬한 입장을 취했었던가 싶기도 하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라고 해서 항상 암담한 결말만을 그렸던 것도 아닐진데, 이를 통해 두 감독의 영화가 접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 그렇게 느껴졌다는 사실이 – 무척 흥미롭게만 느껴진다.

<환상의 그대>는 전지적 나레이션을 활용해서 – 홍상수 감독 역시 종종 나레이션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던가 – 씨퀀스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설하고 있는 편인데, 그 중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경구,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대주제가 되고 만다.




등장 인물들이 자기 삶의 현주소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다른 곳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 그리고 그런 허영과 욕망의 추구가 하나 같이 낭패를 불러오고 만다는 점에서 – <환상의 그대>는 기존의 우디 앨런 영화와는 상당히 차별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극중에서 유일하게 해피엔딩을 맞는 인물은 남편 알피(안소니 홉킨스)에게서 버림을 받은 후 사이비 심령술사에게 푹 빠져 주변 사람들을 전부 열 받게 만들어버리던 헬레나(젬마 존스)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혼자서 외롭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모면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과연 잘 된 일이라고 해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문이다.

이토록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으면서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에서 그나마 답이 되어줄 수 있는 건 헬레나가 의존했던 바와 같은 맹목적인 믿음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식의 결론은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다.




영화의 원제목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는 우리가 삶에 대해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란 “(누구나 언젠가는) 저승사자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 로이(조쉬 브롤린)의 대사였지만, 이 말의 의미가 영화 초반에 언급된 셰익스피어의 냉소적인 경구와 맞물리면서 결국엔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적인 기조를 이루게 된다. 노년의 알피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창녀(루시 펀치)와 재혼까지 하지만 물질적인 능력에 의해 유지되던 알피의 허영은 결국 좌초를 하게 된다.

알피의 딸 샐리(나오미 왓츠)의 남편인 작가 로이는 건너편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 흠모하던 “환상의 그대” 디아(프리다 핀토)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은 하지만 작가로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짓을 하게 되면서 그 역시 인생의 바닥으로 완전히 침몰을 하고 만다. 큐레이터인 샐리 역시 갤러리의 사장 그렉(안토리오 반데라스)과의 연애에 헛물을 켠 데다가 어머니 헬레나가 예언을 핑계로 창업 자금 제공을 거부하자 몹시 분노를 하게 된다.



<환상의 그대>는 분명 우디 앨런의 최고작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 솜씨 좋고 지칠 줄도 모르는 시네아스트의 현재를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세태 풍자까지는 아닐지라도 분명 우스꽝스러운 해학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혹시나 자신의 삶에도 그와 같이 허탈하고도 몹시 짜증스러운 일이 실제로 닥치지나 않을까 싶어 맘 놓고 웃지도 못하는 애매한 감정에 휩쌓이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거장의 행보는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



영진공 신어지








 

“옥희의 영화”,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옥희의 영화>는 제목에 ‘영화’라는 단어가 들어가서만이 아니라 정말 영화와 영화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영화 일반론이 아니라 홍상수 감독 영화에 관한 영화다. 말하자면 홍상수 영화에 관해 홍상수 감독이 직접 써내려간 해설판 같은 작품이랄까. 홍상수 감독이 생각하는 삶의 반복성과 그것을 담는 영화라는 매체에 관한 유난히도 직접적인 설명서로 받아들여진다.

<옥희의 영화>는 4편의 에피소드로 –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는 않지만 분명히 동일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이므로 단편이라는 표현은 좀 어색한 듯 – 구성되었다. 주인공 중에 한 명인 진구(이선균)가 결혼을 하고 영화과 선생이 되어있는 가장 최근 시점의 <주문을 외울 날>이 가장 먼저 배치되었고 진구(이선균)와 옥희(정유미)가 학생 시절이었을 때의 이야기인 <키스왕>, <폭설 후>가 이어진다. 그리고 옥희가 자신이 사귀었던 두 남자와 – 송 선생(문성근)과 진구 – 2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장소에 갔던 기억을 영화로 만든 영화 속 영화가 마지막 <옥희의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서 자주 비슷한 사건이나 만남이 반복됨을 통해 제시되곤 했던 ‘댓구의 미학’을 <옥희의 영화>에서는 영화를 만든 이의 목소리를 통해 그 제작 동기를 직접 들을 수가 있다. 물론 홍상수 영화 속 반복의 패턴은 이 보다 훨씬 다양하게 선보였던 바, 이것 하나 만으로 그 반복과 댓구의 미학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옥희의 영화>에 기승전결이란 없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이로서,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이로서의 자의식은 이전의 어느 작품보다 훨씬 더 풍부한 편이다. 첫번째 에피소드 <주문을 외울 날>은 <극장전>에서 동수(김상경)가 스스로에게 되뇌이던 어떤 주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주문이라도 외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는 어떤 날의 이야기다.

<주문을 외울 날>의 하이라이트는 진구가 예전에 자신이 만든 영화의 GV에 참석했다가 4년 전에 만나고 헤어진 여자에 관한 관객 질문을 받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이 홍상수 감독 영화에 언젠가는 나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 <옥희의 영화>에서 보게될 줄은 생각을 못했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이보다 민망한 순간이 또 어디 있을까. <옥희의 영화>가 그런 질문에 대한 진술서인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홍상수 감독에게 던져졌다는 뜬금 없는 질문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있다는 건 분명하다.

최근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갈수록 해학적이 되어간다는 느낌이었고 특히 최근작 <하하하>(2010) 에서는 조문경(김상경)의 꿈 속에 이순신 장군(김영호)이 등장해 선문답 같은 계시를 내려주는 장면이나 어머니(윤여정)에게 종아리를 맞고 조문경이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우는 장면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 그렇게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 생각했었는데 그로부터 고작 5개월 만에 나온 신작 <옥희의 영화>를 보니 그런 식의 단일한 경향성으로 홍상수 영화의 변화를 정의해보려 했던 일 자체가 어리석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변해가는 와중에 잠시 메타 영화를 한 편 만든 것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여전히 변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끊임없이 변화를 선택하고 있는 중이다.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그램 <어떤 방문>에서 홍상수 감독의 단편 <첩첩산중>을 보았는데 – 주요 출연진이 <옥희의 영화>와 동일해서 혹시나 어떤 연관성이 있지나 않을까 해서 – 내용 상으로는 완전히 다른 영화라는 것을 확인했다. <첩첩산중>의 인물들은 글 쓰는 사람들이고 <옥희의 영화>는 전부 영화를 만들거나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문성근이 연기한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다르다.

<첩첩산중>에서 상옥(문성근)은 거의 위악적인 묘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옥희의 영화>에서의 송 선생은 그의 진심이나 인물 전체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긴 하지만’ 적어도 옥희와의 약속을 지킨 작은 행동 하나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비춰진 송 선생의 일면은 첫번째 에피소드인 <주문을 외울 날>에서 몹시 의심쩍인 인물로 그려졌던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가 만든 영화나 누군가에게서 들은 뒷말만 갖고 섣불리 판단해버리는 건 역시 삼가하는 편이 현명하다.

영진공 신어지

 

“하하하”, 홍상수식 남녀탐구생활 경남 통영편






홍상수 감독의 10번째 작품 제목은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다. 한자로 여름을 뜻하는 하(夏)자를 세번 사용해서 웃음 소리의 의성어를 제목으로 사용했고 – <극장전>(2005)에 극장 앞이란 뜻과 극장 이야기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듯이 <하하하>도 웃음 소리인 동시에 여름 이야기라는 뜻도 된다 – 영화가 끝날 때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에피소드를 마치며 모두들 하하하 하고 웃는다. 물론 제목처럼 관객들에게도 하하하 크게 웃을 일을 제공하는 영화가 <하하하>이기도 하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민화나 풍속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한 해학적인 분위기를 띄면서 갈수록 관객 친화적으로 변모해왔고 그 변화는 <하하하>에서 더욱 깊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상경의 캐릭터는 거의 정신적으로 덜 자란 애어른에 가까울 지경이 되었는데 – 그런 캐릭터에 맞춰 둥글둥글하게 살집을 찌우고 출연했다 – 그런 엉뚱함 덕분에 영화 전체가 더욱 재미있어지기는 했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작위적인 느낌을 받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관객 친화적인 성향은 나레이션의 활용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관객들에게 극중의 상황을 명시적으로 해설해주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에는 효과가 꽤 있는 것 같다.

<하하하>는 선후배 사이인 문경(김상경)과 중식(유준상)의 술자리 대화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띄면서 매번 두 인물의 나레이션이 섞이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매번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다루곤 한다. 남자(들)와 여자(들)가 등장하고 이들이 만나서 관계를 – 다양한 의미에서의 – 맺는다. 이제는 관객들조차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 듯 하다. 그 대신 이전 작품들에서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남녀들의 이야기를 새 영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풀어가는지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지난 15년 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홍상수 감독이 관객들을 – 비록 일부 관객층에 제한되는 것에 불과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 학습시켜온 일종의 성과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보아온 관객들은 처음으로 의식적인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영화의 형식미라는 것을 내용 보다 우선시해서 즐길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마치 10 여 년 이상 동일한 소재로 그림을 그려온 화가처럼, 홍상수 감독도 매번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변주하며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영화를 예술 감상법으로써 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홍상수 감독 영화의 형식미라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근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댓구의 변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예술만의 고유한 형식 미학을 찾기 위해 온갖 고민과 실험을 해온 다른 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일견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형식미는 그것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관객들과 제법 조응을 잘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댓구의 변주를 매번 새롭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하하하>는 다시 한번 큰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경과 중식이 청계산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각자가 경남 통영에서 겪었던 일을 한 대목씩 들려주는데 두 사람은 통영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거의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왔으면서도 서로 간에는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 기묘한 플롯을 보여준다.

이들이 각자 다닌 식당, 모텔, 커피숍 등은 모두 동일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같은 시점에 일어나는 일들임에도 두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자 마시자”라며 씨퀀스 사이사이에 흑백의 스틸컷으로 등장해 추임새를 넣곤 한다. 어찌보면 두 사람의 대화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 어딘가에서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시 같고 막상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이 세상 사람 같게 느껴지지가 않으니 이 역시 <하하하>의 독특한 형식적 재미가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하하하>에서는 그 놈이 다 그 놈 같고 그 년들도 다 같아 보인다.











포스터를 통해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가 출연하는 것은 미리 알았지만 김규리(a.k.a 김민선)의 등장은 와, 정말 즐거웠다. <아이언맨 2>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우물에 빠진 영화 한 편 건진 정도까지는 못되었지만 덕분에 출연진들의 평균 연령대가 조금은 낮아진 효과가 –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살짝 회춘한 듯한 – 분명히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에서 엉까지 말라면서 버럭대던 유준상이 이번 작품에서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어찼듯이 김규리도 다음 작품에선 주연으로 나와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그러고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그 연령대가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다. <하하하>에서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 예지원이 주력 부대라면 김규리와 김강우는 비교적 젊은 축이라 할 수 있고 여기에 아무나 마음에 들면 다 자기 양녀, 양아들로 삼는 – 이것이 바로 조문경과 왕성옥의 비극. 하하하 – 문경의 어머니로 윤여정이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한다. 윤여정과 비슷한 연령대로 기주봉이 출연하긴 했는데 아쉽게도 이쪽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나와주질 않았다. 문경의 꿈 속에 이순신 장군으로 등장하는 김영호도 <밤과 낮>(2007)에서 처음 홍상수 감독 작품과 인연을 맺은 이후 역시나 그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 배우들에게 홍상수 감독 영화는 연기파 배우의 산실이자 재활 공장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고 관객도 그리 많이 드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출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대부분 다른 좋은 출연 기회를 잡곤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갖춘 나름대로의 선순환하는 에코 시스템 – 친환경 말고 생태계 – 이기도 하다.











그러잖아도 다음 여름은 남해안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통영은 이제 완전히 필수 코스다. 나폴리 모텔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들려보고 호동 식당에서 다찌와 복국을 먹어봐야겠다. 경남에서는 무조건 씨원 소주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하하>를 보니 화이트가 협찬했나 보더라 – 그런데 왜 담배는 말보로야? KT&G는 대체 뭐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전국 각지를 순회한다. 딱 한번 <밤과 낮>에서 파리로 해외 순방을 다녀오시기도 했었지. 대강의 시납시스만 들고 배우들과 지방에 내려가서 그날 그날 대사를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를 나눠주면서 영화를 찍는다더라. <하하하>는 홍상수 감독의 남녀탐구생활 시리즈, 경남 통영편이다.


영진공 신어지

 

“하하하”, 18禁이 옳아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아무리 유쾌하대도 관객이 꽤 들 영화는 아니다.
홍상수의 마니아가 분명 존재하지만 항상 그렇듯 폭발적 지지를 끌어낼 만큼 파워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나만해도 “하하하” 정말 좋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든 추천하기엔 주저되는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거듭 될 수록 호기롭게 웃어젖히게 되는 그의 영화가 점점 더 좋아진다는 거다. 지지리 궁상의 여자들은 사라지고 쿨하게 젊은 남녀를 딸 아들 삼는 초로의 여인과, 바람 피고 모텔을 걸어 나오는 애인에게 “업어 줄게.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래.” 라며 건들줄 아는 여성의 등장은 더욱이 반갑다.

영화는 하룻밤 섹스나 몰래한 키스 같은 일탈이 시각적으론 전혀 섹시하지 않더라도 야하게 느껴질 만큼 사건과 사고 속에 깊이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적으로 과장하지 않았지만 평범함과 일상의 사이를 넘나드는 에피소드는 꼭 남의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주인공을 들여다봄이 아닌 함께 빠져드는 황홀경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안하지만 지금의 소년소녀들에게 그의 영화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갓 스물을 넘기고서 홍상수 영화를 보기 시작한 내가 그의 초기 작품에 대한 감흥이 미미한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세상과 술을, 남자와 여자를, 그들의 관계 얽힘을 조금 더 알고 봐야 제 맛이다.

‘하하하’는 오래된 애인이랑 손 놓고 보며 제식대로 킥킥 웃거나, 설렘이 앞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상대와 데이트삼아 봐야한다. 다 본 후에는 ‘영화 좋았지?’ 같은 한 마디로 끝내기엔 무지 아쉬우니 ‘자! 한잔해! 건배!’ 를 위해 소주 한잔 하자며 어둑한 밤길을 걷는거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진정한 The End.


영진공 애플

이제는 홍상수스럽지 않은 영화를 보고싶다.

홍상수의 영화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난 주인공의 모습에서 저게 ‘인간 홍상수의 생(生)모습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안고 그의 영화에 푹 빠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항상 ‘홍상수’ 가 떠오른다.

다시 얘기하면 극의 주인공이 바로 홍상수의 실제 모습일 거라는 내 멋대로의 예감을 통해 영화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기억 하나.

올해 초 <밤과 낮>의 씨네토크 시간에 어느 관객이 과감히 질문했다.

이 모든 게 당신 이야기가 아닙니까?


홍상수는 ‘내 모습이 은연중에 표현될 순 있겠지만 주변 인물들을 관찰한 결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대답했고,

그 관객은 ‘그렇다’라는 대답을 기필코 듣고 말겠다는 태도로 재차 대답을 요구했다.


이 상황은 진행을 맡은 평론가가 홍감독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다음 질문을 받는 것으로 정리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런 관객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정면으로 응수한다. 그리고 마치 관객의 그렇고 그런 시선 따윈 조롱하듯 의미심장한 장면과 대사들을 풀어 넣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서 그(구경남)의 강의를 들으러 온 한 학생이 이렇게 묻는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 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는 거에요?


구경남을 집으로 불러들여 한낮의 정사로 외도를 범한 고순(고현정)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근데 왜 그렇게 자꾸 본인 얘기를 영화에 넣어요? 내 얘긴 하지 말아요. 아,, 난 싫어 진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등 홍상수는 그의 필모가 추가될 때마다 지식인의 느글거리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수작이라는 호평과 여자와 모텔에 가기 위해 안달 난 구질남의 뻔한 이야기라는 혹평이 엇갈렸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혹시 네 얘기 아니냐’는 눈총들에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던 홍상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비로소 ‘의심하라지 쳇’ 하며 태연한 듯 스무스한 태도로 회전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그는 조금 더 유머러스해졌고 조금 더 가뿐해진 채 ‘잰체하지 않는 구질남이 어쩌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관객들에게 장난 걸듯 ‘매번 발견하고 감상하는 것의 결과물’을 완성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음악이 멈춘 한참 후에야 흐르는 보너스 트랙처럼 비밀의 숨은 노래를 몰래 듣는 기분의 영화다. 그건 순전히 제천과 제주도를 오가는 영화감독 구경남 덕분이다. 그가 자리하는 숱한 술자리와 감독, 프로그래머, 배우들의 강약의 연결고리가 너무 진짜 같아서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더 이상 홍상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지 않는다.

홍상수의 영화에 출연한 김태우, 정유미, 공형진, 고현정, 하정우 같은 최고의 배우들이 주어진 역할에 충분히 젖지 않은 탓도 있다.


대 배우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캐릭터는 살아있지만 배우들의 아우라를 덮진 못했다는 느낌에 목이 마르다. 다른 누가 했더라도지금 이 배우들만큼은 해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진짜 홍상수라고 한들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영화감독 구경남이 너무 많은 걸 보여줬기 때문이고 지나치게 솔직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여지없이 쏜살같은 걸음으로 극장을 찾을테지만,

나는 홍상수의 홍상수스럽지 않은 영화를 보고싶다.


이제는 좀 ‘가짜’같은 영화말이다 …

영진공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