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홍상수식 남녀탐구생활 경남 통영편






홍상수 감독의 10번째 작품 제목은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다. 한자로 여름을 뜻하는 하(夏)자를 세번 사용해서 웃음 소리의 의성어를 제목으로 사용했고 – <극장전>(2005)에 극장 앞이란 뜻과 극장 이야기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듯이 <하하하>도 웃음 소리인 동시에 여름 이야기라는 뜻도 된다 – 영화가 끝날 때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에피소드를 마치며 모두들 하하하 하고 웃는다. 물론 제목처럼 관객들에게도 하하하 크게 웃을 일을 제공하는 영화가 <하하하>이기도 하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민화나 풍속화가의 그림을 보는 듯한 해학적인 분위기를 띄면서 갈수록 관객 친화적으로 변모해왔고 그 변화는 <하하하>에서 더욱 깊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상경의 캐릭터는 거의 정신적으로 덜 자란 애어른에 가까울 지경이 되었는데 – 그런 캐릭터에 맞춰 둥글둥글하게 살집을 찌우고 출연했다 – 그런 엉뚱함 덕분에 영화 전체가 더욱 재미있어지기는 했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작위적인 느낌을 받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관객 친화적인 성향은 나레이션의 활용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관객들에게 극중의 상황을 명시적으로 해설해주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에는 효과가 꽤 있는 것 같다.

<하하하>는 선후배 사이인 문경(김상경)과 중식(유준상)의 술자리 대화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띄면서 매번 두 인물의 나레이션이 섞이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매번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다루곤 한다. 남자(들)와 여자(들)가 등장하고 이들이 만나서 관계를 – 다양한 의미에서의 – 맺는다. 이제는 관객들조차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 듯 하다. 그 대신 이전 작품들에서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남녀들의 이야기를 새 영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풀어가는지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지난 15년 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홍상수 감독이 관객들을 – 비록 일부 관객층에 제한되는 것에 불과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 학습시켜온 일종의 성과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보아온 관객들은 처음으로 의식적인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영화의 형식미라는 것을 내용 보다 우선시해서 즐길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마치 10 여 년 이상 동일한 소재로 그림을 그려온 화가처럼, 홍상수 감독도 매번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변주하며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영화를 예술 감상법으로써 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홍상수 감독 영화의 형식미라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근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댓구의 변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예술만의 고유한 형식 미학을 찾기 위해 온갖 고민과 실험을 해온 다른 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일견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형식미는 그것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관객들과 제법 조응을 잘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댓구의 변주를 매번 새롭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하하하>는 다시 한번 큰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경과 중식이 청계산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각자가 경남 통영에서 겪었던 일을 한 대목씩 들려주는데 두 사람은 통영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거의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왔으면서도 서로 간에는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 기묘한 플롯을 보여준다.

이들이 각자 다닌 식당, 모텔, 커피숍 등은 모두 동일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같은 시점에 일어나는 일들임에도 두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자 마시자”라며 씨퀀스 사이사이에 흑백의 스틸컷으로 등장해 추임새를 넣곤 한다. 어찌보면 두 사람의 대화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 어딘가에서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시 같고 막상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이 세상 사람 같게 느껴지지가 않으니 이 역시 <하하하>의 독특한 형식적 재미가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하하하>에서는 그 놈이 다 그 놈 같고 그 년들도 다 같아 보인다.











포스터를 통해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가 출연하는 것은 미리 알았지만 김규리(a.k.a 김민선)의 등장은 와, 정말 즐거웠다. <아이언맨 2>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우물에 빠진 영화 한 편 건진 정도까지는 못되었지만 덕분에 출연진들의 평균 연령대가 조금은 낮아진 효과가 –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살짝 회춘한 듯한 – 분명히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에서 엉까지 말라면서 버럭대던 유준상이 이번 작품에서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어찼듯이 김규리도 다음 작품에선 주연으로 나와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그러고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그 연령대가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다. <하하하>에서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 예지원이 주력 부대라면 김규리와 김강우는 비교적 젊은 축이라 할 수 있고 여기에 아무나 마음에 들면 다 자기 양녀, 양아들로 삼는 – 이것이 바로 조문경과 왕성옥의 비극. 하하하 – 문경의 어머니로 윤여정이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한다. 윤여정과 비슷한 연령대로 기주봉이 출연하긴 했는데 아쉽게도 이쪽에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나와주질 않았다. 문경의 꿈 속에 이순신 장군으로 등장하는 김영호도 <밤과 낮>(2007)에서 처음 홍상수 감독 작품과 인연을 맺은 이후 역시나 그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 배우들에게 홍상수 감독 영화는 연기파 배우의 산실이자 재활 공장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고 관객도 그리 많이 드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출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대부분 다른 좋은 출연 기회를 잡곤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갖춘 나름대로의 선순환하는 에코 시스템 – 친환경 말고 생태계 – 이기도 하다.











그러잖아도 다음 여름은 남해안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통영은 이제 완전히 필수 코스다. 나폴리 모텔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들려보고 호동 식당에서 다찌와 복국을 먹어봐야겠다. 경남에서는 무조건 씨원 소주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하하>를 보니 화이트가 협찬했나 보더라 – 그런데 왜 담배는 말보로야? KT&G는 대체 뭐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전국 각지를 순회한다. 딱 한번 <밤과 낮>에서 파리로 해외 순방을 다녀오시기도 했었지. 대강의 시납시스만 들고 배우들과 지방에 내려가서 그날 그날 대사를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를 나눠주면서 영화를 찍는다더라. <하하하>는 홍상수 감독의 남녀탐구생활 시리즈, 경남 통영편이다.


영진공 신어지

 

레드카펫 놀이 –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4)




해운대 백사장은 언제나 밤에 거닐게 됩니다. 낮에는 볕이 따갑거니와 그 더위에 못 이겨 어서 빨리 바다로 뛰어들고 싶게 만들거든요.


행사 시작은 8시 30분부터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8시 30분이 되어도 시작은 커녕 행사가 왜 늦어지고 있는지 방송조차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백사장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밀집되어 저마다 가까이서 보기위해 자리를 잡은 터라 앉기도 어려웠지요.


저는 아예 레드카펫의 시작점부터 자리를 잡았습니다. 카펫의 3분의 2지점에 기자들의 Photo-Zone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는 이미 사람들로 ‘山’을 이루고 있던 터에다가 레드카펫 끄트머리에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전경 몇 개 소대 정도가 아예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막아놓고 있었습니다. 프레스 뱃지를 보여줘도 통행이 안 되더군요.

뭐 우리는 홍길동과 일지매의 후손.

가볍게 담 넘기.


행사 진행요원이었는지 그냥 구경꾼인지 모르겠지만 백사장에 세그웨이를 타고 나타났더군요. 아마 행사 진행요원이 백사장을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 피곤할까봐 주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은 해봅니다만 – 만약에 그 정도라면 PIFF도 개념있음? – 어쨌거나 세그웨이를 실물로 본 건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백사장에서 저렇게 잘 굴러 가다니!!

9시가 조금 넘어서야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성기 아저씨가 역시 제일 먼저 나오더군요. 사실 유인촌이 먼저 나오면 ‘미친 xx’하고 욕을 해주려 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영원한 ‘이쁜 언니’ 강수연. 물론 꼬장꼬장하게 생기신 PIFF 김동호 위원장께서도 미소를…


눈에 거슬리는 놈도 하나 나타났는데 촛불시위 때 ‘채증’하던 그 놈입니다. 꼴에 사진기 들고 설쳐야 하는 보직을 맡았으니 오늘은 ‘배우’ 채증하러 왔나봅니다. 더군다나 일반 시민은 ‘우러러’ 보게 만든 레드카펫 단 위에 떠억하니 올라가서 대놓고 찍더군요. 훗. 그러나 사진기 성능이 안 받쳐줬던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능. 물론 더 좋은 자리를 찾으러 갔는지도 모르지만.


아 제 사진기도 엄청 나쁘지요. 배우 사진 80%를 결국 날려 먹고 말았다능. 그래서 우리 이쁜 예지원 배우가 흐릿하게 ㅠㅠ


유준상 배우도 보이고 – 사실 그 옆에 김혜나라는 사람은 제가 잘 몰랐다능 ㅡ.ㅡ 미안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아니면 이름을 잘 몰라연 ㅡ.ㅡ


3일에 있던 레드카펫에서는 임형준 배우와 김지수 배우가 함께 걸었어요. 5일에는 김주혁 배우와 함께 걸었다던데 이미 그 때 저는 올라왔다능.


식객의 김강우 배우와 김소연 배우도 나란히 등장. 김강우는 참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한국 배우들은 바삐 걸어가기 바빴어요. 물론 그네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언론에 나가는 Photo-Zone이었지만 꽤 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 한 번 안 흔들어주고 가는 배우가 허다했지요. 물론 이건 인격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어떤 남자 배우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레드카펫에 딱 올라서면서 그 많은 인파에 놀라 ‘어떡해!?!’를 내지르면서 부끄러워하더군요. 어허 배우가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야 ㅋㅋ

더군다나 오광록 배우 – 개인적으로 오광록 아찌라고 부르고픈 ㅋㅋ – 는 그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어찌나 빨리 휙휙 걸어 가시던지. 아 물론 좌우로 둘러보면서 그 특유의 웃음을 비춰줌으로 인해 관객들이 무척이나 유쾌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이기선 배우 – 제임스 키선 리, 혹은 제임스 카이슨 리 – 와 문 블러드굿 배우는 레드카펫 처음부터 아예 열 걸음마다 한 번씩 좌우로 허리 굽혀 절을 하던 모습에 ‘우왕국’을 연발할 정도였어요.

레 드카펫 놀이가 재밌는 이유는 순전히 관객들 덕분입니다. 저 멀리 배우들이 자동차에서 내리는 입구쪽에 환호성이 들려오면 이번에 등장할 배우가 어느 정도 인기인인지 나타납니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할 때는 해운대가 떠나가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카펫’에 올라가면 누구나 ‘스타’가 된다는 겁니다. 레드카펫 초반부터 Photo-Zone까지 가는 동안 꽤 많은 배우들의 ‘코디네이터’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이미 스타가 지나간 후에 등장하는 스탭들이 나타납니다.

이 스탭들을 위해서도 관객들은 아낌없이 환호를 보냅니다. 무식한가요? 무지하다고 비판할 건가요? 말도 안 돼죠. 보안 요원이 급히 뛰어가는 것도 우리 관객들에겐 환호하고 즐거워할 광경입니다. 그 곳은 ‘레드카펫’이니까요.

물 론 문제도 있었지요. 너무 띄엄띄엄 배우들이 입장하게 되니까 관객들은 지루해하면서 허리를 두드려가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더군다나 레드카펫 등장 인물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관객이 대부분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으니까 외국 배우들이 등장하면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레드카펫 단상 아래에 LED 전광판을 설치해서 현재 지나가는 배우의 이름과 국적, 주요 작품 내역 정도가 텍스트로 출력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뭐 어쨌거나 재미난 ‘관객’들이었습니다. 어떤 여배우가 나오자마자 부산 사투리로 ‘우와!!…. 에이 성형 안 했다다두만 했네!’라고 ‘배우 민망하게’ 외치는 관객부터, 등장 인물들의 배역을 마구 불러주는 관객까지.


별로 ‘우리나라 레드카펫 문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확실히 축제 분위기의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행사인 것 만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PIFF의 밤이 저물어 가는 거죠.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