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타이거스”, 쿵푸 허슬 옥수동판 잔혹사라고나 할까 …


 

 


 


 




옥수동 타이거스


 

저자: 최지운

펴냄: 민음사



흡사 주성치영화 같은 느낌이다. 쿵푸 허슬의 옥수동판 학원물버전이랄까. 코믹한 장면이지만 왠지 맘 놓고 웃을 수 없고 웃다보면 눈물이 나오고 싸움하는 장면이 너무 허무맹랑해서 낄낄대며 웃다보면, 싸움 그 이외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필력이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다. 주성치 영화를 놓고 개연성과 만듦새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일이다. 주성치영화는 주성치 스타일인 것 자체가 미덕이니까. 작가가 이런 스타일로 쭉~~ 계속 써 줬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단지 무협지적 허풍은 좀 더 비주얼하게 잘 써주길.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서울을 대놓고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에는 애잔함이 느껴진다. 김애란의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주인공이 한강 다리를 건너며 쳐다봤던 오른쪽 강안(江岸)에는 용공고 오호장군이 활약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공고 오호장군 콘티


[ 출처: 교보문고 북뉴스 ]


 


 


 


그나저나 작가는 서울출신이 아니다. 서울출신이 아닌 작가들이 더 서울의 어떤 동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잘 쓰는 것 같다.


 


손홍규작가는 동국대근처 서식(?)의 주특기를 살려 이질적인 문화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한남동을 배경으로 한 ‘이슬람 정육점’을 멋드러지게 쓰더니, 최지운 작가는 중구와 중랑구 동대문구를 아우르는 동국대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살려 ‘옥수동타이거스’를 써냈다.


 


이만하면 강남과 강북의 중간지점(옥수터널 전까지는 준강남이라며…)이며, 구시가와 신시가의 중간지점이며 남산지하실과 장충체육관을 지척에 둔 동국대야 말로 문학이 탄생하기에 최적의 장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진공 라이


 


 


 


 


 


 


 


 


 


 


 


 


 


 


 


 


 


 


 


 


 


 


 


 


 


 


 


 


 


 


 

“책읽기 좋은 날”, 지극한 팬심에는 하늘도 감동하신다.


 

 


 


 





 


 


제목: 책읽기 좋은날


저자: 이다혜


펴냄: 책읽는 수요일


 


 


“이다혜”란 이름과 처음 마주친 것은 ‘판타스틱’이라는 장르문학 월간지에서였다. 북리뷰 기사를 읽다가 문득, 이 글을 쓴 기자는 자기가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을 전부 읽고서 쓴 글이라는 것이 책을 쥔 손끝으로 느껴졌다.


 


대체 이 책괴물은 누군가 싶어 이름을 확인해 보았더니 거기엔 이. 다. 혜. 라는 이쁘장한 이름 석 자가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그녀의 이름이 머리 속에 아로새겨진 후부터 그녀가 쓴 기사는 유독 더 챙겨보고, 자세히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녀의 올리브유를 바른 듯한 유려한 글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기사를 읽다가 ‘아 … 왠지 이 글은 이다혜 기자가 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면 어김없이 그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출판시장에서도 마이너인 장르문학 전문잡지를 표방하며 고군분투하던 ‘판타스틱’ 잡지는 결국 3년을 버티다가 폐간되었고 큰 아쉬움과 함께 오지랖넓게도 난 이다혜씨의 앞날을 걱정 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는 기우였다.


 


우연히 본’씨네 21’에서 왠지 낯익은 향기를 폴폴 풍기고 있는 글과 마주쳤고 거기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역시 글을 잘쓰니까 자리도 쉽게 잡았군 하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처럼 우연한 인연을 통해 그녀의 글들을 눈여겨 보았던 나로서는 그녀의 책사랑과 글솜씨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책을, 그것도 모듬안주 같은 독후감 모음집을 출간한 것을 보며 올것이 왔구나라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나에게 이다혜씨에 관해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것들도 말해주었다. 재밌게도 이다혜씨는 내가 그녀의 기사들을 읽으며 상상해온 ‘이다혜’와 많이 달랐다.


 


 




 




 


난 그녀의 이름을 갓 창간한 ‘판타스틱’ 잡지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에 그녀 역시도 많아야 3년차 정도의 어린 기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걱정이 필요없는, 앞서 ‘씨네 21’에서 오래 몸담았던 베테랑 기자였고, 나보다 나이도 많았다. 내 예상이 맞은 것은 이 누님은 정말로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고, 책을 정말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책을 구매하고 며칠 뒤, 이 출판사에서 진행한 세상에서 오로지 단 한 명 만을 뽑는 출간 기념 이벤트에 덜커덕 당첨이 되었고 나는 상품으로 책꽂이를 받았다. 이다혜씨를 향한 내 팬심을 생각해보면 누가 보더라도 출판사와 모종의 검은 거래를 한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참 기가막힌 우연이었다.


 


게다가 당시 난 자리가 없어 방안을 배회하고 있는 책들 때문에 책꽂이 구매를 심각하고 고민하고 있던 터라 그야말로 최고의 타이밍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나의 팬심을 이다혜 누님도, 출판사도 알았을리 없다. 그러니까 이건 … 어 … 그 … 어~그~ 그녀를 향한 올곧은 나의 팬심에 책의 신도 감동을 하여 내려주신 기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


 


 


 


 


 


 


 


 


 


 


 


 


 


 


 


 


 


 


 


 


 


 


 


 


 


 


 


 


 


 



 

“노인의 전쟁”(Old Man’s War, 2007), 균형추 없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다니 무서운 놈들이군!




저자: 존 스컬지

역자: 이수현
펴냄: 샘터

제목에 대한 편견은 참으로 뿌리가 깊었다. 하인라인도 울고 갈 작품이라는 찬사가 들려옴에도 전혀 흥미가 발기되지 않는 ‘노인의 전쟁’이라는 제목 때문에 오래도록 외면하고 있었다. 게다가 후속작 마저도 ‘유령여단’이라는 것을 알고 유치뽕짝 쌈마이스러운 제목에 내 흥미는 36차원 공간으로 상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느 볕 좋던 마감 한때, 일은 안하고 인터넷 서점 따위를 방황하며 내가 놓쳤던 SF작품이 있었던가 뒤지던 중 다시 ‘노인의 전쟁’이 눈에 띄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제목이 요따위 인데도 재밌다고 난리인가 싶어 별 기대없이 책소개글을 읽었다가 곧바로 결재버튼을 누르고 택배 아저씨를 목 놓아 기다려야만 했다.

일흔다섯에 사망신고를 하고 난 후에야 입대할 수 있는 CDF(우주개척방위군).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주인공 늙은이 존 페리가 CDF에 입대해 다시 젊어진 몸을 받아 들고 은하 저편의 전쟁터로 냅다 뛰어들어 앞길을 막는 외계인 무리들을 차근차근 인수분해 시켜버리는 배달의 기수 은하계 편스러운 이야기는 작가의 맛깔나는 글솜씨와 어우러져 책장에 참기름이라도 발라놓은 냥 술술 넘어간다. 특히 이야기 초반 독자의 호기심에 불을 지르는 CU(우주개척연맹)과 CDF란 조직의 미스테리한 설정은 책장 넘기는 속도에 가속도를 더하게 한다.

CU와 CDF는 지구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는 초월적인 단체로서 지구를 보호해주는 대신 우주 개척과 개척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외계인과의 전투를 담당하고 있다. 이 두 조직은 철저히 비밀에 쌓여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역시 지구의 과학기술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 기술의 세부사항을 알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CU가 엄청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가늠할 수 있게 할 요량인지 ‘우주 엘리베이터’를 들고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양전하 입자포를 가졌느니 반물질 폭탄을 가졌느니 하며 밑도 끝도 없이 뻥 뛰기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현재 연구되고 있는 것에 약간의 허구적인 설정을 가함으로서 현실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만들어 독자들의 아래턱을 더 크게 낮추는 효과를 발휘하였다고 생각한다.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Tsiolkovskii,1857~1935)




SF팬들은 이미 알겠지만 우주 엘리베이터는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에서 등장한 적이 있는 아이디어다. 그럼 아서 클라크 할아버지의 오리지널 아이디어일까? 아니다. 이 재기발랄한 구상은 1895년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Tsiolkovskii가 지상에서부터 정지 궤도까지 탑을 세우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 러시아의 기술자인 유리 아르크타노프Yuri Artsutanov가 정지 위성에서 지구 표면으로 케이블을 늘어뜨리는 구상을 발표하였고 아서 클라크는 이것을 차용해 소설에 삽입한 것이다.


 


유리 아르크타노프(뒤)와 아서 클라크(앞).





우주로 나가는 데는 큰 비용이 든다. 그런데 그 비용의 대부분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데 쓰이는 만큼 엘리베이터 같은 걸로 지구 중력권만 벗어나도 우주여행의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NASA를 비롯 미국과 일본, 유럽등 몇몇 나라와 과학자들이 우주 엘리베이터를 현실화하기 위해 회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노인의 전쟁]에서도 군입대자와 개척민들을 태우기 위해 우주 엘리베이터의 정지궤도 정거장 주위에 우주선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우주 엘리베이터를 가로막는 별처럼 많은 문제들 중 하나는 케이블의 소재이다. 철을 가지고서는 아무리 가늘게 만들어도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13~20km 정도의 길이에서 끊어진다. 즉 비중이 작고 강한 소재가 필요한데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탄소나노튜브다. 이론적으로 탄소나노튜브의 이상 강도가 정지궤도와 지상을 연결하는 데 충분하다고 하니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연구 중인 우주 엘리베이터.
[노인의 전쟁]에서는 균형추가 없는 우주 엘리베이터가 등장한다.


[노인의 전쟁]에서 작가는 CU의 엄청난 기술력을 나타내기 위해 CU가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고 설정한다. 그리고 이 엘리베이터의 케이블 재료라던가 연료, 작동방식등은 비밀로 둠으로서 CU를 언빌리버블한 조직으로 포장하고 있다. 이 중 특이한 점은 우주 엘리베이터에 균형추가 달려있지 않다는 설정이다. 정지궤도에 위치하고 있는 정거장의 위쪽에 떠있는(?) 것이 균형추인데 중력이 아닌 원심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림 상으로는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균형추가 필요한 것은 정지궤도에 정거장이 위치해있어도 지상과 연결되어 있는 케이블의 무게 때문에 지상으로 추락할 수 있다. 그것을 상쇄하기 위해 우주를 향해 길게 균형추를 달아놓음으로서 원심력을 받아 위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함으로서 정거장이 추락하지 않게 하며 케이블을 탱탱하게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CU는 이 균형추가 없이 어떤 외계의 기술을 이용해 우주 엘리베이터를 지탱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소설 속 과학자 할아버지도 놀라고 책을 읽던 나도 놀라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메인스토리 만큼이나 베일에 쌓여있는 CU와 CDF 조직의 실체와 관한 이야기에도 흥미가 가지만 작가는 이야기 초반 이후로 이 조직들에 관한 이야기를 쥐똥만큼도 하지 않는다. 보아하니 다음 편 ‘유령여단’에서도 마찬가지 인 듯한데 3편에서는 말해줄까 기대해 보지만 2편이 국내에 출판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온다 해도 올해 말이나 나올 듯하다. 그래도 1, 2편이 제법 팔렸으니 3편도 출판은 해주겠지?! 노심초사 기대해 본다.




영진공 self_fish


 


p.s 뒷표지에 스포일러를 써놓는 끔찍한 짓을 자행한 것은 대체 출판사 어느 인간의 대뇌피질에서 나온 몹쓸 아이디어란 말인가.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깜짝 선물을 이따위로 뭉개 놓다니 블랙홀로 던져 버릴테다~!

 

 

“투 더 스타 (To The Stars)”, 정신이 우주로 날아가버린 작가의 불온한 결말


 

지음: L.론 허버드
엮음: 최준영
펴냄: 소담출판사

당 작품은 지구와 계외행성 사이를 오가며 광물을 파는 우주선 하늘의 사냥개호에 강제로 탑승하게 된 기술 검사관 알랜 코다인의 노예생활기(?)를 그리고 있다. 앞서 소개했던 [영원한 전쟁]에서와 같이 ‘시간지연효과’를 비극의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원한 전쟁]에서 광속 이동 후 엄청나게 시간이 흘러버린 지구시간으로 인해 결국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는 군인들 처럼 우주선 하늘의 사냥개 호는 누구도 떠날 수 없는 저주받은 유령선과 같이 그려진다.

미스테리한 조슬린 선장, 승무원들과의 갈등 등 여러 인간군상의 이야기와 더불어 왜 이런 항해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독자를 끌어가고 있다. 1950년도에 발표한 작품으로 구닥다리 느낌도 없진 않고 그래서인지 작품도 평이하게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작품의 감상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책의 띠지에는 커다랗게 아인슈타인도 깜짝 놀란 작품이라는 왠지 오바스러운 문구가 떡하니 적혀있는데 머리글에는 한 술 더 떠서 작가 론 허버드가 1930년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제대로 알고 있는 나라에 몇 안되는 사람이며 당 작품이 시간지연이론을 도입한 선구적인 과학소설이라는 둥 그다지 믿기지 않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L.론 허버드 1911~1986


시간지연효과를 설명하는 건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이니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까지 45년간 어느 작가도 이 소재를 요 작품만큼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시간지연효과에 대해 하드SF에서와 같은 치밀한 과학적 고찰이 아닌 그저 시간이 느려진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적용하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아인슈타인이 놀랐을 리는 만무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당연히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란 주장도 당시의 이름난 물리학자들만 떠올리더라도 더더욱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자화자찬의 황당함을 넘어 작품의 결말에 다다르면 더욱 난감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드레그해서 보세요)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러 하늘의 사냥개호 선장 조슬린의 편지를 통해 진실이 드러난다. 하늘의 사냥개호가 사람들을 납치하여 강제로 승선시키고 시간지연효과에 따른 비극을 감수하면서 계외행성으로의 무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언젠가 닥쳐올 멸망으로부터 인류의 씨앗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 우주선은 시간지연효과를 이용한 일종의 노아의 방주였던 것이다. 선장 조슬린의 모든 처신과 그가 저지른 행위들은 결국 인류를 위한 자기희생이었으며 더 나아가 대의를 위해선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 이런 살떨리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는 이 책의 작가 론 허버드의 특이한 이력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는 소설가, 여행가, 사진작가, 시나리오 작가, 모험가등 다재다능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수의 SF소설도 발표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이력은 그가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시자란 점이다.


 





비록 영화는 희대의 쉣무비 반열에 올라섰지만 소설은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배틀필드 어스]의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존 트라볼타 역시
사이언스톨로지의 신자이다.


1953년에 창시한 사이언톨로지교Scientology는 베스트셀러가 된 허버드의 자기계발서 [다이아네틱스: 정신 건강의 현대 과학](1950)에서 발전해 나왔다.




이 책은 사이언톨로지교의 성서와도 같다고 한다.
놀랍게도 국내에 한글판이 출간되어 있다.


사이언톨로지교는 그가 1950년대 미국에서 세운 운동으로 과학기술을 통한 정신치료, 영혼 윤회 등을 믿고 있다.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조 설화부터 안드로메다 은하의 취향이 물씬 풍기니 한번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자. 눈 앞에 한편의 스페이스오페라가 펼쳐질 것이다.

약 7,500만 년 전 은하연방을 다스렸던 제누(Xenu)라는 외계인이 수십 억에 달하는 국민들에게 공무원을 찾아가 세금 환금 심사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이들은 알코올 주사를 맞고 우주선에 실려 지구로 보내졌다. 외계인들은 그들은 화산 옆에 쌓아 올린 뒤 수소 폭탄으로 화산을 폭발시켜 테탄(thetan)이라는 영혼만 남게된다. 영혼은 진공지대로 빨려 들어가서는 극장으로 전송되었다. 영혼은 그곳에서 36일 동안 온갖 헛된 교리와 종교를 주입시키며 자신이 누군지 잊게 만드는 3D영화를 보아야 했다. 이 영혼이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이 영혼들이 과거에 당한 세뇌와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두려움, 폭력, 중독 등의 각종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사이언톨로지교는 신자들에게 E-미터(E-meter)라는 장치를 장착시킨 후 유도심문을 통해 그들을 심사하여 건강을 점차적으로 회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참고 및 발췌:
아서 골드워그 저, 이경아 역, [이즘과 올로지], 랜덤하우스, 2007.


신자들은 다단계 회사처럼 등급이 있으며 높은 등급에 오를수록 지식의 차원이 높아진다고 한다. 물론 높은 등급에 오르기 위해선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 특히 할리우드의 많은 스타들이 이 사이언톨로지교의 신도인 것으로 유명한데 존 트라볼타, 톰 크루즈, 진 헥크만, 래리 킹, 더스틴 호프만, 윌 스미스, 제니퍼 로페즈 등이 있다.

 



교인들을 모아서 사이언톨로지판 긴급조치 19호를 찍었어도 멋졌을 것 같다.


1953년에 사이언톨로지를 창시했으니 이 소설을 발표한 1950년 당시에는 그러한 망상들이 이미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론 허버드의 다른 작품들은 어떠한지, 그가 사이언톨로지교를 창시하는데 있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당 작품만 놓고 보아도 결론은 참으로 불온하기 짝이없다.

등장하는 조슬린 선장이 우주선에 탈 사람들을 납치하고 도망가는 이들은 가차없이 죽이며 약을 주입해 꼭두각시로 만들면서도 인류를 위한 일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정당화하는 결론은 현재 사이언톨로지교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자기들만의 교리와 그에 따른 정당성을 내세우며 신도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종교를 그만두려는 이들에게는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 모습말이다.

작품 속 조슬린 선장과 하늘의 사냥개호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사이언스톨로지교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이들은 가면을 쓴다.
교단 측에서 데모에 참여한 이들을 불법으로 사진채증을 한 뒤,
 협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진공 self_fish

“영원한 전쟁”, 지금 필요한 건 한 권의 반전소설이다


영원한 전쟁 The Forever War

◎ 지음_조 홀드먼
◎ 옮김-김상훈
◎ 펴냄_행복한 책읽기

밀덕후가 밀덕질을 그만두는 계기는 군입대라는 말이 있듯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겪었던 작가 조 홀드먼이 쓸 수 있는 전쟁소설이란 결국 반전소설이었을 것이다. 직접 배트남에 참전하여 백여 발의 파편이 박히는 큰 부상을 입고 재대한 홀드먼은 전쟁을 통해 느꼈던 생각들을 하드SF소설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한다.

콜랩서라는 축퇴성(일종의 블랙홀)을 이용해 초고속 항법을 발견하며 인류는 우주시대를 맞이하지만 곧 토오란이라는 외계종족과 조우하게 된다. 인류와 토오란은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수백 세기에 걸친 전쟁을 만델라라는 사나이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전쟁의 비극을 더해주는 것은 수백 세기에 걸친 전쟁이라는 점이다. 흔히 이런 무지막지한 시간적 배경을 다룰 때는 평생을 사는 종족이라던가 생체공학이나 로봇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홀드먼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인용한다.

초광속 이동으로 인한 시간팽창효과로 인해 몇 세기의 시간이 흘러도 우주선 내의 병사들은 몇 살 밖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로 인해 제대 후 지구로 돌아가도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수십 세기가 지나버린 지구다.

나를 알던 이들은 모두 죽고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 변해버린 곳에서 그들이 돌아갈 곳은 없었다. 결국 제대했던 병사들은 다시 전쟁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객관적인 시간으로 수백 세기에 걸쳐 전쟁을 하는 비극에 놓이게 된다.

비록 반전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다루지만 SF라는 장르적 재미를 놓치고 있지 않다. 흥미로운 토오란과 전투, 수십 세기가 지난 세대들 간의 컬쳐쇼크, 디스토피아적인 지구. 특히 책의 초반부에는 지구에서 병사들이 토오란과의 전투에 대비해 훈련하는 모습은 다른 의미에서 실소를 자아낸다. 본문글을 발췌해 보자면, 


‘내한 훈련 따위는 실제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전형적인 군대식의 엉터리 논리이다. 우리가 이제 가려는 곳이 춥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그 추위는 얼음이나 눈 따위에서 느끼는 추위가 아니었다. 발착 행성의 온도는 거의 예외없이 절대 영도의 1, 2도 안팎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콜랩서는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추위를 느꼈다면 당신은 이미 죽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주리 중부의 눈과 진흙탕 속을 엘리트답게 철벅거리며 나아가는 우리들이. 액체라고는 이따금 나타나는 액체 헬륨 연못밖에는 없는 세계에서, 다리를 놓는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

군생활을 해 본 이라면 이런 ‘군대식 엉터리 논리’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눈물이 흐른다. 지금도 신교대나 예비군 훈련에서 자행하고 있는 누워서 비행기를 향해 소총을 쏘는 훈련은 이런 대표적인 군대식  엉터리 논리 중 하나이다. 적 비행기가 떴을 때 하늘을 향해 총질을 하는 것은 자살의 또 다른 한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린 북한과의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다. 지금 당장 미사일이 휴전선을 오고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현실이다.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자극적인 말들로 복수를 부추기고 있으며 많은 이들 또한 덩달아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전쟁은 답이 될 수 없다.

전쟁의 승리자는 우리가 아닌 결국 이런 상황을 이용해먹는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일 것이며 전쟁의 피해는 북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린이나 노약자, 여성, 가난한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그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부르짖는 늙은 정치인들의 수보다 수백 배 많은 수의 아름다운 청춘들이 전쟁터에서 죽고 다치고 불구가 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반전소설들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 보자.
전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