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질리지말기!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든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표지와 같은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이 책 제목…뭥미?”


 저자: 닉 혼비, 닐 게이먼 외


 역자: 이현수


 펴냄: media 2.0



제목을 픽션이라고 썼지만 진짜 제목은 [픽션;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폰과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이다. 헉헉 …

이 무슨
“ 김 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스런 터무니없는 제목인가 싶지만 이는 국내의 괴짜 편집자가 그의 아드로메다를 넘나드는 센스로 붙인 제목이 아니다. 이 책의 원제 역시 [noisy outlaws, unfriendly mlobs, and some other things that aren’t as scary, maybe, depending on how you feel about lost lands, stray cellphones, creatures from the sky, parents who disappear in peru, a man named lars farf, and one other story we couldn’t quire finish, so maybe you could help us out]이다. 헉헉 …



하지만 이런 장난스런 제목과는 달리 일명 잘나가는 글작가들과 잘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뭉쳐서 만든 단편집이다. 닉 혼비, 닐 게이먼, 켈리 링크, 잔 뒤프라우 등 내놓라 하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역시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 상에서 종종 보았을 눈에 익은 그림들이 많이 보인다.



환타지한 이야기들로 엮인 이 책은 서문의 레모니 니스켓이 자부하듯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단 몇 킬로미터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의 이야기인 닉 혼비의 ‘작은 나라’. 말없이 페루로 떠난 부모님 때문에 혼자 남겨진 그림블의 일상을 기묘한 분위기로 묘사한 클레멘트 프로이트의 ‘그림블’,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어본 미식가 클럽의 회원들이 유일하게 먹어보지 못한 태양새를 먹기 위해 떠나는 닐 게이먼의 ‘태양새’, 지금은 사라져버린 뉴욕의 6번째 구에 관한 이야기인 ‘여섯 번째 마을’등 책에 실린 단편들은 아기자기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일러스트작가들의 명성에 비해 그들의 그림이 적절히 활용되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일러스트가 사용되었다면 난 이 책을 들고 정말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영진공 self_fish









손홍규의 “이슬람 정육점”, 일상에 함몰되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


여러모로 작가의 전작 ‘귀신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한권짜리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서너권 이상 되는 대하소설에서나 나올법하게 수많은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잔뜩 등장한다는 점도 그렇고, 어떠한 지형(귀신의 시대에서는 노령산맥, 이슬람 정육점에서는 한남동)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역사, 지리적인 삶을 짚어 나가는 것 또한 그러하다.

시점을 알 수 없는 훗날의 내가 ‘어린날의 나’가 되어, 1인칭 작가시점도 전지적 작가시점도 아닌 묘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묘사해 나가는 것도 그러하다.

묘사력과 익살, 사안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나다.

‘사람의 신화’에서 ‘귀신의 시대’를 거쳐, ‘봉섭이 가라사대’까지 오는 동안 마술적인 차용은 줄어들고, 어두운 묘사는 줄어들며, 유머는 점점 증폭되어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되는데, 이 작품또한 그 연장선 상에 서 있다고 본다. 거의 모든 작품의 무대였던 ‘노령산맥’에서 ‘한남동’으로 옮겨왔기 때문일가. 약간 아쉬운 것은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좀 더 철학적이 되었고, 좀 더 인위적이 되었고, 좀 더 설명적인 듯하다는 느낌이다.

주인공 소년의 사유가 너무 깊은 나머지 소설과 철학적 사유가 따로 읽히는 듯한 느낌이 조금 있다.

인물의 얼굴을 스크랩하고, 그 스크랩으로 세계지도를 만드는 것은 지나치게 illustrative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고, 안나 아주머니를 필두로 한 그 사람들이 돼지도축 여행을 떠나는 것 또한 너무 상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나중에 ‘총상’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는, 그것을 읽으면서 상상되는 ‘그 사건’을 ‘직접 언급’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며 적잖이 걱정마저 되었다. (다행이 추측만 할 수 있게 하지, 언급을 직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소설에서’아쉽다’는 ‘완벽을 기대했던 작품’에서 약간의 트집잡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데서 오는 감정이지, 영 아닌 작품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 여타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기와, 기질과 생명력이 있다.

손홍규는 정말 보석같은 작가다.

문단에서만 보석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세대에 있어서의 보석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전작들에서 경계세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경험을 그 어느 쪽이든 다 풍부하게 직접해보고, 역사와 생활을 씨실과 날줄로 엮어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재주 때문에 그를 보석같다고 생각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세대에 이런 철학과 이런 문제의식과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예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훨씬 우리 세대에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쉽게 용서하게 만드는 세월 속에서 나는 얼마나 경주마 같이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일천한 상상력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일상에 함몰되지 않는, 징징거리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를 잃지 않는 손홍규.

개그콘서트 식으로 말하자면, ‘손홍규 포레버’다.

영진공 라이

 

“별의 계승자 (Inherit The Stars)”, 하드SF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저자: 제임스 P.호건
역자: 이동진
펴냄: 오멜라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자료를 수집해 가설을 세우고 증명을 하며 치열하게 이론을 정립해가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마치 범죄사건을 풀어가는 탐정의 모습과도 같다. 달이라는 ‘밀실’에서 발견된 5만 년 전 우주 비행사의 시체(월인月人)를 놓고 과학자들이 모여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 SF소설이지만 동시에 추리소설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 드라마 CSI에서 첨단 기기들을 이용해 범죄를 밝혀내듯 월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고학, 비교해부학, 진화론, 지질학, 천문학, 언어학, 수학 등 여러 분야의 과학들이 등장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과학이론을 도구 삼아서 미스테리의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어떤 음모도 저열함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계인도 치열한 전투도 없다. 오로지 지적 호기심에서 나오는 과학자들의 열정만이 있다. 작가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런 틀 안에서 흥미진진하며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독자들에게 추리소설 특유의 지적인 유희를 선사한다.


역자의 지인이 ‘학회SF’라는 기막힌 비유를 내놓았듯 이 작품의 중심에는 과학과 과학자가 놓여있다. 이처럼 과학이 중심이 되는 SF소설을 하드SF라고 분류하는데 ‘별의 계승자’는 하드SF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드SF는 과학이라는 제약을 안고 출발 한다. 마치 훨훨 날아다녀야할 상상력에 과학이라는 추를 메달아 놓은 모습이다. 자칫 소설의 탈을 쓴 과학기술서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것을 이겨낸다면 개연성이라는 커다란 힘을 얻게 된다. ‘별의 계승자’역시 과학과 소설적 재미를 잘 융합시킨 결과 소설에 등장하는 현실과학에 바탕을 둔 이론들은 작품에 설득력과 개연성을 부여해 주었다.

영문판 삽화

SF작가인 피터 와츠(Peter Watts)는 이런 하드SF의 어려움을 ‘하드 SF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란 물음으로 쓴 글에서 이야기했다.



‘..(중략)..그럴듯한 과학을, 인간형 외계인과 초광속으로 넘쳐나는 장르에서 과학이 중요치 않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나서는 도전이다…(중략)

이건 단장 5보격의 운율에 맞춰 구약을 다시 쓰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이것은 자의적인 목표일 뿐이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더 쉬운 방법이 있다. 여러 제약 조건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평범한 이야기가 훨씬 간단할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최종 결과물은 품위 없고 보기 싫은 것이 될 수 있다. 이야기인 척하는 에세이와, 해설로 가득 차서 터질 것만 같고 빈약한 캐릭터로 허술하게 치장된 핵심 아이디어 같이 말이다. 이러한 실패에는 우리의 몫도 있다.


하지만 만일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이런 제약이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 어떨까? 최종 결과가 기적적으로 부자연스럽고 억지로 꾸며 낸 것이 아닌 걸작이 나왔다면? 이건 마치 한 손을 등 뒤에 묶은 채로 전쟁터를 헤매었는데도 살아남은 것과 같다. 승리한 것이다….(중략)‘


[ 하드 SF 르네상스1 (행복한 책읽기, 2008)에서 발췌 ]


제임스 P.호건은 한 손이 아닌 두 손을 뒤로 묶은 채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