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즈”, 그때 그 언니들의 영상 회고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예상했었던 바와 달랐던 점이 세 가지다.

첫째, 리드 보컬이었던 체리 커리(다코타 패닝)가 지나치게 자기파괴적인 인물이었고 그로 인해서 런어웨이즈가 데뷔 5년만에 해체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이는 그간에 보아온 음악 영화나 여타의 예술가 영화들, 그리고 실제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비명에 사라진 인물들로 인해 형성된 고정관념이었던 것 같다.

<런어웨이즈>에서 시대를 앞서간 록의 여전사들로 길러진 런어웨이즈의 멤버들이 물론 적잖은 일탈 행위를 하게 되고 그룹이 해체되는 계기가 되는 것 역시 체리 커리 때문인 것은 맞지만 그간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실제 이유는 – 어쩌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진짜 이유가 바로 그 이유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자기파괴적인 성향과는 반대되는 체리 커리의 ‘일상 생활로의 복귀’ 욕망 때문이었다.

조안 제트에게 음악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것과 달리 체리 커리에게는 돌아고 싶었던 가족이 있었고 그리하여 새로운 싱글을 녹음하다 말고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만다. 그 흔한 화해의 과정도 없이 그렇게 런어웨이즈는 사라진다.










그래서 둘째는 다코타 패닝이 연기한 체리 커리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이고 조안 제트(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조연에 불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역시 틀렸다.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두 인물이 곧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 그대로다.

카메라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에게 균등하게 배분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영화를 감상한 후에 유튜브에서 두 사람이 24년만에 다시 무대에 함께 서는 2001년의 라이브 연주 장면과 인터뷰 클립들을 발견했는데 <런어웨이즈>는 팀의 해체 이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인물이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화해의 분위기가 드러워져 있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영화 전후의 맥락을 함께 고려했을 때 <런어웨이즈>는 관계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남겨주게 된다.



마지막 세번째로 <런어웨이즈>에서는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조안 제트와 블랙하츠의 I Love Rock’n’Roll을 들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공연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팀의 해체 후 솔로로서 활동하기로 결심한 조안 제트가 ‘기타 들고 혼자 놀기’를 할 때 이 노래가 배경으로 나오게 된다.

I Love Rock’n’Roll은 1975년에 The Arrows가 발표했던 곡으로, 조안 제트가 솔로로서 이 곡을 처음 커버해서 녹음했던 시점은 1979년이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영화 속에서 들려지는 히트 버전은 조안 제트와 블랙하츠를 결성한 이후 1982년에 발표했던 첫번째 앨범에서였으니 <런어웨이즈>에서의 삽입은 그야말로 팬 서비스의 차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런어웨이즈의 해체 이후  솔로로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장면에서 조안 제트가 입은 분홍빛 재킷은 다름 아닌 <I Love Rock’n’Roll> 앨범 표지의 그것인데, 말하자면 영화 <런어웨이즈>는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의 사춘기 소녀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런어웨이즈의 결성을 위해 만나 활동하다가 해체된 이후 조안 제트가 솔로로서 재기에 성공하는 시점까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의 영상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을 <런어웨이즈>에서 두 사람 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또 한 명의 캐릭터는 프로듀어이자 매니저였던 킴 파울리(마이클 섀넌)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빗 보위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글램록 씬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던 캐릭터인 동시에 음악 자체 보다는 음악 산업에 통달했던 인물로 그려지는 킴 파울리는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를 만날 수 있게 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헤어질 수 밖에 없도록 내몬 장본인으로 묘사된다.

음악적 욕심이 강했던 조안 제트가 킴 파울리의 그늘 아래 머무는 것이 필요악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체리 커리는 과감히 거부권을 행사하며 런어웨이즈와 팀 파울리를 떠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팀의 해체 후 인터뷰 장면에서의 팀 파울리는 자신을 떠난 ‘아이들’이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고 실제로 체리 커리는 연기자로 전업을 하기는 했지만 – 데뷔작이 애드리안 라인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뉴욕 야사>(Foxes, 1980)였다! – 약물 중독 문제로 그리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런어웨이즈(Runaways)”의 1977년 일본 공연 중에서 …


 

<런어웨이즈>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전기 영화인 동시에 음악 영화로서의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낸 작품이다.

혹시나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다코타 패닝이라는 스타 캐스팅 외에는 별 볼 일이 없는 영화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여성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플로리아 시지스몬디의 연출은 드라마와 연주 장면 모두에서 기대했던 수준 이상의 완성도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예전에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2007)을 보고나서 음악 연주 장면을 위한 연출은 따로 있는 법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바로 이 <런어웨이즈>를 보면 제대로 된 연주 장면의 연출이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일단 연주되는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앵글과 컷의 편집이 음악과 잘 어우러졌을 때에만 생동감 있는 음악적 흥분이 증폭되어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런어웨이즈>는 한 편의 음악 영화로서 그런 느낌들을 잘 살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외에도 몇몇 장면에서는 창의적인 연출 방식으로 저예산의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조안 제트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Love Is Pain의 가사를 읊조리며 “and we’ll do it again”이라고 외치던 장면이다.










체리 커리는 <네온 엔젤>(Neon Angel : The Cherie Currie Story, 1989)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고 이것을 토대로 플로리아 시지스몬디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는데, 제작자로 직접 나선 조안 제트가 각색하는 과정에 적잖은 도움 또는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런어웨이즈의 해체 이후 체리 커리는 1978년 <Beauty’s Only Skin Deep>이라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여전히 킴 파울리가 프로듀싱을 했다. 그렇다면 영화 속의 결말과 실제 팀이 해체되었던 상황이 달랐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뭐 이런 것이 바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차이가 아닐가 생각한다.

<런어웨이즈>에서 조안 제트와 체리 커리의 관계는 일종의 연인 관계로 다뤄지고 있는데 이 역시 드라마를 살리기 위한 변형일 뿐 진실은 안드로메다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내년도 MTV 무비 어워드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다코타 패닝의 키스씬이 상을 받게 되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영진공 신어지

 


 

““런어웨이즈”, 그때 그 언니들의 영상 회고록”의 한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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