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꿈 속에서는 시간이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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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부시절에, 그게 벌써 20년쯤 전 …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 인가, 아니면 그의 책을 인용한 다른 책에선가
꿈의 특성에 대한 예화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꿈에서는 시간의 압축이 엄청나다고 …

어떤 사람이 꿈 속에서 프랑스 대혁명에 휩쓸려들어서 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하고는
어쩌다 보니 반혁명분자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마침내 사형 당일날 길로틴 앞에 꿇어앉아 지나간 인생을 회고하고 온갖 감상에 잠기다가 드디어 길로틴 칼날이 자기 목으로 떨어지던 순간에 꿈에서 깼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깬 순간 실제 자신의 머리 위로 침대 머리판이 떨어지고 있더란 거죠.

그 책에서 프로이트는 이 사례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 꿈은 침대 머리판이 떨어지려고 뿌지직거릴때 시작된 것이라고 …

이를 감지한 무의식이 꿈을 통해 그를 깨운 것이죠,
자다가 머리에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서 다치지 않도록.

그렇다면 그 뿌지직 삐걱삐걱 거리던 물건이 마침내 떨어지기까지 걸린 몇초의 시간동안,
꿈꾸는 이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단두대까지에 이르는 수개월 혹은 수년의 시간을 꿈꾼 겁니다.

현실에서의 몇 초가 꿈속에서는 그렇게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걸 읽으면서 “맞아, 그래!”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해도 이 꿈 예시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희미하긴 하지만요.

저는 학부시절부터 수업시간에 잘 졸기로 유명한 인간이었는데,
가끔은 수업을 듣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 꿈 속에서도 졸기도 했고 …
그러다가 흠칫 하고 깨면 순식간에 꿈속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었죠.
남들은 조용히 수업듣는데 저 혼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던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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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의 이 영화는 바로 이런 꿈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소품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정말 간단하고 작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이야기가 꿈의 특성을 치밀하게 활용한 연출을 통해서,
다층구조로 전개가 되니 참으로 특이한 경험이 됩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 놀란이 아니었으면 만들 수 없었던 영화입니다.
“다크 나이트”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헐리웃에서 이런 이야기에 이런 투자를 할 리가 없죠.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 <인셉션(Inception)>의 뜻은 사전에 나오는 “징조” “조짐” 뭐 그런 의미라기 보다는,

(훔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디셉션(Deception)의 반대로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영화가 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 자체가 관객들에겐 하나의 인셉션이죠.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각자의 일이고 …


영진공 짱가


 

추적(sleuth, 2008) “남자는 말이 아니라 주먹인거다.”



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남자 2명.


평점: Jack Wilson  


***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하세요!!! ***



두 남자가 대화를 한다. 부인과 이혼해 달라며 찾아온 부인의 애인 ‘틴들’에게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이자 남편인 ‘앤드류’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이혼은 해줄 수 없네. 대신 내 보석을 홈쳐가게. 그 보석은 보험을 들어 놨기 때문에 난 보험금을 받게 되고 너는 그 보석을 팔아 돈을 얻게 되지. 그 보석을 가지고 내 부인과 함께 사라져.”




영화는 초반 분위기와 대사만 보자면 굉장한 트릭과 반전을 술마시고 오바이트 하는 김부장 마냥 엄청 쏟아낼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두 남자의 자존심 싸움이 주가 되는 맞짱 심리극 영화 되시겠다. 문제는 요거이 데이트용 영화도 아니거니와 헐리우드 영화에 심취해 있는 친구를 데려갔다가는 원수지간이 되어 극장 밖을 나올 수 있는 위험이 다분히 있는 영화라 하겠다.




당 영화의 원작은 1970년대 연극이다. 이후 1972년 영화로 리메이크 되고 다시 이번에 재 리메이크된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1972년도에 ‘틴들’을 연기했던 마이클 케인이 이번에는 ‘앤드류’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이클 할아버지가 ‘틴들’을 연기했든 ‘앤드류’를 연기했던 우린 영화만 재미있으면 장땡인데 이 영화 썩 관객친화적(?)이지는 않다.




원작이 연극이었던 만큼 영화도 상당히 연극적이다. 이게 뭔 말이냐면 당 영화의 등장인물이 딱 2명 나온다.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 엑스트라고 뭐고 아무도 없다. 배경도 앤드류의 집 안이 전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둘이서 계속 말쌈하고 좀 치고박고 총 몇 번 쏘고는 영화의 막을 내려버리니 아무런 정보없이 심심해서 영화 한편 볼까 하고 찾았던 관객이라면 “차라리 집에서 잘 껄!” 하는 소리가 절로 읊어 질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둘이서만 논다


게다가 원작이 1970년대 작품이어서인지 영화 내에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수단으로 ‘동성애’가 나온다. 지금은 그 당시와 달리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우리 문화에서 ‘이런 게이 새끼야~’라며 상대방의 성정체성을 소재로 말싸움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공감하기도 힘들고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




왜? 날 보니까 콧꾸멍이 벌렁벌렁 하나?


우리 같으면 그냥 남자답게 화끈하게 주먹질 몇 번하고 끝내면 될 것을 말이나 베베 꼬아서 던지고 힘들게 머리 굴려가며 상대방을 모욕하는지 의아스럽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은 신사의 나라 영국인 것을!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