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천 없는 장사가 어디있겠냐? <재외공관소식>, <영진공 67호>

재외공관소식
2007년 1월 26일

다른 사람의 사업 계획을 듣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이, 일류
대학을 나와 이름난 대기업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데 길들여진 머리 좋은 사람인 경우에는, 대단히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야기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고? 다름아닌 돈이다, 돈.


들은 이상과 비전이 명확하게 결합된 아름답고 멋진 기획을 들려 주면, 꿈과 희망에 충만한 청년들이 달려들 것이라 믿는다. 당장의
초라한 현금보다 훗날의 막대한 지분을 약속해 주면, 구글이나 애플이나 MS와 같은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백의종군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믿음에 대한 반박은 단 한 마디로 충분할 것이다. 꿈 깨쇼.

MS건 애플이건 구글이건, 투자자와 경영진을 제외한 일반 직원을 공짜로 부린 역사는 없다. 꿈과 희망 따위는 아무리 배터지게
처먹어 봐야 굶어 죽을 뿐이고, 머나먼 미래의 지분은 당장의 호주머니를 채울 현금에 비하면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그런 거
아무리 약속해 본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조직에 기대어 일을 벌이는 게 몸에 배인 사람은,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좁은 세상에서 큰 돈을 쉽게
버는 데 익숙해진 똑똑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선 그만큼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별볼일없는
붕어빵 기계조차 수백만원을 홋가하는 게 현실이다.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려면 수십 가지 재료를 절묘하게 배합해야 하고, 붕어빵
장사로 성공하려면 일개 기업을 운영하는 것 못지 않은 공과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구상한 사업의 미래를 확신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 확신을 다른 사람이 아무런 댓가 없이 공유해 줄 것이라 믿어선 곤란하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고, 사람들은 그렇게 느긋하지 않다.


러나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망각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아주 피곤하게 만들기 일쑤다. 이러기를 벌써 10여
년 째, 그동안 만난 수십 명의 명문대 출신 창업(희망)자 중에서 돈 얘기부터 먼저 꺼낸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사업을 벌이려면 돈이 필요하고 사람을 부리려면 역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어째서 모르는 건지, 이젠 신기함을 넘어서 경이롭기마저 할 지경이다.

명문이고 3류고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문제점은 이게 아닐까 싶다. 좌판에서 콩나물을 파는 여든 살 할머니도  다 아는 뻔한 사실을 안 가르쳐 준다는 것,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밑천 없는 장사가 어디 있냐, 이 멍청아!”


시 말하는 건데, 붕어빵 장사도 돈 많이 드는 장사다.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부려서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망상의 경지를 초월한 주제넘은 착각이다. 대박을 노린다면 그만큼 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쏟아부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각오가 없다면 그냥 월급장이나 하시길.

장사는 아무나 하나~
DJ. HAN (djhan@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