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2호]X-Box 360, PS 3, 그리고 iTV

재외공관소식
2006년 10월 27일

거실, 넓은 창문과 대형 TV와 소파와 책장이 나름대로의 규칙성 속에서 혼재하는 공간. 거기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TV다. 그리고 어느 집이건 거실 TV에는 여러 가지 장비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비디오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 케이블 TV 셋톱박스, HDTV 셋톱박스, 리시버, 앰프, 5.1채널 스피커, 기타 등등.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건 게임기다.
아타리가 첫발을 내딛고 닌텐도 패미컴이 대히트를 친 이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지속적으로 팽창을 거듭했다. 여러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많은 업체들이 탈락해 나갔다. 현재까지 경쟁을 계속하고 있는 회사는 가전업계의 거인 소니, PC 소프트웨어 업계의 거인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게임기 산업의 대부 닌텐도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1과 2로 사실상 게임기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PS 3의 시장 투입이 늦어지면서 차세대기 경쟁에서 경쟁자들에게 뒤처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일찌감치 X-Box 360을 내놓으면서 북미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닌텐도는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컨셉의 Wii를 발표해 게이머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소니는 이에 맞서 PS 3의 막강한 성능을 어필하는 동시에 차세대 광드라이브인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기본으로 탑재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차세대 게임기 중에 어느 쪽이 승자가 될 지는 아직 확실치가 않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 이기건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대박이 터지긴 힘들 거란 사실이다.

소니와 MS는 게임기 판매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다. 하드웨어 마진을 대폭 낮춰서 가격을 최대한 끌어내렸기 때문에 팔리면 팔릴수록 도리어 손해를 볼 지경이다. 그 대신, 게임 개발사로부터 게임이 1카피 팔릴 때마다 일정 수준의 라이센스 료를 받아서 이익을 낸다. 따라서 수십만, 수백만 카피가 팔리는 초대형 히트작이 나오면 게임 개발사뿐만 아니라 게임기 업체도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된다. 이런 게임이 계속해서 나와 준다면 하드웨어 판매에서 입은 손해는 순식간에 메꿔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지난 여러 해 동안 잘 동작해 온, 사실상 검증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고 있다. 가장 큰 시대적 화두는 역시 온라인이다.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은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미국 등지에서 하루가 다르게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TV용 콘솔 게임기가 지배하고 있던 게임 시장의 중심축이 점차 온라인 게임 쪽으로 기울어지는 형편이다.
이 와중에 무료 온라인 게임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 무료 게임이 노리는 바는 게임기 하드웨어 업체와 별 다를 게 없다. 일단 사용자 숫자를 충분히 확보한 다음에 광고 또는 아이템 판매로 이득을 보겠다는 속셈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료로 배포하는 게임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웹에서 즐기는 플래쉬 게임부터 시작해서 소스까지 완전히 공개된 대형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MS의 X-Box 부문이 처절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시장 장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MS의 윈도우 기반 PC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사이, 콘솔 게임기의 시장 장악력은 현저하게 약해졌다. 이제는 수십, 수백만 장씩 팔리는 게임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게임 판매가 부진해서 라이센스 수익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는 탓에 하드웨어의 적자를 메꾸지 못하고 허덕이는 것이다.
닌텐도의 경우는 차라리 낫다. Wii는 PS 3나 X-Box 360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스펙의 게임기지만, 그 덕분에 개발 단가나 생산 단가는 훨씬 낮다. 소니나 MS와는 달리 하드웨어가 팔릴 때마다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거나 하진 않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닌텐도는 하드웨어 개발업체인 동시에 자기들 스스로가 킬러 게임 개발자이기도 하다. 굳이 써드파티 개발자의 라이센스 수입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젤다와 마리오 브라더즈 게임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으니까.
소니는 PS 3를 블루레이 미디어 보급의 선봉장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HD-DVD 탑재를 공언한 X-Box 360과의 경쟁에서 절대 물러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블루레이에는 그야말로 소니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니는 PS 3 하드웨어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적인 가격 정책과 과감한 마케팅을 펼칠 것이다. HD-DVD 플레이어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닦기 위해서.

얼마 전, 스티브 잡스가 직접 진행한 애플의 아이팟 신제품 발표회에서 iTV라는 제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제품은 TV에 연결되는 미디어 플레이어로 컴퓨터에 저장된 미디어 파일을 무선으로 재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팟 나노나 셔플과는 달리, iTV는 내년 1/4 분기에나 발매될 예정이다. 어떤 분석가는 애플이 초당 540Mbit 전송이 가능한 802.11n 규격이 승인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일리 있는 얘기다. 고해상도 동영상을 원활하게 무선으로 재생하려면 대역폭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사실 이런 류의 미디어 플레이어는 이미 국내에도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마니아와 얼리 어답터 사이에선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불편한 사용법으로 인해 거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는 데는 실패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디어 플레이어에 내장된 소프트웨어는 VTR의 예약녹화 기능만큼이나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맥과 아이포드로 검증된 하드웨어 제작 능력과, 맥오에스와 프론트로우(FrontRow)로 대표되는 간결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 개발 능력과, 아이튠즈 스토어라는 강력한 미디어 판매 수단을 가지고 있다. 유의미한 시장을 만들고, 하드웨어 판매로 이익을 내고, 미디어 판매로 부차적인 이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이쯤 되면 진정한 차세대 게임기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그 이름하야 ‘iPC’. 이것은 무선랜으로 방구석에 놓인 PC와 연결되는 게임기다. iPC의 USB 포트로 연결된 키보드와 마우스, 조이패드를 조작하면 그 신호는 무선랜으로 안방 PC에 전송되고, 안방 PC의 게임 화면은 무선랜으로 iPC에 전송되어 TV에 표시된다. iTV처럼 PC에 저장된 미디어를 무선랜으로 재생하는 부가 기능도 제공한다. TV 출력은 일반 컴포지트 단자부터 고해상도 게임을 위한 HDMI 단자까지 충실하게 갖춘다. 광드라이브 등의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생략해서 생산 단가를 절감한다. 유치원생도 간단하게 쓸 수 있는 게임 포탈 사이트 ‘iPC 게임 스토어’를 만들고, 거기서 유료 회원 가입이 일어나거나 아이템 판매가 이뤄질 때마다 라이센스 료를 징수한다. 이미 형성된 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여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없고, 하드웨어가 팔릴 때마다 수익이 나고, 게임이 팔릴 때마다 또 돈이 벌린다. 만세만세만만세!
하지만 그렇게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3D 고해상도 게임 화면을 무선랜으로 끊김없이 전송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라이센스 료에 부담을 느낀 게임 회사들이 게임 스토어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문제는 이게 과연 생각처럼 잘 팔리겠느냐 하는 거다. 만일 내년 초에 나올 iTV가 날개돋친 듯이 팔린다면 iPC 역시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백일몽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겠지!

‘뉴스 놀이터’ IT 전문기자의 외도
DJ. HAN (djhan@thru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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