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4호]”오빠 못 믿니?” 상황에 대한 종합적 분석

명랑성과학연구회
2006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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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문과 상관 없습니다.

어느 깊은 밤. 남녀가 모텔 앞에서 잠시 멈춰서 있다.
여자는 그곳을 떠나려 하고, 남자는 붙잡으려 한다.
“사랑한다면, 오늘 밤 나를 지켜줘요.”
떨리는 목소리로 여자가 말한다. 그녀의 눈가에 옅게 어린 눈물이 애처롭다.
여자의 눈을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 천천히 입을 연다.
“오빠. 못 믿니?”

“오
빠. 못 믿니?” 라는 문장은 사실 대단히 함축적인 말이다. “오빠를 믿어라.” 라는 회유의 의미가 있을뿐더러, “오빠를 그렇게
못 믿었었니? 실망이구나.”와 같은 감정 자극의 전략도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나를 믿어다오”와 같은 현재
시점에서의 믿음을 요구하는 말일뿐더러 “오늘 이후로, 내가 너를 책임질테니 앞으로는 나를 믿어다오.”와 같은 미래 시점에서의
믿음을 강요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나를 믿고, 너를 맡겨라.” 정도이며, “사랑한다면, 오늘 밤 나를
지켜줘요.”라는 말과 붙여서 해석하자면 “그건 싫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입에서 “사랑한다면, 나를
지켜줘요.”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이미 여자의 마음은 결정이 된 상태다. “사랑한다면 나를 지켜줘요.”라고 말을 하는 것은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남자를 배려하고, 더불어 자신의 뜻을 세우며,
여기에 다음날의 어색함까지 커버하려는 전략적인 멘트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졸리니까 이제 그만 집에 갑시다.” 정도일 것이며,
모텔 앞에 서있는 그 장면과 붙여서 해석하자면 “오빠 마음은 알겠지만, 싫어.”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상황이라면,
남자가 대단히 불리하다. 여자의 마음은 집에 있고, 남자의 마음은 모텔에 있는 동상이몽의 순간에,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붙잡아
모텔 동시 입장을 성공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오랜 기간의 고된 작업이 막바지에 치달아 남녀가 모텔 앞에 같이 서
있는 장면까지 갔다면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에 판단력이 흐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제 한 골만 넣으면 경기는 끝나는
상황인데, 종료시간은 다 되어오고, 더 이상 날릴 뻐꾸기도 없는 체력적 한계 상황이 도달한 상태에서 남자는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기에 “오빠. 못 믿니?”라는 문장은 사실 “일단 모텔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라는
의미에 “제발. 부탁이다.”라는 사정을 섞은 마지막 공격인 것이다. 그러나 불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날린 슛은 언제나 과녁에서
벗어나는 법. 경기를 결정짓는 쇄기 골이라고 쏜 문장이지만, 사실 그 문장은 자살골이다. 여자도 알고 있다. “오빠. 못
믿니?”의 의미를.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60년대 감성으로 살아가는 백치미의 여인이 아닌 다음에야, “오빠. 못 믿니?”가
“오빠를 믿지 마라.”의 우회적 표현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기에 대부분의 상황은 모텔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잠시간
왈가왈부하다 결국 여자는 집에 가고, 남자는 집에 가다 우울한 마음에 소주 한 잔 하는 것으로 종료되고 만다.

따라서
현명한 남자라면 “오빠. 못 믿니?”와 같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먼저 “사랑한다면, 나를 지켜줘요.”라는 말이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는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복잡하게 전개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명한 남자가 여자와 함께 모텔 앞에 같이 섰을 때는 모든 작업이 물밑에서 마무리 된 상태인 것이며, 더 이상의 돌발변수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마무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게 된다면, 오늘은 이쯤에서
작업을 마무리하고 바이바이 하는 것이, 오늘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먹을 사과나무를 심는 작업인의 마인드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모텔 앞에까지 같이 갔던 일은 다음을 위한 복선으로 남겨두고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면, 내일 정말 지구가 멸망해버리기에 오늘 결과를 봐야 한다면, 현명한 남자는 여자의 말을 꼼꼼히
되짚어 생각하게 된다. 애절한 표정으로 긴 한숨마냥 내 뱉은 여자의 말 “사랑한다면, 나를 지켜 줘요.” 이 말.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해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차근차근 짚어 보면, 비비고 들어갈 구석이 충분히 있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깡패 국가가 아니다. 대로변에 있는 모텔 앞에서 강제로 여자를 어쩌구, 저쩌구 할 만큼 대한민국의 치안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다시 말해, 남자가 지켜주고 말고를 떠나, 마음에 안 들면 여자가 그냥 집에 가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랑하건 안 하건 간에, “집에 가요.”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가면 되는 것을 가지고 “사랑하면, 나를 지켜 줘요.”라고 말을
했을 때는, 여자는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밤늦게, 모텔 앞까지 남자와 같이 온 상황이라면, 여자에게도
무언가를 바라는 기대치가 있거나, 무언가 남자에게 실망한 것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게 무얼까? 여자가 기다리는
것이? 남자에게 실망한 것이? 이것은 쉽게 말하기 어렵다. 남자와 여자의 성격과  그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순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적절히 포착할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전체적인 상황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순간적인
상황해석과 순간적인 상황대처가 동시에 가능한 훌륭한 남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기에 많은 남자들이 모텔 앞에서 쓴 고배의
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홀로 야동을 틀어 놓고 눈물을 흘리며 잠을 청하는 것이리라.

이런 경우, 여자의 마음을
해석할 길이 없다면, 여자가 요구하는 기대치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면, “오빠. 못 믿니?”와 같은 후기 산업
사회에서나 통할 것 같은 멘트를 날리기 보다는, 차라리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낫다. 여자가 자리를 떠도
그렇게 20분간 서 있다면, 여자가 다시 되돌아올 가능성이라도 높아지니까. 말빨에 자신이 있다면 보다 세련된 화술을 구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사랑해. 그래서 너의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어.”같은 말은 그 특유의 느끼함 때문에 안 통할 것
같지만, 의외로 분위기가 확보된다면 먹히는 말이다.

여자의 “사랑하면, 나를 지켜줘요.”라는 말은 그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남자에게 떠넘기는 대사다. 이걸 역이용해, 책임을
다시 여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오빠를 사랑하지 않아?”와 같은 대사는 여자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된다. 이렇게 되면 여자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자신에게 넘어 왔음을 인지하고, 갑작스레 찾아온 반전상황에 당황하게 된다. 보통은
이 경우 “사랑하지만, 그것과는 달라요.”라는 여자의 멘트가 뒤 따라 오지만, 이 경우 남자의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라는
체념이 섞인 듯한 동문서답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 정도까지 되면 상황은 난감해지고, 해결방법은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지만
“오빠. 못 믿니?”와 같은 멘트가 발생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종료로는 이어지지 않으며, 여러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가질수
있다.

이 때, 마지막으로 “춥다. 들어가자.” 와 같이 모든 상황이 마치 끝난 것처럼 말하는 멘트를 날리거나, 아무 말 없이 어깨에
손을 얹고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면 보다 쉽게 모텔 동시 입장이 가능해진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답시고 “잠깐
쉬었다 가는 거야.” 라던가, “맥주나 한 잔 하자.”와 같은 말은 금물이다. 이런 말들은 “오빠. 못 믿니?”와 동급의
말들이다.


깐 공상과학 소설을 썼다. 앞서의 방법들은 그저 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예시일 뿐이다. 상황은 언제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고, 건
바이 건이다. 현실은 머릿속과 다르게 상황이 진행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거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않는 걸까?”라는
기본적인 물음을 여자의 입장에서 알아내는 것이며, 여자의 마음이 모텔 앞에서 변한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
해결하고, 여자의 불안과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게 된다면 복잡한 상황 설정과 그 상황에 따른 시나리오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평소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여자의 마음을 배려하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며, 이러한 노력과 훈련이 생활화 된다면
모텔 앞에서의 난감한 상황은 보다 쉽게 종료 될 수 있는 것이다.

섹스란. 다들 알다시피. 배려와 이해의 미학인 것이다.

영진공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산하
성역사연구회 과장
짬지(http://zzamzi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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