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메달이 그리도 좋은가?

2004년 11월 02일
공화국 교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놓고 난리다. 『태극기 휘날리며』, 『빈 집』이 티격태격이더니 『올드보이』도 이에 합세.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지 않더라도 최종 출품 대상에 오를 경우, 미국 내 영화 시장에 진출할 교도부를 마련하는 것이니 제작사나 배급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군침을 삼킬만 하겠다. 거기다 수상이라도 하게 되면 더욱 더 금상첨화겠지.


영화 감독 입장에서도 공인된 영화제가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주는 것이니 의당 기분이 나쁠 리는 없을 것이고, 명예로 생각할 만도 할 게다.

헌데 요즘 돌아가는 꼬라지가 아무래도 꼴사납다. 꼭 부동산 투기로 돈을 모은 한국 졸부들의 키취적 취향을 닮아 있는 꼬라지다. 어느 감독은 앉으나 서나 감독상 트로피 자랑 하느라 자기 영화는 두 번 봐야 진국 맛을 볼 수 있다는 퇴행성 발언을 남발하고 자빠져 있다. 지가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온몸으로 구현하는 나르시시즘의 향연은 악취를 풍긴다. 어느 평론가는 아예 목에 매단 매달수가 작품성을 보증한다는 투의 어이없는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참 주책들이다.

한국 영화 잡지들도 박찬호 삼진 성공률에 오르가즘의 희열과 저주를 오르내리며 발작을 하는 삼류 스포츠 찌라시처럼, 무슨 영화제만 열리면 점쟁이들처럼 죄다 평론가 별점 앞에 모여서 누가 수상을 하게 될지 수선을 떨고 있다. 딱, 올림픽이다. 어느 선수가 금메달 따면, 장엄한 음악과 함께 선수의 고난했던 이력을 읊어대는 것처럼, 어느 영화 작품이 수상을 하게 될 때 영화잡지에서 읊어대는 저 유치찬란한 신파들을 보라. 지금 그들은 영화제에 주머니를 털어가며 자신이 고대하고 기다렸던 감독들의 신작을 향해 발품을 파는, 과연 어떤 영화가 나를 울려줄 것인가 열렬히 기대하는 영화 관객들의 수준에도 못 따라가고 있다. 영화제는 축제다. 관객이 주인이다. 축제를 메달 경쟁 각축장으로 변질시키는 건 언론과 골룸의 딱부리 눈을 치켜든 영화관계자들이다.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명예, 좋다. 하지만 수상을 하더라도 입을 닥쳐라. 영화제 수상 무대 위에 터지는 카메라 프레쉬가 그렇게 좋은가? 겸손이 부재한 명예는 악취이며, 영화의 진정성을 해치는 치명적 독일 뿐이다. 소위 예술을 한다는 인간들이 영화제 올림픽의 메달을 향해 자아내는 골룸의 제스추어, 역겹고 추하다. 차라리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에 항거하는 의미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더라도 과감히 취소할 정도의 양심은 있어야 되지 않나?

국제영화제도 아니고 팍스아메리카나의 또다른 응결체인 아카데미 영화제에 옵션처럼 달라붙어 있는 ‘외국어영화상’에 골룸거리며 줄 서 있는 제3세계 영화 난민들의 보트 피플이라니… 악몽이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구워진 떡고물들, 그렇게 좋은가?

공화국 문화관광부 장관
아도니스(gondola21@gondola21.com)

“영화제 메달이 그리도 좋은가?”의 한가지 생각

  1. 사는게 장난이 아닌데.. 기자님 말씀처럼 살기가 쉬운게 아닐텐데.. 뭐 물론 옳은 말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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