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저자_후쿠오카 신이치

역자_김소연


펴냄_은행나무




영양을 섭취하지 않는다. 호흡도 하지 않는다. 일체의 대사를 하지 않는다. 정제시킨 후 농축하면 결정으로 만들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와 스무고개를 한다면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 생물에 관해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이야기들은 바이러스의 특징이다. 그럼 바이러스는 무생물일까?  하지만 바이러스는 생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자가증식을 한다.
 




세균보다 더 작은 병원체인 바이러스.
사진은 인류에게 가장 처음 보고된 바이러스인
담배 모자이크병 바이러스다.




마치 기계같은 박테리아의 모습. 생물보단 무생물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무엇으로 생물과 무생물을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생물의 정의를 찾기 위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DNA, 단백질, 원자 등 미시 세계 깊숙이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종착역으로 쉰하이머의 이론과 저자가 연구를 하며 맞닥뜨린 사실을 통해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물리학자인 슈뢰딩거가 생명에 관해 강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강의에서 ‘원자는 왜 그렇게 작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기여했으며
고양이(?)로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

 


슈뢰딩거가 제기한 질문은 다시 말해 ‘우리 몸은 원자에 비해 왜 이렇게 커야만 하는가?’다. 슈뢰딩거는 브라운 운동과 확산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우리가 규칙적이라 생각하는 물리적 현상들(예를 들어 진한 농도에서 옅은 농도로의 확산 혹은 따스한 공기확산 등) 은 불규칙한 원자들의 움직임의 평균일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불규칙 운동을 하고 있는 원자들의 오차율을 줄이기 위해 인간의 몸은 원자에 비해 거대해질 수 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기발하면서 물리학스러운 답이 아닐 수 없다.




쇤하이머의 이론을 저자가 임의로 이름붙인 ‘동적평형’은 슈뢰딩거의 이야기를 다른 측면에서 보강, 반박한다. 쥐의 실험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A라는 요소를 먹였더니 쥐의 단백질에 A요소로 구성된 단백질이 만들어졌고 그 만들어진 단백질 만큼 기존의 단백질은 몸 밖으로 배출된 실험결과를 제시했다. 즉 엔트로피 법칙에 항거하는 방법은 슈뢰딩거의 이론처럼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맏겨 내부에 발생하는 엔트로피를 배출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저자를 이를 ‘동적평형’이라 이름붙였고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생명공학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먹고 살만해 지면서 인류의 관심은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으로 옮겨갔다. 우리나라에선 황우석 박사 문제로 큰 홍역을 치뤘고 일본에선 iPS세포로 나라가 들썩인다. 또 한편에서는 로봇공학 연구가 한창이다. 2족 보행 로봇 연구가 한창이고 컴퓨터의 발전에 맞추어 인공지능 역시 향상되고 있다.




아마 이 집념으로 인류는 수명을 지배하고 신체를 부품 바꾸듯 조립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할 것이며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인공자궁을 통해 임신하는 로봇도 만들 것이다.  그러면 다시 우리는 이 오래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