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청춘영화 계보의 원조격인 작품

모두 바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면 배창호 감독의 1984년작 <고래사냥>(새 창으로 열기) 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에 대한 오마쥬이기도 했다.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은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과 상당부분 통해있으며, 다시 이 노래는 <바보들의 행진>에 쓰였을 뿐 아니라 그 가사가 고스란히 주인공 중 하나인 영철의 대사로 뱉어진다. 게다가 <바보들의 행진>의 가장 중심적인 주인공은 <고래사냥>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병태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두 영화 모두 원작, 각본이 최인호다.) 하지만 <바보들의 행진>이 영향을 준 것은 비단 <고래사냥>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한동안 양산됐던 청춘영화는 이승현의 얄개 시리즈(어린 이승현이 <바보들의 행진>에 신문팔이 소년으로 잠깐 출연한다.)나 그 유사의 여학생 버전으로 임예진이 출연한 ‘좋아해’ 시리즈 외에도, 순진한 남자주인공과 되바라진 여자주인공이 대학생 신분으로 공부는 않고 맨날 놀러다니며 술과 미팅과 (특히 여학생의 경우) 결혼에 열을 올리며 좌충우돌하다가 난데없이 어디론가 떠나거나 하는 식의 계보에 속한 영화들이 꽤 있다. 심지어 박중훈, 강수연 주연의 <철수와 미미의 청춘스케치>도 말하자면 그 계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맨날 술만 마시고 공부는 않는 것은, 실은 그 시대가 뻑하면 휴교령이 내려졌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이를 영화에 담았을 때엔 얄짤없이 검열의 칼날이 휘둘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보들의 행진>의 이 계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화로 보인다.

동해바다에 고래를 잡으러 가겠다는 꿈은, 앞뒤옆위아래 꽉꽉 막힌 한국현실에서 젊음이 가질 수 있는 맨 마지막의 선택, 즉 ‘현실도피’를 뜻하는 것이었다. 물론 낙관주의자인 배창호 감독은 <바보들의 행진>과 달리 <고래사냥>의 끝을 더없는 해피엔딩으로 수놓았지만, <바보들의 행진>은 신검 장면으로 시작해 결국 주인공 병태가 입영열차를 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맨날 콧대만 세우던 영자가 달려와 결국 울면서 이별의 키스까지 하는 이 장면이 결국 비극의 엔딩인 것은, 언제나 과도하게 깔깔깔 웃어제끼며 명랑하기 짝이 없었던, 도대체 병태에게 속을 보여주지 않았던 우리의 영자가 기어코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치기와 장난, 미팅과 술먹기 내기 등의 유희들이, 영화의 끝까지 이르고 나면, 비극의 끝을 이미 예정해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벌이는 처절한 유희처럼 보인다.

비록 데모하는 장면은 ‘체육전’을 하거나 축구를 하는 장면으로, 주인공이 교실 안에서 데모에 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는 장면이 그저 ‘인간의 신뢰’에 관한 한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갈등하는 것으로, 감독의 뜻과 무관하게 교체되고야 말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70년대 청춘들의 갈곳없는 막막함과 절망, 그 안에서의 무력감을 드러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정말로 원래 그 장면들이 원래 시대와 시위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들이었다면, 영철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시대는 그토록 순수한 영혼은 결국 견딜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의 순수는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떨어졌는데 심지어 군대까지 떨어진’ 무능함으로만 치부될 뿐이다. 누구도 가고 싶지 않은 그곳, 군대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 무능함을, 본래 그 이름대로 ‘순수’라 부를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흥청망청 노는 것이, 그리고 그깟 머리카락 안 자르겠다고 도망치다가 목숨을 걸고 육교에 매달리는 것이 ‘저항’이었던, 그런 시대였던 거다, 그때가. 그렇다면 결국 병태가 입영열차를 타는 것은 이 사회에 어쨌든 순응하겠다는 패배 선언으로도 읽힌다.

바보들의 행진

목욕하는 남자들.

이 영화에서 영자 역을 맡은 이영옥을 보고 상당히 놀란 게, 굉장히 현대적이다. 75년작인데도 이 배우는 90년대 말적인 미모라 해야 하나. 기본적인 이목구비가 일단 최정윤과 상당히 비슷하다. 거기에 옷을 쫄티에 나팔바지, 통굽구두를 신으니 도저히 75년 영화라곤 보이지 않더라. 다만 버스비가 25원, 짬뽕이 한 그릇에 100원이었다고 한다. 지금보다 약 1/40 수준의 물가였던 셈이다. 또한… 이 영화의 인물들은 대체로 집이 부유하고, 그래서 돈을 많이 쓴다. 미팅 참가비가 당시 돈으로 2천원일 걸 보고 조금 아찔… 했다. 물론 그때 2천원이 꼭 지금의 8만원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 초반 미팅을 하기로 하고 목욕탕에 가서 때빼고 광내는 장면을 보면서도 헉, 했는데, 남체를 그렇게 ‘탐스럽게 훑는 카메라’는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거의 파격이었다고 할 만하겠다. 그리고 이 영화의 그 키스씬은… 아마 한국영화 역사상 길이 남는 키스씬이 될 듯. 어쩌다 보니 <소문난 칠공주> 같은 드라마에서조차 한번 베낀 적이 있다고 하더란 얘기까지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심지어 남녀가 반투명 유리문 하나를 두고 나란히 샤워를 하며 비누를 주고받고 하는데도 이상하게 성적인 느낌이 없다. 키쓰신도 마찬가지인데, 오히려 유일하게 에로틱한 맛이 느껴지는 게 저 목욕탕에서 두 남자가 미팅 전 목욕하는 씬이다. 하길종 감독의 영화 중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으로 동성애를 묘사한 영화가 있다던데 …

바보들의 행진

무기력한 젊음, 과도한 명랑의 의지. 영철(맨 왼쪽)-순자, 병태-영자(맨 오른쪽) 커플.

영진공 노바리

ps1. 영상자료원 조선희 원장의 말에 따르면, 이번 하길종 30주기 추모전에서 상영한 <바보들의 행진>은 검열 당시 삭제됐던 부분을 다시 삽입한 버전이라 한다. 일례로 저 목욕하는 장면, 영자의 룸메이트 순자가 담배 피우는 장면 등이 해당된다. 연고전/고연전을 연상시키는 듯한 체육전 장면과 축구경기 장면은 모두 원래 데모 장면이었던 것을 교체한 것. 고 하길종 감독의 부인인 전채린 교수(그 전채린이다, 전혜린 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교실에 남은 병태가 고민하다가 떠올리는 ‘신문팔이 소년 에피소드’는 응원전에 나가냐 안 나가냐의 고민이 아니라, 데모에 나가냐 안 나가냐의 갈등 장면이었다고. 여기저기 편집이 튀고 결정적으로 막판에 가면 멀쩡하던 얼굴에 갑자기 핏자국 등의 싸운 티가 나는 것도 그 사이 씬이 통째로 검열돼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부산행 열차 안에서 일본인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는 장면이었다고.

ps2. 개막식에서 하명중 감독이 말하기를, “형이 그 젊은 나이로 간 건, 그 시대가 작가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에이 이놈의 세상 그냥 미련없이 가자,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영원히 청년으로 봉인된 천재감독 하길종은 한국영화사에 있어 하나의 ‘섬’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한국의 영화풍경이 지금과 많이 바뀌었겠지 싶다. 단순히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그가 살았다면 펼쳤을 영화의 풍이 그의 제자나 후배에게 전수됐을 때, 특히 80년대의 영화풍경이 꽤 달라졌겠구나 싶어서다. 하길종은 당시의 ‘한국영화의 혁명’을 부르짖는 일종의 ‘신세대’였다. 그와 영화집단을 함께 했던 이가 대충 김호선, 이원세, 홍파 등의 감독과 평론가 변인식이라 한다. 이들 역시 지금의 감독들에겐 일찌감치부터 ‘극복해야 할 구세대’가 돼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 독재정권에 분노하며 절망했던 하길종과 다른 길을 갔다. 불과 30년 사이에 한국영화 역사 역시 사회 전반 만큼이나 급변했다.

레드카펫 놀이 –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4)




해운대 백사장은 언제나 밤에 거닐게 됩니다. 낮에는 볕이 따갑거니와 그 더위에 못 이겨 어서 빨리 바다로 뛰어들고 싶게 만들거든요.


행사 시작은 8시 30분부터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8시 30분이 되어도 시작은 커녕 행사가 왜 늦어지고 있는지 방송조차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백사장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밀집되어 저마다 가까이서 보기위해 자리를 잡은 터라 앉기도 어려웠지요.


저는 아예 레드카펫의 시작점부터 자리를 잡았습니다. 카펫의 3분의 2지점에 기자들의 Photo-Zone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는 이미 사람들로 ‘山’을 이루고 있던 터에다가 레드카펫 끄트머리에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전경 몇 개 소대 정도가 아예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막아놓고 있었습니다. 프레스 뱃지를 보여줘도 통행이 안 되더군요.

뭐 우리는 홍길동과 일지매의 후손.

가볍게 담 넘기.


행사 진행요원이었는지 그냥 구경꾼인지 모르겠지만 백사장에 세그웨이를 타고 나타났더군요. 아마 행사 진행요원이 백사장을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 피곤할까봐 주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은 해봅니다만 – 만약에 그 정도라면 PIFF도 개념있음? – 어쨌거나 세그웨이를 실물로 본 건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백사장에서 저렇게 잘 굴러 가다니!!

9시가 조금 넘어서야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성기 아저씨가 역시 제일 먼저 나오더군요. 사실 유인촌이 먼저 나오면 ‘미친 xx’하고 욕을 해주려 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영원한 ‘이쁜 언니’ 강수연. 물론 꼬장꼬장하게 생기신 PIFF 김동호 위원장께서도 미소를…


눈에 거슬리는 놈도 하나 나타났는데 촛불시위 때 ‘채증’하던 그 놈입니다. 꼴에 사진기 들고 설쳐야 하는 보직을 맡았으니 오늘은 ‘배우’ 채증하러 왔나봅니다. 더군다나 일반 시민은 ‘우러러’ 보게 만든 레드카펫 단 위에 떠억하니 올라가서 대놓고 찍더군요. 훗. 그러나 사진기 성능이 안 받쳐줬던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능. 물론 더 좋은 자리를 찾으러 갔는지도 모르지만.


아 제 사진기도 엄청 나쁘지요. 배우 사진 80%를 결국 날려 먹고 말았다능. 그래서 우리 이쁜 예지원 배우가 흐릿하게 ㅠㅠ


유준상 배우도 보이고 – 사실 그 옆에 김혜나라는 사람은 제가 잘 몰랐다능 ㅡ.ㅡ 미안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아니면 이름을 잘 몰라연 ㅡ.ㅡ


3일에 있던 레드카펫에서는 임형준 배우와 김지수 배우가 함께 걸었어요. 5일에는 김주혁 배우와 함께 걸었다던데 이미 그 때 저는 올라왔다능.


식객의 김강우 배우와 김소연 배우도 나란히 등장. 김강우는 참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한국 배우들은 바삐 걸어가기 바빴어요. 물론 그네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언론에 나가는 Photo-Zone이었지만 꽤 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 한 번 안 흔들어주고 가는 배우가 허다했지요. 물론 이건 인격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어떤 남자 배우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레드카펫에 딱 올라서면서 그 많은 인파에 놀라 ‘어떡해!?!’를 내지르면서 부끄러워하더군요. 어허 배우가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야 ㅋㅋ

더군다나 오광록 배우 – 개인적으로 오광록 아찌라고 부르고픈 ㅋㅋ – 는 그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어찌나 빨리 휙휙 걸어 가시던지. 아 물론 좌우로 둘러보면서 그 특유의 웃음을 비춰줌으로 인해 관객들이 무척이나 유쾌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이기선 배우 – 제임스 키선 리, 혹은 제임스 카이슨 리 – 와 문 블러드굿 배우는 레드카펫 처음부터 아예 열 걸음마다 한 번씩 좌우로 허리 굽혀 절을 하던 모습에 ‘우왕국’을 연발할 정도였어요.

레 드카펫 놀이가 재밌는 이유는 순전히 관객들 덕분입니다. 저 멀리 배우들이 자동차에서 내리는 입구쪽에 환호성이 들려오면 이번에 등장할 배우가 어느 정도 인기인인지 나타납니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할 때는 해운대가 떠나가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카펫’에 올라가면 누구나 ‘스타’가 된다는 겁니다. 레드카펫 초반부터 Photo-Zone까지 가는 동안 꽤 많은 배우들의 ‘코디네이터’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이미 스타가 지나간 후에 등장하는 스탭들이 나타납니다.

이 스탭들을 위해서도 관객들은 아낌없이 환호를 보냅니다. 무식한가요? 무지하다고 비판할 건가요? 말도 안 돼죠. 보안 요원이 급히 뛰어가는 것도 우리 관객들에겐 환호하고 즐거워할 광경입니다. 그 곳은 ‘레드카펫’이니까요.

물 론 문제도 있었지요. 너무 띄엄띄엄 배우들이 입장하게 되니까 관객들은 지루해하면서 허리를 두드려가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더군다나 레드카펫 등장 인물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관객이 대부분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으니까 외국 배우들이 등장하면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레드카펫 단상 아래에 LED 전광판을 설치해서 현재 지나가는 배우의 이름과 국적, 주요 작품 내역 정도가 텍스트로 출력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뭐 어쨌거나 재미난 ‘관객’들이었습니다. 어떤 여배우가 나오자마자 부산 사투리로 ‘우와!!…. 에이 성형 안 했다다두만 했네!’라고 ‘배우 민망하게’ 외치는 관객부터, 등장 인물들의 배역을 마구 불러주는 관객까지.


별로 ‘우리나라 레드카펫 문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확실히 축제 분위기의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행사인 것 만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PIFF의 밤이 저물어 가는 거죠.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