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 놀이 –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4)




해운대 백사장은 언제나 밤에 거닐게 됩니다. 낮에는 볕이 따갑거니와 그 더위에 못 이겨 어서 빨리 바다로 뛰어들고 싶게 만들거든요.


행사 시작은 8시 30분부터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8시 30분이 되어도 시작은 커녕 행사가 왜 늦어지고 있는지 방송조차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백사장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밀집되어 저마다 가까이서 보기위해 자리를 잡은 터라 앉기도 어려웠지요.


저는 아예 레드카펫의 시작점부터 자리를 잡았습니다. 카펫의 3분의 2지점에 기자들의 Photo-Zone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는 이미 사람들로 ‘山’을 이루고 있던 터에다가 레드카펫 끄트머리에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전경 몇 개 소대 정도가 아예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막아놓고 있었습니다. 프레스 뱃지를 보여줘도 통행이 안 되더군요.

뭐 우리는 홍길동과 일지매의 후손.

가볍게 담 넘기.


행사 진행요원이었는지 그냥 구경꾼인지 모르겠지만 백사장에 세그웨이를 타고 나타났더군요. 아마 행사 진행요원이 백사장을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 피곤할까봐 주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은 해봅니다만 – 만약에 그 정도라면 PIFF도 개념있음? – 어쨌거나 세그웨이를 실물로 본 건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백사장에서 저렇게 잘 굴러 가다니!!

9시가 조금 넘어서야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성기 아저씨가 역시 제일 먼저 나오더군요. 사실 유인촌이 먼저 나오면 ‘미친 xx’하고 욕을 해주려 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영원한 ‘이쁜 언니’ 강수연. 물론 꼬장꼬장하게 생기신 PIFF 김동호 위원장께서도 미소를…


눈에 거슬리는 놈도 하나 나타났는데 촛불시위 때 ‘채증’하던 그 놈입니다. 꼴에 사진기 들고 설쳐야 하는 보직을 맡았으니 오늘은 ‘배우’ 채증하러 왔나봅니다. 더군다나 일반 시민은 ‘우러러’ 보게 만든 레드카펫 단 위에 떠억하니 올라가서 대놓고 찍더군요. 훗. 그러나 사진기 성능이 안 받쳐줬던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능. 물론 더 좋은 자리를 찾으러 갔는지도 모르지만.


아 제 사진기도 엄청 나쁘지요. 배우 사진 80%를 결국 날려 먹고 말았다능. 그래서 우리 이쁜 예지원 배우가 흐릿하게 ㅠㅠ


유준상 배우도 보이고 – 사실 그 옆에 김혜나라는 사람은 제가 잘 몰랐다능 ㅡ.ㅡ 미안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아니면 이름을 잘 몰라연 ㅡ.ㅡ


3일에 있던 레드카펫에서는 임형준 배우와 김지수 배우가 함께 걸었어요. 5일에는 김주혁 배우와 함께 걸었다던데 이미 그 때 저는 올라왔다능.


식객의 김강우 배우와 김소연 배우도 나란히 등장. 김강우는 참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한국 배우들은 바삐 걸어가기 바빴어요. 물론 그네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언론에 나가는 Photo-Zone이었지만 꽤 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 한 번 안 흔들어주고 가는 배우가 허다했지요. 물론 이건 인격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어떤 남자 배우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레드카펫에 딱 올라서면서 그 많은 인파에 놀라 ‘어떡해!?!’를 내지르면서 부끄러워하더군요. 어허 배우가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야 ㅋㅋ

더군다나 오광록 배우 – 개인적으로 오광록 아찌라고 부르고픈 ㅋㅋ – 는 그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어찌나 빨리 휙휙 걸어 가시던지. 아 물론 좌우로 둘러보면서 그 특유의 웃음을 비춰줌으로 인해 관객들이 무척이나 유쾌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이기선 배우 – 제임스 키선 리, 혹은 제임스 카이슨 리 – 와 문 블러드굿 배우는 레드카펫 처음부터 아예 열 걸음마다 한 번씩 좌우로 허리 굽혀 절을 하던 모습에 ‘우왕국’을 연발할 정도였어요.

레 드카펫 놀이가 재밌는 이유는 순전히 관객들 덕분입니다. 저 멀리 배우들이 자동차에서 내리는 입구쪽에 환호성이 들려오면 이번에 등장할 배우가 어느 정도 인기인인지 나타납니다. 다니엘 헤니가 등장할 때는 해운대가 떠나가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카펫’에 올라가면 누구나 ‘스타’가 된다는 겁니다. 레드카펫 초반부터 Photo-Zone까지 가는 동안 꽤 많은 배우들의 ‘코디네이터’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이미 스타가 지나간 후에 등장하는 스탭들이 나타납니다.

이 스탭들을 위해서도 관객들은 아낌없이 환호를 보냅니다. 무식한가요? 무지하다고 비판할 건가요? 말도 안 돼죠. 보안 요원이 급히 뛰어가는 것도 우리 관객들에겐 환호하고 즐거워할 광경입니다. 그 곳은 ‘레드카펫’이니까요.

물 론 문제도 있었지요. 너무 띄엄띄엄 배우들이 입장하게 되니까 관객들은 지루해하면서 허리를 두드려가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더군다나 레드카펫 등장 인물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관객이 대부분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으니까 외국 배우들이 등장하면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레드카펫 단상 아래에 LED 전광판을 설치해서 현재 지나가는 배우의 이름과 국적, 주요 작품 내역 정도가 텍스트로 출력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뭐 어쨌거나 재미난 ‘관객’들이었습니다. 어떤 여배우가 나오자마자 부산 사투리로 ‘우와!!…. 에이 성형 안 했다다두만 했네!’라고 ‘배우 민망하게’ 외치는 관객부터, 등장 인물들의 배역을 마구 불러주는 관객까지.


별로 ‘우리나라 레드카펫 문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확실히 축제 분위기의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행사인 것 만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PIFF의 밤이 저물어 가는 거죠.

영진공 함장

[PIFF] ‘우에노 주리’를 만나다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

 

요즘 한창 <베토벤 바이러스>가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클래식과 ‘천재’라는 요소로 이미 드라마에 성공한 것이 일본의 <노다메 칸타빌레> 시리즈이죠. 물론 원작은 만화이지만.

어쨌거나 이 <노다메 칸타빌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다메’ 역의 ‘우에노 주리’양을 보려고 기자 회견장을 찾았습니다.


그랜드 호텔 22층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왠지 여기를 보면 ‘영화제’에 온 기분이 제대로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22층에 올라가니 뒤에 모여 있는 모텔 집성촌과 해운대 해변도 한눈에 들어와 경치도 좋지요.


구구 크러스터(…)가 생각나는 영화 영어 제목이지요…


이누도 잇신 감독은 아예 기자회견 하기 전부터 밖에 나와서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원래 기자회견 시작할 때쯤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만 봐오던 저로서는 꽤 친근한 느낌을 주는 감독이었어요.


그러나 이누도 잇신 감독보다 사진 세례는 이 고양이 녀석이 다 받고 있었습니다. 깜찍하죠?!?!?!


포토 타임 때 고양이 녀석은 아주 우에노 주리 어깨 위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재롱을 피웠습니다. 우에노 주리는 강아지도 키우고 고양이도 키운다 하더군요. 기자 회견 중에 ‘고양이’를 촬영하느라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누도 잇신 감독이 대답하길 ‘강아지는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라 말을 안 들으면 스트레스받는 데 고양이는 아예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촬영 시간은 4배 정도 많이 소요됐지만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촬영을 하면서 스태프들이 도리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역시 고양이가 가진 매력이란 대단한가 봅니다.


기자 회견 도중에도 이누도 잇신 감독과 우에노 주리는 계속 귀엣말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했는데요 우에노 주리가 참으로 격식 없이 소탈한 것을 볼 수 있는 순간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한국 여배우들보다 수수하다.’라고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이었는데다가 통역이 벌어지는 도중에 멀뚱멀뚱 기자들 눈치 보지 않고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대화하는 것을 보니 자연스레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대다수가 ‘노다메’의 그 멍청한 듯 발랄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에노 주리는 참으로 ‘연기 폭’이 어린 나이에 다양한 배우입니다. <라스트 프렌즈> 시리즈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같은 영화에서 드러난 연기가 그것을 증명하죠. 어쨌거나 저 두 가지 표정에서도 그걸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나리오’를 고르지 않는다더군요. 주어지는 대로 연기에 임할 뿐이랍니다. 우리 배우들은 ‘시나리오 고르고 있어요.’를 밥 먹듯이 얘기하는 데 참으로 수줍어하고 여린 여배우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물론 대한민국의 영화 제작 시스템이나 일본의 영화 제작 시스템 및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낫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런 배우라면 이런 기자회견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일 텐데 전혀 그런 티 하나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는 것 또한 대단한 ‘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우에노 주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오게 하는 그 아우라에 충분히 끌림을 느낄 만 합니다. 더군다나 레드 카펫을 걸을 때 ‘노다메~’, ‘아이시떼루~’, ‘스키데쓰~’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전부 ‘여성’뿐이라 섭섭했다는 데 남자들이 전부 부산에 와서 ‘부산 남자’가 되어버린 걸까요? 저런 사랑스러운 여배우에게 ‘아이시떼루~’ 한 마디 안 던지다말입니다.



기자회견 도중에 개그맨 유세윤 氏와 유상무 氏가 나타났는데요. MBC everyone에서 하는 무언가를 촬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좌중이 약간 술렁이게 되자 행사 진행 요원들이 좀 험악하게 구는 상황도 연출되었는데요. 뭐 어쨌거나 기자회견 마지막에는 유세윤 氏가 ‘우에노 주리 아이시떼루~’ 하면서 일어 몇 마디 던져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유상무 氏는 키도 저보다 훨씬 크더군요 180 가볍게 넘겠던데요? (입구에서는 장동민 氏도 봤답니다.) (아 그리고 유세윤 氏 개인적으로 오신 거라 해 놓고선… 거짓말 하시다니 ㅠㅠ)


어쨌거나 수수하고 소탈하면서도 매력적인 우에노 주리를 만나서 꽤 재미난 시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에 대한 예매가 45초 만에 끝났다는 얘기를 하면서 일본에서도 그런 흥행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는데, 그 바램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아.

우에노 주리 너무 예뻐요.

영진공 함장

[PIFF]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 – 부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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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하면 주로 먹을거리로 생각하는 것이 바닷가 근처다 보니 회나 해산물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서울이나 그 외 타지방에서 먹는 해산물보다 훨씬 싱싱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저처럼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 – 물론 회라면 꺼벅 죽습니다만 – 은 먹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동래파전도 해물 한가득, 그나마 밀면은 덜하려나요? 그러나 밀면은 맛있게 하는 집이 아니면 참 곤욕스럽기도 합니다. 밀가루 면이다 보니 까칠하죠.

PIFF 에서 영화와 야외 행사를 쫓아다니다 보면 맛집을 찾아다니긴 더욱 어렵습니다. 시간 맞춰 무엇을 먹기도 힘들거니와 유명 맛집의 경우엔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영화 예매 시간을 가볍게 넘기기 일쑤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부산의 밤’은 언제나 PIFF의 뜨거운 열기로 활발합니다. 그러나 당장 해운대 앞 재래시장의 경우엔 밤 10시면 상당수의 가게가 문을 닫아겁니다. 기나긴 영화제의 밤에 먹을거리가 빠지면 아쉬움도 일지요.

그래서 소개합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5~6시까지 영업을 하는 ‘석쇠 화로구이 전문점’!


가마솥이 이 위치에 생긴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옮기기 전부터 장장 20년 동안 부산에서 ‘석쇠구이’를 취급해 온 곳이지요. 가게 주인이 직접 고기를 골라서 사 오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데다가 양념에 버무린 갈비 맛은 정말 웬만한 갈빗집에서 맛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달콤함까지도 묻어납니다.


가격도 멋집니다. 돼지갈비 맛이 일품이지요.


함께 나오는 밑반찬들 또한 맛에 넘칩니다. 물김치도 한 대접이 나오고 도라지 무침도 나와서 함께 구워 먹는 맛 또한 최고입지요. 간장게장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공깃밥을 시킬 때 함께 나오는 된장국 또한 커다란 뚝배기에 나오며 된장국뿐만 아니라 시래깃국도 나옵니다. 시래깃국만 있어도 밥 한 공기 뚝딱 입니다.


더군다나 식후에 건네 주는 이 커피 한 잔! 아 멜라민 걱정되는 크림 없습니다! 달착지근 투명한 설탕커피! 거기에 얼음 동동 이면 매운 마늘에 얼얼한 혓바닥도 금세 사르르 녹는다는!!!



이리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위치가 대로변이 아님에도 역시 소문만 듣고 찾아온 유명인사들이 대거 있습니다. 특이하게 사인을 받아서 붙여두는 게 아니라 아예 선팅지에 커다랗게 사인을 해두었더군요.

PIFF에 오셔서 해운대 근처의 해산물 먹을거리에 지치신 분들. 이곳 한 번 찾아보세요. 굳이 PIFF 기간 아니더라도 부산에서 맛난 고기를 찾으신다면 들러볼 만 합니다.


걸어서 가기에 조금 빠듯하다고 느끼신다면 해운대 PIFF 빌리지에서 택시를 타셔도 2,500원이면 충분히 다다를 거리입니다.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정말 오늘은 배부른 밤입니다.


영진공 함장

모터사이클 다이러리 – PIFF(부산국제영화제)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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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PIFF에 Press ID를 얻게 되어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뭐 계획한 것도 없거니와 Press ID로 얻을 수 있는 표는 결국 ‘복불복’이기 때문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보다 부산 유람이나 하자는 요량으로 자가용(?)을 끌고 내려갈 생각을 했지요.


장장 500km에 이르는 머나먼 길이라 센터에 들러 타이어 공기압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점검을 하고 출발을 합니다. 뒤에 실린 짐에는 노트북과 몇 가지 옷만 넣었지요.


출발 전 셀카질을 합니다. 저 얼굴이 얼마나 초췌해질지 비교용이지요.

이것저것 챙겨 준 화전오토바이 조경식 기사님 감사합니다. (경식아 네 애인보다 더 적게 사랑해줄껭 ㅋㅋ) 먼 거리 간다고 킥 스텝을 조절하느라 삽질해 주어서 얼마나 미안한지 ㅡ.ㅡ

화전 항공대 앞에서 12시 30분에 출발하여 연대 앞 -> 광화문 -> 동대문을 거쳐 천호대로를 타고 잠실로 빠져나와 3번 국도에 올랐습니다.

성남으로 빠져서 장호원까지 쭉 이어지는 3번 국도는 평일 낮이라 그런지 그리 막히지 않았습니다. 들판에 벼는 추석 때 비해 훨씬 노랗게 익었고 시원한 가을 바람과 따사로운 가을볕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따로 없게 만들지요.



가는 동안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허리도 펴주고 팔과 손도 주물러 주고 그렇게 잘 내려갔습니다.

충주에서 25번 국도로 갈아타고 수안보를 향했습니다. 수안보를 지나 문경새재는 이륜차로는 처음 지나갔습니다만 역시 이화령 고개를 넘는 게 아니라 터널을 빠져나가다 보니 딱히 코너 도는 재미는 없었지요. 어쨌거나 경상도 땅에 넘어오면서 이제 금방 ‘대구’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대구까지 76km 정도 남은 상황.

출발지로부터 240km 부근에서 그만 출력이 떨어졌습니다. 쓰로틀 – 자동차로 치면 액셀 – 을 최대한 열고 달리고 있었음에도 시속이 계속 떨어져 갔습니다. 이런 상황은 보통 연료가 완전 Empty 상태가 되면 나타납니다. 제 스포츠 바이크의 경우 보조 연료를 위한 통이 없어서 이 상태가 되면 방법이 없지요. 그러나 계기판에 분명히 연료 게이지는 ‘한 칸’ 남은 상태로 나와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료 게이지가 Empty가 되어도 연료는 3.5L 남기 때문에 최소 100km는 더 갈 수 있거든요!

어쨌든. 곧 시동이 꺼졌습니다. 클러치를 쥔 채 달려오던 관성을 이용해 옆으로 빠져 갓길에 세웠습니다.

막막하죠.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잘 정비된 국도….. 에서 이런 상황이! 어디에 정비소가 있단 말인가!!!

시동을 걸려 열쇠를 돌리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가 납니다. 우왕 이를 어째!


배터리 문제인가 싶어 열어봤는데 배터리 나사는 괜찮고….. 여기 저기 둘러보니 역시 연료 펌프가 주입되는 연료가 없으니 ‘따르르르르르륵’ 소리를 냅니다… 밥달라는 소리 ㅠㅠ

연료가 충분히 있으니까 배터리와 연료 펌프 사이 배전에 문제가 생겼으리라 생각했는데 연료 게이지 부레가 고장이 난 것으로 판단. – 아무래도 이전 급유해 준 데서 꽉꽉 채워 안 넣어준 것으로 생각되어용. 그 주유소 가지 말아야지 –

한 10분 정도 연료가 조금이라도 고이길 기다렸다가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곤 이륜자동차의 최대 장점인 최고속으로 달려 놓고 ‘시동 끄고 클러치 잡고 관성으로 주행 신공’을 펼쳤지요. 일반 공도에선 위험천만이지만 다행히 1km 안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가르쳐 주셔서 과감히 결행했습죠.

100km/h 까지 올려 놓고 클러치를 쥐고 시동을 껐습니다. 이륜자동차는 시동이 꺼져도 브레이크가 작동합니다. 국도에서 내려 마을로 꺾어 들면서 정확히 주유소까지 도착하는 ‘기적적인 행운’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제 신용카드 할인이 안 되는 타 정유사 주유소 ㅠㅠ

아 그래도 역시 난 운도 좋아.


연료 때문에 시간을 허비해서 원래 계획인 ’17시 대구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퇴근 시간대인 18시에 대구에 진입하게 되었지요.

대구 시가지는 8년 만에 들어갔습니다. 생도 때 외박 나오면 마산까지 나와서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들어와 다시 안동까지 가는 고속버스로 갈아타고 또 안동에서 영주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갈아타면서 고향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그에 비하면 모터싸이클로 부산 가는 건 정말 식은 죽 먹기죠.

어쨌든 퇴근길의 혼란인 대구 중심부를 관통해야 했습니다. 대구 약령시를 지나 경산 경계까지 오고 나서야 한 시름 놓고 편의점에 들러 쉴 수 있었지요. 그때 벌써 위 사진처럼 해가 뉘엿뉘엿 지더군요….. 아직 경산도 못 들어갔는데!!!! orz

25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갔습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소싸움의 고장인 청도를 지나 영화 ‘밀양’의 배경인 ‘밀양’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올라가는 길엔 ‘밀양’을 낮에 와보고 싶어요. 도무지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ㅡ.ㅡ 고갯길도 캄캄해서 꼭 늑대라도 나올 분위기!

해도 지고 배도 고프고 하던 차에 눈에 띄는 간판!


찐빵 보다는 ‘만두’!!!! 넵, 저는 만두 킬러입니다.

만두집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누님의 경상도 사투리의 정겨움이란 캬~

서울에서 왔다니까 바로 ‘해운대 가시나봐요?’하면서 알아채시는 센스!

정말 맛나게 먹어치우고 나왔습니다.

배도 든든하겠다. 밀양은 부산에서 지척 거리!

25 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게 되면 ‘창원’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25번을 이어나가면 ‘마산’으로 넘어가고, ‘진해’를 거쳐 ‘부산’으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전 14번 국도를 선택해 김해 쪽으로 시도했습니다. 창원-마산-진해 (보통 ‘창마진’으로 불리는 연계 도시) 라인은 과거에 많이 간 길이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했지요.

그러나 이게 웬일? 14번 국도 접어들자마자 눈에 확 띄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2.8km랍니다.

우왓! 밤 8시 반인데도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꺾어 듭니다. 전 도로변에서 그렇게 가까울지 몰랐거든요. 매번 ‘봉하마을’ 사진을 보면 완전 시골로 보여서 어디 산속 깊숙이 있는 마을인 줄 알았습니다.

꺾어 들어보니 2km에 달하는 구간이 전부 ‘공단’입니다. 공단을 벗어나자 작은 마을이 하나 시작되더이다.

우와 완전히 속았다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 온다는데 주차장 규모 – 물론 가장 먼저 보이는 주차장만 들렸지만 – 는 기껏해야 승용차 30대 정도 주차하는 공간이고 주차장 옆에는 봉하마을회관이 있더군요. 밤에도 ‘아이들’ 목소리가 회관 안에서 두런두런 새어 나올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고작 150m밖에 안 됩니다. 호화 저택은커녕 그냥 조금 큰 양옥집이더이다. 야간인데다가 입구에 공사 중이라 의경이 경비를 서고 있더군요. 묻는 말에 친절히 웃으며 답해 주는 의경에게 수고하라고 전하고 내려와 주차장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습니다.

언론에 비치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늘 잔칫집일 것 같은 데 이건 뭐 제 어릴 적 산골 외가보다 더 조용합니다. 딱 고향에서 야간에 교외 공설운동장 같은 시설의 자판기 커피 마시러 드라이브 나올 것 같은 그런 주차장 풍경에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더군요.

다시 헬멧을 쓰고 부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4번 국도는 부산 찾으시는 분께 아직 권하고 싶지 않더군요. 부산까지 완전히 이어지지 않아서 북부산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김해에서 꺾어져 들어가더라도 계속 고가도로 아래로 달리면서 그리 좋지 않은 노면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쨌거나 ‘서면사거리’ 이정표를 계속 쫓아 서거나 가거나를 반복하면서 눈요기를 즐겼습니다. 광안대교를 야간에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도 잠시. 생도 때 외출할 때마다 나와 놀던 서면에 들어서니까 만사가 다 귀찮더군요. 그리고 그제야 ‘부산에 도착했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면에서 해운대로 넘어와서 요트경기장 앞을 지나자 ‘PIFF’ 관련 깃발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현재 부산에서 ‘비엔날레’를 포함해 국제 행사가 3가지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분주해 보입니다. 밤 11시였는데 말이죠.


해운대 모텔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접어들어 몇 군데 들러봤습니다. 2인 일반실 비용이 6만 원에 1인 증원할 때마다 1만 원 추가더군요. 더 재미난 건 아예 간판에 ‘25,000원’ 적어둔 집이 그럽니다.

더 재미난 건 연휴기간이자 PIFF 개막일, 황금 주말은 이미 ‘예약’이 다 된 상태이며 2인 일반실이 10만 원이랍니다.

이건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어요. 이건 시장 논리도 아니고 수요 공급 이론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바가지’죠.

부산시는 뭐 하는 건지. 혀를 찰 수밖에 없네요.

일단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자고 일어나고 나서 내일부터는 송정이나 좀 더 멀리 나가서 방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어쨌거나 무려 삽질한 1시간을 제외하더라고 장장 8시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7시간 예상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다가 사진 기록 남기느라 자주 쉬어 줬더니 1시간이 늘어났네요.

이 정도 모터사이클 체력이면 일본 스즈카 8시간 내구 레이스 출전해도 되지 않을까요? ㅋㅋ

그럼 내일부터 아니군요 벌써 오늘이군요. 사흘간 PIFF에 빠져보도록 합지요.

영진공 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