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애듀케이션”, 꿈이라면 부디 깨지 말길 바랬건만


줄거리는 단순하다. 대학 입학을 앞둔 여고생이 중년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진학을 포기하고 결혼할 마음까지 먹지만 그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 아님을 크게 깨닫고 원래의 가던 길로 돌아왔더라는 얘기.

흔한 성장 스토리인 동시에 뼈아픈 첫사랑의 실패담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 <언 에듀케이션>은 눈물이 날 정도로 매혹적이다. 나중에 그 매혹적인 순간들이 얼마나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었는지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했던 만큼 매혹적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은 주인공 제니(캐리 멀리건)의 대사는 어쩐지 재미가 없다.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얘기는 고리타분한 잔소리에 가깝다. 하지만 제니가 거쳐온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그 한 마디에 실린 무게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사실 진작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강했다. 그래서 아무런 암시도 없이 진실이 드러나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꺼꾸로 뒤집혀 버리는 이런 방식을 순순히 수긍하고 만다.

에밀리 왓슨과 케이티 홈즈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듯한 캐리 멀리건은 너무 당연하게도 <언 에듀케이션>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열쇠다 – 가끔 주인공 배우에 대한 호불호 때문에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가 좌우되는 경우를 봐서 하는 얘기다.

만약 여고생처럼 보이기만 하던 제니가 햅번 스타일로 차려입었을 때에도 감탄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이 여배우가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고 따라서 영화 자체도 영 신통찮은 작품으로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된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피터 사스가드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표현보다는 선악의 개념 자체를 흐리게 만드는 부류다. 그래서 데이빗 역할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이 배우 어디서 봤었나 결국 생각해내지 못했었는데 전부 미국인으로 출연한 영화들이었고 실제로 피터 사스가드는 <언 에듀케이션>에 출연한 유일한 미국인 배우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영국인 사업가로 변신해 제니와 관객 모두를 홀딱 넘어가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언 에듀케이션>의 이야기를 데이빗의 입장에서 다시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데이빗의 직업은 결국 제니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힌트가 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빼앗아 가는 일이 데이빗의 직업이었다.
 
어찌보면 남다른 심미안을 가진 타고난 감식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로 인해 데이빗의 삶은 본인과 가족,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남겨주곤 하는 것이다 – 어찌보면 영화 속에서 더 자주 다뤄지곤 하는 쪽은 제니 보다 데이빗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 에듀케이션>은 영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린 바버가 문학잡지 <그랜타>에 기고한 글을 기초로 닉 혼비가 시나리오로 완성한 작품이다.

린 바버 자신도 동명의 책을 써서 2009년 6월에 출간했다고 하는데 닉 혼비는 린 바버의 책을 참고하지 않고 오직 최초의 짧은 글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그래서 데이빗의 캐릭터와 직업은 아마도 온전하게 닉 혼비 자신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언 에듀케이션>은 덴마크 출신의 여성 감독 론 쉐르픽의 섬세한 연출과 함께 아름다운 프러덕션 디자인 담당자의 이름까지 찾아보게 만든다. 앤드류 맥알파인이다.

영진공 신어지





“언 에듀케이션”, 17살 인생 최고의 선물


제니(캐리 멀리건)의 나이는 17살. 한국나이로 치면 18살쯤. 그때 난 즉석떡볶이, 스티커사진, 브래드피트, 스크린,
로드쇼 같은 것에 빠져 살았다. 가끔 일탈을 꿈꿀 때도 있었지만 기껏 점심시간에 학교 담을 넘어 친구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명동에 나가 핸드폰 줄을 사오는 걸로 만족하곤 했다. 제니처럼 친구들과 러시아제 담배를 나눠 태우며 파리의 환상을 노닥거리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때 난 남자가 뭔지도 몰랐고, 책을 나눠 읽을 이성 친구 하나 없었다. 헌데 제니는 진짜 남자 데이빗(피터 사스가드)과
대화도 나누고 데이트 날을 잡고 예쁘게 치장하고 꿈같은 파리 여행도 떠난다. 아 물론, 첫날 밤 아닌 첫날 밤도 함께 보낸다.

이 모든 게 너무 너무 부러워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한 것 같다. 제니의 수줍은 미소와 데이빗의 유쾌한
농담으로 점철된 첫 만남 장면에선 거의 넋을 놓았다. 상큼한 제니의 미소가 내 것인 양 시공간을 무시한 채 영화에 푹 빠졌다.
곧 제니가 마주칠 진짜 현실을 까맣게 모르고서.

남들처럼 무난해 별 감동도 깨침도 없던 지난날을 비춰보면, 제니의 경험들이 (비록 행복과 불행의 극단을 오갔더라도) 분명 그녀에게
사랑과 욕망 같은 감정을 직시하고 또 견제하는 힘을 얻게 해 줬을 것이다. 오드리 헵번이 보였을 법한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모든
걸 포기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은 순수함은 곧 현명함으로 성숙됐을 것이다.
 

나의 과거에게 이 영화를 주고 싶다. 감정의 실타래 속에서 생고생하는 사춘기의 여고생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혹 더러운
경험으로 인생 망쳤다고 생각하는 안타까운 소녀들도 주저 말고 이 영화 꼭 보길 바란다. 실패는 언제나 도약하는 계기를 준다.
제니처럼.


<언 애듀케이션>은 영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린 바버의 실화를 닉 혼비가 각색한 작품으로, 3월 18일 정식 개봉한다.


영진공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