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2004, The Sin Eater)”, 설정을 받쳐주지 못하는 느슨한 연출


한 편엔 『LA 컨피덴셜』과 『미스틱 리버』, 또 한 편엔 『페이백』과 『포스트맨』, 그 가운데쯤에 『기사 윌리엄』과 『맨 온 파이어』.
 
“브라이언 헬겔란드”는 사실 감독보다는 각본가로서 더 관심이 가고, 그건 단연코 『LA 컨피덴셜』과 『미스틱 리버』 때문입니다만, 이 사람은 작품의 수준 편차가 너무 심합니다.
 
『LA 컨피덴셜』과 『미스틱 리버』는 그보다 더 잘할 수 없는 최상의, 그리고 놀라운 각색이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맨』과 『페이백』의 존재는 이 사람의 능력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나쁘지 않은 흥행서적을 거둔 『기사 윌리엄』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영화고 저도 꽤 좋아하지만, 사실 ‘훌륭한’ 각본이라고 말하긴 힘들죠. 사실 이렇게까지 심하게 편차가 나는 것도 쉽지 않은 재능일 겁니다만. 하여간, 형편없는 각본(그리고 연출)쪽 그룹에다 『신 이터』를 추가해야 할 것같습니다.

설정은 매우 근사합니다. 어두운 바로크풍의 화면에서, 고뇌하는 우울한 표정의 카톨릭 내 소수파 신부 알렉스(“히스 레저”)는 (이전에 파문당한) 자신의 스승의 석연찮은 죽음을 맞게 되면서 배후에 교회의 적으로 간주되는 신 이터의 존재를 감지하게 됩니다.

신 이터(Sin Eater)는 말그대로 죄를 먹는 자, 교회로부터 추방당한 이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의식을 치러주어 그들이 죽기 전 그들의 죄를 대신 먹어주는 자입니다.

교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치는 카톨릭(+개신교)에서 신 이터의 존재는 이단이자, 교회를 위협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 근사한 설정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상당히 헐렁해집니다. 플롯도 그렇지만 연출과 편집 자체가 어쩜 그렇게 헐렁하고 느슨한지. 전체적으로 영화는 상당히 B 분위기를 풍깁니다. 배우들도 좀 낯설죠.

하지만 이 영화가 돈을 별로 안 들인 게 아닙니다. 로마 로케이션에 성바오로 성당도 나오고요. B스런 화면에도 불구하고 『크로우』는 얼마나 광폭한 섹시 에너지로 넘치는 스타일리쉬한 화면이던가요. 이 영화도 그걸 하고 싶어합니다만, 그리고 일부는 성공합니다만, 문제는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일관성있는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하고 파편화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신 이터를 접하면서 자신의 신앙체계에 의문을 증폭시키고, 가슴 속에 은밀한 사랑의 욕망을 억제하고 있으며, 교회의 독선과 냉혹함과 배타성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복잡다단한 갈등을 가진 신부라는 설정이 “설명”만 될 뿐 “표현”되지는 않는 단점입니다. “히스 레저”는 마치 나무토막 같아요.

정작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젊고 섹시한 육체를 가지고 있고, 知에 대한 갈망으로 눈을 빛내고, 세상의 모든 고뇌, 그리고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 사이에서 창백한 낯빛을 한 수단 차림의 젊은 신부만큼 강렬한 매력을 발할 수 있는 영화 주인공이 누가 있을까요.

막 『기사 윌리엄』을 끝내고 주가가 오르고 있던 “히스 레저”가 창백한 얼굴로 수단을 입은 모습은 확실히, 영화 맨 처음엔 꽤나 자극적입니다. 문제라면, 그가 이 영화에서 너무나 뻣뻣하게 연기를 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자신의 매력들마저 다 깎아먹고 있단 사실이지만요.

도대체가, 이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갈등 요소들이 대사로 이래저래 주절주절 읊어지긴 하는데, 그는 이 캐릭터의 내적인 갈등을 좀처럼 표현해주질 못합니다. 하긴, 각본 상태에서 이미 글러버린 것 같지만요. 외국의 어떤 리뷰어가 이 영화를 이렇게 평해놨더군요. “이 영화는 미스테리 없는 미스테리이고, 호러 없는 호러영화, 사랑 없는 멜러영화, 종교비판이 없는 종교비판 영화다.” 그렇습니다. 설정만 그럴 듯할뿐 알맹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예정된 수순을 밟아갑니다. 심지어 악당이 밝혀지는 반전까지.

문제는, 훌륭한 감독들은 뻔한 플롯을 갖고도 엄청나게 강력한 영화를 만드는데, 그의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매치 포인트』만 해도, 그 줄거리를 말로 요약하고 나면 우리가 몇십년 동안 드라마로 영화로 줄창 보던 흔하디 흔한 치정극에 불과합니다만, 정작 영화는 얼마나 훌륭하던가요.

각본가 출신의 감독들의 문제는 대체로 이들이 화면의 구성에 서툴다는 점입니다.

단 5 분의 영상이 스크립트 열 페이지의 대사를 대신하며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전달해줄 수 있는지를 종종 까먹는 듯합니다. 언제나 ‘훌륭한 각본가’ 출신의 감독들은 ‘설정은 좋았는데 영화가 망가져~!!’라는 비판을 듣곤 하는데, 헬겔란드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모든 설정을 다 1차원의 얄팍한 대사로 주절주절 설명해 버리는 이 영화를 보다보면, 헬겔란드의 각본가로서의 능력에도 의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영화 두 편이 모두 ‘원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상기돼 버리거든요.

그러나 영화팬의 비극이란, 때로 영화가 열라 후져도 그저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점 때문에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곤 합니다. 이제 뭔가 나오려나, 기대만 하다가 영화가 끝났을 때의 그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설정이 워낙 마음에 들어서인지 저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영화에 그럭저럭 관대하게 굴기로 합니다. (아쉬움은 크지만요.)

아무리 만담 콤비의 만담이 효과가 없고, 몇몇 씬은 씬 자체의 매력이 영화 전체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바보스럽게 되고, 캐릭터가 후지고, 배우들이 뻣뻣하다고 해도요.

모르겠습니다, 만약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봤다면 이 영화를 어느 정도 두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ps. 제가 신 이터로 생각하는 이미지와 이 영화에서 신 이터로 나오는 베노 퓌먼의 이미지가 너무 다릅니다. “베노 퓌먼”은 너무 매끈하고 젊어서, 응당한 냉소의 카리스마가 별로 나오질 않습니다. “섀닌 소새먼”은 아름답긴 하지만 왜 배우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은 ‘my way’가 너무 강해서 모든 캐릭터를 지극히 평면적으로 만들어 버리는데요. 『기사 윌리엄』이나 『40일낮, 40일밤』이나 이 영화나, 이 배우가 그려내는 캐릭터는 언제나 비슷비슷합니다.

ps2.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씬』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로 나왔고(극장 개봉은 했다고는 하는데 걍 땜빵프로였던 것같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The Order』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영진공 노바리

 

“그린 존”,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은폐하려는 자

제이슨 본 시리즈의 전쟁 버전처럼 보이는 겉모양과 달리 상당히 지루하고 난해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봤는데 의외로 상당히 잘 짜여진 첩보/액션 스릴러의 구성 방식 – 선악의 구분이 분명하고 개인 영웅담으로 현실을 치환하는 – 을 따르는 작품이었다.

숨겨진 진실은 과연 무엇이며 –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다는 건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영화는 그렇다면 미국 정부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대체했다 – 그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은혜하려는 자의 대결에서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영웅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 것이며 전쟁의 진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밝혀질 것인가 등의 관객 몰입용 떡밥을 꾸준히 뿌려댄다.

영화 초반에 이젠 아예 생지랄을 떠는구나 생각했을 정도로 심하게 흔들어대던 핸드헬드 카메라를 어느 순간부터인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면서 영화를 감상했다.

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된 대량살상 무기에 관한 진실이 일개 육군 소대장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밝혀졌더라는 부분은 분명 드라마를 위해 가공된 허구일테지만 미국이 조작된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를 무력 침공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린 존>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를 선언하던 바로 그 시점의 바그다드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이미 수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미국의 남은 숙제를 촉구하기도 한다.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은 이제 됐으니 이라크 내부의 문제는 이라크인들에게 남겨두고 빨리 떠나라는 것.

하지만 애초에 수 천 년의 고도 밑에 깔려있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일으켰던 전쟁이니 만큼 미국의 행정부가 바뀌었다 한들 그리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라크에 사우디 아라비아나 요르단과 같은 안정된 친미 정부를 세워놓기 전까지는 미군은 이라크 땅에서 쉽사리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실제 그린존

차라리 제대로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놓았어야 할 내용과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르는 뜨거운 감자 같은 이슈를 놓고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만들어놓았으니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영화 자체가 너무 대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작품에 호감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이 짧은 극영화 한 편에 담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유를 제외하고는 <그린 존>이 특별히 어렵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낄만한 이유는 없다고 보여진다.

핵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구조를 통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이라크 전쟁에 관한 문제 의식을 불러 일으켜준다는 미덕을 칭찬받을만 하지 않은가 싶다.

미국은 아직도 21세기의 벽두에 저질러놓은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 공식적인 사죄와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까.

Director Paul Greengrass & Matt Damon


워킹 타이틀은 더이상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라고만 불러서는 안될 듯 싶다.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에 이어 <그린 존>까지, 워킹 타이틀의 오지랖에는 이제 경계가 없다. 그리고 내놓았다 하면 실속 있고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이클 만 감독의 선구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제 제작비 규모를 불문하고 왠만한 영화들은 모두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구나 싶은데, <그린 존>은 유난히 디지털 촬영의 티를 많이 내는 편이다. 광량이 부족한 장면에서 생기는 화면 상의 노이즈를 거리낌 없이 노출하는 것이 상황의 리얼리티를 살려준다고 보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좀 거슬린다.



누군가에게 이라크 전쟁은 분명 해방 전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은 너무 무겁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린 존>에서 가장 값진 장면은 차기 정권 수립을 위한 협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그린 존 안에서의 또 다른 전쟁’ 장면이다. 우리도 불과 몇 십 년 전에 겪었던 일이고 여전히 그 그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지라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