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LA”와 현실의 전쟁, 그 묘한 연관성



2011년에 개봉할 영화 <배틀 LA>의 티저 예고편이 나왔다.

들리기로는 최근에 개봉했던 대형 떡밥영화 <스카이라인> 제작진이 사실 원래 위 영화 특수효과담당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배틀LA>측에서는 <스카이라인>제작진이 특수효과 하면서 슬쩍한 아이디어로 미리 짝퉁을 만든 것으로 간주해서 좀 시끄럽다고 ……


이 예고편에는 우리나라 서울도 등장한다. 물론 사진을 아무리 봐도 서울같지는 않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 침공장면이 익숙하다는 거.

최근 <트랜스포머>나 <우주전쟁> 기타 등등 외계인 영화를 많이 봐서 익숙한게 아니라, 실제 전쟁장면 특히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아라비아 반도 근처에서 벌이곤 하는 포격이나 공습장면을 연상케 한다.

아마 그 동네 주민들이 딱 저런 심정이었을거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구 포격장면. <배틀 가자> 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미국과 미국 주민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공습을 당한다.
왜 헐리웃에선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몇가지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을 공습할 수 있는 나라는 외계인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아무리 미국이 지금 좀 빌빌거려도 나머지 국가는 감히 덤빌 생각말라는 거.
미국의 군사비가 나머지 전세계 국가의 군사비와 삐까삐까한 건 사실이니 ……

둘째 가설은,
미국이 원하는 적을 상상한 결과라는 거.
미군의 장비와 체계가 상정한 적은 원래 미군과 비슷하게 강한 장갑과 무장을 갖춘 정규군이었다. 세계최강의 탱크, 세게 최강의 전투기, 스텔스 폭격기가 그래서 필요했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가고 있는 항공모함의 모습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그런 적은 없고 어이없게도 급조폭발물 터트리고 저격하는 게릴라들을 상대하며 소진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상상속에서라도 한판 크게 맞짱뜨고 싶은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고 할수 있는 거다.

마지막 가설은,
영화제작자들의 양심 한구석에 또아리 튼 죄책감이다.

우리가 전세계에서 맨날 이런 짓 하고 있으니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당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거다.

어쨌거나 전쟁은 영화 속에서 볼 때나 그럴듯하다.
현실로 다가오면 그건 비극이고 재앙일 뿐이다.
우리 모두의 삶을 파괴할 ……

연평도 포사격 훈련날 아침 출근길에 일렬주차된 차를 낑낑거리며 밀다가
아파트 앞에서 주부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아이들을 어떤 캠프에 보내기로 했던 모양인데 어느 집에서 안보내기로 했단다.
왜냐면 언제 전쟁날지 몰라서. 애를 멀리 보낼 수 없다고 ……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남북한의 대표자가 나란히 앉아서 건배를 하던게 …
그런데 이제는 곧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더 속편한 모양이더라.
오히려 그 당시가 빨갱이 세상이었다고 …
평화는 빨갱이가 가져오고 전쟁은 파랭이가 가져온다면
백번천번 빨갱이가 낫다는게  내 입장이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죄다 전쟁을 해서라도 빨갱이(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싹 없애야 하겠다면, 결국 그렇게 가게 될거다.
그게 민주주의니까.

어쩌다가 이꼴이 되었을까….

참, 그 사이에 한명숙 전 총리 공판에서 벌어진 일은,
TV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공판장에서 누가 쓰러져 119에 실려가는 일은 드라마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0122017314745009&linkid=4&newssetid=1352 ]

올해는 참 더디게 간다.
모든 일이 질질 끌면서 …

내년도 더디게 가겠지.
무슨 5년이 한 50년 가는 것 같다.
끝나고 나면 다 늙어있을 것 처럼 …

후우 ……

영진공 짱가

영화로 수다떨기 (4), 반전에 대하여



Q. 금요일 밤에는 뭐하고 보내시나요?

금요일날 … 뭐 영화를 볼 때도 있고, 게임을 할 때도 있는데
요즘은 미국드라마에 빠져서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Q. 음 … 뭔가 박사님 이미지와는 다른 광란의 밤이 있으면, 반전일텐데 별로 그렇지 않군요.

제가 점잖고 차분해보이시나 보죠. 사람들은 이상하게 제가 생각이 깊을거라고 오해를 하더라고요.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햄버거나 순대국밥 사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 순대국밥…. 돼지국밥도 좋아함

Q. (먹는 얘기는 그만 닥치고) 오늘 주제는 반전 영화…그 묘미와 강박이에요. 고전 영화가 처음에 만들어질 때요, 마술사들이 감독인 경우도 꽤 있더라구요, 뭔가 속임수를 써서, 색다른 것을 이끌어내는 것, 관객을 속이면서 놀라게 하는 것, 모든 감독들의 꿈 중 하나라고 하던데요?

잘 말씀하셨습니다. 멜리에스라는 프랑스 마술사가 <달세계 여행>이라는 최초의 SF영화를 만들었죠. 자기 마술기법을 사용해서 달나라로 떠나는 우주여행 이야기를 영화로 찍었는데요. 최초의 특수효과가 사용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영화는 마술과 비슷한 면이 많네요. 속이고 놀라게 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다 그렇긴 하지만, 요즘 마술들도 거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되어가고 있죠.


멜리에르가 만든 세계최초의 SF영화 <달세계 여행>,

이 영화에는 에디슨이 엮인 슬픈 전설이 있다는…
그 전설이 알고싶으시면 이 링크를 =>
http://enterfactory.net/206?category=0

Q. 잘 만든 반전 영화, 보고 나면 괜히 입이 간질간질, 그 반전을 말해주고 싶은 경우도 있어요.

네, 물론 그런 행동은 남의 재미를 빼앗는 행동이라 재미를 망쳤다는 뜻으로 스포일러라고 불립니다만, 그래도 남들은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게 있다는 건 간질간질하고 재미있는 일이죠.

Q. 요즘, 특히나 스릴러 영화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스릴러 영화 속에서 반전 빼놓을 수 없죠. 아카데미가 선택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액션 영화 <밴티지 포인트>, <마이 뉴 파트너> 등이 그러하구요,

뭐 반전 영화 중에 대명사라면 <식스 센스>-‘내 눈에 귀신이 보여요’라든가 <유주얼 서스펙트>-‘절름발이가 범인이다’ … 가 기억나기도 하는데요, 박사님이 기억하시는 반전 영화, 어떤 것이 있나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너무 결말이 너무 황당해서 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역시 지난 번에 말씀드린 <행복했던 여자>도 인상 깊었고요. 아마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유주얼 서스펙트>하고 <식스센스> 가 최고죠. 근데 두 영화의 반전 포인트가 달라요.

<유주얼서스펙트>는 주인공이 속이는 영화지만, <식스센스>는 주인공이 속는 영화죠. 저는 그래서 첫 번째를 제1종 반전, 두 번째를 제2종 반전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두 번째 유형은 최근에 많아졌어요.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몰랐어. 종류의 영화인데, 아마도 사회가 급변하면서 생긴 가치관의 혼란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요.


<유주얼 서스펙트> 반전 영화의 유행을 만들다



새로운 유형의 반전 영화 붐을 연 <식스센스>

Q. 보면, 어느 정도 반전 영화의 공식이나 소재가 있어요. <아이덴티티>의 다중인격이라든가, <싸인>의 범인이 외계인이라든가, <식스센스><디 아더스>의 귀신, <범죄의 재구성>의 쌍둥이, <오픈 유어 아이즈>나 <바닐라 스카이>의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올드 보이>나 의 최면 등, 소재가 점점 다양해져요.

반전이란 게 결국은 관객들에게 예상밖의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입니다. 관객이 어떤 것을 예상하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그 예상을 벗어나는 결말을 만들 수 있는거죠. 그런데 갈수록 많은 기법들이 사용되니까 그만큼 새로운 것 낯선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더 다양한 소재들이 사용되는 거죠.

이렇게 그 결말로 이끌어가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결국 반전의 내용은 결국 둘 중에 하나에요. 알고 보니 주인공이 거짓말한 거였다. 아니면 주인공 자신도 자기가 누구인지 몰랐었다.

Q. 관객들도 점점 영화를 보는 눈이 높아져서, 다양한 소재와 공식이 있어도 제대로 반전의 재미를 주기란 어려울텐데요….

반전영화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반드시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복선이예요. 결말을 어떻게든 암시하는 내용이죠. 이런 게 영화 중간에 들어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관객과 공평한 게임이 되거든요.

두 번째는 당연하지만 관객의 예상을 벗어난 결말입니다. 이 둘이 다 있어야 성공한 반전영화가 되요. 만약 복선없이 관객의 예상을 벗어난 결말만 제공하면 영화 전체가 황당해져버립니다. 이게 뭐야. 이런 상태가 되는거죠. 그리고 물론 복선을 너무 충실하게 주는 바람에 관객들이 이미 결말을 다 예상해버리면 영화는 그냥 시시한 영화가 되고 말죠. 니가 뭔 얘기 하려는지 이미 다 알지롱. 고작 그거야? 뭐 이렇게 되는거죠.


왜 저 아일랜드 아저씨 이름이 뜬금없이 ‘고바야시’ 지? 이것이 알고보면 복선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건 복선이랄 건 없는데,

배역에 어울리지 않게 지명도 높은 배우가 출연하면 대개 그 인간이 범인

Q. 박사님! 강박증은 어떤 심리일까요? 현대인들 누구나 하나쯤의 강박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하는데요,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반전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할 것 같아요.

강박증이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심리입니다. 정상적이고 위생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간의 강박증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다음이나 외출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는 것 같은 행동도 강박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면 병에 잘 안걸리거든요. 사실 제가 예전에는 잘 안씻었는데, 몇 년 전부터 손 씻는 습관을 들였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감기에 안걸리더라구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반전 강박에 빠지는 것도 똑같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 관객이 재미있어하고 그래야 영화가 흥행될거라고 믿으니까요.


그는 빈틈을 참지못하는 강박증 환자였다 …

 



Q. 그렇다보니, 실패한 반전 영화들도 꽤 많이 나와요. 반전이 한 번에 제대로 충격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꽤 성공한건데,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라든가, 마구잡이로 풀어놓은 반전 암시용 인물들이나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끝내버리는 영화라든가요…

아까 손씻는것에 비유하자면, 적당히 위생을 유지할 만큼 손을 자주 씻는건 좋은 일이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손을 안 씻으면 불안해서 참지를 못해요. 이렇게 불안감 때문에 억지로 손을 계속 씻으면 위생에도 도움이 안되고 생활하는데 오히려 큰 불편이 생기죠. 그게 강박증이거든요. 반전도 강박증으로만 만들면 진짜 중요한 알맹이는 빠지고 반전만 남는 영화가 되겠죠.

사실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들이 성공한 이유는 반전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유주얼 서스펙트>는 이야기 자체가 꽤나 쿨하고 재미있어요. <식스센스>같은 경우는 반전에 놀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고요. 저는 그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하고 엄마하고 차안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늘 코끝이 찡해요.

Q. 또 이 반전이요, 억지스럽지는 않지만, 너무 고난이도면 관객이 논란이 많이 이는 것 같아요. 똑똑해야하는데, 적당히 똑똑한 반전, 참 반전 영화 제작은 어렵고, 그래서 매력적인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반전 영화에 끊임 없이 매료되는 이유,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세상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세상이 좀 반전 스럽쟎아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더라.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고 …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 그게 또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혈의 누>하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시대는 다른데 이야기 내용이 비슷해요. 둘다 차승원이 주연을 맡았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 차승원의 역할이 뒤늦게 숨겨진 진실을 알았는데 미처 제대로 밝혀내지도 못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역할이거든요.



차승원 주연의 두 반전영화

Q. 앎에 대한 강한 욕구, 때로는 그것이 정말 뒷통수를 제대로 맞는 수가 있는 반전인데도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고 해요. 그런데, 또 요즘 세상은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도 많은데, 모르는 게 약, 모르는 척 하는 게 상책이라면서도 사람들의 이런 욕구나 심리, 어떻게 해석하고 계시나요?

아는 게 힘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통하는 원칙이죠.
학습된 무기력이라는게 있습니다. 내가 뭔 짓을 해도 세상은 변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죠. 이런 세상에서는 모르는게 약이예요.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알기만 하면 복장만 터질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면 아는게 힘이 되겠죠. 뭘 알아야 어떻게 할지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특히, 너무 알려고 하면 다친다는 …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반전의 묘미와 반전의 강박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반전이 사람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기 때문에, 박사님이 보기에 이런 반전, 요즘 먹힐 것이다 … 싶은 반전이 있다면요?

글쎄요.. 그런 게 있으면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텐데 …

최근 우리나라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전문가들이 바보짓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그걸 막는 이야기예요. 요즘 세상이 정말 그렇기 때문이겠죠. 이런 이야기와 반전을 섞으면 뭐가 나올 것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어요.


사실 <괴물>이 이미 그 얘기를 했고 … 요즘 우리나라가 뭐 영화 자체고 …

Q. 급변하는 세상도 반전이면 반전이죠?

네. 인생 자체가 반전의 연속이죠. 그래서 사는 재미도 있는거고요.
모든 게 예측대로 되어가는 인생처럼 재미없는 인생도 아마 없을겁니다.

Q. 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에는 어떤 내용으로 만나볼까요?

다중인격이 어떨까요? 영화에서 종종 사용된 소재이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


영진공 짱가


영화로 수다떨기 (1), 사랑에 대하여



6월 2일, 꼭 투표합시다!

2008년에 라디오 불교방송에서 잠깐 진행했던 코너
<금요스페셜, 장근영의 영화 속 심리학>을 글로 정리하였습니다.


 
======================================================================

Q. 오늘은 영화 속 심리학, -사랑-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자해요. 사랑타령, 어떨 때는 지겨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 또 예술작품들, 상업품들이 ‘사랑’에 의존해 살고 있는데요, 인류사가 사랑의 역사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요. 이게 어떻게 정의 내리기가 참 어려운 거에요.

대중문화가 사랑을 애용하는 이유는 사랑이 다양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감정이기 때문일 겁니다. 일단 사랑은 아주 센 감정이예요. 김현식씨가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웃고, 운다” 고 했쟎아요. 근데 그 사랑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했던 사람들 숫자만큼의 사랑이 있다고 할 수도 있을만큼 다양한 것이 사랑이죠.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사랑이야기는 매번 결국엔 같은 내용이면서도 그때마다 다르죠.

-= IMAGE 1 =-

Q. 영화 속 사랑, 뭐 대부분의 영화가 러브 라인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요, 심리학에서는 이 사랑을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요?

심리학계에서 사랑에 대한 연구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사랑은 너무 당연한 감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연구보다는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죠. 어쩌면 심리학자들이 좀 공부만 하고 정작 실생활에서는 별로 로맨틱하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르고요.
 
부모의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보울비라는 사람이 연구를 한 것이 유명하고, 그 외에는 스턴버그라는 학자가 사랑의 삼각형이라는 주제로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의 색채학 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 이론을 제시한 “존 앨런 리”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로 알고 있어요.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적극적인 동성애 커뮤니티 운동가라고도 하더군요. 어쨌든 존 리의 사랑 색채이론이 대중적인 인기가 많죠. 사랑을 세 가지 색채로 구분하고 그 색의 혼합으로 다시 세가지 색을 더 만들어서 모두 6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게 대부분의 사랑경험을 설명하기 딱 좋은 틀이거든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랑도 거의 모두 이 여섯가지 유형 중의 하나로 구분할 수 있어요.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는 좀 괴상한 사랑도 이 색채로 구분이 되죠.




Q. 영화 <게이샤의 추억>…치요가 어린시절 한 남자를 마주하고, 꿈을 ‘게이샤’로 바꿀만큼,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거는 그런 내용에 동양적인 미가 돋보이던 작품이었는데요….

솔직히 그게 말이 됩니까. 사랑을 얻기 위해서 기생이 되다니요.
물론 게이샤가 그 시대에 농부의 딸이 전문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는 점은 고려해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 기생도 사실 전문 예술인이었지만, 사랑을 얻기 위해서 기생이 된다는 이야기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사랑에 상처받고 복수를 위해서 기생이 되겠죠.

그러니까 <게이샤의 추억>은 “서양인이 오해한” 일본적인 정서에서나 이해가 되는 이야기죠. 어쨌든 영화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사랑은 존 리의 사랑 유형으로 구분하자면 에로스 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로스 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행복 그 자체예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이상형을 운명처럼 만나서 그 후로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되는 사랑이죠. 치요도 어둡고 막막한 현실에서 잠깐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 순간의 행복이 이후에 희망이 되고 동기가 됩니다. 언젠가는 꼭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나 영원히 행복해질거야. 라는 희망. 이게 치요의 사랑인거죠.


Q. 자신의 인생에서 꿈과 목표가 동기부여가 ‘사랑’에 의해서 원동력을 얻어서 그것들을 이루어가면 참 해피엔딩일건데, 또 사람 사는 일이 그렇지가 않을 때가 많죠. 그랬을 때, 사랑에 의한 파괴력 또한 어마어마하게 그려지는 영화들이 많죠….

원래 효과가 좋은 약들이 부작용도 무섭거든요.
사랑도 그렇죠. 특히 매니아적 사랑이 무섭습니다.
근데 이게 인과응보예요. 매니아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원래 처음에는 사랑을 하찮게 보고 게임 하듯이 남을 울리는 사랑만 하던 사람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임자를 만나면 미치는 거죠. 게임의 본질은 속임수인데, 속임수와 열정적 사랑이 만났으니 의처증 의부증이 되는 겁니다.


매니아적 사랑의 예, 하츠모모(공리)


Q. 소개팅자리나 누구만나는 자리에 심리학 박사이기에 자신의 마음이 들킬까봐 사람들이 더 불편해한다던가 그런 거는 없나요?

십여년 전에는 정말 많이들 그랬는데, 요즘은 좀 덜 한 것 같아요.
누가 봐도 당연한 이야기를 해도 역시 심리학 박사는 달라… 이런 식의 반응을 받는 경우는 꽤 있죠. 근데 사실 제 경험에 따르면 실천에 강한 사람들은 이론을 파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 심리학을 하는 거 같거든요.


Q. 어떤 심리학에 의하면요, 첫 눈에 반하는 사람들, 보통은 콤플렉스와 콤플렉스의 만남일 경우가 많다고들 해요. 그러니까 소심한 사람은 좀 활달한 사람을,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배려가 많은 사람을, 뭐 이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에게 반하는 경우, 많다던데요?

물론 많죠. 그 이론의 원조는 플라톤일 겁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원래 인간이 너무 강해서 신을 위협했대요. 그래서 신들이 인간을 반으로 쪼개버렸고, 그 반쪽들이 각각 남자 여자가 된거죠. 어쩌다 헤어졌던 나의 반쪽을 만나면 대퇴부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충격이 흐르고,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뭐 그런 얘기죠. 그런 경우를 상호보완적인 사랑이라고 하죠.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죠. 말씀처럼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그런 사랑에 빠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너무 완벽한 사람, 보기에는 멋지지만 사랑하기에는 좀 꺼려지는 사람 아닐까해요..뭔가 채울 것이 없잖아요.

왜 그런 사람들 있쟎아요.
너무 빵빵하게 가진 것이 많아서 선물을 해주기도 부담스러운 사람들.
이미 다 가지고 있으니 더 해줄 게 없고, 어줍쟎게 해주다간 오히려 우스워질 것 같은 사람들. 
사실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거절에 대한 불안이예요.
내가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미안, 우리 오빠 동생으로 지내… ” 이러거나, 아니면 “뭬야? 감히 나를 뭘로 보고!” 이러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정말 심장이 제대로 찢겨나가고 입장 완전히 구겨지는거쟎아요.
그러니 상대방이 너무 대단해 보이는 것도 사랑의 장애가 되죠.

게다가 너무 문제가 없는 관계도 문제예요.
문제가 없다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라는 영화가 딱 그 이야기예요.


슬쩍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로 넘어가고 …


Q. 집도 좋고, 차도 좋고, 직업도 좋고, 거기에다 외모까지 출중한 두 부부, 문제가 너무 없어도 문제인 그런 케이스네요. 너무 풍족한 세상에 불만이 쌓여가는 문제이기도 하구요…

위생가설이라는 게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 알러지가 문제인데, 이게 우리 환경이 너무 위생적이어서 그렇다는 가설이죠. 기생충에도 감염되고, 감기도 매년 걸려주고, 흙밭에서 놀면서 세균도 많이 접하고… 이러면 면역체계가 바빠서 딴 짓을 못하는데, 감염이 없어지면 면역체계가 할 일이 없으니까 이젠 자기 몸을 공격하는 바람에 알러지가 생긴다는 건데, 요즘 학계에서는 꽤 유력한 가설로 인정받고 있어요.

근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좀 그래요. 원래 사회관계는 전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이거든요. 당연히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관계 라는 게 발전을 하기 마련인데 아예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관계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뭐하러 같이 살지? 이딴 의문이 생기고, 그냥 이혼이나 할까… 이렇게 되는 거죠.

이 영화에서도 브란젤리나 커플은 서로 너무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해요. 서로 터치 안하고 부부로서 각자 할 일만 하죠. 그러다 보니 불만은 생기는데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고, 계속 속에서만 쌓이는 거죠. 하지만 나중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로 죽일듯이 싸우게 되고, 외부에서 큰 문제가 닥쳐오니까 오히려 다시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Q. 뭐 그렇다고 문제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뒤짚어서 지금 위기나 어려움에 부딪힌 연인이나 부부들, 함께 그 위기를 해결해가는 과정, 또 한 번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맞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옛 말씀 틀린거 하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인생의 필연이거든요.
중요한 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죠.

Q. 사랑, 사랑인가 아닌가? 고민하는 입장도 있을거에요. 워낙 친해져서 없으면 허전한데, 또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는 좀 뭔가 밍숭한, 우정에 가까운 그런 경우, 과연 어떻게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사랑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거라고 봅니다.
자기가 사랑이라면 사랑인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죠.
하지만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 중에는 정말 친한 친구에 가까운 사랑도 있어요.

일단 사랑의 기본은 “너밖에 없다” 입니다. 나는 너도 사랑하고 너도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해. 이따위 말은 그냥 헛소리죠. 모두를 사랑하는 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근데 친구 중에도 너밖에 없다는 친구가 있다면 그게 사랑일 수 있어요.
 
심리학자 스턴버그는 사랑의 핵심 요소는 열정, 친밀감, 책임의식 이라고 말해요. 그 중에 열정은 처음에 반짝 타올랐다가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사라지는데, 친밀감은 서로를 오래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축적이 되죠. 책임의식은 원칙 문제라 시간의 흐름에도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고요. 처음에는 서로 애매하게 좋아하다가 시간이 지나도 나를 너만큼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그래서 너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사랑이겠죠.

Q. 이게 처음부터 열정적인 사랑이라면 괜찮은데, 우정에서 비롯된 사랑은 마음에 열정이 있더라도 표현하기가 참 민망한 경우가 있어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청춘 만화>, <우리, 사랑일까요?> 이런 류의 영화처럼 극적으로 헤어지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으면요.

민망하다는 그 감정의 배후에는 용기의 부족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 라는 대답이 나올까봐 두려워서 계속 진짜 친구로 지내는 거죠. 이럴 때는 “밑져봐야 본전이지” 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어차피 친구로 지내는데, 그냥 친구로 지내라는 말 듣는게 뭐 손해겠어요. 말씀하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도 마지막 순간 두 주인공이 “밑져봐야 본전이지” 라는 생각으로 들이대니까 해피엔딩 되쟎아요. 청춘만화 에서도 권상우가 망가질 대로 망가지니까 김하늘이 드디어 용기를 내고요.


슬쩍 청춘만화도 건드려 주고 …

Q. 그래도 이런 친구같은 관계, 꽤 멋진 사랑의 관계가 아닐까..하는데요?

음, 당사자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걸요.
뭐 원래 강건너 불구경이 보기는 더 좋지만 말이죠.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 주에는 어떤 내용으로 금요일의 시간 기다릴까요?

잔인성이 어떨까요. 최근에 관심을 받는 영화 중에 <추격자>라는 영화가 있는데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영진공 짱가

<원스(Once)>를 통해 다시 확인하는 내러티브의 중요성

뮤지컬 영화, 저로서는 참 적응이 안되는 장르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하다말고 갑자기 노래를 하고 춤을 춥니다.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이라면 원래 생겨먹은 양식 자체가 그러하니 보는 입장에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켜볼 수 있겠지만 뮤지컬로 진행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5분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선잠 같습니다. 잘 만들었다는 화제의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참 잘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이상의 호감은 갖지 못합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간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뮤지컬 영화가 딱 한 편이 있었습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 루즈>(2001)는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노래 자랑만 하다가 끝나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영화 속에 사용된 좋은 음악들도 호소력 있는 내러티브와 만났을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뮤지컬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액션이 중심이건 음악이 중심이건, 영화란 결국 내러티브를 통해 승부가 갈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원스>(Once, 2006)는 그러나 주인공들이 노래로 대화를 대신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주인공이 노래하는 사람이고 남녀가 노래로 만나 교감하며 생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등장 인물들이 시종일관 라이브로 노래를 해대니 그저 음악을 참 많이 들을 수 있는 ‘음악 영화’라는 정도로만 해두면 괜한 오해는 피할 수 있겠습니다.

<원스>가 기존의 ‘음악 영화’들을 뛰어넘은 이유는 소박하지만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잔잔한 드라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 사용된 음악 자체는 취향에 따라, 그리고 곡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별로일 수도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글렌 핸사드가 약간 질러대는 스타일이다 보니 좀 더 잔잔한 아이리쉬 포크 음악을 기대했다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스>는 음악만 있는 영화도 아니고 음악을 핑계로 인생 드라마를 펼치는 영화도 아닙니다.

어쩌면 적은 예산을 가지고 한장의 음악 앨범을 널리 들려주고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가 <원스>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내러티브에 호소력이 없었다면 <원스>는 정말 음악을 위해 찍은 필름일 뿐이지 한 편의 영화 자체로서 인정받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전업 배우 뺨치는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이들의 라이브 음악, 그리고 요구하기 보다 서로의 마음을 간직하기로 하는 아름다운 결말은 올해 최고의 ‘가을날의 동화’를 탄생시킨 원동력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진공 신어지

살아있는 세계문화유산, 알 파치노 vs 로버드 드 니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 두 사람 모두 뉴욕에서 태어난 명배우들입니다.
이탈리아계인 알 파치노가 40년생, 아일랜드계인 로버트 드 니로가 43년생이로군요.

영화 데뷔는 로버트 드 니로가 약간 빨랐습니다. <Trois Chambres à Manhattan>(1965)라는
프랑스 영화에서 엑스트라로 처음 출연한 이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X 등급 영화
<그리팅>(Greetings, 1968)에서 주역을 맡았습니다. 알 파치노는 68년 <N.Y.P.D>라는
TV 시리즈에 출연 후 <미, 나탈리>(Me, Natalie, 1969)에서의 조역으로 영화 데뷔를 합니다.

이후 몇 편의 출연작이 있고 70년대 초반에 이르러 드디어 출세작을 찍게 되는데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게 픽업된 알 파치노가 72년 <대부>로 선빵을 날립니다.
그리고 로버트 드 니로는 73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에 출연하죠.
알 파치노가 연극 무대를 경유한 신데렐라 같은 영화배우였다면 로버트 드 니로는 좀 더 많은
출연작을 통해 조금씩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넓혀나간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72년       1973년

<대부>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알 파치노는 이듬해 <허수아비>(Scarecrow)와
<형사 써피코>(Serpico)를 찍었고 그 사이 로버트 드 니로가 <비열한 거리>로
‘업계의 시선’을 끌게 된 거죠. 그리고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영화에 출연한 작품이
74년작 <대부 2>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점의 마이클 콜레오네인 알 파치노와
돈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는 극중에서 직접 만날 일이 없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후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당대 최고의 배우로서 맹활약을 하게 됩니다.
<대부 2> 이후 80년대까지 두 배우의 출연작들을 연대 순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연작들의 수에서나 작품의 질에서나, 로버트 드 니로가 훨씬 부지런한
활동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알 파치노는
83년 <스카페이스> 이후 89년 <사랑의 파도>로 재기하기까지
상당 기간을 말 그대로 ‘헤맸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오랜 기간의 공백 끝에 돌아온 알 파치노에겐 역시 <대부 3>가 기다리고 있었죠.
로버트 드 니로도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좋은 친구들>을 찍었습니다.


  1990년 

로버트 드 니로는 같은 해인 1990년 제인 폰다와 함께 <스탠리와 아이리스>라는
멜러 영화를 찍었는데요, 알 파치노 역시 이듬해 미셸 파이퍼와 <프랭키와 쟈니>
출연했습니다. 두 배우가 거의 같은 시기에 유사한 컨셉의 영화를 찍었다는 건
당시 이들의 존재감이 헐리웃 스튜디오의 기획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1년       1990년



90년대 초반에 알 파치노는 <딕 트레이시>(1990), <여인의 향기>(1992),
<글렌게리 글렌로즈>(1992), <칼리토>(1993) 등에 출연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로버트 드 니로의 주요 출연작은 <사랑의 기적>(1990), <비공개>(1991),
<분노의 역류>(1991), <케이프 피어>(1991), <밤 그리고 도시>(1992),
<디스 보이스 라이프>(1993), <형사 매드독>(1993), <브롱스 대부>(1993),
<프랑켄슈타인>(1994), <카지노>(1995)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1995년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Heat)에서 21년만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알 파치노는 1999년 <인사이더>에서 마이클 만 감독과 한번 더 작업했습니다.
 두 배우의 세번째 만남은 현재 촬영 중인 존 애버넷 감독의 차기작
<의로운 살인>(Righteous Kill)을 통해 내년 중 다시 볼 수 있게될 예정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 명의 명배우 가운데 감독 데뷔작을 먼저 내놓은 것도 로버트 드 니로였습니다.
그의 첫번째 감독 데뷔작은 93년작 <브롱스 대부>(A Bronx Tale)이었구요
최근 두번째 연출작 <굿 셰퍼드>(The Good Shepherd, 2006)를 내놓았죠.

셰익스피어 연극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알 파치노의 감독 데뷔작은
<리차드 3세>를 원작으로 한 <뉴욕 광시곡>(Looking for Richard, 1996)입니다.
두번째 연출작 <차이니스 커피>(Chinese Coffee)도 아이라 루이스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2004년에는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을 연기하며 셰익스피어에 대한 오랜 애정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1996년       1993년

2004년       2006년

배우로서, 그리고 영화인으로서의 경력은 객관적으로 로버트 드 니로가 좀 더
착실하게 잘 쌓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알 파치노에게는 로버트 드 니로에게도 없는
배우로서의 천부적인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저는 <시티 홀>(City Hall, 1996)에서
알 파치노가 혼자 긴 러닝타임을 채우는 장면을 보면서 ‘로버트 드 니로가 갖지 못한
알 파치노만의 그 무엇’을 발견했습니다. 연출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너무 버럭! 하는
연기를 선보이는 경우가 잦은 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알 파치노 필모그래피  vs  로버트 드 니로 필모그래피

이제는 두 사람 모두 환갑의 나이를 훌쩍 넘긴 말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엄청난 스타 파워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알 파치노는 2009년에 만들어질
살바도르 달리의 전기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고 로버트 드 니로 역시
많은 작품들이 후반 작업 중이거나 사전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인 동시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위대한 두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입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