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이방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앙리의 미국 문화 관찰

 


 

 


 


 


 




 



 


다소 거리를 두고 아주 냉정한 시선으로 미국 문화를 훑는 ‘이방인’ “앙리” 감독의 시선은 너무나 놀랍다. 그는 외부자라는 것을 굳이 감추지도 않지만 굳이 강조하거나 드러내지도 않는다.


 


‘앙리’라는 이름을 듣기 전에, 그 감독의 커리어와 배경을 듣기 전에, 누가 『센스, 센서빌리티』를, 『헐크』를, 『아이스스톰』을,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역시 외부자의 시선이군’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만큼 드라이하고 냉정하면서도 훌륭한 테크닉으로 연출을 해간다. 그가 영화의 씬을 쌓아가는 솜씨는 마치 영화로 작업하는 인류학자의 방식처럼 느껴진다.


 


 


 



 


 



생각만큼 잭과 에니스의 사랑에 가슴이 아프다거나 절절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내겐 앨마와 로린, 그 웨이트리스 같은 여성들이 훨씬 더 크게 보였으니까. ‘도대체 저들 사이에 있던 저것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묻고 싶다.


 


저렇게 주위 사람을, 상대를, 자신을 할퀴고 또 할퀴면서 20년을 간 그 집착, 그 떨림, 그 욕망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원하는 걸 갖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삶에 대신의 만족을 얻지도 못했던 저 기나긴 세월, 그걸 만든 저게 과연 무엇인가.


 


에니스가 아내 앨마에게 가졌던 것, 웨이트리스에게 가졌던 것, 잭이 ‘새 목장 관리감독’과 가졌던 관계에서 가졌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에니스가 아내와 섹스하다가 그녀를 뒤집을 때, ‘아이를 더 낳지 않을 거라면 더이상 잘 이유가 없지’라고 말했을 때 분노했고, 실소를 터뜨렸다.


 


 


 




 


 


 


저 바보같은 인간, 어리석은 인간, 잔인한 인간, 그럼에도 자신이 주체할 수도 극복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짐을 한껏 지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거만하게 걷는 저 남자, 음절의 종성을 흐물흐물하게 뭉쳐 발음하는 저 촌스러운 액센트의 거만한 말투가 입에 밴 저 남자가 가진 지옥이,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정말로 묻고 싶었다.


 


금지되었기에, 스스로 금지라 선언했기에, 이룰 수 없었기에 더욱 길게 간 건 아니었을까 … 그리고 자신을 돌아봤다. 더없이 이기적이고 서툰 어린 아이 하나가 보일 뿐이다.

“앙리” 감독, 『헐크』를 일컬어 “두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지독한 멜로”라고 한 적 있다. (나는 “그러면서 키스씬 하나 없더라!”라고 웃곤 했지.) 이 영화엔 “앙리” 답지 않게 베드씬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냉정하다.


 


나는 그들의 사랑보다, 그들의 20년을 풀어내는 “앙리”의 방식이 더 지독하다 … 정말 지독한 인간. 『센스, 센서빌리티』를 찍을 때 윌리엄과 매리앤의 장면에서 우연히 끼어든 호수의 백조들을 휘휘 내쫓으며 “내 영화가 쓸데없이 낭만적이 되잖아!”를 외쳤다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그런 인간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의 영화에 매번 감탄하는지도 모른다.


 


 



 


영진공 노바리

 


 


 


 


 


 


 


 


 


 


 


 


 


 


 


 


 


 


 


 


 


 


 


 


 


 


 


 


 


 


 

“러브 & 드럭스”, 골치 아픈 문제는 침대 밑으로





<러브 & 드럭스>를 통해 처음으로 제이크 질렌할이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 우디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 검색을 해보면 두 캐릭터를 비교해놓은 이미지 컷이 꽤 나오는 걸 보아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게 확실하다 – 그 이유는 아마도 제이크 질렌할이 성인 연기자로서 처음으로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이 배우의 면모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제이크 질렌할 역시 그간 자신에게 주어졌던 온통 심각하기만 했던 배역들과 그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훨씬 쾌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실제 제이크 질렌할의 캐릭터와 가장 유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앤 헤서웨이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앤 헤서웨이의 최근 몇 년 간의 출연작 선정과 연기하는 방식은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통해 형성된 공주님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에 집중된 것처럼 보이고 이번 <러브 & 드럭스> 역시 그런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해서 진짜 좋은 배우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싫을 리는 없지만, <러브 & 드럭스>에 앤 헤서웨이가 아닌 다른 배우가 제이크 질렌할과 호흡을 맞추었더라면 어땠을까, 말하자면 작품이 좀 더 나아보일 수 있었을 법한 다른 캐스팅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러브 & 드럭스>는 첫째도 둘째도 제이크 질렌할과 앤 헤서웨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앤 헤서웨이와 같이 비현실적인 미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인 거다.

이 두 명의 배우는 사실 다른 어느 누구와 짝을 지어놓아도 충분히 제 몫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좋은 배우들이다. 그런데 이 환상의 커플이 작정을 한 듯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동반 출연을 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러브 & 드럭스>는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보장 받은 상태에서 시작한 기획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러브 & 드럭스>의 세번째 쯤에는 미국의 의료 업계에 관한 내부 고발이 있다. 실제로 제약업체 화이자의 영업사원이었던 제이미 라이디의 2005년 원작 <Hard Sell: The Evolution of a Viagra Salesman>은 본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멜러 소설이 아니라 업계에서의 자전적 경험을 기록한 논픽션이었다.

이것을 에드워드 즈윅 감독과 두 명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각색해서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시킨 작품이 <러브 & 드럭스>인데, 덕분에 작품의 메인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곳곳에서 미국 내 의료 현장의 뒷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공개되고 있다.


 

제약업체의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된 제이미(제이크 질렌할)에게 그 일은 “복잡한 의학적 결정을 충동구매로 바꿔놓는 짓”이라며 말리는 가족들의 대사도 그렇고, 매기가 노인들을 버스에 잔뜩 태우고 캐나다에 다녀오곤 하는 장면 등은 모두 닉슨 대통령이 1970년대에 일찌감치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말아먹은 미국에서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러브 & 드럭스>를 보면서 함께 권해주고 싶은 영화는 또 다른 멜러물이 아닌 마이클 무어 감독의 프로파겐다 <식코>(2007)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러브 & 드럭스>는 코미디이고 멜러물이다. 여자가 불치병에 걸린 사실로 인해 원치않는 생이별을 하고 있는 모습은 설 연휴 동안 TV에서 본 <내 사랑 내 곁에>(2009)를 떠올리게 하고, 여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눈길을 헤치면서 돌아다니는 남자의 헌신적인 모습에서는 <러브 스토리>(1970)의 간절함 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역시 <러브 & 드럭스>의 첫째와 두번째는 모두 제이크 질렌할과 앤 헤서웨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인 것이다.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구조적인 이슈를 젊은 두 남녀의 멜러물로 치환해버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울 따름이지만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나 멜러 영화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러브 & 드럭스>가 크게 처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싶다. 단지 그 멜러가 판에 박힌 듯 하여 더 이상 가슴에 와닿지 않는 내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영진공 신어지

 

“러브 앤 드럭스”, 슬프지만 상큼하게




‘러브 앤 드럭스’ 매기와 제이미

운명의 어쩌고 하는 진부한 사랑얘기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본 영화 ‘러브 앤 드럭스’는 무척 흥미로웠다. 자칫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에 그치고 마는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약점을 피할 수 있었던 건, 파킨스 병이란 소재가 이야기의 굵직한 주축을 이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는 코미디와 드라마의 균형이 매우 잘 이뤄진 듯 보인다. 무엇보다 이미 ‘브로크백마운틴’에서 부부로 열연한 두 배우, 제이크 질렌할과 앤 해서웨이가 적절히 가벼워져야하는 장르 안에서도 마치 춤을 추는 제 역할에 흠뻑 빠져 매력을 발산한 것이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정말 사랑하게 되면 좋겠단 순진한 심정으로 두 배우의 전라의 베드신을 훔쳐보는 동안은 제법 두근거린다. 영화에서 파킨스병을 앓고 있는 매기가(앤 해서웨이) 태어나 이제껏 단 한 차례도 사랑한단 고백을 해본 적 없는 제이미(제이크 질렌할)를 위로하며 건네는 대인배 다운 대사들은 언젠가 내 것으로 만들어 말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남는다.

점점 떨려오는 손으로 사진을 찍고 스크랩하는, 매기의 예술혼을 담은 조용한 장면들은 마치 장문 속 쉼표같아 아련한 마음으로 휴, 숨을 달래게 된다. 괜히 덩달아 들떠 따뜻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진공 애플

 

거장이 되어버린 데이빗 핀처의 윤리적인 스릴러, <조디악>

사용자 삽입 이미지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까지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신문에 자신의 행적과 앞으로의 범행 등에 대해 편지를 보내며 예고하여 미국 특히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의 이야기를 데이빗 핀처가 영화에 옮긴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당연히 <세븐>을 떠올리며 그가 또다시 테크니션으로서 엄청난 스타일을 자랑하는 멋진 영화를 만들 것이라 기대했을 겁니다. 도대체 왜 흥행에서 실패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파이트클럽>에서 최고 테크니션이자 스타일리스트로서 정점을 보여줬던 만큼 이 정점을 그 자신이 다시 한 번 갱신해 주기를 그의 팬들은 바라고 있었겠죠. <패닉룸>은 작품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파이트 클럽>의 다음 작품이자 데이빗 핀처의 영화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심심했고, 조금 실망스러웠던 게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올해 3월 초에 미국에서 마침내 베일을 벗은 <조디악>은 이러한 기대를 완전히 짓밟았습니다. 대신, 그의 팬들은 데이빗 핀처가 완전히 변했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이 영화는 와이드 릴리즈 영화로는 조금 작다 싶은 규모인 2,300여 개의 극장에서 개봉했고, 첫 주에 1,300만 불을 조금 넘기는 성적으로 2위에 데뷔했습니다. 총 수익도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조디악>은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형사 간에 숨막히는 지능대결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꽃의 도시이자 히피의 도시로 잘 알려진 화사하기 짝이 없는 샌프란시스코에 존재하는 어둠의 기억, 그리고 그 어둠에 점점 더 망가져가는 사람들을 조용히 응시하며 미국의 70년대를 그려냅니다. <파이트클럽>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그리고 <패닉룸>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던 그 ‘과시하는 듯한’ 현란한 스타일은 이 영화에서 일견 사라진 듯 보입니다. 북극찐빵 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약간 톤다운된 조명과 색감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빛바랜 신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지나간 시대에 대해 살짝 기억 속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을 주지요. 사실 햇빛 좋기로 유명한 그 샌프란시스코를 그리는 영화인데도 화사한 햇빛이 표현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호숫가에서 변을 당한 커플이 조디악 킬러를 만나기 직전 정도가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햇빛이 좋고 밝은 때였을까요. 그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이 대낮에도 우중충하게 그려지는 걸 보며 기분이 참 묘했더랍니다. 핀처는 여전히 매우 솜씨가 훌륭한 테크니션인 데다 이제는 거장이 되어 가고 있어요. 다만 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테크닉을 사용하는 방식이, 철학이 좀 변한 것 같습니다.


무려 2시간 40분에 해당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는 경악할 만한 연쇄살인범의 놀라운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그 사건 앞에서 점차 내면이 파괴되어 가는 세 남자를 그립니다. 한편으로는 조디악이 자신의 짓이라 주장한 17여 건의 살인 중 4건에 집중해서 매우 세세히 고증해 보여주면서도, 영화의 큰 줄기는 조디악의 편지를 받은 신문사 중 한 곳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기자 폴 애버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카투니스트인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 그리고 사건을 담당한 토스키 형사,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들이 점차 조디악에 집착하면서 내면과 가정과 몸과 정신이 파괴돼가는 과정을 따라잡고, 카메라는 이들 인물에 최대한 밀착해 이들이 입으로 하는 말뿐 아니라 몸의 미세한 부분들의 움직임을 통한 말들을 잡아냅니다. 필름2.0의 영화평론가 김영진이 정확히 지적했듯 이 영화의 카메라는 “스타일을 내세우는 대신 현실의 복합성 앞에 겸손하게 카메라를 감춥”니다. 그럼에도 컷과 컷을, 씬과 씬을, 씨퀀스와 씨퀀스를 자르고 잇는 다소 ‘덜 보이는’ 곳에서 핀처는 특유의 능란한 솜씨를 발휘합니다. 세 인물 중심의 심리 드라마 형태인 이 영화를 2시간 40분간 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 텐션이 강하게 끝까지 유지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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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망가지는 모습까지도 섹시했어요 >.<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 세 사람의 좌절과 고통과 내면의 파괴가 그토록 담담하고 절제돼 표현되는 것에 깜짝 놀랐답니다. 세 명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그레이스미스는 결국 가정이 파괴되고 아내는 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떠나버립니다. 폴 애버리는 두려움에 떨다가 알콜중독이 되고 몸에 병을 얻으며 최고 스타 기자에서 막장 기자의 인생을 겪게 돼요. 토스키는? 심지어 조디악 편지를 위조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불명예스럽게 좌천되고 결국 10년을 넘게 바친 강력계를 떠납니다. 세 명 다 조디악에게 집착하면서 결국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삶이 망가져 버립니다. 이런 극적인 드라마를 핀처는 너무나 심심하게 딱 한 장면씩만 제시하고 말더군요. 왜 저렇게 심심하게 가나… 하다가 영화의 거의 마지막, 조디악에게 습격을 받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희생자 중 하나에게 용의자를 지목받는 장면에서 뭔가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에서 생존자의 모습은, 사건을 인계받은 경위가 사진을 내밀자 앨런 리 스미스를 지목하는 장면에서만 다시 등장합니다. 그레이스미스가 거의 반미치광이 편집증 환자가 되어가고, 토스키 형사가 무기력에 빠져있고, 애버리 기자가 알콜중독에 시달리다 폐의 병으로 죽는 이야기는 놀랄 정도로 건조하고도 절제해서 설핏 드러냈으면서 이 희생자만큼은, 플롯에서 리를 범인으로 확인시켜주는 단순기능적 역할뿐 아니라 그의 희생자가 그간 겪었을 고통과 완전히 부서져버린 인생을 짧은 시간 내에 새삼 관객에게 ‘깊게’ 환기시킵니다. 그가 첫 등장하는 장면부터 카메라는 저 멀리서부터 풀샷으로 그가 초라한 행색으로 매우 불안정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공항의 직원에게 무언가를 묻는 장면을 길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가 심각한 정서불안을 겪으며 그간 부랑자로 떠돌았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앨런 리 스미스를 지목하며, 틀림없냐는 경위의 말에 “이 사람이 나와 디를 찔렀다”라고 말을 합니다만, 이때 그의 몸짓이나 말, 표정 역시 매우 복잡다단합니다. 비록 극의 플롯상 그가 등장하는 장면의 절대적인 분량은 매우 짧지만, 핀처는 마치 이 장면을 위해 앞에서 정서적인 강조와 감정 이입을 한사코 막았던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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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편집증 환자가 되어가는 그레이 스미스. '속으로 망가지는 인간'을 질렌할이 탁월하게 그려냅니다.

<조디악>을 일컬어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고들 합니다. 과연 이건 마케팅적 수사만은 아니란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살인의 추억>이 희생자들에게 혹시나 누를 끼칠까 굉장히 조심하고 신중해 하면서도 결국은 범인을 쫓는 자의 죄책감을 더욱 강조하고 이것을 관객들에게 매우 극적으로 보여줬다면(비오는 터널 씬), <조디악>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고통을 영화의 중심으로 삼으면서도 결국 방점은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겸허한 응시에 찍더라는 거죠. 이건 아마 아직 젊고 어린 봉준호와 이제 나이를 먹은 핀처의 차이겠지요. 사실 전 단단한 스토리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란한 비주얼을 마구 과시해대는 영화들을 꽤 좋아하고, 데이빗 핀처의 비주얼은 그저 알맹이 없이 화려하기만 한 근래의 다른 젊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과는 달리 스토리와 아주 잘 조응을 했었던지라, 우리 시대 새로운 거장 감독을 얻은 게 너무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과시적인 귀여운 테크니션’을 잃은 건 조금 섭섭하기도 했어요. 제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진공 노바리 N.

ps. 앞으론 ‘핀처 형님’이라고 못 부르겠어요. 음. 오빠라고 해야 하나. 마음 깊은 곳에서 신뢰와 믿음이 막 솟아나는 느낌.


ps2.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에 관한 세간의 평가는 다소 부정적인 것 같아요. “미치광이 편집증 환자” 정도인 듯. 영화에선 그 면을 굳이 감추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게 그려냅니다.


ps3. 더못 멀로니가 중년의 경찰간부로 등장했을 때 살짝 쇼크먹었습니다. (별로 오래 된 거 같지 않은, 내가 극장에서 본)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청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인데! 새삼 아,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했다는… 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뺀질뺀질한 피부도 기억하는데, 그들도 저도 나이를 먹은 거죠.


ps4. 그레이스미스의 아내로 클로이 셰비니가 나왔는데 전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그녀와 그녀를 지금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디악>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떡대좋은데 귀엽다, 그냥 이러고 말았다는… -.-;;


ps5. 음악을 탁월하게 잘 썼습니다. 그 시대를 보여주면서도 영화 분위기와 착착 감기는. 며칠 전 용산 CGV에 갔다가 거기 신나라 레코드가 있길래 OST를 사려고 했는데, 근데 없더라고요. ㅠ.ㅠ 영화 보고 OST 사고싶다는 생각 든 것도 정말 몇 년만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