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JIFF] 전주국제영화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본우원은 영화제 스탭으로, 2년동안 전주국제영화제 스탭일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해선 어느 정도 썰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좀 풀어볼까 한다.

(이 내용은 서울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쓰여졌습니다.)
1. 고속버스를 이용하라.
서울에서 전주를 가기 위해선 ‘KTX, 기차’보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보다 쉽게 전주에 갈수 있다. 막히지 않는다면, 2시간 반에 전주에 도착할수 있다. 이른 아침이나, 밤같은 경우에는 타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가끔씩 기사아저씨가 휴게소를 지나치는데, 그러면 2시간만에도 도착한다. KTX의 경우 전주까지의 직행이 없고, 갈아타야 함으로 시간이 더 걸린다.
그외 지역들, 부산, 대구는 거의 최악의 버스 코스로 약 4~5시간이 걸린다. 혹시 부산, 대구에서의 최적의 전주길을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린다.  
2. 숙소는 ‘영화의 거리’와 조금 거리가 있는데에 숙소를 잡아라.
영화제측에서 ‘사랑방’이라는 좋은 숙소 서비스를 해주므로, JIFF서포터즈를 가입하고 ‘사랑방’을 이용하는게 좋다. 허나 ‘사랑방’도 잡지 못했다면, 여관이나, 모텔을 잡아야 하는데 ‘영화의 거리’ 주변의 모텔, 여인숙은 비추다. 서비스나 시설들이 낙후되었고, 게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데도 몇군데 있다. 그보다는 역주변이나, 좀 외곽의 러브모텔을 잡는게 더 좋다. 물론 예상하듯이 그냥 여인숙보다 러브모텔은 깨끗하고 서비스가 좋다.
3. 택시를 타라
전주 끝에서 끝까지 택시비가 5,000원 정도 나올정도로 도시가 작다. 버스노선도 외부인에게는 쉽지 않고, 그래서 택시를 강추한다. 서울처럼 승차거부도 없고, 기사아저씨들이 대부분 친절하다. 대부분 영화제 기간 동안 멀지 않은 거리 탈때마다 2,000원선 한다. ‘영화제 스텝’시절 택시만 타고 다닐 정도였으니 아무튼 택시를 잘 이용하라.
4. 맛집을 미리 알고 가라
전주 역시 맛의 도시이기 때문에 준비를 안하고 가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래서 본 우원이 2년동안 전주토박이들에게 사사 받은 맛집 정보를 공개할까 한다.

맛집 및 가볼만한 곳 리스트

전일수퍼 전경, 사진과 다르게 많이 붐빈다(사진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1. 전일슈퍼 *****

– 전주시청 근처에서 물어서 간다.(10분거리)

– 가맥(가게맥주, 1,300원) 판매
– 북어포 구이(?)가 좋으나, 7~10시 대에는 사람이 많다.

2. 옛촌 막걸리 *****
– 택시를 잡아타고, 본병원앞아서 내려 길을 건너, 훼미리마트 옆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편
– 한상 막걸리/소주에 안주가 아주 푸짐하게 나옴(얼마나 푸짐한지는 눈으로 확인)
– 5~11시까지 사람이 많으면 쥔장 꼬셔서 밖에 테이블 만들어 달라고..ㅋㅋ

진미집 돼지고기(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for40 )

3. 진미집 ****
– 택시를 잡아타고, 진미집하면 내려준다. -_-
– 사람이 다 찼으면, 건너편 “오원집”에 가면 된다. (본 우원은 오원집이 더 낫다고 생각)
– 고기 및 여러 싼 안주에 선술집

4. 광장식당 *****
– 시청에서 영화의 거리쪽 방향에 GS칼텍스 옆 죽집에서 오른편 길건너 있는 허름한 백반집
– 4명이 가면 좋음(두당 5천원)

5. 콩나물 국밥집 씨리즈 *****
– 두레박 : 맛있음, 시청에서 메가박스로 가는길 오른쪽길에 작은 콩나물 국밥집
– 왱이집 : 양많음, 택시 잡아타고 왱이집
– 엄마손 : 약간 매움, 택시 잡아타고 남부시장 엄마손, 시장안으로 들어가니 물어물어

6. 남부시장 진미집 *****
– 소바와 냉면류를 파는데 맛있음
– 물론 택시 잡아타고 남부시장 진미집

7. 이레면옥 ****
– 영화의 거리 근처 동문거리쪽, 물어물어가도 되고, 모르면 택시
– 갈만탕, 냉면 짱!!

8. 계수나무 ****
– 이레면옥 옆골목으로 물어물어
– 홍합짱뽕 죽임. 보면 암. 양이…
– 점심으로 딱!!

9. 뮤직뱅크 *****
– 전북대 구정문에 내려서 정문을 등에 지고 전진 물어물어 대충 왼쪽 2층이상에 있음
– 간단한 술과 춤을 추고 싶다면 여기 췩오!!!
– 서울의 클럽과는 다른 자유롭고 편하고 흥겨이 놀수 있는…

10. 다락방 *****
– 전북대 근처, 택시 잡아타고 다락방이라고 얘기하면 알아서 내려줌
– 아마 6,000원 뼈해장국(그릇안에 10개가 넘는 뼈가 들어있음)
– 배고플때 가야…

11. 마차집 ****
– 영화의 거리에서 물어물어(검색해보삼)
– 비사벌 여관에서 한양불고기 골목으로 들어가면 됨.
– 양념족발이랑, 갈비, 쥑이는 미역국과 파무침
– 자리가 적어서 만석일때가 많음, 기다려서 먹길 바람

12. 통집 *****
– 택시타고 전북대옆 통집 데려달라고 하면됨.(설명불가)
– 싼가격에 술안주와 국수가 맛있음.

13. 반야돌솥밥 ****
– 택시를 이용해서 간다. 영화의 거리에서 좀 거리가 된다.
– 돌솥밥의 끝장이 무엇인가 알 수 있다. 그외 함께 나오는 반찬도 좋다.
– 단 알다시피 돌솥밥이 좀 늦게 나온다.

몇가지 정보 더
– 대부분 맛집 장소는 지도 서비스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좀더 느긋한 여행을 하면서 맛집을 찾아가겠다면, 지도를 들고 걸어가는 것도 좋다.
– 역주위는 비추다. 급하다고 역주변에서 먹으면 대략 낭패..
– 전주비빔밥이 유명하다만, 전주사람들은 안먹는다. 비싸기도 하려니와, 다른 음식들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돈 좀 더 보태 한정식집에서 한 상 차려 먹는것도 좋다.
– 콩나물 국밥집마다 맛들이 천차만별 하므로, 다양하게 즐겨보라. 단 유명한 삼백집은 비추, 이유는 수란대신 계란후라이를 주기 때문…
5. 영화만 보지말고, 행사를 즐겨라.
대부분 영화제 행사가 영화의 거리(Fescades)에 집중되어있으므로,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가 아주 많다. 다른 영화제와 다르게, 거리 공연, 야외 공연등 내용이 알차다. 행사내용들을 미리 알아두어서 일정을 짜도록 한다. 이번 영화제가 10회이기 때문에 좀더 재미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내부자 얘기에 따르면 ‘관객파티(5월 6일)’가 재미있을꺼라고 한다.)
그리고 약간 더 시간이 되고 날이 좋다면, 아는 사람들과 영화의 거리에서 가까운 ‘경기전’, ‘한옥마을’, ‘전동성당’, ‘덕진공원’, ‘동물원’ 등을 가보는것도 좋다.
이상 간단한 전주국제영화제 공략법에 대해 썰을 풀어봤다. 영화제란 제법 새로운 세계와도 같다. 직접 경험하고 직접 즐겨보는게 최선이다.

그럼 5월의 푸르른 전주에서 만나뵙기를 앙망하며 …


영진공 엽기민원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행복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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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고 럭키>가 개봉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우연한 기회로 보게됐다. 마이크 리 감독님 영화라면 의무감을 갖고 봐주는 게 예의지 암. 아무튼 의무감을 가지고 보게 된 <해피 고 럭키>는 <베스트셀러극장>에나 등장할법한  스케일의 이야기였지만 놓쳤으면 후회할 뻔했다.

<해피 고 럭키>의 주인공 포피(샐리 호킨스)는 제목처럼 매사가 즐거운 서른 즈음의 여자다. 낯선 사람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도 무안해 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방금 타고 온 자전거를 잃어버려도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자기 것에 대한 미련도 없다. 행복전도사 포피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코믹하던지 보는 나까지도 기분이 마구 좋아지더라. (그런 포피 당신은 ‘내추럴 본 낙천주의자’ 우후훗!)

근데 모두 포피의 전도에 넘어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극중 운전강사는 운전 연수생인 주제에 교통안전엔 아랑곳없이 농담 따먹기나 하려는 포피가 한심해 보이고, 그녀의 동생은 서른이 되도록 집 장만도 못하고 결혼에도 관심이 없는 포피가 철없어 보인다. 그래도 포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말고 이 빡빡한 일상 나랑 함께 작은 것에 의미 두고 웃으면서 살아봐요. 제가 위로해주고 즐겁게 해드릴께요. 함께 해Boa요. ^^ 이것이 바로 포피의 삶인 것이다.

영화는 포피의 삶을 중심에 놓고 진행이 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인 포피가 옳고 그녀의 삶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긴 나조차도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그런 여자를 만난다면 좀 히껍할 것 같더라. ^^;) 대신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 즉 우리네 삶이고 삶의 신비라고 말하는 것이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포피의 낙천주의가 대단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하여 마이크 리 감독은 소통의 방식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인 만큼 서로를 평가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문형으로 영화를 마친다.

좋은 영화는 모름지기 결말을 단정 짓지 않고 생각하게 만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감님도 그렇지만 마이크 리 영감님도 존재 자체가 거대한 가르침처럼 느껴지는 감독이다.

영진공 나뭉

“스파이더 (Spider, 2002)”, 섬세하게 쌓아올린 건축물 같은 작품

프로이드의 주장 대로라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든 남자에게 해당되는 ‘극히 일반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만일 단순한 컴플렉스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어떤 행동으로까지 옮겨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매우 특이한’ 사건과 기억이 되어 그의 남은 일생을 지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패트릭 맥그래스 원작의 <스파이더>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재해석을 기본 골격으로 어느 정신병 환자의 치명적 과거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창문을 벽돌로 전부 막아버린 건물의 이미지는 세상과 단절된 주인공의 의식 세계를 상징하면서 영화의 도입부를 장식한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자신의 생부를 살해한 신화 속 인물이었지만 <스파이더>의 주인공은 남자로서 갖는 여성성에 대한 상반된 기대 가치, 즉 엄마와 창녀의 이원화된 존재를 실재로 혼동 하는 와중에서 아버지와는 모종의 타협을 하고, 대신 생모에 대한 응징을 선택한다. 이런 사실은 영화 속에서 비교적 나중에 밝혀지는 일종의 반전이자 현실이기는 하지만 영화 중간 즈음부터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도록 느슨하게 연출되었다는 점에서 <스파이더>에서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역점을 둔 것은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데 있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스파이더>는 다소 느리고 답답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마치 거미 한 마리가 자신의 둥지를 직조하듯 영화 속 작은 요소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다듬어 쌓아올린 건축물과 같은 작품이다. 이전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작품들이 구차한 설명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다소 거친 뒷맛을 남기곤 했던 데에 비해 <스파이더>는 대단히 명쾌한 끝맺음과 앞뒤 아귀 맞음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러나 만약 <스파이더>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의 섬세한 배열이 연출이 아니라 원작과 시나리오(모두 패트릭 맥그래스가 했다)라는 사전 작업 과정에서 이미 나온 것들이었다면 이 영화를 위해 ‘굳이 데이빗 크로넨버그였을 필요가 있었겠는가’하는 의문이 가능할 것이다.

원작과 시나리오가 뛰어났든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색다른 감각이 빛을 발했던 것이든 간에 <스파이더>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이는 너무나 다른 1인 3역의 캐릭터를 기막히게 소화해낸 미란다 리처드슨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랄프 파인스나 가브리엘 번이 다소 밋밋하게만 보였던 것은 이들이 결코 부족한 배우라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미란다 리처드슨의 활약 앞에 가려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영진공 신어지

“맨추리안 캔디데이트”, 문간에 발 들여놓기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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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만들어진 <맨추리안 캔디데이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 중 하나인 6.25전쟁을 소재로 합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쟁 포로가 되었던 미군 장교들이 주인공이죠. 그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있는 동안 소련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미국의 주요인사들을 암살하도록 세뇌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전쟁영웅으로 대우하는 미군당국은 물론이고 세뇌당한 미군들 자신조차도 자기들이 암살의 도구로 세뇌당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던 중, 무의식 깊은 곳에 남겨진 세뇌의 흔적이 그들 중의 한명인 마코 소령(프랭크 시내트라)의 꿈속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이 영화는 2004년에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조나산 드미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시대상황에 걸맞게 1차 걸프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만, 역시 은밀한 세뇌작업과 그에 얽힌 음모라는 소재는 여전합니다.


이 글의 주제는 이 1962년작 오리지널 영화임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을 살펴보다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6.25 전쟁은 전쟁포로에 대한 세뇌작업이 큰 이슈로 부각된 최초의 전쟁이기도 했거든요.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미국 군인들 중 일부가 몇 개월 후에 대남방송에 출연해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난하고 공산주의의 가치를 긍정하고 중공군의 사기가 훌륭하고 포로에 대한 대우도 좋다고 칭찬하는 등, 참전한 연합국 군인들의 사기를 끌어내릴 말만 골라서 해대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연합군 측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적방송에 출연한 그 군인들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균이상의 장병들이었습니다. 본인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도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요. 다시 말해서 이들은 포로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그저 충성스러운 미국 군인들이었던 겁니다. 결론은 그들이 포로가 된 이후에 중공군이 그들의 정신에 무슨 짓을 했다는 뜻이었죠. 그것이 바로 ‘세뇌’였습니다.

영어로 세뇌를 brainwashing이라고 하는데, 이건 원래 중공군이 사용하던 단어, ‘뇌를 세척하다’는 뜻의 한자어 세뇌(洗腦)를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겁니다. 즉, 세뇌라는 단어 자체가 이 사건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죠. 곧 미국의 심리학자들도 세뇌에 대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도대체 어떤 끔찍한 짓을 했길래 이들의 충성심과 사상이 이렇게 쉽게 뭉개진 것인지는 베일에 쌓여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들에 온갖 상상의 소재가 되었고 그 결과, 1959년 리차드 콘돈이 SF 스릴러 <맨추리안 캔디데이트>를 쓰기에 이릅니다. 물론 그 소설이 영화 <맨추리안 캔디데이트>의 원작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런 무시무시한 세뇌를 상상했으나 …

전쟁이 끝난 후, 고국에 돌아온 미군포로들을 통해서 중공군이 저지른 세뇌 작업의 실상이 밝혀졌습니다. 최면술에서부터 시작해서 뇌수술까지 온갖 기괴하고 잔인무도한 기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되었던 세뇌의 실상은 허탈할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치알디니가 쓴 유명한 책 <설득심리학>에 그 기본 전략이 잘 나와 있습니다.

중공군은 자기들의 세뇌전략을 ‘유화정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골자는 아주 작은 요청부터 시작해서 점차 더 크고 심각한 요청을 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의 장점과 자본주의의 단점에 대한 간단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큰 보상도 없습니다. 단지 글을 쓰는 동안 밖에서 땅파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의 보상이 있었을 뿐이죠. 게다가 자본주의에는 모순이 있고 공산주의에도 잘 찾아보면 장점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말할 수 있죠. 그럴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니까요.

따라서 몇 명이 이 요청에 응합니다. 그런데 일단 글을 쓰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자기가 작문한 것을 백일장에 출품해보라는 요청을 받죠. 상품은? 별거 없습니다. 담배 한갑 정도죠. 큰 보상을 받지 않으니까 돈에 팔려 국가를 배신한다는 의식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자기가 쓴 글이니 발표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발표를 하고 나니까, 백일장에서 당선된 좋은 글이라며 미군 부대를 향한 대남 라디오방송에서도 한번 발표해달라고 요청하네요. 이때부터는 일이 진짜 심각해집니다만, 포로들은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승인하게 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한번 승인한 요청은 계속 승인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리고 일단 한번 이렇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한 포로는 더 심한 요구에도 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저질러 놓은 일들을 보면서 자기가 사실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며 자본주의를 싫어하고 있었다고 인식하게 되죠. 자기행동을 보면서 자기의 태도를 정하는 겁니다. 이 사소한 과정이 축적되면, 마침내 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세뇌된 병사”가 탄생하는 것이죠.


아니, 그렇게 간단한 걸 가지고 삽질을 했단 말이야? 응?

이 방법은 미국에서 세일즈의 기본 전략 중 하나인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세일즈를 하려면 일단 어떻게든 집 문간에 발부터 걸쳐놓으라는 것이죠. 발이 들어간 다음에 머리가 들어가면 된다는 겁니다. 1965년판 American Salesman이라는 잡지에서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간단하게 요약했더군요.

“작은 주문으로 시작하여 커다란 주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이 전략의 요체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상품을 처음으로 주문한다면, 비록 그 주문 자체를 통해서 당신이 지금 당장 어떤 이익을 얻지는 못할 지라도 그는 더 이상 잠재고객이 아니다. 그는 바로 당신의 고객이 된 것이다”


일단 문간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 다음은 쉽다 …

가장 고전적인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은 “물 한잔만 달라” 며 고객의 현관문을 열게 하는 방식입니다. 아직도 이 방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요즘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여전히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들은 제품 이용 소감 공모전 같은 것을 많이 개최합니다. 인터넷을 활용해서 블로거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행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건성으로 제품을 칭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 칭찬을 하려면 어떻게든 제품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야 하고, 실제로 남들이 보는 공간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칭찬도 하고 나면 실제로 그 제품이 자기가 칭찬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나중에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그 제품을 남들에게 추천하게까지 되죠. 중국의 정치 백일장과 마찬가지 기능을 하는 겁니다.

중공군의 세뇌기술은 공산혁명 이후 중국국민들의 사상을 개조하는 범국가적인 작업을 통해서 갈고 닦여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기술은 자본주의자들의 최전선인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죠. 이것도 재미있는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영진공 짱가

“그림자 살인”이 조선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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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극을 표방하는 <그림자 살인>은, 실은 추리를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상한 추리극이다. 시작은
그럴싸하다. 시커먼 밤 인적 없는 숲속에서 시신 한 구가 누군가의 손에 운반된다. 시체는 누구일까? 시체를 운반하는 자가
범인일까? 궁금증은 곧 풀린다. 시체는 고관대작의 아들로 밝혀지고 의학도 장광수(류덕환)가 해부실습을 위해 주워왔던 것이다. 이
사실을 파악한 장광수는 누명을 벗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니 그가 바로 홍진호(황정민)! 홍진호는 발명가 순덕(엄지원)이 고안한
도구들로 진범 찾기에 나선다. 

박대민 감독의 <그림자 살인>은 여러 모에서 구미가 당기는 작품이다.
충무로 보증수표 황정민에, <놈놈놈>의 조화성 미술감독이 참여한 볼거리 가득한 경성, 그리고 화려한 액션까지.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추리는 없다. 영화의 모든 패를 던져버리는 초반에 다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홍진호의 등장은
<차이나타운>(1974)의 기티스(잭 니콜슨)와 캐릭터 맥락이 일치한다. 남편이 집나간 사이 불륜을 벌이는 부인의
뒤꽁무니를 쫓아 벌거벗은 사진을 증거랍시고 찍어대는 한심한 사립탐정, 하지만 소싯적 지방검사를 지낸 적 있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정의감 따위 엿 바꿔 먹고 돈(혹은 여자)에 혹해 사건을 맡게 되는 점 등 두 인물은 판박이인 것이다. 고로, 이와
같은 상관관계를 통해 <그림자 살인>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던 사건이
핵심에 다가설수록 더 큰 음모와 연루되어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마주서게 되는 것. (<차이나타운>이
바로 그렇다!)

추리가 주가 되는 작품에서 예측 가능하다는 건 치명적이다. 게임오버다. <그림자
살인>처럼 홍진호가 기티스의 영향 하에 있고, 홍진호와 장광수의 관계가 홈즈․왓슨 콤비를 연상시켜도, 순덕의 존재가
<CSI 과학수사대>의 벤치마킹일지라도 설정은 설정일 뿐 오해하지 말지이니, 이에 관계없이 예측 불가한 전개를
보여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추리극의 재미요, 백미다. 그래서 추리를 다루는 작가는 종종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벌인다고 하지만
의도적으로 독자의 접근을 차단해 흥미를 배가시킨다.

물론 <그림자 살인>에도 관객의 접근을 차단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도무지 추리에 집중할 생각을 하지 않고 관객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려는 것이 문제일 뿐. 안타깝게도
<그림자 살인>의 작가들은 추리극을 쓸 능력이 없어 보인다. 가령, 범인의 정체를 초반에 노출하는데, 그것이 관객에게
혼란을 줄 목적이라지만 제2, 제3의 용의자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복선이 깔리는 것도 아니고 애당초 호기심을 자아내는
미스터리? 그런 거 없다.

대신 영화는 액션과 경성 풍경에 승부수를 띄운다. <본 얼티메이텀>을
연상시키는 초반 액션장면에 대해 길고 지루하다는 평가가 잇따르는 걸 보면 <그림자 살인>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추리에
대한 부족한 능력치를 강력한 볼거리로 메워보겠다는 것. 그중에서도 내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조선이라는
점이다.

<그림자 살인>뿐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추리극을 표방한 한국영화를 보면 유독 조선시대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했다. 김대승의 <혈의 누>(2005)가 그랬고, 김미정의 <궁녀>(2007)가
그랬으며, 이 영화가 그렇다. 나는 이것이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리물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의
DNA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정이 중시되고 초자연적인 사고가 익숙한 문화 속에서는 과학과 증거가 뒷받침되는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추리물에 태생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는 법. 하여 한국인이 만드는 추리물은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질 뿐 아니라
이야기 얼개도 굉장히 약한 편인데 아마 그런 난점을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통해 가리려는 게 아닐까 추측해보는 것이다. 

가령, <그림자 살인>의 배경은 조선 중에서도 황제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일제 강점기라 부르는
1900년대 초반 경성이다. 전쟁과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신문물이 유입됐던 시대, 한복과 하이힐이,
양복과 상투가 자연스럽게 한 몸에 공존하며 문화충돌이 기승을 부리는 모순의 시대가 바로 이때였다. 요는 근대와 반(反)근대가
난립했던 시대의 이중성만큼 앙상한 추리 서사에 대한 면죄부로 기능하기에 좋은 조건이 없다. 추리극의 면모를 유지하되 결정적인
상황에서 이성보다 정에 호소함으로써, 과학보다 초자연주의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합리주의와는 가장 동떨어진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궁녀>이다.

<궁녀>는 <그림자 살인>의
순덕 이전 이미 내의녀 천령(박진희)을 등장시켜 과학수사를 보여준 전례가 있다. 물론 <그림자 살인>과 달리
<궁녀>는 배경이 정조시대지만 (극중 정확한 시대가 언급되지 않지만 정황상 유추가 어렵지 않다) 정조가 신문물을
들이는데 관대했고 개혁책을 앞세워 고문(古文)을 옹호하는 보수 세력과 대립을 이뤘다는 점에서 경성이 갖는 시대의 이중성과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여 <궁녀> 역시 궁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두고 초반엔 천령의 과학수사를 앞세워
추리극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귀신의 존재를 암시하며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극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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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살인>은 <궁녀>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더 영리해 보이지도 않는다. <궁녀>처럼
시대의 이중성을 노골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면죄부 삼으려는 태도를 취한다. 추리극을 표방하는 <그림자 살인>은
논리적인 사건 해결을 통한 지적 유희의 전달보다 일제를 향한 민족적 복수심의 쾌감을 극대화하는데 봉사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중성은 결국 ‘타락한’ 일본인에 맞서는 ‘정의로운’ 한국인의 대립으로 구체화된다. 이성보다 복수심에 기대 합리주의를 무효화하는
민족주의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 살인>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이라든지 소품들은
사건의 단서 혹은 복선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철저히 무능력한 추리력을 감추려는 볼거리 혹은 일본을 제압하는 의미로써 작용한다.
사건 해결에 전혀 기능하지 못하는 은청기나 만시경 같은 신기한 도구들은 물론이요, ‘총’을 든 홍진호가 ‘칼’을 든 일본인을
이기는 이미지는 관객의 시선을 교란시키기 얼마나 좋은가.

코언 형제는 자신들이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다루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과거는 이국적인 느낌을 줘요. 과거를 스토리의 배경으로 삼으면 더 심도 있게 허구의 세계를 만들
수 있죠. 그렇다고 회고담 같은 건 아닌데, 우리 영화는 우리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과거를 다루기 때문이죠. 상상력에
의존한다고 봐야죠.” 조선으로 간 추리극 <그림자 살인>은 정확히 반대다. <그림자 살인>은 추리력에
의존하지 않는 이상한 추리영화다.

영진공 나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