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궁전과 그래픽 인터페이스

 


 

 


 


 








 


 

흑사병과 전쟁이 휩쓸어버린 중세의 유럽은 쑥대밭이 되었다. 로마 제국은 골로 가고, 큰 도시들은 약탈과 흑사병의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시골로 줄행랑을 쳤다. 그로써 중세의 마을들은 농경시대의 촌락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별다른 교통수단도 없고, 세상도 흉흉해서 여행이란 목숨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마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립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취와 수탈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에 겨웠다. 학문은 고사하고 항문에 힘쓰기에도 밥이  아까웠기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은 문맹이었다. 상황이 요렇다 보니 정보는 입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one, for the money~

two, for the show~


 


 


음악가와 시인들로 구성된 작은 집단인 방랑 연예인들은 마을을 돌며 실제 있었던 일을 시나 노래로 부르며 공연을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알 수 있었다. 공연은 운율로 이루어져 있었고 반복적이어서 공연자와 관객 모두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이들 음유시인들은 가끔씩 서로 만나 이야기꺼리도 교환하고 자신들의 놀라운 기억력을 과시하는 일종의 시 경연회 같은 것도 펼쳤다. 머리 좋은 이들은 서너 번만 듣고도 수백 줄이나 되는 시 전체를 머릿속에 넣을 수 있었다. 한술 더떠 대학의 교사들은 제자들이 큰소리로 말하는 백 줄의 텍스트를 단 한번만 듣고서 암송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뭐 대충 이런 식이었다는 ……


 



 


이처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었던 세계에서는 좋은 기억력이 필수였다. 왕의 전언을 직접 전해야 하는 조신들은 긴 전언을 말 그대로 암송하는 훈련을 받았다. 학자들 역시 값비싼 필기 재료들 때문에 기억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의 문학 형태에는 쉽게 기억할 수 있게 압운의 형식을 띄고 있다. 14세기에 이르기까지, 법률적인 서류들을 빼놓고는 거의 모든 글에 압운이 쓰였다.


 


또한 학자들 사이에선 기억술이 수사학의 표제 아래 교육되었다. 그 교재로는 [헤레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이라는 기억술 참고서가 쓰였다. 이 책은 ‘기억 극장’이란 테크닉을 이용해 엄청난 분량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기술을 담고 있었다. ‘기억 극장’이란 간단히 말해 머릿속에 가상의 극장을 만들고 요소들을 기억해야할 것과 연결짓는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이미지들은 기억의 ‘대리물’ 역할을 했다.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억 극장을 이용한 이미지 기억법을 

종교적인 문제들을 기억한는 데 활용할 것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이런 기억술의 기원으로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의 일화가 전해져온다. 시모니데스는 한 귀족이 베푼 파티에서 그 귀족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낭송했다. 그러나 있는 놈이 더한다고 귀족은 시모니데스에게 원래 비용의 반만 준다. 시의 내용에 자신 뿐만 아니라 카스토르와 폴룩스라는 쌍둥이 신도 찬양했기 때문에 나머지 비용은 두 신에게 받으라는 핑계였다.


 


빈정상한 시모니데스는 파티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티장은 폭삭 무너지고 만다. 시모니데스 만큼 빈정상한 쌍둥이 신이 파티장을 뭉개버린 것이다. 나중에 달려온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고자 하지만 너무나 피떡이 되어서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짠 하고 나타난 시모니데스는 집안 구조부터 누가 어디에 앉아있었는지를 완벽하게 기억해내어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시모니데스가 파티장의 모든 것을 완벽히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 전개를 건축물로, 이야기 속의 추상적인 개념들을 널찍하고 치밀하게 장식된 상상의 집으로 생각했다. 시모니데스의 방법은 시각적 기억이 문자 기억보다 훨씬 오래간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이런 ‘기억의 궁전’ 개념이 중세를 지나 현대에 다시 등장한 것은 컴퓨터 때문이었다.

 


 





The ENIAC computer and its coinventor, John W. Mauchly.

© Bettmann/Corbis




 

초기의 컴퓨터는 지금과 비교하면 전혀 세련되지 못한 물건이었다. 이진법 코드와 축약된 명령어, 펀치 카드에 어설프게 입력된 데이터, 타자기로 찍은 출력물 같은 것을 뱉아내는 깡통이었다. 요녀석으로 뭘 쫌 하기 위해선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했기 때문에 누구나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 깡통으로 돈을 벌기 위해선 누가 보아도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 문제는 1970년대에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Xerox PARC에서 최초로 개발되어 애플사의 매킨토시 컴퓨터에 의해 대중화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대성공을 거두고 널리 채택됨으로써 해결되었다. GUI의 등장으로 사람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컴퓨터 사용 인구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GUI도 중요해졌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는 쉽게 말해 윈도우을 떠올리면 된다. 윈도우의 등장으로 이제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컴퓨터의 복잡한 명령어를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콘을 클릭만 하면 누구나 컴퓨터를 쉽고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한 명령어를 이미지로 형상화 시킨 것이다.

 

또한 데이터 공간을 이미지화 시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폴더를 만들어 비슷한 자료를 모아놓고, 화면상에 아이콘들을 필요에 맞게 배치시킴으로써 무형의 데이터 공간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그릴 수 있게 형상화 시킨 것이다. 특히 저장매체의 용량증가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가상공간은 등장은 오늘날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만들어 주었다.

 


컴퓨터가 차지하는 책상 위 물리적 공간은 기껏해야 1㎥지만 그 컴퓨터가 품고 있는 가상의 공간은 어마어마하다. 누구나 자기 방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만한 데이터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컴퓨터들이 인터넷에 연결됨에 따라 우리가 접하는 데이터 공간이나 복잡한 네트워크를 ‘상상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이런 시대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는 현대판 ‘기억의 궁전’이다. 머릿속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정보를 이미지화 시키듯이 GUI는 0과 1로 이루어진 사이버 공간을 이미지화 시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주었다. 우리는 인터페이스라는 연결 통로를 통해 이 가상 공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를 앞서갔던 엥겔바트 할아버지



 


엥겔바트는 정보에 대한 안내를 해주는 가이드 역할이 꼭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위대한 기술 혁신은 ‘직접 조작’을 원칙으로 도입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1968년 그가 제시한 마우스는 현재 가장 중요한 인터페이스 도구가 되었다. 마우스 덕분에 우리는 정보 공간이라는 세계에 들어가서 그 안의 정보들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마우스는 단순한 지시 도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엥겔바트가 개발한 최초의 마우스


 


 


 




그래픽 인터페이스라는 비트맵으로 구성된 정보 공간, 즉 비트매핑*의 등장과 가상적인 공간과 물리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마우스의 등장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변화시켰으며 컴퓨터를 상상하는 우리의 방식 또한 바꾸었다.

 


공간의 개념이 기술에 의해 극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기억의 궁전’은 이제 우리가 만질 수 있는 ‘현실의 궁전’이 되었다.


 


 


 



* 비트매핑bitmapping: 지도와 컴퓨터의 이진법 코드가 결합하여 정보라는 새로운 세계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뜻.

 


컴퓨터 스크린의 각 픽셀에는 메모리가 조금씩 할당되어 있다. 단순한 흑백 스크린에서는 이 할당된 조그만 메모리 공간이 컴퓨터 내부에서 0 또는 1을 나타내는 한 개의 비트다. 픽셀에 불이 들어오면 이 1비트의 값은 1이고, 픽셀의 불이 꺼지면 0이다. 컴퓨터는 스크린을 이와 같은 픽셀들이 가로 세로로 꽉 차 있는 2차원적 공간으로 인식한다. 처음으로 데이터가 물리적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자가 컴퓨터 프로세서를 통해 왔다갔다 하면서 시각적인 이미지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물리적인 ‘동시에’ 가상적인 공간이 생긴 것이다.



 


 



– 참고 및 발췌 –


제임스 버크 저, 장석봉 역, [우주가 바뀌던 날], 궁리, 2010

스티븐 존스 저, 유제성 역, [무한상상, 인터페이스], 현실문화연구, 2003

 


 




영진공 self_fish


 


 


 


 


 


 


 


 


 


 


 


 


 


 


 


 


 


 


 


 


 


 


 


 


 


 


 


 


 

유승호의 매력은?, Guilty Pleasure & More …


유승호는 처음부터 참 잘생긴 꼬마였다. 영화 <집으로>의 철딱서니 없는 악동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그랬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는 그 꼬마를 잊었다. 내가 그를 다시 발견한 것은 내가 일하는 곳에 붙은 영화 포스터 속에서였다. 영화 정보라면 꽤나 주워섬긴다는 나도 처음 들어본 영화, <서울이 보이냐>의 주인공이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얘가 이런 영화에? 라는 의문이 떠오른 거다. 그렇다. 나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유승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유승호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누나를 등에 업고서 시청자들에게 유산균식품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나라의 20-30대 여성들은 모두 그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누나가 되어 버렸다. 이 글은 바로 그 누님들 중 한명의 요청으로 씌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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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광고




그럼 이제 유승호의 매력을 정리해봅시다~

매력1.
미학적인 조화

유승호를 말하면서 그의 외모가 제공하는 아름다움을 빼놓을 수는 없다. 눈 주변을 제외하면 맑디맑은 얼굴, 큰 눈동자와 짙은 눈썹, 그 외의 정확하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갸리갸리한 팔다리와 함께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순정만화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 순정만화의 주인공답게 이 꼬마는 순수하다. 그러나 순수한 미소년이라는 것만으로는 유승호의 매력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유승호에게는 단지 순수하고 예쁘다는 것 말고 다른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어두움이다.


일단 이쁘고 볼 일이다.

매력2.
여리한 어두움-부조화의 매력

유승호는 어리다. 그리고 어린애답게 섬섬하고 여리하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얼굴에서는 서글서글한 어두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를 ‘리틀 소지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간 짙은 눈매와 젊은 애 답지 않게 힘없어 보이는 눈빛 탓일지도 모르겠고, 가느다란 팔다리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가 연달아 맡은 어린 왕 역할이 남겨준 아우라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꼬마는 귀여운데 귀엽지만은 않다. 우리는 언제나 부조화스런 대상에 눈길을 돌린다. 이것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언제나 튀는 존재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위협이지만 눈치가 빠른 자에게는 기회가 된다. 인류의 조상들은 그것을 감별하는 능력을 통해 죽을 자리에서 살아 돌아오곤 했다. 따라서 우리는 뭔가 어긋나는 존재를 감별하는 눈을 가진 이들의 후손들이고 비슷한 능력을 물려받았다.

군계일학, 닭떼 중에 학 한 마리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학이 나머지 닭들과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여러 얼룩 중에서 어떤 얼룩이 묘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그냥 얼룩이 아니라 호랑이다. 마찬가지로 귀여운 아이가 귀여운 짓을 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건 그냥 한번 돌아봐 줄 정도로만 귀여울 뿐이다. 그러나 귀여운 애가 뭔지 모를 우수를 흘리고 다닌다면 이건 걸음을 멈추고 긴장하며 주시해야만 한다. 곧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승호는 꼬마 시절부터 그냥 어린애스럽지만은 않았다. 애가 별로 까불지도 않고 뭔가 아는 듯 조용히 남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애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남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아주 그럴듯한 남자가.
 


애가 뭐 이리 어두워 …

매력3.
성공한 성숙

사춘기의 2차 성징은 호르몬의 균형을 뒤집으면서 우리들의 외모도 함께 헤집어 놓는다. 왕자 공주 대접을 받던 우리네 인생이 마당쇠와 무수리로 격하되는 시점이 바로 이때부터다. 나를 볼 때마다 귀여워 어쩔 줄 모르던 어른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대하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바로 그게 그때다. 어떤 여자아이들은 이 전락을 막고자 음식을 거부하기도 하고 심해지면 사춘기 거식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변하는 몸을 막을 수는 없고 흘러가는 세월을 멈출수 없는 법이다. 사춘기의 혼돈은 아역스타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그동안 누님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춘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한 동생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여기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위해 묵념.


아, 해리…

그러나 몇몇은 불공평하게도 사춘기의 나쁜 것은 피하고 좋은 것만 얻어서 돌아온다. 그것은 마치 왕의 귀환과도 같은 일이다. 나는 통과하지 못했던 바로 그 테스트를 통과한 그들에게 우리는 존경을 바치며 더 큰 충성을 맹세한다. 멀리는 같은 해리포터 시리즈에 출연했으나 공주님이 되어버린 ‘엠마 왓슨’이 그렇고, 여기서는 유승호가 그렇다. 그는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루나Luna는 이를 “훈남이 될 거란 예상을 확인하는 즐거움” 이라 표현했다.

매력4.
금지된 장난-Guilty Pleasure

유승호에게 하악대는 누님들의 호소하는 또 다른 감정은 죄책감이다. 내게 자문을 해준 한 분은 이 감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이런 어린애에게 무슨 짓인가,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내 마음,
오히려 죄책감이 더 불을 지르는 이 상태.”

이건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미 남자들은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나보코프가 <롤리타>에서 표현한 것이 그거고, 예전에 ‘SES’와 ‘핑클’이, 지금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소구하는 것이 그것이며, 문근영과 김연아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단지 여기에 누님들이 가세했을 뿐이다. ‘샤이니’라는 애들이 인기를 얻었을 때부터 이런 조짐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유승호를 통해 그것이 본격적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남자들이 이미 그랬왔으니 여자들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원래 이런 거는 오히려 죄책감을 느껴야 더 즐길 수 있다. 롤리타 콤플렉스가 콤플렉스인 이유는 거기에 죄책감이 반드시 끼어들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는 금지된 것을 더 갈망한다. 사실 이것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본능의 발현이다. 우리는 누가 나를 금지하기 보다는 내가 남을 금지하기를 원하도록 진화해왔다. 금지를 극복한다면 우리는 한 단계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금지된 대상은 더욱 더 매력적이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그 대상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자유와 권능의 매력까지 담겨있으니까. 유승호를 더 잘 ‘즐기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당신이 죄책감을 느낄수록, 금지를 느낄수록 유승호가 내미는 숟가락은 더 달콤할 것이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