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앙 로즈>, 어느 여가수의 삶에서 건져올린 감동의 카운터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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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영화가 자주 만들어지는 이유는 잘 알려진 인물의 삶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아무래도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에 손쉽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영화화되기 쉬운 것도 마찬가지죠. 여전히 흥행 여부의 불확실성과 부담이 있음에도 일단 무슨 영화인지를 설명하기가 간편하지 않습니까. 이름만 딱 대면 “오, 그 사람 이야기라고? 멋지군요. 얼마면 되겠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위에 창작자의 열정이 얹혀지면서 한 편의 전기 영화가 탄생합니다. 영화화의 대상이 되는 인생과 업적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고 연기하는 이들의 몫이겠지요. 물론 영화 제작의 실제 과정은 시나리오와 연출자, 주요 캐스팅까지 어느 정도 완료된 후에야 실질적인 펀딩이 이루어지고 있겠죠. 투자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유명 인물의 전기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흥행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을테니까요.

<라비앙 로즈>도 무슨 영화인지를 설명하기가 무척 쉬운 유명한 인물의 전기 영화입니다. 1915년 파리에서 태어나 1963년, 불과 47세의 나이에 사망한 프랑스 여가수 에디뜨 피아프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전기 영화를 구성하는 방법은 그 목적에 따라 세 가지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유명 인물의 업적을 기리고 영상물로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유명 인물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롭게 조망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유명인의 삶을 통해 관객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나 감동적인 요소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프로파갠다 영화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전기 영화들은 세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명 인물의 삶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첫번째와 두번째의 목적과 방법론을 병행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관객들에게 감동도 주고 훌륭한 영상 기록물로서의 의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전기 영화들의 목표이고 구성 방법입니다.1)

그런데 <라비앙 로즈>는 에디뜨 피아프의 삶을 좀 더 특이한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거나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 과거 시점으로 갔다가 다시 현재 시점으로 연결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반면, <라비앙 로즈>는 에디뜨 피아프의 유년기에서 말년까지, 다양한 시점의 모습들을 뒤섞으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각 씨퀀스에서 마리옹 꼬띠아르와 아역 배우들이 연기하는 에디뜨 피아프가 누구인지는 명확하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 혼란스러움을 경험할 일은 별로 없지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추레한 말년의 에디뜨 피아프를 비춰주거나 앞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영화 말미에서야 뒤늦게 끄집어내는 바람에 이건 또 뭐하자는 경우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라비앙 로즈>가 이런 독특한 재구성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에디뜨 피아프의 삶에서 발견한 인생의 정수를 최대한 부각시켜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여러 시점을 뒤섞어 배치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기승전결의 구성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연대기적 스토리텔링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구성 방식에 관객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후에, 핵심 주제를 가장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두 시점의 에피소드를 영화 후반부에 이어붙인 방식이 <라비앙 로즈>의 구성 방식입니다. 심지어 초년기의 어떤 에피소드들은 일부러 감추어놓고 있다가 영화 말미에 가서야 주인공의 회상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전기 영화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면서도 관객들에게 감동의 카운터 펀치를 날려주고, 고조된 감정을 천천히 이완시키며 영화의 주제 부분을 거듭 강조하기 위해 채택한 과감한 플롯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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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후반부에 배치된 결정적 한 방을 날리기 전까지의 <라비앙 로즈>는 일반적으로 잘 만들었다 할 수 있는 전기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다른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되거나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어 왔던 에디뜨 피아프의 대표곡들을 실컷 들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했다고 전해지는’ 프랑스 여가수의 인생이 펼쳐집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택시> 시리즈와 <러브 미 이프 유 대어>, <빅 피쉬>와 <인게이지먼트>, <어느 멋진 순간>등을 통해 얼굴을 알려온 마리옹 꼬띠아르(Marion Cotillard)의 완벽한 변신입니다.2) 에디뜨 피아프의 꾸부정한 자세와 외양, 독특한 발성들을 그대로 모사하는 수준을 넘어 영화 전체가 드러내고자 하는 극적인 감정을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마리옹 꼬띠아르는 말 그대로 혼신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애초부터 마리옹 꼬띠아르의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이자벨 소벨만 공동 각본) 올리비에 다한 감독의 연출과 나가타 테츠오의 촬영 또한 에디뜨 피아프의 특별한 삶을 특별한 방식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집중했다는 생각입니다.

에디뜨 피아프의 인생을 여러 시점에 걸쳐 두루 돌아 들어가는 <라비앙 로즈>가 전체 내러티브의 꼭지점 위에 배치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그녀가 24세의 나이에 경험한 막셀 세르당(당시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권투 선수)과의 사랑과 상실의 경험, 그리고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라는 노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에디뜨 피아프의 곡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Non, Je Ne Regrette Rien를 콕 찝어내 그 곡에 담긴 메시지를 에디뜨 피아프의 삶과 연결시켜 감정의 폭풍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라비앙 로즈>의 플롯입니다. 막셀 세르당의 사망 시기는 49년이었지만 Non, Je Ne Regrette Rien이 만들어진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인 56년이었습니다. 작곡자들로부터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에디뜨 피아프가 정말 “이 노래가 바로 내 인생”이라고 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3) <라비앙 로즈>는 이 두 개의 시기를 과감히 이어붙임으로서 매우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사실의 정확성이나 객관성 보다 주제와 감정을 전달을 우선시한 선택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처음 <라비앙 로즈>의 개봉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그저 옛날 유명 연예인의 전기 영화 한 편이 또 나왔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특히 음악인들의 전기 영화란 얼마나 빤합니까. ‘불꽃 같은 인생’이라는 너덜너덜한 캐치프레이즈 아래 여러 히트곡들을 나열하며 그 사람도 결국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했더라는 식의 영화는 지천에 널렸습니다. 실제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고 흠잡을 구석 없이 잘 만들어져서 그 만듬새가 괜찮다 싶었을 뿐, 이 영화를 각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좀처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에디뜨 피아프가 막셀 세르당을 잃어버리고 Non, Je Ne Regrette Rien를 처음 듣던 그 장면에서 아주 제대로 얻어맞았습니다. 주변의 다른 관객들이 없었더라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2002)를 집에서 다시 보다가 엄청 울고 하루종일 얼굴이 퉁퉁 불었던 지독한 경험을 반복할 뻔 했습니다. 완전히 무장해제된 감정을 추스리느라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는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 되더군요.

영화는 에디뜨 피아프가 한 인간으로서 경험해온 중요한 과거사(영화의 앞부분에서 일부러 감춰두었던)들을 일부 회상하고 해변에 앉아 기자와 인터뷰했던 내용 등을 교차해서 보여준 후에 마지막으로 Non, Je Ne Regrette Rien을 무대에서 부르는, 다소 차분해진 광경으로 끝을 맺습니다.4) 영화 본편에서는 시종일관 노래와 음악이 흐르더니 막상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리딧이 올라갈 때에는 그 흔한 주제곡 하나 나오지 않는 것도 <라비앙 로즈>의 독특한 점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이미 에디뜨 피아프와 그녀의 노래가 가슴 속에서 새겨져서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는데. 에디뜨 피아프가 태어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임종하는 순간마저도 과감히 생략하고 있는 전기 영화가 <라비앙 로즈>입니다. 열심히 사랑했고 또 노래하며 살았던 에디뜨 피아프의 삶과 음악은 그녀가 죽음으로써 그대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프랑스의 어느 옛날 여가수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나 정보가 없는 관객일지라도 영화 속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평범함 속에 강렬함을 품고 있는 영화가 <라비앙 로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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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 인물의 삶을 소재로 하면서도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덜어내거나 약간의 왜곡을 가하기도 하는 것이 최근 영화들의 경향이라 생각됩니다. <카핑 베토벤>은 아예 픽션이었지만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더 없이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될 정도이고요, <라비앙 로즈>도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화법을 벗어나 다소 간의 왜곡이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디뜨 피아프의 오랜 팬들이나 영화를 토앻 새롭게 만나게 될 미래의 팬들 모두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2) 마리옹 꼬띠아르가 국내에 알려진 건 위에 언급된 몇 편의 영화들을 통해서이지만 75년생으로 이미 서른의 나이를 넘긴 그녀의 출연작들은 TV 드라마를 비롯해 이미 40 여 편을 넘고 있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에 170센티의 키로 이전에 출연한 영화들에서는 그리 작지 않은 체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라비앙 로즈>에서는 에디뜨 피아프의 왜소한 체구로 변신하기 위해 약간의 특수촬영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자벨 아자니가 <까미유 끌로델>로 기억되듯이 <라비앙 로즈>를 통해 마리옹 꼬띠아르도 드디어 배우로서의 전체 경력을 대표하는 작품 하나를 갖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3) 실제로는 에디뜨 피아프가 작곡자의 연주를 직접 듣지 않고 악보만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죠. 어느 군인이 자기의 곡들 에디뜨 피아프에게 들려주던 장면은 두번째 장면을 위한 일종의 설득 장치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한번 보았던 모습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에디뜨 피아프가 정말 저런 식으로 Non, Je Ne Regrette Rien라는 곡을 만났겠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으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추정입니다.

4) 어떤 분들은 이 공연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도 하시지만 저는 ‘노래도 잘 못하는’ Non, Je Ne Regrette Rien의 작곡자들이 에디뜨 피아프에게 처음으로 곡을 들려주던 장면에서 더 크게 움직였습니다. 음악이란 뛰어난 실력 보다 곡을 연주하는 사람의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평소 생각해왔고 또 이런 주장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다툰 적도 있었습니다만, <라비앙 로즈>에서도 에디뜨 피아프가 직접 노래를 부를 때 보다 그 곡이 에디뜨 피아프에게 들려졌을 때, 그 곡이 에디뜨 피아프에게 불러일으켰던 감정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라비앙 로즈>, 어느 여가수의 삶에서 건져올린 감동의 카운터 펀치”의 한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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