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ing slowly


영화 ‘Once’의 OST ‘Falling slowly’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이 멤버로 있는 밴드 ‘The Frame’의 연주 영상.


그런데 피아노 치는 여자는 영화의 여주인공이다.


이 여자가 왜 저기 앉아 있지?


영화 ‘once’ 짧은 평.


참으로 윤리의식이 뛰어난 영화. 자고로 과유불급, ‘과부와 유부녀에겐 급급해 하지 않는다’는 유부녀 노터치 정신을 실천한다.


너무 얌전하다, 얌전하다, 얌전하다.


끗.


영진공 철구

드라마 <24>를 통해서 생각해보는 정보화의 속도

 

지금 보실 영상은, 스스로는 드라마 <24>의 94년도 미방송 파일럿 버전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CollegeHumor라는 곳에서 만든 패러디물입니다.


부제는 <잭 바우어 AOL 3.0으로 세계를 구하다>


[Flash] http://www.collegehumor.com/moogaloop/moogaloop.swf?clip_id=1788161&fullscreen=1



내용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MSN메신져 대신 AOL을 쓰던) 1994년의 정보인프라를 배경으로 지금과 같은 <24>의 이야기를 전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안습상황의 종합선물세트죠. 그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테러범들의 아지트에 잠입한 우리의 잭 바우어씨, 드디어 시한폭탄을 발견합니다.


시한폭탄은 폭발 1분전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하필이면 CTU 본부에서 삐삐가!!


급하게 공중전화로 달려가 본부와 통화를 하니 이메일로 보내기에는 폭탄 설계도가 너무 크다는군요. 얼마냐 크냐면… 자그마치 플로피 디스켓으로 3장 분량!!!


플로피 디스켓 용량이 한 장에 512킬로바이트(메가가 아니라 킬로다)였나?


다시 말해서 플로피 3장이라면 커봤자 한 1.5메가쯤 되는…



그래서 결국 CTU 본부에서는 도트프린터로 폭탄설계도를 출력하고 있습니다만,


한 페이지 출력하는데 한 15초 걸리죠. 다 출력하기 전에 폭탄 터질 듯.


그나마 (아마도 팩스로 보내려고) 출력용지 옆의 릴과 걸리는 여백을 뜯어내다가


출력물이 손상되는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그나마 도트프린터 해상도로 설계도나 제대로 출력될지 의심이 됩니다.




안습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터넷은 전화모뎀을 써야 하는데 이게 삐이이 거리는 큰 소리를 내는데다


로그인 했다는 AOL 특유의 웰컴 메시지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지만


다행히도 테러범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군요. (왜?)




게다가 전화모뎀이라 인터넷을 하다가도


누가 전화를 쓰면 인터넷은 자동 차단되는 또 다른 안습상황..


심지어 대통령이 전화 걸어도 통화중이네요.


이건 좀 심했네요. 명색이 CTU인데 전화회선이 달랑 하나라니…




CTU 본부에서는 아마도 테러범들의 메인프레임에 접속했는데


자그마치 Geocity (아, 얼마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냐)를 통해야 하는데


하필 지금 다운 된 모양…(이건 잘 못알아들었음)




어쨌거나 간신히 폭탄해제 암호를 찾아내 폭발직전에 폭탄을 해제하는데 성공.


잭바우어 요원은 니나 브라운과 더 채팅을 하고자 하지만


니나양 그럴 수 없다는 군요. 이유는?



“우리 인터넷이 시간제로 요금을 내는데 이제 시간 다됐어…안녕…”




네, 그래서 24시간이랍니다..

1994년만 해도 그런 시절이 있었드랬죠.


비록 웃자고 만든 거지만 지금은 CIA요원들도 적을 기습하거나 감시할 때 휴대폰 영상통화기능으로 생중계를 하는 <본 얼티메이텀> 같은 영화를 보다가 이런 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영진공 짱가

발레리아 브뤼니-테데시, <여배우들>





이 영화는 여주인공인 마르셀린(발레리아 브뤼니-테데시)의 엄마와 이모의 대화씬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의 대화에 언급되는 마르셀린은 콧대를 한껏 높이며 이 남자 저 남자 갈아치우고 변덕을 부리는 도도한 철부지 여배우로 제시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화면에 첫 모습을 드러내는 마르셀린은 마치 마네킨처럼 너무나 가지런하게 빗어내려 가발처럼 보이는 단발 금발머리를 하고, 무표정 위에 진한 화장을 입고, 온몸을 가리는 빨간 롱코트를 입고 등장합니다. 그 무표정한 얼굴로 늦었다고 투덜거리며 엄마와 이모가 묻는 말에 무뚝뚝하게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는, 차갑고 도도한 모습으로 곧 택시를 잡으러 뛰어가 버리죠. 하지만! 절대! 이런 모습에 속으면 안 됩니다. 사실 마르셀린은 ‘차갑고 도도한’ 것과는 삼만 광년은 멀리 떨어진 푼수 아가씨이기 때문입니다. 마르셀린이 탄 택시가 도착한 곳은 극단 사무실이 있는 극장. 그녀는 택시에서 내리며 머리를 정리한다고 매만지는데, 이때 머리가 자연스럽게 헝클어지며 비로소 마네킨 가발 같은 머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머리가 됩니다. 이후로는 머리를 올리건 내리건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머리가 되는데 마르셀린의 캐릭터 역시 솔직담백하게 묘사됩니다.


우리는 남자배우보다 여자배우들에 편견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이 편견들은 대단히 성차별적인 게 사실입니다. 일단 여배우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들을 좀 모아보죠. 온갖 예쁜 척은 다 하고 새침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까고, 제멋대로에 도도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써대는가 하면 죽 끓듯 변덕을 부리다가 다른 여배우한테 좋은 일 있으면 그거 질투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시샘하기 바쁘고 허영심은 하늘을 찌르며 어쩔 땐 과잉의 소녀적 감수성을 드러내며 떼를 써대고 작은 일에도 잘 삐지는 데다 히스테리는 겁나게 부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쁘고 새침한 그녀가 의외로 덤벙거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망가질 때, 혹은 매우 지적인 면모를 보일 때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그녀에게 반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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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니 테데시와 루이 갸렐. 영화 속 연극 무대에서의 장면


재미있게도 <여배우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있는 이러한 여배우에 대한 편견들을 아주 영악하게 이용합니다. 왜 아니겠어요? 처음 시작부터 저런 식으로 관객들의 뒷통수를 치는데요. ^^ 그러나 주연이자 감독인 발레리아 브뤼니-테데시는, 여배우에 관한 세간의 온갖 편견을 모아 그대로 여주인공에게 투영하면서, 이것을 오히려 사랑스럽고 감성이 풍부한, 더욱이 ‘배우’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더욱 깊은 탐구를 행하고 있는 여성의 특징으로 멋지게 바꾸어 버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우리가 여배우에게 갖는 편견과 그 편견을 깨는 배우에 대해 호감을 갖는 패턴 그 자체를 주인공에 대한 묘사 방식에 그대로 이용해 먹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르셀린이 그토록 변덕을 부리거나 갑자기 억지를 쓰거나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원래 허영심 많고 제멋대로여서라기보다는, 마흔의 나이를 맞아 겪고 있는 극심한 혼란과 초조감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아기’에 대한 집착으로 집약돼서 나타납니다. 미혼의 그녀는 아이가 너무 갖고 싶지만 남자가 없고, 산부인과 의사는 그녀에게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다’고 진단해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으며 병원 처방에 따라 먹는 호르몬 약은 어째 별 효과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새로 출연하게 된 연극은, 투르게네프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시골에서의 한 달>인데, 소위 ‘예술가적 자의식’이 너~무 강하신 제멋대로 독재자 연출가 나리는 그녀가 해석한 나탈리아 페트로브나와는 완전히 다른 페트로브나를 요구하며 강압적으로 굽니다. 또, 조연출은 누구냐면 왕년에 마르셀린의 친구이자 라이벌로 결혼과 함께 무대를 떠났다가 조연출로 복귀한 나탈리(네오미 르보브스키)인데, 이 친구는 연극배우로 성공한 마르셀린이 질투나서 죽을 지경인 반면 마르셀린은 그녀의 아이가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이 또 영화에 은근히 스릴을 더해주는 복선으로 깔립니다. 게다가 연극 속에서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젊은 가정교사 역을 맡은 배우 에릭(루이 갸렐)은 아무래도 배우와 캐릭터를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마르셀린은 그를 ‘에릭’이라고 부르지만, 에릭은 그녀를 ‘나탈리아’라고 캐릭터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은근하게 마르셀린에게 작업 멘트를 던지거든요. 여기에 또 홀라당, 마르셀린은 가슴을 설레 하다가 키스도 하는데, 이들의 관계는 좀처럼 진척을 보진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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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니까 정말 못 생겼다’는 아버지 유령의 구박에 위로를 얻는 마르셀린


배우로서도, 가임기간이 다 돼어 가며 생물학적 시계가 초침을 무시무시하게 날려대는 걸 듣는 여성으로서도, 그녀는 혼란과 패닉에 빠져 허부적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강력한 코미디가 발생합니다. 감독으로서 테데치는 연극 준비가 진행되고, 드디어 막이 오르는 과정에서 각 캐릭터들을 매우 유머러스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애정이 충만하게 묘사해 가고, 이 과정을 중심으로 마르셀린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매우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갑니다. 한편 배우로서의 테데치는, 매우 난감하고 꼬인 상황에서 진지한 정극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코미디 연기뿐 아니라 슬랩스틱 연기도 하고, 그 와중에도 마르셀린의 그 복잡미묘한 내면을 너무나 탁월하게 표현해 냅니다. <여배우들>은 진정 훌륭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런데 ‘배우 출신의 감독’으로서 테데치의 야심은 이보다 조금 더 큽니다. 마르셀린은 마치 <앨리 맥빌>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와 죽은 전 애인의 유령을 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심지어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인 나탈리아 페트로브나(발레리아 골리노)의 환영까지 보고는 내 연기 어떠냐며 그녀의 뒤를 쫓습니다. (불안한 그녀로서는 진짜 그녀로부터 반복적인 확인과 승인이 필요한 것이죠.) 여기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배우와 배역을 헷갈리는 에릭의 문제까지 해서, 테데치는 허구의 주인공이 다시 그 허구 속 허구의 인물과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라는 존재의 본질을 깊숙이 탐구해 들어갑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마르셀린에게 상처를 받고 나가버린 에릭, 에릭의 뒤를 쫓는 나탈리아 페트로브나, 그런 나탈리아를 뒤쫓는 마리셀린의 구도는 그 자체로 매우 코믹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핵심장면일 겁니다. 에릭이 매혹을 느낀 건 과연 배우인 마르셀린일까요, 자신의 캐릭터가 사랑하는, 마르셀린이 연기하는 나탈리아 페트로브나일까요? 에릭은 진짜 페트로브나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당연하죠, 이 환영은 철저히 마르셀린의 것이니까요.) 그런 에릭을 보며 마르셀린은, 페트로브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를 두고 자신이 맡은 배역과 경쟁해야 하는 배우, 혹은 자신을 그저 ‘흉내낼 뿐인’ 배우와 경쟁해야 하는 허구 속 인물의 3각관계 설정의 희비극성은, 배우라는 존재의 본원적인 아이러니를 표현해냅니다. 자신이 받는 사랑이 과연 자신에게 향한 것인지, 자신의 배역에게 향한 것인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 감정, 아울러 허구의 존재를 자신의 몸으로 육화해내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음에도 그 과정은 오히려 반대로 배우 자신의 개성을 온전히 지우는 과정일 수밖에 없는 배우라는 존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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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시선이 어긋날 수밖에 없는 – 배우와 캐릭터, 혹은 현실과 허구


데뷔작이자 이전작이었던 <낙타에겐 쉬운 일>에서 그러했듯, 테데치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구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여배우들>은 설사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보다 한발짝 물러서서, 여배우에겐 아마도 매우 보편적으로 보이는 분열을 섬세하게 묘사해내기 때문에, 그녀의 개인적 경험과는 별 상관없이 매우 객관적인 영화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 자신이 여배우일 뿐 아니라, 함께 각본을 쓴 네오미 르보브스키(이 영화에서 나탈리로 출연했죠.) 또한 여배우이자 감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 됐건, 테데치의 유쾌한 유머감각은 자신을 우스갯거리로 삼으면서도 여기에 생명력과 개성을 부여하고, 지나친 자의식의 포로가 되는 함정을 피하면서, 여기에 존재의 본질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그리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을 녹여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여배우들>은 여배우이자 감독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여배우이자 감독이기에 취할 수 있는 시선으로 매우 훌륭하게 만들어낸 코미디이자, 연극과 영화에 대한 메타적인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ps1. 영화에서 마르셀린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마리사 보리니는 실제 브뤼니-테체스키의 어머니입니다. 이 모녀가 싸우는 장면, 정말 죽여주죠. ㅋㅋ


ps2. 마르셀린의 죽은 아버지로 등장하는 모리스 갸렐은 에릭 역을 맡은 루이 갸렐의 할아버지로, 이 집안이 또 프랑스의 영화 가문 중 하나입니다. 모리스 갸렐의 아들이자 루이 갸렐의 아버지인 필립 갸렐은 얼마 전 개봉했던 <와일드 이노선스>의 감독이고, 모리스 갸렐 역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ps3. 나탈리 페트로브나로 등장하는 발레리아 골레노, 오랜만에 보니 참 반갑네요. <못말리는 람보> 같은 영화의 장면으로 워낙 인상이 깊지만, 그녀는 원래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모델이자 여배우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신작에 출연할 예정이라는군요.



 


영진공 노바리

[가사 검열] Hasta Siempre, Comandante Che Guevara

쿠바혁명의 상징, Che Guevara.
본명은 Ernesto Guevara de La Serna이다.

아르헨티나 태생인 그는 젊은 시절 세상을 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고,
그런 여정 중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기도 한다.
그의 젊은 시절 여정에 대해서는 2004년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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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피델과 뜻을 같이하여,
쿠바의 해방을 위해 혁명전선에 뛰어들었고 오랜 전투 끝에 쿠바의 혁명을 이끌어낸다.

이후 쿠바의 시민이 되어 장관 등을 역임하며 UN에서 남미 국가의 실상과 해방의 시급성을 역설하기도 했던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피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

“Hasta La Victoria Simepre …” (영원히 승리할 때까지)

피델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진 그의 소식이 들려온 곳은 바로 그의 고향 볼리비아였다.
그는 볼리비아의 해방을 위해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여 다시 전투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967년 10월에 그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생포되어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 그를 위해 쿠바의 작곡자 Carlos Puebla는 “Hasta Simepre, Comandante Che Guevara”라는 시를 썼고 또 이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이후 이 노래는 수많은 이들에 이해 불려졌고 최근까지도 여전히 Che Guevara를 기리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는 여러 영화에서 불려지기도 했는데 1999년 영화 “Buena Vista Social Club”에서는 쿠바 뮤지션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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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가사 검열을 위해 준비한 첫 번째 동영상은 프랑스 출신 여가수 Nathalie Cardone가 1999년에 발표한 앨범에 수록된 버전의 뮤비이고,
두 번째 동영상은 그리스의 뮤지션 George Dalaras와 기타의 달인 Al Di Meola가 함께 한 버젼의 뮤비와 노래이다.

가사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준비하였고, 검열은 영어 가사를 번역하였다.

그럼 모두들 즐감~ ^.^

 
Hasta Siempre, Comandante Che Guevara


Nathalie Cardone


George Dalaras & Al Di Meola

Aprendimos a quererte
desde la histórica altura
donde el sol de tu bravura
le puso cerco a la muerte.

Aquí se queda la clara,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
Comandante Che Guevara.

Tu mano gloriosa y fuerte
sobre la historia dispara
cuando todo Santa Clara
se despierta para verte.

Aquí se queda la clara,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
Comandante Che Guevara.

Vienes quemando la brisa
con soles de primavera
para plantar la bandera
con la luz de tu sonrisa.

Aquí se queda la clara,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
Comandante Che Guevara.

Tu amor revolucionario
te conduce a nueva empresa
donde esperan la firmeza
de tu brazo libertario.

Aquí se queda la clara,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
Comandante Che Guevara.

Seguiremos adelante
como junto a ti seguimos
y con Fidel te decimos:
!Hasta siempre, Comandante!

Aquí se queda la clara,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
Comandante Che Guevara.

Until Always, Commander Che Guevara

We learned to love you
from the heights of history
with the sun of your bravery
you laid siege to death

그대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배운 거지요,
그대의 용기가 불타오를 때,
죽음도 막을 수 없었답니다.

The deep transparency of your presence
became clear here
Commandante Che Guevara

깊고 투명한 그대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

Your glorious and strong hand
fires at history
when all of Santa Clara
awakens to see you

영광스럽고 강한 그대의 손이,
역사를 향해 뻗치면,
산타 클라라의 모든 이들이,
그대를 보기 위해 깨어난다네,

The deep transparency of your presence
became clear here
Commandante Che Guevara

깊고 투명한 그대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

You come burning the winds
with spring suns
to plant the flag
with the light of your smile

그대는 봄의 태양 속에,
바람을 불사르러 오셨죠,
그대의 빛나는 미소로,
깃발을 땅에 꽂았죠,

The deep transparency of your presence
became clear here
Commandante Che Guevara

깊고 투명한 그대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

Your revolutionary love
leads you to a new undertaking
where they are awaiting the firmness
of your liberating arm

혁명에 대한 사랑이,
그대를 새로운 과업으로 이끌었죠,
그대의 강한 팔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로,
 
The deep transparency of your presence
became clear here
Commandante Che Guevara

깊고 투명한 그대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

We will carry on
as we did along with you
and with Fidel we say to you:
Until Always, Commandante!

우리는 전진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대와 함께 그랬듯이,
피델과 함께 그대에게 외칩니다.
그대는 영원한 우리의 사령관!

The deep transparency of your presence
became clear here
Commandante Che Guevara

깊고 투명한 그대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