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난 김경재氏 1, 2 話

1.
삼 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쌀쌀하기만 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김경재씨는 출근길에 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상 속으로 들어온 지 10년.  세상 물정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 경재씨에게 10년 전의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하다.


그때 경재씨네 집은 잘 나가는 편이었다. 마당 넓은 집에 자가용도 있었고 사업하는 아버지는 매일 저녁 룸살롱에 살다시피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외환위기라는 것이 터지자 집안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란 것이 실속보다는 빚 얻어다 메우던 식인데다가 여기저기서 벌려대는 손에 몰래 돈푼 쥐어주기 바빴으니, 오히려 빚쟁이들이 그때까지 사업을 해 온 게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였었다.


이후 아버지는 집 안에 틀어박혀 세상한탄만 늘어놓았고, 보다 못한 어머니가 돈을 벌러 나섰지만 밥벌이도 빠듯할 지경이어서 김경재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김경재씨는 요즘 세상살이가 참 재미없다.


10년간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보았고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기껏 통장의 잔고라는 게 집 한 채는 언감생심이고 중형차 하나 사기에도 빠듯하다.
대학 안 나온 게 뭔 잘못이라고 번듯한 직장에는 원서도 못 넣는다.
결혼할 여자를 사귀어보려고 해도, 선을 보러 나가도 번번이 퇴짜이다.
옆 집 누구는 일도 안 하고 딴 짓만 실컷 하더니 어느 날엔가는 대박 맞았다며 이사를 가고 건너 집 누구는 좋은 동네 사는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자랑이 입에 달려있다.
어딘가는 집 값이 얼마고 친구네 친척 형은 주식이 얼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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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죽겠다.”
그 날 출근길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또 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 버스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발을 놀리던 경재씨는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기만 하던 집 앞 시장통의 풍경에 그날따라 왠지 눈이 끌리고 있었다.


‘에휴, 시장이 살아야 하는데 … 김씨 아줌마, 박씨 아저씨도 집 안에 돈이 말랐다고 걱정이 태산이던데 … IMF보다 더해, 진짜 … … 참, 집에 쌀 떨어졌는데, 퇴근길에 2마트에 들러야겠다.”
“그리고 컴퓨터 메모리도 업그레이드 해야지 … 기억용량이 너무 떨어져 … 남들은 기가쓰는데 내건 용량이 그게 뭐야 … 51              2MB …”


그런 생각을 하며 경재씨가 정류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경재씨의 앞에 하얀색 봉고차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다.


“뭐야 … 이런 씨X … 운전 똑바로 안 해!” 놀란 경재씨가 소리를 지르며 운전석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사이, 웬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경재씨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새 보건소장입니다.”

2.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멀쩡한 사람보고 죽었다니.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히 출근을 해요?”
“이것 보세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뭔가 잘못 아신 거예요. 난 지금 입원이 아니라 출근을 해야 한다고요.”



새 보건소장은 거칠게 항변하는 경재씨를 물끄러미 쳐다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보는 사람을 몹시 불안하게 만드는 눈빛을 날리며 서있던 새 보건소장이 갑자기 소리를 냅다 질렀다.


“젊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쓰나. 우리집 가훈이 ‘정직하게 살자’란 말일세!”
“… 예? …”


문제는 경재씨의 말버릇이었다. ‘아프다’ ‘힘들다’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던 경재씨의 눈치를 줄곧 살피던 아버지가 몇 달 전 쉬는 날에 경재씨를 억지로 동네 보건소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 애가 다 죽어가는데 보건소는 뭐하는 집단이냐’며 워낙 요란하게 떠들어서 보건소장이 직접 경재씨를 보았는데, 결과는 만성피로와 몇 군데의 타박상 그리고 무좀 등의 진단이었다.


그러면서 보건소장이 했던 말이, ‘이 정도면 투약이 필요치 않고 자꾸 약을 먹어 버릇하면 내성만 생기고 자생력을 해칠 뿐이다.’라는 투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애가 죽을 지경인데 약도 안 주는 무책임한 보건소’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건소를 나왔고, 이후 ‘애가 이 꼴이 된 건 다 보건소장 책임’이라며 온 동네에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다니곤 하였는데,



얼마 전 새 보건소장이 부임하자마자 아버지는 얼른 전화를 걸어 우리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나선 거야.  너에게 맞춤진료를 해 주려고.  한 마디로 너를 살려주겠다는 거지.”
“당신이 저를 … 살린다고요?”
“나는 내가라고 하진 않았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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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역시 상태가 심각하군 … 간호사 님, 여기 암부하고 삽관하세요 …”
경재씨가 뭐라 대꾸해야할지 몰라 얼마간을 가만히 서있자, 새 보건소장이 차에서 내리는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잠깐만요 … 무슨 상태가, 뭐가 심각해요 …”
“방금 전 자네는 실신상태이지 않았나.”
“예? 아뇨!”
“예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이것 봐, 정신 없잖아 … 간호사, 빨리 기도 확보 해!”


새 보건소장의 지시를 재차 받은 간호사는 얼른 무릎을 끓고 앉으며 나지막이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 …”
“이것 봐, 이것 봐, 간호사. 뭐하는 거야?”
“선생님이 기도 한 번 하라고 하셨잖아요.”
“… …”
“… …”

“내가 그랬나?”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경재씨는 더욱 어이가 없어져서 고함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이건 …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


그러자 새 보건소장과 간호사는 동시에 경재씨를 향해 눈을 흘겼고, 보건소장이 쏘아붙였다. “이것 봐, 자네. 자네 지금 나의 전문지식을 의심하는 건가?”
“이래 보여도 난 길게 늙고 싶은 소망이 있는 사람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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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신했군. 암부하고 삽관하세요.”
“예, 소장님 … 그런데요, 소장님 저도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권면하고 싶은 소망이 있답니다.”
“아, 그렇군요 … 암부는?”
“갑자기 안부는 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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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영진공 이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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