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의 기적?

보충대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
환상의 17사, 꿈의 30사, 질 수 없다 25사.

중학교 2학년 때 마음에 들던 여자애를 따라 교회에 나간 날이 부활절이었고 그때 부활절 달걀을 두 개 반 먹은 덕분인지 난, 25사를 발령받았다.  그리고 중대선임을 설레발로 꿰찰 수 있었다. 중대선임은 6박7일의 포상휴가가 주어지는 자리였다.

두 개의 중대가 한 연병장을 공유했다.  우리는 2주 먼저 들어온 중대와 연병장을 같이 썼다.  연병장 주위는 목책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탈영하기 쉬워보였다.

문제는 탈영을 하면 어디로 갈 지 모른다는 점이었으며, 우리는 아직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누구요?”라고 암구어를 외치는 신병들이었다.

일요일이면 공을 찼다.
선임중대가 아침식사 후 5개의 공으로 전투축구를 시작하면 하릴없는 우리들은 연병장 위 언덕에서 구경을 했다.  2개 소대씩 나눠 치르는 축구는 말이 축구지 갇혀 사는 성난 수컷들의 ㅈ랄과 다르지 않았다.

전투화 밑에는 공을 겨누지 않고 정강이는 겨누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고 그 날선 폭력 뒤에는 기간병들의 코 묻은 내기돈이 걸려 있었다.

신병교육 3 주차 되던 어느 일요일.

선임중대는 어김없이 전투축구를 했다.
공 하나가 골대를 넘어 목책 밖으로 날아갔다. 두 번의 바운드를 튀며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골키퍼를 보던 세 명 중 어떤 정의로운 신병 하나가 외쳤다.

“내가 다녀올게!!!”

정의로운 신병은 한걸음에 달려 살포시 목책을 손으로 짚더니 김연아 더블악셀처럼 날아올랐다.  곧이어 목책 밖으로 뛰던 정의로운 신병은 “억”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살려줘!!!”

목책 밖에는 민간인이 똥구덩이를 파 거름을 삭힐 요량으로 만들어 놓은 거대한 똥지뢰가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겉은 바삭하게 말랐고 낙옆이 떨어져 은폐, 엄폐를 시켜놨으므로 그 정의로운 신병은 더욱 알지 못했으리라 …

선임중대와 우리중대를 포함한 499명은 감히 목책을 넘지 못하고 목책에 기대 그의 아쿠아댄스를 구경만 했다.

“살려줘~~!!! 살려줘!!”
몇 번이나 똥물을 들이키며 그는 절규했다.

신이 정의로운 신병을 구해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가 기어나오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지만 결코 그에게 손을 내미는 천사는 없었다.  그건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의로운 신병이 외쳤다.

“동료가 똥구덩이에 빠졌는데 다들 그냥 봐?”
“이게 전우야?”
“이게 전우애야!!!!”

그는 마치 바람개비처럼 온 몸을 휘둘러댔다.

6 개월에서 1 년은 삭았음직한 덩어리들이 맑은 하늘을 갈랐다.  동시에 암록색에서 암갈색의 분비물들이 춤을 췄다.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새파랗게 질린 하늘에 똥이 나빌댔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정의로운 신병은 자신의 외로움에 동참할 정의로운 동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난 그때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봤다.

그가 뛰는 방향마다 500명의 군중은 열과 오를 맞춰 20m씩 질서 정연하게 쫙쫙 갈라졌다.
너무나도 빠르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분열을 어떤 국군의 날 기념식에도 본 적이 없다.

“이게 전우냐, 이 *발놈들아!!”

외침은 외로웠고,
결국 중대장이 짬통 거를 때 쓰는 잠자리채 두 배만한 채를 들고 정의로운 신병의 머리를 낚아채 소화전 앞에 데리고 갈 때까지 그 기적은 멈추지 않았다.

소화전의 폭포같은 물세례는 차라리 경건해 보였다.  정의로운 신병의 눈에는 소화전 물인지 굵은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것이 흘렀다.

결국 똥독이 오른 정의로운 신병은 의무대로 갔다.

그 뒤, 오전 전투축구는 금지되었고 아무도 탈영을 생각하지 않았다. 정의로운 신병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는 분당 2 톤씩 쏟아지는 소화전으로도 해결 안될 것이었다.

끗.

영진공 그럴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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