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낯선 거리에 비춰진 내면의 풍경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008년 작품입니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두 딸과 아버지가 시카고를 떠나 이탈리아 제노바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박찬옥 감독의 <파주>(2009) 와 무척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확실한 기승전결과 끝맺음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고, 그 방법으로 주변 풍경에 인물들의 감정을 투영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노바>와 <파주>는 여러모로 다른 영화입니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배우도 다르고 로케이션도 다릅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점적으로 드러내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그 방식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너무 유사합니다. 이것을 두고 대중적인 흥행 영화를 지향하지 않는 대안적인 영화들의 전세계적인 공통 지향점이라 할 수 있는 걸까요?

스토리텔링에 의존하지 않고 특정한 메시지를 주장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등장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형상화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이런 영화들은 확실히 일반적인 감상 습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전히 새로운 내용이나 강력한 내러티브의 힘에 풍부한 감정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영화 – 최근에는 <용의자 X의 헌신>(2008) 이 그랬습니다 – 가 관객으로서는 이상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감정 없이 뻔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거나 그나마도 어디서 본 듯한 줄거리를 답습하는 영화들 – 한마디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범작들 – 에 비하면 이렇게 복잡한 인간 감정의 미로를 탐험해나가는 영화가 백번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파주>의 내러티브가 약간이나마 미스테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던 반면 <제노바>는 특별히 이렇다할 비밀조차도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블루>(1993)가 그랬듯이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고의 원인은 다름아닌 둘째 딸 메리(펄라 하니-자딘)의 장난 때문이었고 가족 모두와 사고를 일으킨 메리 본인까지 그 잘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노바>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와 가족의 부재를 끌어안고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이들의 험난한 투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겨진 세 가족의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형상화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복잡한 미로와 같은 제노바의 거리 풍경인데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탐험해온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매우 빠른 편집을 통해 붕괴의 위험 선상에서 힘겨워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풍경을 매우 사실적인 톤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둘째 딸 메리는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던 나머지 환상을 보게 되고 첫째 딸 켈리(윌라 홀랜드)는 내적인 고통과 부담감에 떠밀린 듯 탈선을 하기 시작하는데 아버지 조(콜린 퍼스)로서는 엄마 잃은 두 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무력하기만 합니다. 뭔가 커다란 사건이 이들 가족에게 터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러닝 타임을 지배하지만 나름의 큰 위기 상황을 넘기면서 결국 무사히 여름 방학 기간을 마치고 두 딸이 학교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제노바>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서로 반목하던 가족들이 다시 하나로 뭉치게 되는 가족 드라마의 전형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시종일관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던 그 상황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영화가 준비해둔 내러티브 상의 극적인 장치라는 것이 그다지 효과적인 편은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등장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의 결들을 따라가는 것이 <제노바>를 감상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영진공 신어지

“‘제노바’, 낯선 거리에 비춰진 내면의 풍경들”의 2개의 생각

  1. 생소하지만 그럭저럭 즐길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단순하게 뻥뻥 터지는 블럭버스터나 보고싶은 사람들은
    보기 힘든 영화인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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