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숙 계란 두 개, “전쟁 전 한 잔”과 “무덤으로 향하다”


글쎄, 어떨까. 나는 하드보일드를 사랑한다. 경애한다. 거기 딱히 인생의 진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멋진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사조영웅전]의 건전한 모범생 타입의 히어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성호접검]의 삐딱한 킬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홈즈 스타일의 갑갑하고 정직한 탐정보다는 필립 말로우처럼 세상을 비웃으며 코웃음을 날려주는 탐정을 훨씬 더 좋아한다. 그쪽이 더 멋지니까.



아무튼 내가 최고로 치는 하드보일드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기나긴 이별]이다. 거기엔 사건이 있고, 우정이 있고, 배신이 있고, 사랑이 있고, 탐정은 그 속을 이리저리 부닥치며 돌아다니다가 어떻게든 사건의 끝장을 보고야 만다. 위선을 부리지 않고, 설교를 하지도 않고, 잔가지를 늘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데니스 루헤인의 [전쟁 전 한 잔]은 …… 아, 제길, 주일설교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조금 몰입하려고 하면 인종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가정 폭력이 어쩌고저쩌고, 다시 또 인종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또 또 또 인종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플롯은 너무 허접해서 뭐라고 딴지를 걸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얘기가 좀 안 풀린다 싶으면 일단 액션 묘사를 집어넣는다. 마치 로저 코만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 주인공이 삐딱선을 타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건전한 모범생이라는 게 제일 큰 문제일 것이다. 뭐야, 이거? 이게 무슨 하드보일드란 말이냐? 차라리 얼간이가 탐정 역으로 나오는 정통 퍼즐 미스터리를 보는 게 낫겠다!


허영심에 가득찬 추리소설광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적 만족감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마음을 부둥켜안고 흡족해할 것이다. “아, 나도 뭔가 수준높은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었구나!”라고 하면서. 하지만 정말 수준높은 소설을 찾는다면 노벨문학상을 탄 소설을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평점을 매기자면 “탄산수 1리터에 럼주 한 방울을 떨어트려 마시는 듯한 소설”이다. 한 마디로 밍숭맹숭.



나는 이 소설을 1주일에 걸쳐 겨우 다 읽은 다음, 너무 실망하고, 좌절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내가 이런 걸 돈 주고 사다니!

그래서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뭔가 볼만한 책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에 로렌스 블록의 [무덤으로 향하다]라는 책을 샀다.


그날밤, 나는 그 책을 다 읽어버렸다.



사실 [무덤으로 향하다]도 아주 멋진 하드보일드 소설은 아니다. 알콜중독으로 밸밸대던 매튜 스커더는 갑자기 바른생활 중년이 되려고 애쓰고 있고, 벌어지는 사건은 ……. 음, 마약상의 가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잔인무도한 연쇄 살인이다. 아무리 봐도 이건 하드보일드라기보다는 스릴러다. 그것도 헐리웃 취향의 비쥬얼이 강한 스릴러.



하지만 워낙 [전쟁 전 한 잔]이 형편없었기 때문인지, [무덤으로 향하다]는 그에 비하면 엄청난 걸작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800만 가지 죽는 방법]보다 훨씬 아래인데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나서는 조금 정신을 차렸다. 그래, [무덤으로 향하다]도 역시 그저그런 하드보일드였어.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평점을 매기자면 “보드카 한 잔에 탄산수 한 잔을 섞어 마시는 듯한 소설”이랄까.


어쨌건 ….. 중간은 한다는 얘기다. 뭐, 그 정도로 만족해야 하려나?


영진 DJ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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