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앉은 자세에 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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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저 사람들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우리는 사적인 관계가 있는 회사의 제품 발표회장에 와 있었다.
나로서는 이런 모임은 매우 낯선지라 그저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내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맞은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슬쩍 가리키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생경한 장소가 주는 당혹스러움을 곁에 있는 동료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질문으로 배출하려 하다니… 참으로 비틀린 인성이다
억지로 여유를 부리며 대답해주었다.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 아마 저 친구들은 우리들보다는 이런 곳에 자주 온 것 같구만.
우리 처럼 허둥거리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니 말일세.”

그러나 그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진지한 척 썰을 풀어대기 시작한다.

“앉는 자세는 의외로 많은 것을 알려준다네, 예를 들어 깊숙이 의자에 앉은 사람은 마음도 편하게 앉아 있는 셈이지. 하지만 의자의 앞쪽에 엉덩이를 걸치고 조마조마하게 앉은 사람은 마음도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네.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걸세.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계속 움직인다는 것은 역시 그 자리에서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네. 그러니까 엉거주춤 앉아서 다리를 꼼지락거리고 있는 자세는 뭔가 급하게 할 다른 일이 있거나,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라네.
지금 자네처럼 말이지”

그 말을 듣자마자 꼬았다풀었다 하던 내 다리를 중지시켰다. 생각지 못한 역습이다.
하지만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

“그렇다면 저 네 남자는 어떤 마음 상태라는 건가?”

또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2,3,4 번이라고 치세.

일단 1 번 남자는 이런 자리가 익숙하네. 저 친구의 엉덩이는 의자의 뒤까지 깊숙이 들어가 자리잡았쟎은가. 게다가 나머지 세 남자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바지(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도 특별히 위축되어 있지 않거든. 여기가 내 자리야! 라는 메시지를 겉으로 드러내려는 것일세.

게다가 저 친구는 한쪽 손을 턱에 괴면서 지금 이 자리의 목적에 보다 집중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즉, 그는 나머지 어중이 떠중이들과는 달리, 자신이야 말로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며 남들 신경쓰지 않고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중일세.

하지만 그의 꼰 다리는 심리적인 방어를 의미할 수도 있다네. 그렇다면 그 내면은 꼭 편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지. 바디랭귀지 연구자들은 꼰 다리의 방향을 보고 그 사람이 방어하려는 상대를 알아본다네.  그들의 이론이 맞다면, 1번 남자는 오른쪽 허벅지를 빗장 삼아 나머지 세 남자와 자기 사이에 벽을 세운 상태라 할 수 있네. 즉, 그는 무의식적으로 나머지 남자들과 자기는 다른 존재임을 드러내려고 하는 거지.”

“그럼 2 번은 어떤가?”

“2 번은 가장 평범한 자세일세. 안 그래도 비좁은 자리인데다 뻔뻔한 3번의 양반자세로 인해 더 불편해진 상태인데, 그럼에도 여유 있게 다리를 꼬고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네. 그러나 힘이 들어간 손가락, 살짝 맞잡은 두 손은 역시 꼬인 다리와 함께 전체적으로 편하지 않은 심정을 드러내네.

아마 그가 불편한 이유는 이 자리 탓이라기 보다는 3번 탓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네.
물론 익숙한 사람이라면 저런 자리 자체를 피했을 것이니 이런 자리에 자주 오는 사람은 아닐 것 같구만.”

“옆자리 인간때문에 불편하다는 건 나랑 비슷하군. 그럼 3 번은?”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빙긋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3 번은 가장 전형적인 한국남자의 자세를 보여준다네.
저 친구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크게 걸치면서 2 번의 사적 영역(personal space)를 침범하고 있네. 물론 뻔뻔한 심리와는 무관하게 허벅지가 굵어 1 번이나 2 번과 같은 자세가 불편한 남자들도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지.

하지만 그의 허벅지 굵기는 나머지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 고로 저건 그냥 오냐오냐 하며 키워낸 한국남자 심리의 발로일세. 저렇게 남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자기 양손은 편안하게 걸친 다리 위에 걸쳐져 있으며 손가락에도 대충 힘이 빠져 있네.

즉, 저 친구는 자신이 남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 자체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일세.”

이건 좀 너무하다 싶어 제지했다.

“저 친구가 꼭 뻔뻔해서 저러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 않은가?
만약 옆자리에 친구가 앉아있어서 저렇게 편한 자세를 취한 거라면 어떤가?”

그러나 이 인간의 난도질은 멈추지 않는다.

“2 번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3 번의 저 방만함은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감 탓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2 번은 3 번과는 달리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3 번은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하기 때문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 자기애성 성격이거나, 남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잘 모르는 자기중심적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네.

그러면 저 인간은 과연 이 자리에 어울리는 존재냐 하면 그건 확실하지 않네.
저 친구의 여유가 익숙함의 결과인지 아니면 근거없는 자신감의 결과인지 알 수 없으니까. 저런 인간들 치고 자기 주제파악 제대로 하는 인간은 거의 없거든”

괜히 3 번에게 미안해진다.
우리가 이런 험담을 하고 있다는 걸 저 친구가 알고 있을까?
빨리 다음 친구로 넘어가기로 했다.

“4 번은 가장 진지하네. 저 친구 자세의 각도를 보게나.
몸은 전체적으로 앞으로 기울어져있으며 두 다리도 방어에 신경쓰고 있지 않지.
게다가 저 친구는 의자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앞에 치우쳐 앉았는데,
아마도 이 행사 후에 가야 할 다른 곳이 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네.

저 친구의 자세는 불안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네.
빨리 이 자리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마 이런 자리에 자주 와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찾아온 것도 아닌 것 같네.
다시 말해서 저 친구는 초청되거나 업무상의 이유로 여기에 온 거지.
이 자리는 어쩌면 바로 저 친구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준비된 곳이라는 얘길세.”

나는 이 허접한 대화를 기억해 두었다가
어떤 잡지 기자가 질문할 때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문제는 그 잡지가 뭐였는지, 그리고 그 기사가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글을 읽으신 독자가 계신다면
그 기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영진공 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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