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 서부극판 수퍼 영웅 진지 버전





클린트 이스트우드, 참 대단한 양반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 꾸준히 영화에 몸 담은 그는 언제나 일정수준의 완성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남들은 다 은퇴를 생각할 시점인 63세에 첫 아카데미를, 그리고 남들은 요양원을 알아 볼 나이인 76세에 두 번째로 아카데미를 쓸어갔다.

근데 그에 대한 찬사들이 조금은 이상할 때도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모두들 ‘작품’ 으로 인정해마지 않던 그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1992)를 봤을 때부터 였다. 수정주의 서부극이네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이네 등등으로 불리던 이 영화는 내가 봤을 때는 그냥 마블코믹스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줄거리는 다들 아실 거다. 술도 팔고 몸도 파는 윤락업소에 카우보이 몇이 향락을 즐기러 왔다가 자신의 작은 물건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 윤락여성에게 분노를 폭발시켜 그만 그 여성의 생활밑천이자 자아개념의 상징이랄 수 있는 얼굴을 망가트리고 마는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뭐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한 보안관의 조치로 카우보이들은 그냥 풀려나고, 이에 분노한 피해 윤락여성의 동료들이 돈을 모아서 킬러를 고용하기에 이르고. 드디어 은퇴한 왕년의 킬러 이스트우드 아재가 등장한다.

근데 아무리 봐도 빌빌거리는 이 아재는 전혀 킬러 같지가 않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데다 동작은 굼뜨고 총도 제대로 못쏜다. 여차저차 예전 동료 “모건 프리먼”(그러고 보니 이것도 묘한 인연이다. 이 둘이 같이 등장하면 아카데미를 먹는 건가?)과 킬러지망생 한명과 팀을 이루어 카우보이 마을에 잠입하는데, 여전히 빌빌대다 보안관에게 뚜드려 맞고 병을 얻어 드러눕는 등 한심한 꼴은 골고루 보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카우보이 둘을 죽이는데는 성공한다만, 그때까지도 이스트우드 아재는 총도 제대로 못 쏘고 빌빌거린다. 그런데 그만 귀환 길에 동료 “모건 프리먼”이 보안관에게 잡혀 죽으면서 갑자기 대반전이 일어난다 ……

동료의 죽음에 열받은 이스트우드 아저씨가 그동안 입에 대지 않던 위스키 병나발을 불어 제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마카로니 웨스턴 시절의 이스트우드로 변신해서 술집에 쳐들어가 보안관일당을 싹쓸이 해버리고 만다.





그가 예전에 킬러로서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웅얼거렸던 것은 진실이었다. 그는 술마시고 필름이 끊겨야 진정한 킬러로 변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는 위스키만 병나발 불면 천하무적으로 변신하는 수퍼 영웅이었던 것이다!!!

이게 수정주의 서부극이라고? 내 보기엔 방사능 대신에 위스키가 그 역할을 하는 서부극판 마블 코믹스 영웅이야기거나, 좀더 잘 봐줘서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 “언브레이커블”처럼 수퍼영웅 만화의 진지한 영화 버전인데?

그의 영화에서 기본 스토리만 떼어놓고 보면 다들 이런 식이다. 아주 단순한 신파이거나, 만화이거나 … 그의 이야기틀은 “더티해리”와 “황야의 무법자”같은 만화와 “건틀렛” 같은 신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줄거리만 보자면 정말 전형적인 신파극이 아니던가 ……

문제는 그 이야기에 독특한 분위기를 입히는 그만의 관록과 아우라이다. 그 아우라는 조금만 도를 넘어 섰다간 유치한 똥폼이 되었을 것이고, 조금만 부족했다간 황당하거나 뻔한 스토리의 골격을 드러내고 말았을텐데, 바로 그 중간지점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그런 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은 관록과 아우라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적절히 사용되었을 때 그것이 발휘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똥폼이 정말 잘 숙성되면 이렇게 대단한 아우라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고 말이다.

여튼 그처럼 늙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



영진공 짱가

““용서받지 못한 자”, 서부극판 수퍼 영웅 진지 버전”의 3개의 생각

  1. 그랜 토리노는 단순한 신파나 만화라고 하기에는 꽤 좋은 복선과 반전을 가지고 있었죠.

    1. 전 그랜토리노도 전형적인 신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형적이라고 해서 그저 흔한 신파라는 뜻은 아니죠.

      사실 용서받지 못할 자도 꽤 좋은 복선과 반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에도 유장함이 넘치고요.
      그래도 역시 어떤 전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처음 제가 이영화를 봤을때도 님과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가 아카데미 상을 받은 것도 다 이름 값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조금더 알게 된 이후로 감독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게 되었기에 한자 적어 볼까 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헐리우드 서부영화시대의 마지막 슈퍼스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서부영화에는 ‘권선징악’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것이 이상하게 보여줍니다.
    보안관이나 카우보이가 악당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보안관 잔인한 이유는 ‘마을의 평화’라는 정의로운 뜻에서 나오는 행동이고, 카우보이도 자기가 평생모은 재산을 상처입힌 여자에게 주고 진심으로 사죄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악당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모습을 보입니다. 반대로 클린트와 그의 동료는 사실 악당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악당같은 모습은 보이지 못하죠. 오히려 그의 과거를 보지 못한 관객으로서는 그가 정말 악당이었는지 아닌지 햇갈릴 지경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클린트는 자신을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서부영화의 규칙을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사실 이런 ‘악이 악인고, 선이 선이 아닌 흐름’은 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에서도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자신을 헐리우드 스타로 만들어준 클린트가 스스로 박살을 내 버린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를 클린트가 자신의 서부시절 모습을 버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라고도하고, 어떤 이는 더 크게 봐서 아에 서부영화 전체에 대해서 마침표를 찍었다고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만해 보일지도 모를 그의 영화에 헐리우드는 그의 영화에 최고의 찬사로서 대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그의 이름값 때문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그의 영화에 대한 저와 같은 식의 비평이 많았습니다만 지금은 없다시피 하군요.
    하지만 님의 평가처럼 단순히 영화의 외면만 보고 하나의 영화를 평가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적어도 ‘영화진흥…’이라는 간판이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아야 하는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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