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스케어드> – 의미없는 잡탕 영화

상벌위원회
2006년 8월 26일

극장에 잠깐 걸렸다가 곧바로 간판 내렸던 당 영화 <러닝 스케어드>를 보는 내내 머리속에 떠올랐던 것은
엉뚱하게도 대학 MT에서 여자 후배가 서투른 솜씨로 만들어 내밀었던 부대찌게였다.
무릇 부대찌게라 함은 온갖 재료를 동시다발적으로 털어넣는 와중에도 각각의 재료가 내는 맛이 잘 살아날수 있도록 양과 시기를 적절히 조절해 주어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는 법. 어디선 본 것만 부담스럽게 많았던 그 아이가 온갖 재료를 무질서하게 퐁당퐁당 던져넣고 그야말로 무자비한 시간동안 끓여버린 그 부대찌게를 먹는 동안 나를 비롯한 우리조 아이들은 인간이 음식에 대해 품을 수 있는 혐오감과 참을성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했고
기대를 잔뜩 품은 채 “맛있죠?”라고 말하는 그 커다란 눈망울 앞에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짐 케리행님 못지않은 얼굴근육 위장술을 구사하며 필생의 혼은 담을 연기를 해야 했었다. “맛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를 위해서나, 그 아이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나 진실을 말하는 편이 이롭지 않았을까 싶다.
대인살상무기이자 일급 표정연기자 제조기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그 부대찌게를 어디에선가 죄없는 누군가가 섭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 가슴 한편이 아릿해오는 아픔과 함께 그분들에게 미안한 심정, 감출수가 없다.

네이버 무비에서 꽤나 평점이 괜찮아서 나름 기대를 좀 하던 나에게 <러닝 스케어드>는 딱 고런 수준의 영화였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냥 잡탕영화. 딱 그거.

포스터도 잡탕이군-_-;;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은 그야말로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아주 막 나가 준다는 것이다. 모든 총은 자유롭게 발사하기 위해 존재하고, 모든 차들은 부서지고 깨지기 위해 존재하며, 모든 인간의 마빡은 총알을 박아넣기 위한 과녁판이고, 인간이 구사할수 있는 모든 언어는 세마디를 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강렬하고 공격적인 의미만을 전달한다.(주로 상대방의 부모님이 언급되거나 성기,또는 그것을 사용하는 어떤 행위가 언급된다.)
욕설을 통해 아메리카국의 언어를 고찰하고 싶으신 분에게 이 영화는 교과서와 같으니 꼭 DVD로 소장하실 것을 권한다. 반복되는 FUCK의 횟수는 과거형 형용사형 진행형을 막론하고 스카페이스를 저 멀리 따돌려버린다.

주인공만 막 나가느냐, 네버 아니다. 겨우 욕좀 많이하고, 총질좀 많이 한다고 진정 막나간다고 할 수 있겠나?
당 영화는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졌던 수많은 스타일과 이야기 전개방식, 심지어는 등장인물까지 그야말로 인정사정없는 태도로 고대로 베껴버림으로서 그야말로 극한의 막나감을 선보이니.. 전혀 눈치보지 않는 이 담대함이야 말로 진정한 배째라 정신이 아니겠냐. 사람이 막 나가려면 이정도는 막 나가줘야 한다.
<펄프픽션>, <저수지의 개들>을 비롯한 타란티노식 잡담과 폭력성, <스내치>틱한 가이리치식 전개, <나비효과>에서 봤던 아동학대성 변태의 등장(카메라 세워놓은 것까지 똑같지 않은가!!) 심지어는 <CSI>식의 시각효과와 카메라워크까지 그야말로 어디서 본것, 들은것들을 꾸역꾸역 몽창 쑤셔넣은 당 영화는 거의 페러디물에 가까운 기시감을 선사하며, 위에서 이야기했던 막(지금 막 끓인게 아니라 정말 ‘막’) 끓인 부대찌게의 맛을 정확하게 재현해낸다.

그래, 일만이천보 양보해서 온갖 표절이 난무해도 재미만 있으면 된다고 하자. 근데 문제는 당 영화는 맘대로 배껴먹은 것들을 소화할만할 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날개 붙인다고 날아갈 리가 없잖아.
타란티노만큼의 말빨도 없는 주제에 쓸다리없이 노가리나 흘려대니 따분함만 용암처럼 분출하고,
가이리치처럼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한방에 정리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도대체 왜 나오는지 자칭 하루에 세번씩 하느님을 영접하신다는 옆동네 교회 목사님도 도저히 모를 인간들만 자꾸 등장하는데 미친년 치마자락처럼 펴놓은 건 하나도 정리가 안되니 쓸데없이 어지럽기만 하고.
남는건 제작비라 쓸데없이 잔인한 특수효과만 화면을 수놓는데 이미지 과잉,폭력 과잉은 오히려 그나마 있던 극의 흐름마져 툭툭 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니 참.. 화려하기 그지없는 테크닉으로 맨하늘에 좃질하는 꼬라지라 하겠다.

막바지에 이르면 당 영화는 또다시 급작스러운 활골탈태 신공으로 지금까지 막 나가던 자세를 한방에 버럭 접어버리고 양키식 가족주의로 그야말로 순식간에 탈바꿈하는데 주인공이 셔츠를 와락 걷어올리자 보고있던 나는 염통이 터지듯 놀래버리고 말았다. 아아… 씨바… 그랬던거냐..
그 막나가던 녀석이 실은 모범생이었다니… 이거야말로 막나감으로서 막나감을 기대하는 관객의 뒤통수를 화려하게 후려갈기는 궁극의 막나감이 아닐 수 없따. (확 스포일러 까버리고 싶지만…참는다)

쉴세없이 화려한 화면이 번쩍번쩍하고, 마빡에 총알 박히고, 사방에 살점 날리고 분수처럼 피 뿜어대니 어떻게든 끝까지 봐지기는 하고, 나름 생각없이 시원하게 즐길만한 액숑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생각이 없는것도 정도껏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람을 죽이는데(그것도 존나 잔인하게) 최소한의 이유도 없는 이따위 영화에 아무런 의문도 없다면, 헐리우드 영화 너무 많이 본거 아닐까.

상벌위원회 정규직 간사
거의 없다(1000j100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