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조개화석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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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레스터 사본]은 주로 물의 성질, 모양, 그 쓰임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리고 화석의 성질과 일부 해양생물로 보이는 화석들이 높은 산의 지층에 위치하고 있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 물과 화석의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던 것일까?


 




16세기 화석에 대한 생각은 오래된 생물의 사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암석 안에서 어떤 힘(형성력plastic forces)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지거나 작은 입자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이런 특별한 모양의 돌맹이들이 별에서 왔으며, 자연의 여러 영역들인 동물, 식물, 광물 사이의 상징적 조화를 보여줄 목적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를 정확히 모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높은 산에서 발견되는 해양 생물 모양의 화석들은 모두 높은 곳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운반되었거나 또는 노아의 홍수 같은 거센 물살을 따라 산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맹이일 뿐인 화석이 산꼭대기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굳이 연구할 가치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이런 생각이 맘에 들지 않았다. 화석이 광물이며 암석 안에서 자라난 것이라면 모든 지층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옛날에 바다였을 법한 여러 증거가 있는 곳에서만 화석이라는 돌맹이가 자라는 걸까? 그리고 화석이 돌맹이라면 왜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조개 껍질더미나 부스러기들 속에서 또는 호수나 연못의 침전된 층에서만 그렇게 자주 자라는걸까? 또한 조개껍질의 성장무늬가 드러나 있는 화석은 암석 안에서 자랐다는 것인데 어떻게 암석을 파손하지 않고서 그 안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일까?


 




레오나르도는 이처럼 당시의 화석에 관한 아리까리한 생각들을 논파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지구 이론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화석을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그럼 레오나르도가 화석을 통해 증명하고자 했던 그 지구이론은 어떤 것이었을까? 레오나르도는 지구 순환의 메커니즘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레스터 사본]과 그 밖의 다른 문서들에서 이러한 그의 집념을 볼 수 있다.


 



16세기 유럽은 아랍에서 찾아낸 천 년도 넘게 묵어있던 그리스의 고전들을 붙잡고 해석하고 연구하던 것이 학문의 전부이던 시기였다. 레오나르도 또한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을 토대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론을 믿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지구는 흙, 물, 공기, 불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흙, 그 위에는 물, 맨 꼭대기에는 공기, 그 주변에는 불로 각각 분리된 4가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흙과 물은 무거운 원소이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운동하려는 경향으로 인해 지구 가운데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원래 각 원소들의 성향에 따라 요렇게 생겼지만,
태양의 열이 원소들을 휘저어서 지금처럼 원소들이 뒤죽박죽 된 것이라고 하였다.





 


 


레오나르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체도 이와 상응하는 4가지 요소(4체액설)들로 순환하며 유지되고 있음을 알았고 그렇다면 인체와 지구가 같은 순환 메커니즘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 멋진 생각을 남들 앞에서 주장하려면 이러한 메커니즘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를 눈앞에 들이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이 멋진 생각을 말이 되게 설명하기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변을 보면 4원소들 중 가장 무거운 흙이 보다 가벼운 물 위로 솟아올라와 산이 되어 있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는 샘물이 솟아 나온다. 이것은 곧 흙과 물이 아래쪽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경향에 반하는 위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혈액(물)이 다리에서 머리끝으로 순환하며 몸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레오나르도의 절박한 노력이 [레스터 사본] 전체를 통해 중심 주제로 등장한다.


 



우리 체내에 있는 혈액이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처럼 지구 내부에서도 인체의 혈관에 해당하는 땅속 지류를 따라 물이 아래뿐만 아니라 위족으로도 움직인다. 높은 산 정상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바로 그와 같은 순환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 내부에 있는 어떤 힘이 아래로 흘러가려는 자연스런 경향을 막아 물이 육지를 통하여 위로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 둘의 작용이 합쳐져 물이 순환한다고 보았다. 레오나르도는 이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발견한다면 인체와 지구 사이의 비유는 상당히 그럴듯한 이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저 물은 어떻게 산 정상까지 올라간 걸까?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씀에 힌트를 얻어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는 것처럼 태양열에 의해 뜨거워진 물이 땅속 지류를 따라 위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알았다. 태양과 가까운 산 정상에 있는 물이 오히려 얼음처럼 차가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주장대로라면 가장 뜨거운 한여름에는 산위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의 양이 가장 많아야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가장 양이 적었다.


 
그래서 지구 내부에 있는 열로 눈을 돌렸다. 지구 내부의 열로 인해 땅속 동굴에 있던 물이 끓어 증기의 형태로 변해 산 내부를 뚫고 위로 올라와서 산 정상에서 액화하여 샘물이 되어 분출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주장 또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증기가 발생한다면 동굴의 천정은 젖어 있어야 하지만 동굴 천정은 종종 바짝 마른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산을 스펀지에 비유했다. 산의 내부가 포화상태에 이르도록 물을 흡수한 뒤 꼭대기부터 찔끔찔끔 물이 흘러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를 기술적인 용어로 차곡차곡 설명할 수 없었다. 게다가 누군가가 짜내야만 물이 지표에서 빠져나와 흘러 나올텐데 산 정상에서는 아무도 산을 쥐어짜지 않는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물이 위로 움직이며 순환하는 메커니즘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레오나르도가 물이 증발될 때 위로 올라가고 이후 비의 형태로 변하여 산꼭대기로 떨어진다는 사실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지구의 물이 인간의 몸에 있는 혈액처럼 땅속 지류를 따라 아래뿐만 아니라 위로도 물이 움직이는 원리가 필요했다. 혈액은 증발하지도 않으며, 우리 머리에서 비처럼 쏟아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비록 위로 솟아오르는 물에 관한 메커니즘을 찾을 수 없었지만 흙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에 관한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그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액체인 물은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완벽한 공모양을 형성할 것이며 따라서 대양의 표면은 어느 곳에서나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을 것이다. 흙 역시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면 지구 중심으로부터 같은 거리를 유지하는 부드러운 공모양일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내부는 균일하지 않다. 지구는 딱딱한 흙, 부드러운 흙, 암석, 동굴, 지류를 따라 흐르는 물 등 아주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흙이 균일하지 않게 분포하기 때문에 지구를 반으로 나누면 한쪽 반구는 다른 쪽 반구보다 무거울 것이다.그래서 지구는 기하학의 중심과는 질량의 중심이 다르다. 한쪽이 다른 쪽보다 무겁기 때문에 질량의 중심이 무거운 쪽의 반구로 치우쳐 기하 중심보다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지구는 살아 있는 몸과 같기 때문에 균형을 찾기 위해 중력의 중심을 기하학의 중심 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 틀림없다.



 





레스터 사본에 그려져 있는 시소타는 사람의 그림.
시소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선 무거운 사람이 받침대 가운데 쪽으로 움직여야 하고,
가벼운 사람은 더 뒤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지구는 시소를 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기 위해 지구의 무거운 반구 쪽에 있는 딱딱한 덩어리들은 세계의 중심을 향해 침전해 내려가고, 반면 가벼운 반구 쪽의 암석들은 위로 올라와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바다로부터 산이 융기되어 올라오게 된다. 따라서 해양 화석이 높은 언덕에 위치하는 것은 지구의 가벼운 쪽 반구가 융기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선 땅이 실제로 융기했다는 관찰 증거가 필요했다. 이것을 확증할 수 있는 최적의 증거들이 이미 고대 그리스 과학 이래 잘 알려져 있었으며 엄청난 논쟁을 촉발했던 높은 산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해양생물의 화석이었던 것이다.


 



[레스터 사본]에서 보이는 고생물학적 관찰들은 이러한 이유에서 레오나르도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흔히 생각하듯 화석이 물 속에서 살던 것이기 때문에 물에 대해 다각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있던 레오나르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 아니었다. 물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실패한 것과 달리 화석들은 흙의 운동을 증명해줄 수 있으며, 지구가 인체와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자활 가능한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주장하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화석을 연구한 것이다.


 


그는 상세한 관찰력으로 이론의 증거를 수집했고 이 과정에서 고생태학에서 이루어지는 기본 규칙의 근간을 제공하였다. <끝>


* 참고 및 발췌:


   스티븐 제이 굴드,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세종서적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