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게 님의 살신성인 (2/2)



* 1부에 이어서 계속 *

인류는 모처럼 세균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내독소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세균에 대항할 무기인 의료용품의 내독소 오염은 중요한 문제였다. 적과 싸울 총, 칼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는 형국과 다름없다. 내독소를 완벽히 제거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내독소의 오염유무라도 알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눈 질끈 감고 귀엽디 귀여운 토끼를 이용해 보기도 했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나갔고 검사 시간도 오래 걸렸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투구게님이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투구게의 출생의, 아니 혈액의 비밀을 밝혀 이후 그들을 예수님과 같은 고난과 희생의 삶으로 내던진 이는 프레드 뱅Fred Bang이라는 과학자다. 그는 투구게의 혈액 순환을 연구하던 중 세균 감염으로 죽은 투구게의 피가 반고체 덩어리로 응고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뭔가 이상야릇함을 느끼고 더욱 연구에 박차를 가해 투구게의 혈액 응고 현상이 포유동물의 내독소 반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즉 우리는 열이 나는 반면 투구게는 대인배스럽게도 세균과 접촉한 부분의 혈액을 응고시켜버리는 것이다. 과연 자연계의 왕고참다운 면모라 아니할 수 없다. 투구게님이 이처럼 과감한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생체적 특징 때문이다.


포유류는 모세혈관이 몸 전체에 뻗어있으며 이를 이용해 혈액과 산소를 운반한다. 즉 혈액이 혈관 내에서만 순환하는데 이를 폐쇄 순환계close ciculatory system라고 한다. 그럼 당연히 이와 반대되는 순환계도 있을 터 혈액과 세포액간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것을 개방 순환계open ciculatory system라 하며 절지 동물과 연체 동물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폐쇄 순환계는 당연히 관으로만 혈액과 산소를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혈액의 흐름이 빠르다. 따라서 빠른 속도로 산소와 혈액을 공급해야 하는 부산스런 종들이 이런 폐쇄 순환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순환계는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에 따라서 다양한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투구게는 일부에서 혈액과 조직액이 섞이는 반폐쇄 순환계semi-closed ciculatory system를 가지고 있다. 투구게의 혈관은 동맥과 정맥이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동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은 온몸을 돌아 아가미로 온다. 여기서 조직액과 섞이며 산소를 공급받아 심장으로 들어가는 순환구조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조직액이 바닷물과 맞닿고 있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생물들의 사체와 똥과 각질과 오줌 등등이 섞여있는 바다 속은 그람음성 균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이렇게 개방되어 있는 곳은 슬럼가를 향해 활짝 열려져 있는 현관문과도 같다. 어서 몸 안으로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 놓았는데 그람음성 균이 정중히 거절할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투구게는 요넘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무기와 녀석들의 LPS(내독소)를 보다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해야만 했다.



폐쇄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포유류는 세균이 침입하여 몸을 접수하려면 반드시 좁디 좁고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모세혈관을 거쳐야 한다. 동시에 면역 시스템이 발동하여 백혈구들이 몰려가 일선에서 린치를 가하는 시스템이며 이런 과정과 함께 체온을 올려서 세균에게 불지옥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투구게는 포유류 만큼의 촘촘한 모세혈관도 없고 변온동물이라 체온으로 세균들을 태워죽일 수도 없다. 그런데 하필 일부의 세포액은 외부로 열려있고 설상가상 심장과 가깝기도 하다. 그래서 투구게는 세균과 한 게임 뛰는데 시간을 질질 끌었다가 골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좀더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책이 필요했다.


투구게의 혈액에는 우리의 백혈구와 같은 항균 세포로 아메바 같이 생긴 유주세포amoebocyte가 있다. 이 세포들은 만능 일꾼들인데 상처 난 곳도 치료하고 소화 물질들을 옮기거나 저장하기도 한다. 이 세포 안에는 두 종류의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있는데 이 알갱이들은 응고인자coagulogen를 가지고 있다. 투구게의 면역체계는 LPS에 아주 민감한 유주세포를 이용해 세균의 그림자라도 보일라치면 재빨리 출동하여 세포내 알갱이들을 방출하여 세균을 둘러싸고 응고시켜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투구게의 면역 시스템

프레드 뱅 연구팀은 바로 투구게의 이 민감한 항균 시스템인 유주세포의 활용방안을 발견한 것이다. 투구게의 피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LAL(Limulus Amebocyte Lysate)는 현재 각종 의약품의 오염여부를 검사하는데 쓰이고 있다. 이게 얼마나 정밀한지 미국의 모 제약회사 직원의 말에 다르면 올림픽 경기용 수영장에 떨어진 설탕 알갱이 하나를 감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실험결과도 4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앞서 토끼를 사용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마차에서 바로 KTX로의 진보인 것이다.




강제 헌혈 당하는 투구게들


하지만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라고 했던가
. 인류는 투구게의 혈액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지만 투구게와 투구게를 먹고 사는 생물들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었다. 그 결과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생물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동해안에서는 의료용으로 투구게를 포획하고 있다. 다행히 마구잡이로 포획하지는 않고 그 주의 규정에 따라 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해마다 50만 마리의 투구게가 포획되고 있다. 이렇게 잡힌 투구게는 30% 정도를 헌혈당하고 다시 방생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15~30%의 투구게가 죽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투구게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투구게의 알을 계절음식으로 애용하고 있었던 붉은가슴도요red knot의 수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학자들은 투구게 수의 감소로 이로 인해 투구게의 알을 먹는 붉은가슴도요의 수도 감소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델라웨어, 메릴랜드, 뉴욕주는 포획할 수 있는 투구게의 수를 제한하였고 뉴저지 주는 투구게님에게 손대지 말라며 남획을 중단시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붉은가슴도요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20년 전의 개체수에는 훨씬 못미치는 실정이다.





이렇듯 투구게의 피는 인류 복지 증진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로인해 투구게의 요절과 붉은가슴도요의 기아로 이어지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이와같은 형국을 타파할 새로운 물질이 등장하였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연구팀이 아프리카에 사는 발톱개구리의 피부에서 투구게의 피에 버금가는 물질을 발견한 것이다. 이 물질을 전자칩에 코팅함으로써 세균에 접촉할 경우 전기신호를 발생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만약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투구게님의 어깨를 한층 가볍게 만들 수 있을뿐더러 붉은가슴도요의 식탁도 다시 풍요로워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론 발톱 개구리는 …… …… 눈물 좀 닦고 ……



나 지금 떨고있니?

가장 최선의 방안은 내독소를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론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지 물질이 단순한 화학물질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 나사나 망치 따위가 아니라 컴퓨터 같은 복잡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내제하고 있어야 한다. 과연 이것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회의적이긴 하지만 인류가 최근 100년간 이뤄낸 것을 보면 언젠가는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소망은 인류 만큼이나 투구게 역시 절실히 원할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

투구게 님의 살신성인 (1/2)


인류는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지만 사실 수많은 생물들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자 민폐 종결자라 할 수 있다. 생태계를 무상지원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약, 화장품, 신기술 개발 등을 위해 토끼, , 원숭이 등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아무런 친분도 없는 인류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살생부에는 비록 우리 동네에 거주하지 않아서 대면한 적은 없지만 익히 살아있는 화석으로서 현 지구상의 최대 짬밥을 자랑하는 투구게
horseshoe crab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해,
 진화론을 공격하는 창조론자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고 있는 투구게

공룡보다도 더 오래된 연식으로 현존하는 생물들이 알아서 기어도 시원찮을 판에 투구게는 어쩌다가 새까만 후배인 인류의 손에 놀아나게 되었을까. 그건 아이러니 하게도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게 해준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투구게의 면역체계 때문이다.

생긴 건 게처럼 생겼지만 오히려 거미나 전갈 같은 애들과 머나먼 친척관계인, 절지동물에 속하는 투구게는 피가 섹시하게도 파란색이다. 이것은 투구게의 고향이 안드로메다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투구게의 혈액 내에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헤모시아닌)에 구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
(헤모글로빈)에 철을 포함하고 있어서 붉은 색이다. 춥고 산소가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에게는 헤모글로빈hemoglobin의 산소 수송보다는 헤모시아닌hemocyanin의 산소 수송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투구게는 파란 피를 택한 것이다.

투구게의 섹시한 파란 피는 그 영롱한 색 말고도 또 하나 매력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세균과 접촉하면 바로 굳어버리는 원시적인 면역체계이다
. 그리고 이런 훌륭한 면역체계로 인해 투구게님은 팔자에도 없는 인간과 세균(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일선에 나서는 처지가 되었다.


폐렴으로 죽은 환자의 폐조직을 검사하다가 그람 염색을 개발하게 된,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


인류는 백신을 개발하여 수 천 년 동안 세균에게 넋 놓고 린치 당하던 상황을 역전시키고 세균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백신의 원리는 간단하다
. 우리의 면역체계를 미리 해당 세균에 노출시켜 기억시킨 후 다음에 같은 놈이 찾아오면 신속하게 걷어 차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쌩쌩한 세균을 몸에 직접 주입 했다가는 스파링 뛰려고 했다가 재기불능으로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백신은 독성을 낮추거나 제거한 세균(생백신)이나 아니면 아예 죽인 세균(사백신)을 이용한다.

그런데 초창기 백신을 연구하던 중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 죽은 세균으로 만든 백신을 맞은 환자 중 일부에게서 열이 나거나 심지어 쇼크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죽은 세균이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 의사들은 난감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풀기위해 머리를 싸맨 끝에 결국 그 원인을 밝혀내었는데, 그건 바로 일부 세균들의 세포벽 때문이었다.



이쁘게 그람 염색을 한 세균들
왼쪽이 그람양성 세균, 오른쪽이 그람음성 세균이다.

세균을 분류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염색에 의한 방법이 있다. 이것을 그람 염색 Gram stein이라고 하는데 덴마크 출신의 의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 Hans Christian Gram이 개발한 염색법이다. 이 염색법을 이용하면 세균의 특성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그람 염색을 하면 자주색을 띄는 그람 양성 세균
(G+)들로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폐렴균, 나병균, 파상풍균 등과 같은 놈들이 여기에 속한다. 요녀석들은 두꺼운 세포벽이 특징인데 왜냐하면 이들의 나와바리가 육지이기 때문이다. 거친 육지생활을 위해선 아무래도 단단한 세포벽이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붉게 염색되는 세균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람 음성 세균
(G-)이라고 한다. 살모네라균, 이질균, 티푸스균, 대장균, 콜레라균, 페스트균 등이 여기에 속하며 요녀석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나와바리는 물이다. 그래서 보다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얇은 세포벽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그람음성 세균들의 세포벽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람음성 세균의 세포벽은
LPS(lipopolysaccharide)라는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의 면역체계는 세균의 LPS를 감지하여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죽은 세균으로 만든 백신이었지만 인체는 죽은 세균의 LPS를 감지하고 면역반응을 일으켜 몸에 열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그람음성 균의 LPS를 내독소 endotoxin라고 한다.

그람음성균들은 자라면서 세포벽에서 지속적으로 내독소를 방출한다
. 또한 그람음성 균은 세포벽이 얇아서 물에서 꺼내면 쉽게 죽거나 뭉개지며 이 과정에서도 내독소를 방출한다. 즉 우리는 언제나 내독소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살벌하게 생긴 세균의 자태

그래서 우리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독소에 반응하는 면역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며, 몸에 열이 나는 것은 체온을 올려 세균을 태워 죽이려는 포유류들의 자연스러운 면역반응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인체의 면역 시스템은 점점 강해지는 것이며 대부분 내독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양의 내독소가 인체로 쳐들어와서 너무 많은 열을 발생시키면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 특히 백신이나 정맥주사액 같은 생의학 제품과 의료장비의 경우 그 대상이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독소의 제거는 중요하다. 내독소를 효율적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는 200도 이상의 고온이나 강산, 강염기에 장시간을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도 장담할 수 없다
. 주위에는 내독소가 널려 있어서 다른 과정에서 묻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내독소에 민감한 토끼를 주로 애용하였다. 오염이 의심되는 샘플을 토끼에게 주사하고 토끼가 열이 나는지를 통해 오염유무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런 시험을 위해선 많은 토끼를 길러야 했기 때문에 넓은 공간과 많은 유지비가 들었으며 윤리적인 문제도 대두되었다. 게다가 실험 결과를 얻기까지 무려 48시간이나 걸렸다.

이렇게 인류가 예상치 못한 세균의 내독소에 전전긍긍하던 중 투구게의 영롱한 푸른 피가 한줄기 빛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물론 투구게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백신에서 내독소를 제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단백질의 변성으로 인해 고온을 이용해서,
내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은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여러 정제과정을 통해 내독소의 대부분이 제거되지만,
기준치 이하로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다
.
그래서 보다 경제적으로 내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