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쾌변독설>

신해철이 똑똑하다는 건 원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쾌변독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신해철은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 이상이었다. 히틀러의 이념은 존중하지 않지만 그가 써먹었던 선전술을 높이 평가하고, 그 기법들을 자신의 콘서트 때 써먹었다는 대목이라든지, 음악에 대한 그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구절들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때는 그가 어려서부터 음악을 하려고 했고, 부단한 노력으로 결국 그 꿈을 이루어 낸 것, 그리고 지금 음악을 만들며 살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대마초 때문에 감옥에 갔을 때, 신해철은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들어온 사람들로부터 사회과학을 배웠고, 조폭들로부터는 신체 단련과 싸우는 법을 배웠을 정도로 낙천적인 신해철, 그의 집안도 그에 못지 않았다. 결혼할 여자가 암으로 투병 중임에도 집에서는 적극 찬성을 해줬는데, 이유가 이랬다.
“해철이는 장가를 안갈 것 같다고 포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제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아, 병이야 고치면 되는 거고, 여자라는데’ 하는 생각에 오히려 환영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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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이하 존칭 생략)와 최고의 입담꾼인 신해철이 만난 7일간의 행적을 담은 이 책이 재미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근데 난 이번 책을 읽으면서 신해철보다 지승호에 대해 더 궁금증을 갖게 되었는데, 그건 그가 너무도 박학다식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정치 관련 인터뷰집을 낼 때야 “전공이니까”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감독과의 인터뷰집을 두권 낼 때 보니까 영화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었다. 그때도 그렇구나 했다. 원래 책과 영화와 정치는 어느 정도 통하니까. 이번 책에서 지승호는 자신이 음악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아는 게 많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음악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걸 보니, 그건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갑자기 공부한 게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젊은 시절 음악에 빠져 살았을 것이고, 나이든 이후에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상하다. 내가 몇 번 만나뵌 지승호님은 새벽까지 술만 드시던데, 언제 그런 방대한 공부를 다 하는 걸까?

지승호도 지적한 바 있지만, 가끔 그에게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의 인터뷰집도 좀 내달라”고 요구하는 팬들이 있단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코드가 맞는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얘기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만일 지승호가 우리 동네에서 출마하는 전여옥과 인터뷰를 한다면? 십중팔구 싸움질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도…”를 외치는 사람들은 싸움구경이 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러지 말자. 싸움구경이야 재미있을지 몰라도 직접 싸우는 당사자는 무척 힘들다. 그리고 내가 알기에 지승호님은-앗 나도 모르게 존칭을!-매우 소심한 분이라, 싸우고 나면 후유증이 오래 갈 거다. 최고의 인터뷰어는 우리 사회의 재산, 그를 싸움판으로 내모는 대신,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자. 책 사는 것도 존중의 한 방법이다.

영진공 서민

ps) 한가지 아쉬운 점. 신해철은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배우나 미덕이 있잖아요. 미더덕 말고.” 이런 개그, 아무리 신해철이라 해도 욕먹는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유머를 한단 말인가. 이런 건 지승호 님이 정리해 주셨어야 하는데 그대로 실었다. 정말 아쉬운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