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타키타니 (トニー滝谷, 2004),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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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힛트 소설’들은 왜 영화화되지 않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정확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조금이라도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물불을 안가리는 영화 장사치들이 하루키에게 영화 판권을 사겠다는 제안을 안했을리는 없고, 결국 하루키의 작품들이 이제껏 영상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루키가 그것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만 했다. 그럼 하루키가 자기 작품들의 영화화를 원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다.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소설이나 영화는 대부분 서사의 틀 안에 내용물을 담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많은 소설들이 영화로 옮겨졌고 이 가운데 일부는 크게 성공해서 책도 더 팔아주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역시 소설과 영화는 문법에서부터 차이가 많다’는 소리만 듣고 말았다. 소설이 쉽게 영화로 옮겨지기 어려운 이유는, 사실 별로 없다. 소설을 미리 읽지 않은 관객에게는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했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었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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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작이 되는 소설을 먼저 읽고 달려온 관객은 만족시키기가 거의 힘들다. 영화로 구현된 시청각적 경험은 책을 읽을 때 동원했던 독자 개개인들의 상상의 감각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리고 문자로 제공되는 ‘글 읽는 맛’이라는 것은 다른 장르의 예술이 영원히 침범하지 못할 문학 고유의 영역이고 역할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외로움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과 ‘외로움’이라는 단어 하나를 적절한 위치에 박아 넣음으로써 독자의 심연을 흔들어 놓는 일은, 어느 쪽이 더 우세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무척 다른 일이다.

어쨌든 <토니 타키타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고 나는 이것을 원작은 읽지 않은 채 보았다. 그럼에도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는 연출자도 배우들도, 촬영 감독이나 음악가도 아닌,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여러분은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극장 안에서 보고 계신다’는 네온사인이 러닝타임 내내 깜빡깜빡거리는 것을 보고 온 듯한 기분이다. 분명 의도된 연출임에 분명하지만, 어떤 관객들은 하루키의 문학과는 상관없이, ‘영화’ 토니 타키타니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보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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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ps. <토니 타키타니> 이전에도 81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비롯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여러 차례 제작된 바 있었음을 밝힙니다. 이전 작품들이 일본 국내에서만 소개되고 해외에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보해주신 영진공 방문자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