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레즈물이 보고 싶다!!!



쪽팔린 고백부터 해보자.
끓어넘치는 피를 감당하기 힘든 시절, 솔까말 나도 야동 엄청나게 봤다.  하루라도 안 보면 사타구니에 진정제를 맞아야 했으니까.

그 시절 야동은 나에게 단순한 욕구충족 + 대리만족 뿐 아니라 불필요한 상황에서 필요 이상의 흥분을 해 버리는(버스에서 살짝 여성과 몸이 스친 것만으로도 발기가 된다든지 하는) 나의 왕성한 성욕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화성의 수분만큼은 있었다(…라고 변명한다.) 물론… 므흣한 목적이 화성의 수분을 제외한 다른 것들만큼 많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보는 야동의 장르는(-_-;;)다름아닌 레즈물이었다. 그렇다.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 여성끼리의 성행위를 주로 다루는 레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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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금도 싫어하진 않는다

호오… 사진 참으로 므흣하다.. 흠흠.

암튼, 당시 내가 위와 같은 이쁜 녀성들이 사랑을 나누는 레즈무비들을 즐겨보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포르노라는 장르적 특성상 최소한 두 사람이 홀랑 벗은 상태에서 영화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털이 수북한 남자 배우의 몸을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하는 것이 좀,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들이 천사같은 여성들의 몸을 유린하는 내용이 많은 메이드 인 저팬 필름들은 지금도 보기가 많이 괴롭다…그건 고문이지..) 물론 금기를 깨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보다 보면 여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 것이 금기라는 생각 자체가 안 들어버리기 때문에 … (도대체 얼마나 본 거냐…)

암튼, 누구에게도 대 놓고 “제 이름은 없다구요. 취미생활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당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야동을 보는 것이구요. 그 중에서도 레즈물을 좋아라 합니다. 회사는 SOD를….”이라는 식으로 나의 이런 취향을 말함으로서 사회적 매장을 초래해 본 경험은 없지만,

내가 위와 같은 영상물을 보는 것을 즐기고, 므흣해하고, 심지어는 모으기(!)까지 한다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죄라거나, 죄가 될 수 있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불법 공유라는 것을 지적한다면, 죄가 맞지만 …(지금도 모으냐구요 …? 슬프지만 지금 저는 그때처럼 펄떡펄떡하지는 않는군요. 그래도 가끔은 봅니다. 추석맞이 행사 정도로.)

나를 즐겁게 하는 행위가 다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머리가 미쳐 돌아가 길거리에서 손잡고 돌아다니는 여성들을 죄다 레즈비언으로 본다거나 하는 식의 행동을 한 적도 없으니까. 이 대목에서 다시한번 포르노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싶어지지만 … 일단 본론으로 돌아가자.

올해들어 유난히 남성 동성애, 그러니까 게이에 관한 문화컨텐츠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미 개봉해서 여성관객 점유율 86%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한 [앤티크],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쌍화점]등 스크린을 채우는 영화들과 10월에 막을 내린 [쓰릴 미]와 같은 뮤지컬도 그렇다.
[바람의 화원]이나 [커피프린스]처럼 남장여자와 남자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들은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동성애 코드가 이미 일반 대중에게 별 거부감없이 먹혀들어갈 수 있다는 결론을, 단편적으로나마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하지만 왜 남성 동성애 뿐인지.

세상은 넓고, 동성애자들은 많고, 그 중에 절반은 여성 동성애자일텐데. 왜 남성 동성애만 이렇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심지어는 환영받는지에 대해선 참으로 궁금하다.


만드는 쪽에선 이 질문에 대해 이미 준비된 대답이 있을 듯하다.
“돈이 되니까 그렇지.”

[앤티크]를 보러 온 수많은 여성관객들이 전부 동성애자로서 동성간의 사랑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얻었다거나, 동성애자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현상을 직접 만들어냄으로써 동성애자들의 사회적 인권 발현에의 참여의지를 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재미”와 “흥미”를 즐기기 위해 극장을 찾았고, 만족을 느꼈다.  그럼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도 이미 대답은 나와 있는 듯 하다. 주변에서 [앤티크]를 보았다는 여성분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보라. 대충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꽃미남에 몸 좋은 애들이 넷이나 나오니까.”

아 물론, 좋은 원작이 있고 좋은 이야기가 기본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고, 거기에 때마침 꽃돌이 네명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으니 금상첨화라는 이야기를 줄인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잘생긴 남자들이 넷이나 나와서 지들끼리 알콩달콩 사랑도 하고, 사랑하다보니 뽀뽀도 하고, 지켜보는것이 므흣해서, 그래서 극장을 찾았다고 한들, 그것이 흠이 될까? 매력적인 이성을 지켜보는 것이 영화감상의 목적이 된다 한들, 그게 왜 잘못이란 말인가.
 

[앤티크]는 본격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는 영화는 아니다. 가볍게 거부감이 없는 정도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 가벼운 동성애는 여성으로 하여금 여러 부분의 환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된다. “꽃미남”이라는 거부하기 힘든 도구를 통해서 말이다.

누구도 이것을 남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남자끼리 키스하는 것을 보면 거북해지는 남자인 나 또한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남성들이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휘바람을 불며 박수를 치는 여성들을 변태로 몰아붙이거나 야유를 날릴 생각은 전혀 없다.  나 또한 나의 환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레즈물을 보았지만, 난 전혀 변태가 아니니까.

그렇담 꾸물꾸물 솟아나는 생각. 나도 욕망을 충족시켜보고 싶다. 코딱지만한 컴퓨터 화면에서 이름도 모르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라고 불러주기도 민망한 포르노는 더 보고싶지 않다. 나도 당당하게 극장에서 김혜수와 손예진이 연인으로 등장하는 (생각만으로도 환상적이다…흠냐…) 레즈영화를 보고 싶다. 여성 동성애에 대한 깊은 고찰이나 고민을 함께할 능력은 안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 환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의사는 있다.(그리고 DVD한정판을 사기위해 교보문고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 새치기 하는 녀석이 있으면 허리를 반대로 접어버릴 용의도 있다.)

그러니까 좀, 만들어 줘!! 나도 당당하게 레즈영화 보고 싶단 말이다!!!

영진공 거의없다

[시] 오렌지, 껍질


오렌지, 껍질

오렌지를 사랑했어요

오렌지를먹을때껍질째먹는사람있나요오렌지를먹고싶으면단단한껍질을벗겨야하죠껍질도벗기지않고핥아보니맛없다고투덜거리면누구도이해하지않을거예요오렌지를날로삼키려든다는핀잔이나듣겠죠껍질이아무리두터워까다로워도손톱을꾹눌러박아벗기는수고를해야,

오렌지를 먹을 수 있는데

오렌지를만날때마다그짓을되풀이해야했던거예요이전에깐건아무소용없었죠까놓고돌아서면껍질은그새또고스란히재생되어있었어요발끈해도소용없는건껍질이있어야오렌지니까껍질을벗겨야오렌지니까연약한속살과향긋한내음을지켜주는껍질은어쩌면오렌지의모든것,

오렌지를, 그, 껍질까지, 사랑해야 했는데

오렌지를난자꾸벗기기만했어요넷으로다섯으로나누어손가는대로갈기갈기벗겼어요벗긴껍질은주저않고버렸죠그래도되냐고오렌지에게물어본적도없죠날욕해도상관없지만오렌지탓도있어요한번도말리지않았으니깐아무렇지않은듯다시단단한껍질을척두르고나왔으니깐,

오렌지를, 뼛속까지 오렌지가 아니라 껍질까지 오렌지였던 오렌지를, 그

오렌지를.

영진공 도대체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는 지금의 한국과 싱크로율이 99.9%



경제학자가 쓴데다가 제목이 “미래를 말하다”여서 경제 관련 내용일 줄 알았건만 오히려 미국 정치 분석에 가깝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의 연구는 이 책의 내용과는 거의 무관하다.)

크루그먼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아무 도움이 안되는 세금 감면과 복지 혜택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 그들은 왜 매번 선거에서 이기는가?”  여기서 공화당을 한나라당으로 대체하면 이 질문은 우리에게 싱크로율 99.9%다.

이 의문에 답을 제시하기 위해 크루그먼은 대공황 이전 시절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대공황 시절 이전 미국은 소득 불균형이 심각했다. 대공황이 발생하고 뉴딜을 실시한 이후 미국 경제의 황금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레이건 출현 이후부터 소득 불균형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현재는 아주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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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시절의 미국

뉴딜정책 이후 소득의 재분배가 골고루 이어지는 중산층의 황금기이자 미국 경제의 황금기가 찾아왔었다는 얘긴데, 그 이유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적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 연합이 그랬고 과도기적 대통령인 공화당 닉슨조차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을 정도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책에서 좌우 스펙트럼이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다시피 전국민 의료보험은 후에 클린턴이 관철시키고자 했으나 당시 공화당 하원의장인 깅리치에 의해 좌절된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이만큼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두 정당의 노선 차이가 벌어진 이유는 70년대 들어서면서 공화당이 다시 세금감면과 복지 축소와 자유 시장을 내세우며 극우화됐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은 그 이유를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공화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도 우리와 싱크로율 99.9%다. 우리도 있다. 뉴라이트.

이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은 사실 민주주의자들인지도 의심스럽다는 게 크루그먼의 얘기다. 그들은 프랑코 정권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댔다. 또한 그들은 정부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과 세금 감면을 원하는 기업의 든든한 후원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또한 공화당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 그러니까 공화당 당대회에서 “정교일치를 하면 왜 안되느냐”고 연설하는 자들의 지지까지 얻는다. 이 역시 우리와 싱크로율이 높다.

게다가 미국은 원초적인 인종 문제가 결부돼 있다. 복지 혜택을 늘렸을 때 그 이득이 유색인종에게 돌아가는 것을 질색하는 남부 여러 주의 인종적 혐오를 공화당은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는 거다. 이 또한 우리와 싱크한다. 우리도 있다. ‘흑인’ 대신 ‘빨갱이’. 민주당이 싫은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 퍼주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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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라이트라 할 수 있는 "Compassionate Conservatism(인정 많은 보수)"를 비꼰 카툰 - 뉴올리언즈의 재해복구에는 예산배정을 안 하고 이스라엘의 군비지원에는 3백억달러를 책정했다는 내용.

이들의 지지를 얻은 골드워터는 하지만 패배한다. 그러나 똑같이 이들의 지지를 받는 레이건은 정권 획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레이건이 이같은 ‘새로운 보수주의의 정서’를 포장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레이건은 유세 중 “복지의 여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복지 혜택만으로 여왕처럼 사는 어떤 여성, 그것도 유색 인종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어떤 여성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복지의 여왕”이라는 단어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세금을 악용하는 것에 반감을 갖게 만드고, 더불어 높은 세금과 큰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레이건이 약속하는 세금 감면과 작은 정부에 동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주의 어떤 여성이 ‘복지의 여왕’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복지의 여왕’은 실제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레이건은 증명할 수도 없는 사실을 가지고 정서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이런 언어는 이명박 대통령도 사용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톨게이트. 대체 어떤 톨게이트가 하루 200대가 통과하는데 직원이 20명인지 정부조차 찾지 못했다. 그도 그저 큰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는 데 존재하지 않는 톨게이트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이명박의 출현은 레이건의 출현과 비견된다. 그는 뉴라이트의 지지를 받았고 세금 감면과 민영화를 통한 작은 정부, 자유 시장을 내걸고 있으며 기독교 장로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아직도 ‘빨갱이’를 대신해 ‘좌파’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좌파’라는 단어는 ‘좌파 정책’, ‘좌파 코드’와 같이 대상이 굉장히 모호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성적인 단어가 아니라 감성적인 단어라는 증명이고, 논리가 아닌 감정에 불과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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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뉴라이트는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을 벤치마킹했음이 분명하다. 레이건처럼 이명박이 집권했으니 그들은 장기 집권을 꿈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노령화로 자신들의 지지층이 많아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어린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이다. 그들에게 투표권이 생기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쳐야 한다. 무엇을? 교과서를.

역사 교과서 개정 논란은 그래서 나오는 것일 게다.

젊은 대학생들도 문제다.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이 대학 공화당 연합회를 조직했듯이 뉴라이트 또한 대학 학생회를 조직해 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방송. 아마도 방송, 그것도 예능/오락 쪽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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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뉴라이트의 시각

레이건이 집권한 게 1980년. 거의 30년이 지나서야 미국은 오바마를 당선시키며 레이거노믹스를 걷어치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야 이명박을 갖게 됐다. 이것을 걷어치우려면 우리에게도 30년이 필요한 것일까?

끝으로 폴 크루그먼은 유권자들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한 가지 커다란 전제를 깔고 있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공화당에게 속았다’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공화당은 어떻게 해서 유권자들을 속일 수 있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면 좀 더 원초적인 의문을 가져보자. 유권자는 왜 속을까?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내놓을 뿐 아니라, 국정원을 과거 안기부로 되돌리려고 하고, 언론장악을 획책하고, 검찰과 감사원 심지어 ‘헌재까지 접촉’하고 다니는 정권에게 왜 속으며, 아직도 모든 당 중에 압도적 1등으로 왜 지지할까?

김근태 씨야 정치인이니까 이 말 해놓고 무지 욕먹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정답같다.
국민이 노망났다. 그것도 단단히 노망났다.


영진공 철구

초보, 중수, 고수는 총잡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발달심리학자 J.R.Harris는 사람은 성장하면서 개성을 드러내는 과정이 마치 모래시계 모양이라고 한다.

나는 사회화는 일종의 모래시계 같은 모양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인으로 시작해서 집단의 압력에 의해 한데 묶여서 보다 비슷해진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집단의 압력은 점차 약해지고 개인차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독특해지는데 왜냐하면 자신들의 특이함을 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과 달라져도 별로 심한 벌을 받지 않는다 (Nurture Assumption, Ch.15)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릴적에는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진 존재였다가, 학교에 입학하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면 서로서로 비슷비슷해지고, 회사에 가서도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비슷비슷한 상태를 유지하다 점차 승진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예전에 억눌러왔던 개성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거다.

그럴듯한 얘기다.

그런데 이런 모래시계 모양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림 그리기를 생각해보자.
그림의 초보자들은 정말 제멋대로 그림을 그린다.
이 규제받지 않은 상태의 그림들 중에는 후앙 미로 같은 대가의 그림과 별 차이없는 개성과 창의성이 보이는 그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초보다운 어설픈 그림들이다. 그러다가 그림교육을 받으면 그림 그리는 방식들이 서로 비슷해진다. 이게 중급자 단계다. 이때도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가끔 드러나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림만 보고는 어느 그림이 누구 건지 잘 분간이 안된다. 제대로 교육을 할수록 그림간의 차이는 적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면, 그래서 그림 속에 자기의 마음을 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이제 그림속에 그린 이의 개성이 녹아들게 된다. 이게 고수의 상태다.
이건 글도 마찬가지고,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어디서나 초보는 제멋대로고, 중수는 획일화되어 있고, 고수는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제멋대로가 된다. 초보의 제멋대로는 미숙하기 때문이지만, 고수의 제멋대로는 기술을 통해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액션영화는 이런 초보와 중수, 고수의 차이를 드러내는게 매우 중요한 장르다.
총을 쥐고 겨누는 방식을 예로 들어보자. “스티븐시갈”이 총을 들고 약실을 확인하고 표적을 겨냥하는 방식은 조금씩 남들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그럴 듯 하다. 그의 포즈는 전형적이지는 않지만, 어설픈 초짜 경찰이 덜덜떨며 총을 겨눌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거다.
 

실제 특수부대원들에게서도 이런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 20-30년간 FBI에서 가르치는 권총사격 자세는 계속 바뀌어 왔다. 그냥 카우보이처럼 무조건 뽑아서 쏘라고 가르친 적도 있고, 급해도 신중하게 가늠자와 가늠쇠를 정렬한 다음에 쏘라고 가르친 적도 있다(요즘은 후자란다). 쏠때도 방아쇠 울에 손가락을 걸라고 가르친 적도 있고, 그게 균형을 깨트리니까 그냥 손잡이만 마주잡고 쏘라고 가르친적도 있다. 그런데 FBI의 고참 수사관은 오래 전부터 훈련을 받은 사람이므로 이런 훈련방식의 변천과정이 그대로 몸에 배게 된다. 즉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기만의 쏘는 방식을 체화하는 거다. 반면에 FBI 훈련소를 이제 막 마친 중수급의 신참 수사관은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총을 쥘 것이므로 동기단위로 똑같은 포즈가 될 것이다. 이런 신참 수사관들도 관록이 붙으면 자기 체형과 경험에 맞는 자기만의 자세가 저절로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대로 된 액션영화를 표방한, 『쉬리』에는 정말 여러 가지 애석함이 넘쳐난다. 스토리도 빈틈이 많고, 현장요원과 분석요원의 구분도 없는 첩보기관이라는 설정도 허술하고, 특수폭탄이 필요한 이유같은 개연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런 애석함 중에는 이 특수요원들의 자세도 포함된다. 어떻게 된게 북한군 특수부대나 OP 요원들이나 총을 쥐고 겨누는 자세가 아주 똑같다. 그것도 고참 신참 구분이 없다. 어떻게 남한과 북한에서 똑같은 사격자세를 가르치겠는가, 그리고 “최민식” 같은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요원과 “한석규”의 자세가 같겠는가…. 뭐 나름대로 영화 촬영 전에 총기관련 훈련을 받은 결과라지만, 그래서 홍콩영화처럼 양손으로 쌍권총 난사하는 말같지 않은 장면을 없앴다고 자찬을 하더라만, 제대로 된 액션연출이 되려면 그것만으로는 2% 부족한 거다.
 

『쉬리』만 그런게 아니다. 사실 그 이후에 나온 총기를 다루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초보수준의 자세(이건 아예 훈련도 안시킨 거다)이거나 중수 수준의 자세에 머무른다. 거기엔 다양성도 없고 개성도 없다. 그냥 총을 쏘는거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총을 다루는 기본만 가르치고(쏠 일이 없을때는 반드시 방아쇠에서 손가락 뗀다 같은…) 나머지는 제각각 알아서 하게 하는게 더 그럴듯한 연출이 될 수도 있다. 개성을 드러내려면 실제 포즈의 미묘한 차이를 과장해도 되니까 말이다. 꼭 양손으로 총을 쥐어야 실감이 나는게 아니다. 고수쯤 되면 한손으로 총을 쏠수도 있지 않겠나.

대표적인 총 뺏아야 되는 포즈, 해머코킹 한 상태에서 방아쇠에 손가락 걸고 폼 잡기... 대략 오발사고 내고 싶어서 환장한 자세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에서도 출연진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당시 사격자세의 기본을 충분히 숙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게 획일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미묘하게 다른 차이까지 보여주곤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총잡는 기본뿐만이 아니라, 그 기본의 다양한 패턴에까지 통달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 영화에서 초보와 중수 그리고 고수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액션연출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영진공 짱가

음악으로 만나는 청춘영화 두 편





영화를 음악으로 만나자!

그래서 준비한 두 편의 청춘영화는 1994년 개봉작 “청춘스케치(Reality Bites)”와 2000년 개봉작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이다.

먼저 “청춘스케치(Reality Bites)”.
“현실은 우리에게 아픔을 준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Reality Bites”가 어찌하여 “청춘스케치”라는 요상한 제목으로 변신하였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니 더 이상 문제삼지 말고 전진하도록 하자.

  청춘스케치 (Reality Bites,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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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스틸러의 감독 데뷔작으로 이단 호크, 위노나 라이더, 벤 스틸러가 주연을 맡았고 지닌 가라팔로, 스티브 잰이 함께 연기하였다.

X 세대라고 불리운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삶과 고민 그리고 사랑을 잔잔하게 묘사하는 이 영화는, “Reality Bites”라는 제목처럼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삶을 과장이나 분칠 없이 차분하게 보여주고자한다.  그래서인지 흥행성적은 평범했었지만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또한 사운드트랙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는데, 신인이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이 이 영화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하였다.

자, 음악 속으로 고고~ 고고~

1. “My Sharona” By The Knack

그룹 The Knack이 1979년에 데뷔곡으로 발표한 이 노래는 발매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며 빌보드 챠트 1위에 올라 6주 연속 머물렀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1994년에 영화 “Reality Bites”에 삽입되면서, 다시 빌보드 챠트에 등장한다.  이런 경우는 여러 번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 “사랑과 영혼”에 삽입된 “Unchained Melody”와 영화 “웨인즈 월드”의 “Bohemian Rapsody”가 그러하다.



영화 속에서 만나는 “My Sharona”


뽀나스로 준비 한 The Knack의 “Good Girls Don’t”


2. “Baby, I Love Your Way” By Big Mountain

Peter Frampton의 1976년 히트곡인 이 노래 역시 그룹 Big Mountain이 신나는 Reggae리듬으로 다시 불러 영화에 삽입되면서 다시 커다란 히트를 기록한다.

사실 이 노래는 1988년에도 그룹 Will to Power가 불러 빌보드 챠트 1위에 올랐고, 다음으로 소개 할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도 삽입되는 등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 곡이다.



Big Mountain, “Baby, I Love Your Way”

사용자 삽입 이미지영화의 스틸 컷

3. “Stay” By Lisa Loeb

Lisa Loeb은 이 영화 덕분에 스타가 된 케이스.  영화가 제작 될 당시 가수 지망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Lisa의 남자친구는 바로 영화의 주인공인 이단 호크.

그는 Lisa의 노래 테이프를 들고가 감독인 벤 스틸러에게 들려주었고, 벤은 이 노래를 영화에 삽입하게된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처음 대중들에게 선보여진 이 노래, “Stay”는 미국과 영국의 히트챠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하는 등 말 그대로 대박을 쳤고 Lisa Loeb은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Lisa Loeb, “Stay”


뽀나스, “Keep On Loving You”

4. “All I Want Is You” By U2

“Reality Bites” 영화 사운드트랙의 백미 중 하나.
U2에 대해 굳이 더 적을 건 없고, 그냥 영화 속 장면으로 감상하시면 되겠다.


U2, “All I Want Is You”

자, 다음 시간에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를 음악으로 만나보도록 하겠다.
1부 끗.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