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스의 견문발검 – 엿이나 먹으세요!!

2004년 12월 14일
언론중재위원회

언젠가 견문발검에다도 쓴 것 같은데, 지금껏 내가 만든 영화들은 단 한 번도 텔레비젼에 나간 적이 없다. 국내 방송 채널로는 KBS ‘독립영화관’이 가장 규모가 크다. 방송국이라서 그런지 상영료가 만만치 않다. 한 번 상영에 기백 만원을 주는 모양이다(-.-). 인디스토리 대표가 내게 자주 하는, ‘제발 좀 되는 영화 좀 만들어라’는 우스개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문제인 건지 요 빌어먹을 방송용 도덕 관념이 문제인 건지 헷갈려 하다가 슬몃 웃음과 함께 가벼운 욕찌기가. 엿 먹으세요.

단언하건대, 한 번도 내가 도덕을 파괴하거나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상상을 ‘일부러’ 한 적도 없지만 아직 그런 재밌는 일탈을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외려 난 소심한 편이다. 아마도 한국 방송의 도덕적 센서는 말초신경에 가까운 감각을 지니고 있어 아주 짧고, 예민한가 보다. 일종의 오르가즘 신경다발체인 걸까?

어제 얼핏 들으니 『동백꽃 프로젝트』도 또 KBS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모양이다. 야한 장면도 있고, 호모들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런가 보다. 예전에 『슈가힐』은 아예 몇 장면을 삭제하길 요구받았는데, 엿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을 되돌려 줄 수밖에는. 감독의 자존심도 없는가? 상업영화도 아니고 독립영화를 찍었다는 것들이 몇 장면 삭제해 텔레비젼에 올리는 일은 용서되지 않는 짓거리다. 일테면 나쁜 버릇은 잡들여야 하는 법.

가장 엽기적인 경우가 『굿 로맨스』 때였다. 당시 그 프로그램 피디는 이 영화에 대해 꽤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어 1년 동안 심의 데스크와 싸웠지만 결국 상영되지 못했었다. 그 심의 데스크의 도덕 센서에 걸린 것은 ‘교복’과 ‘원조교제’였다. 웃기는 이야기다. 성인 남성과 여자 고등학생에 관한 원조교제 영화들은 버젓이 상영했던 것. 존만한 마초 새끼들이 시민의 도덕을 들먹이며 가위질 하는 버르장미는 꼭 저기 의회 안에서 국민들이… 하고 어버버거리는 좀비들하고 닮아 있다.

나는 여자가 남편을 죽이고, 교복 입은 머슴애가 성인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호모들이 벌거벗고 남우새스럽게 나뒹구는 영화들을 계속 찍게 될 것이다. 아마 상업영화를 찍어도 저기 방송국 녀석들은 상영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엿 먹으세요.

습관

‘습관’은 이 세상의 그릇 안에 태어난 어느 주체가 ‘주체됨’을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일 것이다. 습관과 이의 제도적 구성물인 ‘관습’과의 관계맺는 방식의 변화에 따라 주체는 늘 변화하기 마련.

예를 들어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제각기 주관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136개의 눈이 있으면 136개의 영화가 소비되는 과정에서 다시 재창조된다. 136개의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천 만명이나 몰려 가서 보는 일련의 행위와 저예산 예술 영화를 보러 가는 극소수 행위의 차이는 136개의 우주의 불꽃놀이로 설명되지 않는다. 일정한 지형도가 쉽게 그려지며, 136개의 우주가 실은 그렇게 큰 차이도 없이 이미 구획된 경로를 통해 몇 개의 집합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당신은 왜 저 영화를 보러 가서 싸구려 감동을 매입하는 걸까? 당신의 자유의지? 너무도 뻔하고 상투적인 조립형 감동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난 가끔씩 공포를 느끼곤 한다. 습관의 힘, 습관적 감동, 습관의 눈, 습관의 우주에 대한 공포 말이다. 해서 사람들은 저예산 예술영화의 활성화, 독립영화관 등의 이야기를 떠벌리며 ‘다른 감동’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람들의 습관을 움직이게끔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 화려하다는 136개의 우주들은 기껏 제도의 산물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당신의 우주는, 당신의 습관은, 당신의 삶은, 그리고 당신의 눈과 귀의 감각은 기껏 제도의 힘에 따라 이곳으로 저곳으로 끌려다니는 객체의 몸짓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공포다. 당신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미 영화사 기획실에서 계산되고 측정된 대로 당신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의 인공. 때론 자신의 권능을 되찾기 위해선 눈깔을 파내고 귓속을 후벼파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공화국 언론중재위 차관보
아도니스(gondola21@gondola21.com)

“아도니스의 견문발검 – 엿이나 먹으세요!!”의 3개의 생각

  1. 그런 말도 안되는 심의들에 싸워가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힘내시고 본인이 만족하는 그런 작품 만드세요 ^^

  2. 만들어진 감동에 길들여진 분들의 감정 체계를 새롭게 구조화하기 위해.. 님이 만든 영화의 중간 중간에 “여기서 감동을 받으세요.”라는 자막을 삽입하심이 어떨런지… -.-

  3. 굿로맨스 본 적 있는데요. 꽤 괜찮았습니다.
    독립영화를 볼 기회는 야밤 케비에쓰 밖에 없는데….
    휴우…. 요즘은 정말 많이 재미 없어졌다는 생각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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