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같은 세상

그럴껄의 뉴스서비스
2006년 9월 13일


1987년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다시, 서울의 봄은 올 것같지 않았다. 그해 여름 보라매 공원과 여의도는 80년 광주에서 찢겨나간 살점들과 부마항쟁의 비명과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의 머릿수 놀음으로 때아닌 홍역을 치러야 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베트남전에서나 볼법한 머리를 잃어버린 소년과 개처럼 끌려가는 형들과 신길6동 동사무소 아저씨들이 원정나온 모습을 차례로 봐야 했다.

아버지는 김영삼 유세 때 뿔피리까지 사가지고 회사가 아닌 여의도로 출근 하셨다.

1989년 전교조가 생기면서 고1의 눈이 바뀌기 시작했다. 폭력으로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세상에서 나는 힘이 없었다. 영웅본색에 열광했던 건 주윤발의 똥기마이 때문이 아니라 폭력적인 세상에 폭력으로 되갚는 인상적인 몇몇의 클리셰 때문이었던 것 같다.

1990년 전태일을 알게 되었고 돌베게를 읽게 되었고 세계철학사니, 변증법적 유물론이니 하는 책들을 읽는 ‘척’했다. 사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공부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거 읽고 바퀴벌레 더듬이보다 조금 더 긴 정도의 지식을 통해 옆동네 여고 애들을 꼬실 생각이었다. 혁명은 피를 끓게하는 단어이며 피가 끓으면 몸도 끓는다는 것이 17살 후두엽에 각인된 공식이었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계획은 실현될 턱이 없었다. 좌절했다.

1991년 고3의 여름은 종로에서 지샜다. 전고협 깃발이 붙었고 학교에 담을 넘어가 피를 뿌렸다. 종로 2가, 형들과 함께 대오 앞으로 나가있는 나를 발견 했을 때, 그리고 누군가 전해준 화염병에 불이 붙었을 때 잠시 망설였다. 본건 있어서 돌리긴 했는데 생각보다 뜨거웠고 무엇보다… 던지기 전에 다시 빼앗겼다.

“이새끼 뭐야? 얘 여기 왜있어? 너 누구야??”

“… 씨발, 나도 여기 오고 싶어 왔나? 밀려 들어온거지”

지랄탄이 내 발 밑에 떨어졌고 나는 스테로이드 먹은 벤존슨보다 빨리 대오 밖으로 이탈했다.

경희대에서 출발한 대오는 종각까지 왔다.

미국대사관은 괴물이었다. 8,9겹으로 둘러쌓인 살아있는 갑옷에의해 뚤리지 않는 괴물이었다. 이한열이 생각났다. 박종철이 떠올랐다. 무학여고 정문 앞에서 이한열을 목놓아 외치던 백기완 선생의 성성한 백발과 쉰 목소리가 생각났다.

“씨빨, 학력고사는 치르고 죽어야지”

그리고 몇년 후

설마설마 했던 수령님이 가셨다. 역시 두꺼비 아들이 세습했다. “남조선이건 북조선이건 정치하는 새끼들은 전부 저래”, “친일청산도 못하는데 그게 되겠어? 북한 욕할 거 없지”

김영삼 정부는 IMF라는 선물을 주셨다. 세상은 “영삼스럽게~”라는 문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를 강간도시로~”하는 말도 우스개소리로 돌기 시작했다. 영미식 시장경제인 금융실명제는 돈을 땅속에 박아두게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무기명 채권으로 곰팡이나는 돈들을 끄집어냈다. 손호철식으로 말하면 한은 풀었는데… 앙금이 풀리지는 않았다. 김대중의 두 아들은 모두 비리에 엮였다. 김현철과 다를게 없었다. 아버지는 “그나물에 그밥”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전라도 것들”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전라도 분이셨다. 어머니에게 왜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하냐고 하고 싶었지만 씨알 먹힐 소리가 아니었다.

노무현이 드라마처럼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조선일보는 여러개 히트를 쳤다. “반미면 어떻냐?” “지금 막가자는 거지요?” 뇌가 없는 새끼들이 아니라면 인간들이 저러면 안되는 거였다.

인간쓰레기들…

뭘하든 앞뒤를 잘라서 말을 만들었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 안한다고 약올렸다. 전여옥은 참 여러가지를 보여줬다. 그녀가 개그콘서트에 초대받지 못한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작통권을 넘겨받자는데 세금이야기나 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쟁이 나면 대통령보다 끗발이 높다. 자기 좆이 작다고 쌀집아저씨한테 마누라 맡기는 꼴이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과 사건이 지나가면서 세상도 변했다. 세월은 흘렀고 나는 여염집 가부장처럼 애도 낳고 대출도 갚고 빚도 지고 월급 받으며 살아내고 있다.

어제, 직장 상사와 술을 먹는데 나눔문화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박노해가 레바논 가는데 우리쪽 번역작가들 손이 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단다. 도움을 주고 싶다고… 7년간 침묵하는 그가 궁금해 거칠게 물어봤다.

“그양반 왜 변절했데요?”
“그거 답하기 전에 예전에 내가 본 만화 이야기 하나 하자. 그 조선일보에 신뽀리 그린 박광수 있잖아. 걔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데 머릿속에 안지워지게 그린 만화가 하나 있어. 고아원에 라면박스 쌓아놓은 대머리 사장 사진이 하나 있고 밑에 이런 대사가 있는거야… 난 졸부입니다…… 고아원에 라면이 아니라 걸레쪼가리 하나 가져다 주지 않은 새끼들이 어떻게 졸부를 욕해! 그래서 난 박노해 인정한다. 나눔문화 가서 내가 코딱지만한 도움이라도 되려는 거 그 졸부보다는 쪽팔리지 않을라고…”

일견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면 안된다. 선동하였고 외쳤고 그 사랑으로 커온 그다. 마누라가 정치판 모른다고 멍청하다고 “니가 말하면 뭐 알아 듣겠냐? 니랑 말 안해”하는 되먹지 못한 남편 꼴이다. 김문수, 이재오 씨발, 안착한 인간이 어딨어!!!!

홍탁을 거나하게 걸친 죄로 200번 좌석버스 안에서 졸았다.
머리 속에는 박노해와 1987년과 종로와 미국 대사관과 NL과 PD와 홍탁과 얼마전에 본 괴물이 뒤섞였다.


세상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망자긴 사망잔데 안죽은 현서의 영혼이 미선이 효순이와 같이 ‘그나물에 그밥’ 국회의원들 어깨 위에서 계속 나를 야리고 있었고 이상황에서도 나는 잠이 왔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집과 독선을 내 딸년인줄 알고 붙잡고 뛰었으니 강두만 그런게 아니었다. 남일이가 돌리는 화염병에서 슬로우가 걸린거, 강두의 쇠창을 잡은 손에 베인 피. 1989년 종로에서의 일상이었다.

괴물은 허상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씨발,

‘진상은’ 앵커
그럴껄(titop@naver.com)

“괴물 같은 세상”의 6개의 생각

  1. 미국이 싫으면 이 이나라 떠나면 된다…미국 싫다고 하기 전에 서민들 살기어려운데 가슴 억장지게하는 주둥이 좀 닥치면 좋겠다

  2. 서민들 위해서 봉사한적 있어…? 그 썩어빠진 대가리는 미국에 가서 미국놈들하고 민주주의되는 나라에서 써먹었으면 좋겠다

  3.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한참 웃다 갑니다.
    가끔씩 들를게요.

    이 부분… 통쾌했어요ㅎㅎ
    “뭘하든 앞뒤를 잘라서 말을 만들었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 안한다고 약올렸다. 전여옥은 참 여러가지를 보여줬다. 그녀가 개그콘서트에 초대받지 못한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작통권을 넘겨받자는데 세금이야기나 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쟁이 나면 대통령보다 끗발이 높다. 자기 좆이 작다고 쌀집아저씨한테 마누라 맡기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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